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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012년 4월, 광화문 광장에서 바라본 광화문.








궁궐 안쪽에서 바라다 본 광화문.

사적 제117호로 지정된 경복궁은 1395년에 창건된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명칭은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왔다.
북으로 백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의 중심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소되었다가 고종때인 1867년에 이르러서야 중건되었다.
경복궁 안에는 국보인 근정전, 경회루 외에도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등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궁내에 준성된 전각은 총 390여 칸이었다.








경복궁의 중문이자 구중궁궐로 들어가는 두번째 문인 흥례문(興禮門).
흥례문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세종 때에
처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권피탈 후 경복궁은 철저히 짓밟히기 시작하여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건립하기 위해 이 일대를 전부 헐어버림으로써 궁궐로써의 면모를
완전히 잃게 만들었다.
이후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식민지 정책의 표상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사라지고, 2001년이 되어서야 이 자리에 본래의
전각들을 복원하면서 경복궁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간다.








                               영제교 남쪽에서 바라본 근정문(勤政門).
                               근정문에서는 왕과 문무백관이 조참의식(소조회)을 행하였으며
                               즉위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는데 단종은 근정문에서 즉위를 한 첫 번째 왕이다.








                               입궐하는 신하들의 마음을 씻고 액을 물리치는 역할을 한 금천(禁川),
                               그리고 이를 지키는 천록(天鹿). 
                               천록은 중국의 공상적인 동물의 이름으로, 노루를 닮아 꼬리가 길고
                               외뿔(一角)인 것은 천록, 두뿔(雙角)인 것을 벽사(僻邪)라고 한다.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에는 백악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
                               즉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어구의 중앙에
                               영제교(永濟橋)라는 다리가 놓여있다.
                               어구와 영제교는 근정문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들의 조회시에
                               신하들이 도열할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남쪽 행각의 가운데에 위치한 근정문(勤政門).
그 좌우에는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고, 동쪽 행각에는
융문루(隆文樓)가, 서쪽 행각에는 융무루(隆武樓)가 있다.
정전 영역의 입구에 해당한다.








                               국보 제223호로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고 신하들의 하례와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 쓰이던 근정전의 조정. 
                               조정이란 넓은 마당을 의미하는데 넓은 박석을 깔고 좌우로 품계석을 설치하였다.
                               이 마당에서는 노인들을 격려하는 기로연(耆老宴)이나 과거시험도 치뤄졌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정전의 안쪽에는 바닥에 전돌을 깔고 북쪽 가운데에 임금님의 어좌를 설치하였다.
                               어좌 뒤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해와 달, 그리고 다섯봉우리의 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를 놓았고 천장에는 칠조룡(七爪龍)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왕과 신하들이 정사를 논하던 편전인 사정전(思政殿).








외국사신의 접대나 군신간의 연회장소로 사용하던 국보 제224호인 경회루(慶會樓).
침전인 강녕전 서쪽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현재의 경회루는 고종 4년(1867)에 중건된 것이다.

참고로, 지난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이곳 경회루를 둘러볼 수 있는 
특별관람행사를 
인터넷 예약자에 한해서 실시하고 있다.








                               경회루 연못 주변에는 담장이 둘러쌓여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동서남북의 담장이 철거되었으며
                               2004년~2005년에 각각 북쪽과 동쪽 담장이 복원되었다.








경복궁의 서북쪽에 위치한 태원전(泰元殿) 일대.
태원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던 건물이다.








향원정(香遠亭).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연못을 파고 그 가운데에 
섬을 만들면서 지어놓은 2층 규모의 정자로 1867~1873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취향교(醉香橋)라 하였다.








집옥재(集玉齋).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이 3채의 건물은 당초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188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 전각들도 옮겨온 것이다.
고종은 이 건물들을 어진의 봉안 장소와 서재 겸 외국사신의 접견장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이 3채의 건물은 당시로서는 신식이라고 생각되던 중국풍을 받아들여 경복궁의
다른 전각들과 달리 중국식 양식으로 지어졌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경복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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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의
2003년 12월의 모습이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2년(1865)에
대원군에 의해 재건되었다.
지금의 것은 1968년에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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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15 기념식은 세종문화회관,
독립기념관 등에서 열리던 것에서 벗어나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으로
이 곳 광화문과 흥례문사이의 공간에서
열릴 예정이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경복궁은
나라의 기운을 상징해 왔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1948년 8월 15일 경복궁내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이 열린이래
경복궁에서 열리기는 처음이라 한다.

그래서 다시 꺼내 본, 경복궁과
창덕궁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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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인 흥례문.

원래 1395년에 건립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때에 소실되어
1867년 흥선대원군이 중건하였고
일제시대때 조선총독부청사 건립을 위해
1916년 철거를 하면서 흥례문을 비롯한
주변행각(行閣)이 모두 파괴되었다.

해방이후 정부종합청사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용도로 쓰이다가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1996년에 철거되어
흥례문 등의 전각이 2001년 10월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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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자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목조 건축물로
임금의 즉위식이나
대례 따위를 거행하던 곳이다.


... 우리네 옛 건축물을 볼때 마다
드는 느낌은 시원함이다.
잘 구성된 공간과 건물을 따라 흐르는 선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침없다.  

진정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곳,
그 곳이 바로 경복궁이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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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전의 모습이다..

창덕궁의 중심건물(正殿)로 조정의 각종의식
(임금에 대한 신하들의 새해인사 혹은
왕세자나 세자빈을 결정하였을 때 등
국가의 커다란 경사가 있을 때
왕이 이 곳으로 나아가 축하를 받았다)과
외국 사신의 접견장소로 사용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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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

낙선재는 조선 헌종 13년(1847)에
창덕궁 안에 지은 전각으로,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원래 이곳은 상중()에 있는 왕후들이
소복() 차림으로 기거하던 곳이며,
1963년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 이은()이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상중에 왕후들이 기거하던 곳이라 하여
단청()도 하지 않았다.
이방자(李方子)여사가 거처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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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14일,
일본은  중학교 교육지침서인 사회과 해설서에
독도가 자기네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을 명기하여
또 다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잊혀질 만 하면 들고 나오는
그네들의 단골 메뉴이기에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지난날에 대한 반성은 커녕
지금도 여전히 총성없는 침략을
계속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종결된 지난 날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고 유효한
침략의 역사인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그들이 보는 시각인 것 같다.
그래서 반성과 사과에 대한 논쟁이
아직까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지난날, 그들에 의해 저질러 온 악행,
특히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문화적인 파괴행위에 대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우리들의 문화재들이다.
이럴때일수록 필요한건 우리것을 지키고
잘 보존하려는 스스로의 주인의식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신적 유산이자 가치이며
한국인의 혼을 이어가는
하나의 길이기도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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