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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해수욕장 쪽에서 바라 본 성산일출봉.
생긴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다하여 성산, 해돋이가 유명하여 일출봉이라고 한다.
본래는 육지와 떨어진 섬이었으나, 너비 500m 정도의 사주가
1.5km에 걸쳐 발달하여 일출봉과 제주도를 이어 놓았다.








천연기념물 제420호이자 제주 영주10경 중의 하나인 이 성산일출봉은  
면적이 377,872㎡이며, 높이는 해발 182m로, 
3면이 깎아지른 듯한 해식애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곳은 수중 화산활동에 의해 바다에서 분출한 탓에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학술적 가치도 탁월하여
2007년 6월 27일 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성산일출봉으로 오르는 길목.








성산일출봉 북쪽 해변의 모습.
아랫쪽 붉은 지붕을 한 건물은 인근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파는 '해녀의 집'이며,
위쪽 등대가 서 있는 곳은 성산항, 그리고 그 오른쪽으로 기다랗게 누워 있는 섬은 우도이다.








                               계단을 오르면서 마주치는 몇 개의 바위 중 하나인 중장군바위(곰바위).
                               제주도의 동쪽을 지키던 세 개의 장군바위 중에서 두 번째 지위가 높은 바위이다.
                               밑에 보이는 졸병바위(작은 바위)들이 모두 이 바위를 우러러 보고 있는 형상이다.
                               장군이지만 성품이 온순하여 부하들을 형벌로 다스리지 않고 덕망으로 이끌었다.
                               이 바위 밑을 지나가는 사람은 이 형상을 보고 겸양의 미덕을 배워 가정을 화목시키고, 
                               싸웠던 친구와 화해하며, 속인 사람을 용서하여 덕망이 높아진다고 전한다.
                               이 바위는 파총암(把摠巖)이라고도 하며, 서 있는 형상이 암수 곰 한쌍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곰바위라고도 한다.








                               정상부근에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 봤다.
                               곰바위도 보인다.
                               그러나 흐린 날씨 때문에 저 멀리로는 시야가 맑지 못하다.








정상에 오르니 커다란 원형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분화구가 맞아준다.
햇볕을 받는 서쪽부위에서 부터 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 분화구는 면적이 129,943㎡, 분화구 깊이는 90m이며,
길이는 동,서로 450m, 남,북이 350m의 규모이다.
분화구 위로는 99개의 크고 작은 바위로 둘러쌓여 있어 마치 왕관모양을 연상케 한다.

또한 이 분화구 안으로는 풀밭이 펼쳐져 있는데, 예로부터 성산리 주민들의
연료 및 초가지붕을 이는 띠의 채초지(採草地)와 방목지(放牧地)로 쓰여져 왔기 때문에,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 띠 등으로 식물군락을 이루고 있다.








흐린 날씨에다 정상에 올라서니 강풍까지 불어온다.
거기다 그 바람은 이내 뿌연 안개를 몰고 오더니 분화구를 가려버린다.
그저 사이사이로 드러나는 얼굴로 서로 눈 인사를 나눌 뿐이었다.


참고/ 네이버테마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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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끝도없이 하얀 수증기만 내뿜고 있는,
방파제 너머로 건너다 보이는 저곳은 또 다른 세상.








썰매를 타듯 눈 쌓인 언덕위를 내달리면,
이내 저곳으로 다다를 것만 같다.








흰 눈을 뒤집어 쓴 채 높은 하늘을 향한다.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기에 그저 당당할 뿐이다.








서로 몸을 밀착한 채 차가운 파도와 맞서다.








겨울, 시퍼렇게 멍든 바다...
그 주위로는 쌓인 눈으로 인해 백사장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지금 이곳의 주인은 그저 덩그렇게 놓여진 눈사람 하나,
                               모래밭과 넓디 넓은 바다가 모두 다 그의 차지다.








땅은 눈으로 뒤덮였고,
저 멀리 굴뚝에서는 솜사탕마냥 하얀 뭉개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하여 세상은 온통 하얗게 되었다.








지난달 중순,
햇빛 한 줌으로는 언 땅을 녹이기에는 너무나 힘겨워 보이는...
그런 어느 하루였다.
아마, 어제도 이곳에는 이와 같은 풍경이 연출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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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차가운 땅이지만,
그 속으로도 여지없이 봄의 입김은 파고들었다.
한결 부드러워진 흙을 비집고 새 생명들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설록다원)








이미 밭 한가득 올망졸망 들어선 유채꽃은
함박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산방산 인근)








들판으로는 초록의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싱그러운 물결들로 넘쳐났다. (우도)








노란 유채꽃은 회색빛 풍경들을 밀어내며
환하게 시선을 자극하고...
(섭지코지에서 바라 본 성산일출봉)








오름 한켠으로는 말들이 흩어져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곳은 그들의 먹이로 가득할 것이다. (송악산)








차가운 해풍을 비웃듯 또 그렇게 생명은 피어나고...
누가 뭐라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봄일 수 밖에 없는 것을... (갯깍주상절리)








하루가 다르게 위세를 잃어가는 겨울...
이제 서늘한 기운이 자리하고 있던 곳에는
따뜻한 봄풀들로 하나 둘씩 채워지고 있었다. (성산일출봉)








한결 훈훈해진 바람 때문일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는 여유로움으로 가득 넘쳐나고... (우도)








                              이미 그렇게... 제주의 봄은 우리들 가까이로 와 있었다. (천지연폭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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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약 25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간마을인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그 곳에는 사성(賜姓) 김해김씨 일가를 비롯한 250여 가구가 상주하고 있다.
임금이 성(姓)을 내렸다 하여 '사성(賜姓)'이라 하는데 그 중 50여호가 이 가문이다.

우록리는 원래 우미산(牛尾山)아래에 위치한 소(牛)굴레 모양의 마을이란 뜻으로
우륵동(牛勒洞)으로 표기해 왔으나 임진란 때 귀화한 김충선 장군이
1600년에 '사슴과 벗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우록동으로 고친 후 정착하면서
지금까지 4백여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자리한 녹동서원의 관문인 향양문(向陽門)으로, 
                              사야가의 고향(해가 뜨는 곳)을 그리워한다는 뜻을 가졌다.
                              이 곳은 이름난 선현을 모신 다른 여느 서원과는 달리, 
                              전쟁에 참여했다가 적국에 귀순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김충선이라는 장군을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해 보인다.

                              모하(慕夏) 김충선(金忠善) 선생(호號:모하당慕夏堂 자字:선지善之)은 
                              사성(賜姓)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始祖)이시다.
                              본래 일본인으로 본 성명은 사야가(沙也可)이다. 
                              그는 1592년(선조25)임진란(壬辰亂) 때 21세의 나이로 가등청정(加藤淸正)의 
                              우선봉(右先鋒) 장(將)이 되어 우리나라 침공시 4월 13일 부산 동래에 상륙했다.

 








녹동서원.
조선조 임진, 정유, 병자년의 난에 큰 공을 세운 모하당 김충선 장군을 모신 서원으로
특히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녹동서원 경내에 위치한 유적비(遺蹟碑).
                              모하당 김충선의 공적을 추모하여 1965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중국문명을 그리워한다는 뜻을 가진 모하당이라는 호를 지을 정도로 
                              그는 유교 문물과 예의를 따른 철저한 조선인이었다.









녹동사(鹿洞祠).








이곳에서는 모하당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춘추로 제향하고 있다.








                              모하당의 영정.








모하당 묘소.
녹동서원 뒷산, 약5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신도비(神道碑).
                              녹동서원 경내에 있으며 임진란 400주년을 기념하여 1992년 5월에 세웠다.
                              '그는 문과 예를 공경했고, 그것과 여생을 같이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불의 앞에서는 
                              그토록 경멸하던 칼을 들고 맞서 싸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우록마을이 일본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지난 92년 임진왜란 4백주년을 맞아
                              일본 오사카와 나고야에서 '왜 지금 사야가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움이었다고 한다.
                              이후 '출병에 대의없다-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등 돌린 사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비롯 
                              각 언론도 앞다투어 사야가를 재조명하고, 평화주의자로서 그의 학술적 관심이 널리 퍼지면서 
                              다양한 계층의 일본인들이 이 우록마을을 찾고 있다고 한다.
                              어찌됐든 한일우호의 가교로서 이 녹동서원은 톡톡히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 현장 안내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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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에 위치한 STX리조트는 
                              STX그룹의 계열사로, 2007년 11월에 창립되었다.








                              올해 연초, 이곳의 풍경은 겨울인 탓에 황량한 느낌일 수 밖에 없었지만, 
                              그나마 눈이 있어 행복했다.








                              때가 되니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둠.








이곳의 부대시설로는 고품격 레스토랑인 '라쎄나'(La Cena)와,
카페테리아인 '해피투게더'(Happy Together), 그리고 카페테라스와 와인바가 있으며,
편의시설로는 노래방인 'N조이', 비즈니스센터, 편의점 등이 있다.
그리고 주위로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바로 앞 광장에는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 운치를 느낄 수는 없다.








                              특히 SPA 산토리니에서는 중탄산 나트륨 온천수를 사용하여 혈액순환촉진, 
                              피로회복, 신경통 및 관절통증 치료등의 효능을 체험 할 수 있으며,
                              테마탕, 비데풀, 패밀리 스파, 안개 사우나 등 실내외 스파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2층에는 헬스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따뜻한 계절이 되면 이곳은 휴식의 공간으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할 것 같다.
                              입구의 쌍용계곡과 더불어 바로 인근에 속리산이 위치해 있고, 문경새재, 주흘산 등 
                              문경이 가진 관광자원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 1월 18일, 문경시가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문경, 가은, 마성, 농암지구가 그 곳으로, 경북도내에서 3번째, 전국에서 26번째라고 한다. 
                              이곳은 쌍용계곡지역을 포함한 농암지구에 해당된다.


                              참고/ STX리조트 홈페이지.






▶ 추가 / 쌍용계곡에서 본 STX리조트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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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기 전인 작년 9월 어느날의 팔공산.
첨탑이 서 있는 높은 봉우리가 비로봉이고 바로 그 우측은 동봉으로 
서로 지척에 위치한다.








                              지난 1월 중순, 비로봉에 올랐었다.
                              산 정상부에 이르러 대구시내 쪽을 내려다 보니 
                              안개, 운무, 연무, 박무, 스모그... 
                              뭐라고 불러야 옳을지도 모르겠지만, 
                              뭐라고 해도 이로울 것이 없는 하얀 공기가 그 곳을 채우고 있었다.
                              보다 더 먼, 저 곳으로는 아스라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 듯 하다.








흰 덩어리층이 조금은 옅어진 듯 시가지의 윤곽이 살짝 드러난다.
팔공산의 최정상인 비로봉(해발1192.8m)의 바로 아래에서 내려다 본
대구시가지의 모습으로, 'U'자 형으로 굽이도는 금호강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반야월 쯤 되는 위치로 추정되는,
그 곳으로 넓게 걸쳐진 희뿌연 띠...
우뚝 솟은 산봉우리는 그 틈을 비집고 올라
숨가쁜 듯 탁한 호흡을 뱉어내고...








아래에서 생각했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그런대로 시야가 뚫려있을 것 같았는데,
올라와 보니 산등성이만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첩첩이 겹쳐진 모습으로 말이다. 








보기에는... 저 아래에서 그나마 높다고 하는 대구타워마저도
힘을 쓰지 못하고
그대로 숨이 막혀 쓰러져 버릴 것만 같다.
정상에 서니 그야말로 칼바람이다.

이곳 팔공산 비로봉은 1960년대 말 공산성터 일대에 군부대가 들어서고 
방송국 시설이 자리를 잡으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왔다.
그러나 40여년만인 작년 11월 1일, 군사지역에서 해제되어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가산산성에서 파계봉, 서봉, 비로봉, 동봉, 관봉 등으로 이어지는

21.4km의 팔공산 능선 중 최고봉인 비로봉이지만, 

철조망 등의 시설물 때문인지 그다지 큰 감흥은 일어나지 않는다.








                              팔공산 동봉석조약사여래입상(石造藥師如來立像).
                              바로 뒤쪽이 동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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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종택(聾巖宗宅).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위치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종택이다.








긍구당(肯構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분강서원(汾江書院)








앞 쪽의 분강서원과 저 멀리로 보이는 농암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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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도산서원의 입구. 사적 제170호이다.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실 것을 결정,
2년 뒤 지방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본산이 되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는
조그마한 매화원(梅花園)이 나온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인 진도문(進道門)은 아래쪽의 서당영역과 서원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외부와 경계를 짓는 문으로, 편액을 걸어 상징적인 예교(禮敎)의 의미를 갖게 하였다.








전교당(典敎堂).
보물 제210호로 유생들의 자기 수양과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한 강당이다.
1574년(선조 7년)에 지었고 1969년에 수리를 하였으며,
앞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팔작지붕과 온돌방,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판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선조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해진다.








                              서원의 맞은편, 강 건너 석축위에 세워진 시사단(試士壇).
                              1792년(정조 16년) 규장각 각신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 과시를 보게 한 곳이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현장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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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례문(復禮門),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위치한 병산서원의 정문이다. 
                              서원의 정문은 삼문(三門)이 일반적인데, 병산서원의 솟을삼문은 
                              가운데 칸만 판문(板門)이고, 좌우로는 담장과 구분되는 벽채를 한 칸씩 두고 있다.
                              '복례'라는 이름은 논어 '克己復禮爲仁'에서 유래한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을 함축한 경구(警句)로서,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라는 유학의 자기절제의 정신을 표현해 놓은 것이다.
                              원래 서원 측면에 있었던 것을 1921년 이 곳으로 이전시켰다.








입교당(立敎堂).
서원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강당으로,
원래의 명칭은 숭교당(崇敎堂)이었고 명륜당이라고도 불렀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이며,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뒷마당에서 바라 본 입교당의 마루와 만대루, 그리고 입구인 복례문.








신문(神門). 서원의 내삼문에 해당하며 향사(享祀) 때에 제관(祭官)들이 출입하였다.









만대루(晩對樓)는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이다.
200여명을 수용하고도 남음직한 장대한 이 누각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굽이도는 강물의 형상을 닮은 대들보의 모습은 건축물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조상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만대루의 2층 누각에서 여유로움을 맛보다.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百濟城樓)' 중 '푸른 절벽은
저녁무렵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그 이름처럼 해질 무렵에 2층 누각에 올라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는
이곳의 경치 중 으뜸이다.








서원 앞쪽으로 펼쳐진 넓은 백사장과 우뚝 솟은 병산(屛山).
그리고 그 밑을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은 무척이나 시원스럽게 보인다.








달팽이 뒷간.
서원 밖 주소(廚所, 부엌) 앞에 있는 화장실로, 진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끝 부분에 가리도록 둥글게 감아 세워 놓았는데, 그 모양새에서 이름을 따왔다.
출입문을 달아 놓지 않아도 안의 사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한 구조로,
지붕이 따로 없는 이 곳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뒷간의 안쪽 모습이다.
400여년 전 서원건물과 함께 지어졌으며, 옛 기록에는 대나무로 벽을 둘렀다고도 전해진다.
병산서원의 부속건물에 포함되어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보수작업이 이루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참고/ 병산서원 홈페이지 및 현장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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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마을에 들어서는 초입에서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는 하회탈.








부용대에 올라서서 바라 본 하회마을의 전경.
하회마을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위치해 있다.









양진당(養眞堂), 보물 제306호이다.
이 건물은 150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겸암(兼菴) 류운룡(柳雲龍)이 살던 집으로
풍산류씨 대종가이다.
하회 북촌(北村)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안채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그 후에 다시 지었다 한다.









충효당(忠孝堂), 보물 제414호이다.
이 건물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후손과 문하생들이 그의 덕을 기리는 뜻에서
1600년대에 지은 가옥이다.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 1598~1674)가 처음 건립하였고,
그 후 그의 증손 익찬(翊贊) 류의하(柳宜河)가 전체 52칸의 규모로 확장한 목조건물이다.

집 앞에 행랑채가 길게 가로 놓여 있고 그 뒷편에 'ㅁ'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사랑채 뒤쪽에는 따로 사당이 마련되어 있고, 그 오른편에는 서애의 유물 등을 보관, 전시하고 있는
영모각(永慕閣)이 있다.








                              충효당의 현판글씨는 전서체(篆書體)로, 미수(眉搜) 허목(許穆)이 썼다고 한다.
                              허목은 전서체의 대두라 불릴만 하여 그의 글은 중국에서도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골목길에서 만난, 웬지 위압감이 느껴지는 고택 하나...








빈연정사(賓淵精舍), 중요민속자료 제86호이다.









하회 북촌댁(北村宅) 화경당(和敬堂), 중요민속자료 제84호이다.









하회마을 낙동강변의 나룻배.
강 건너편 절벽 위쪽이 이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부용대이다.


참고/ 현장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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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에 위치한 미륵신앙(彌勒信仰)의 요람으로 불리우는 법주사.
먼저 일주문과 수정교를 지나고 나면, 가람에 들어서는 첫 입구라 할 금강문(金剛門)을 만나게 된다.
좌우로는 돌담으로 회랑을 형성하고 있으며, 인왕상을 봉안하기 때문에
인왕문(仁王門)이라고도 부른다.

법주사는 553년 (신라 진흥왕 14)때 의신(義信)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성덕왕 때 중수를 하였는데, 현재 남아 있는 석물(石物)은 모두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현존하는 목조건물은 모두 조선 후기의 것이다.








                              이곳 금강문 안에는 1974년에 조성한 금강역사 2위와, 사자를 탄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함께 봉안하였다.
                              대체로 문 양쪽에는 금강저(金剛杵)나 칼과 창을 손에 들고 있는 금강역사가 모셔진다.
                              그래서 왼쪽에는 밀적금강(蜜跡金剛),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을 모시는데,
                              혹 입을 벌리고 있는 상을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상을 우금강역사라 부르기도 한다.








                              금강문을 지나자 하늘을 향해 뻗은 두 그루의 나무가 시원스럽게 맞아준다.
                              바로 뒤의 건물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으며 사천왕상을 봉안한 
                              사천왕문으로, 국내의 천왕문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지붕 위쪽으로는 바로 뒤에 위치한 팔상전의 꼭대기 층이 넘겨다 보인다.








                              팔상전. 국보 제55호로 지정되었으며 5층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조탑이며 탑 중에서도 가장 높은 건축물이기도 하다.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한 것인데, 
                              안쪽 벽면에는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높이 33m로, 동양 최대 규모의 미륵불 입상인 금동미륵대불(청동미륵대불).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을 처음 지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되어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
                              1990년에는 붕괴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으며,
                              2000년 들어서는 원래의 제 모습을 찾아 주고자 금동미륵불로 복원공사를 했다. 
                              당시, 3mm 두께로 황금을 입히는데 모두 80kg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대웅보전에서 팔상전에 이르는 앞마당에는 신라시대의 걸작이라 할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이 서 있다. 
                              국보 제5호로, 높이 3.3m에 이르는 팔각석등이다.
                              신라시대의 석등은 대게 하대석과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대석을 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높이 치켜들어 상대석을 떠받치는 
                              독특한 양식으로 되어있다. 








보물 제915호로 지정된 대웅보전.
창건무렵인 신라 때에는 미륵장륙상을 모신 용화보전이 미륵신앙 도량인
법주사의 중심역할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대웅보전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지금의 건물은 고려 중기에 처음 세운 것으로 보이며, 1624년(인조 2)에 중건하였고
이후 잦은 중수를 거듭하였지만, 조선 중기의 양식을 잘 갖추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벽암대사가 중창한 이후 400년 만인 2005년,
4년간의 공사끝에 옛모습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대웅보전 앞에 보이는 석탑은 보물 제15호로 지정된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으로,
상대석에 사천왕이 새겨져 있어 그렇게 부른다.








                              두툼한 판석과 커다란 그릇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의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 
                              우리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보살상으로
                              전체 높이가 2m에 이르며, 보물 제1417호로 지정되었다.
                              전체적으로 선이 굵고 대담한 기법이 돋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희견보살은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 스스로 몸과 팔을 불태워 
                              소신(燒身)공양을 올렸다는 보살이다.
                              그러나 이 보살상의 주인공을 석가여래의 으뜸가는 제자였던 
                              가섭존자(迦葉尊者)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가섭존자는 석가가 입멸한 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말고 
                              세상에 남아, 가사와 발우를 전하라는 석가여래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경설을 바탕으로
                              이를 형상화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능인전 옆의 추래암(墜來岩) 암벽에 새겨진, 전체 높이 5m의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으로서 보물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의상(倚像)이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마애불로서 이러한 예는 경주 남산의 삼화령 미륵불이 유일한 작품인데, 
                              그 양식상의 특징과 연관지어 미륵불로 추정하고 있다. 








오른편으로 높이 솟은 것은 당간지주로, 고려 초인 1006년(목종 7)에 조성되었는데
당시에는 높이가 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뒤 조선 후기인 1866년(고종 3)에는 대원군의 명령으로 국가에서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하면서 사찰의 많은 금속물들이 징발 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당시 용화전의 미륵장륙상과 이 철당간이 사라졌다.
이후, 1910년경에는 22m 높이의 철당간을 확대, 복원하였고, 1972년에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참고/ 법주사 홈페이지.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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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뜨지 마라 어주자
(魚舟子)알까 하노라"

☞ 훤사하랴: 야단스러우랴, 떠들어 소문내랴.
☞ 어주자: 배타고 고기잡는 사람, 어부.

말년에 '청량산인'이라는 호를 짓고, 아예 이 곳 산중턱 오산당(吾山堂)에서 지내면서
글을 읽으며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퇴계 이황.
무릉도원같은 청량산을 아끼는 마음을 그는 그렇게 노래했다.

또한, 청량산을 일러 '입을 벌리고 들어갔다가 입을 다물고 나오는 산'이라고도 한다는데,
수려한 경관에 놀라 입을 벌리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는 그 비경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서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 위치한 청량산의 가파른 길을
잠시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청량사(淸凉寺).
중앙에 보이는 건물은 강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심검당(尋劍堂)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수행공간이다.
이 곳 좌측으로는 유리보전과 5층석탑이 위치해 있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때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창건당시에는 승당 등 33개의 부속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에서 흘러 나오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또한 한 때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望仙庵) 등 크고 작은 26개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불교의 요람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주자학자들에 의해 절은 피폐하게 되어,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아있다.








청량사의 대웅전으로,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는 유리보전(琉璃寶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이며, 현판글씨는 공민왕의 친필이다.
이 곳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서 만든 지불이라고 한다.

유리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八作)지붕을 한 다포계(多包系)의 집이다.
공포는 외1출목(外一出目) 내2출목의 형식으로 첨차의 짜임이 고졸(古拙)하고
쇠서의 내부 끝은 연화형(蓮花形) 조각을 새기고 있으며, 전면 중간기둥 위에는 용두(龍頭)와
용미(龍尾)를 주두(柱枓) 밑에 내외로 뻗게 하고 있어 조선 후기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유리보전의 바로 앞쪽에 위치한 5층석탑.
1990년에 세워졌으며, 부처님의 진신사리 5과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 '워낭소리'에서 노부부가 죽은 소의 극락왕생을 비는 장면이
이 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앞에 보이는 2층의 누각은 범종각으로, 법고, 운판, 목어 등이 모셔져 있다.
                              그 위쪽으로 5층석탑과 유리보전이 보인다. 








전통차를 무료로 제공하며, 여행자의 쉼터 역할을 하는 산꾼의 집.
청량사 동쪽 바로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산꾼의 집 옆길을 따라 오르면 나오는 어풍대,
그 위에서 바라 본 청량사의 전경이다.
맨 아래 건물은 사찰내의 전통 다원(茶園)이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 불리워지는 안심당이다.








어풍대(御風臺)에서 바라 본 청량사의 수려한 모습.
연화봉이 좌측으로 높이 솟아있는 가운데, 청량산이 포근히 품고있는 형상이다.

금탑봉(金塔峰)의 중층(中層)에 위치하고 있는 어풍대는
내청량과 외청량을 연결하는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청량지(淸凉誌)'의 기록에 따르면, 열어구(列御寇, 고대 중국의 인물)가 바람을 타고
보름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어풍대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곳 금탑봉 중층에는 어풍대와 함께 치원대(致遠臺), 풍혈대(風穴臺), 요초대(瑤草臺), 
                              경유대(景遊臺) 등이 나열되어 있으며, 이들 대에서는 기암절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청량산의 연화봉 기슭 한가운데, 연꽃 같은 봉우리와 연꽃 꽃술 자리에 자리잡은 듯한 
                              청량사의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청량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듯, 규모만으로는 여느 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산행은 축융봉에서 청량산을 조망하고 
                              청량사를 둘러 보는데서 만족하기로 했다.
                              언젠가 머지 않은 장래에 또 다시 찾게 될 것으로 믿으며...



참고/ 청량산도립공원  홈페이지, 현장 안내판. 청량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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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초, 지나가는 가을의 뒷 꽁무니라도 잡아 볼 양으로 서둘러 나섰던 봉화 청량산.
                              언젠가 꼭 한번은 가 보리라 생각하여 마음속에 담아 놓고만 있던 곳이다.
                              청량사를 찾기 전에 먼저 청량산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축융봉(祝融峰)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산성 입구의 표지판이 정상까지가 2km로 1시간 10분여가 소요됨을 알린다.  
                              언덕길로 처음 한 구비를 돌아들면 바로 최단거리 코스인 산성길이 나오는데,
                              그 성곽을 따라 오르면서 밟게되는 계단이다.








얼마간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밀성대(密城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와서 산성을 쌓고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
명령을 어긴 죄인을 절벽 끝에서 밀어 처형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그 자리에는 세워진지 얼마되지 않아보이는 전망대가 계단이 통제된 채로 서 있다.








                              산성 또는 계단... 오르는 길은 깨끗하게 정비된 상태라 그 어느 쪽이라도 좋다.
                              당시 정상부위에서는 산성의 복원작업이 한창이었다.








해발 845.2m의 축융봉 정상에 다다르자, 구름 많은 날씨인데다가
바람길이 트였는지 갑자기 차가운 바람까지 불어와 몸이 저절로 움츠려든다.
우측에 보이는 망원경으로 반대편을 바라보면,
불쑥블쑥 솟아오른 청량산의 여러 암봉과 하늘다리가 잡힐 듯 다가온다.








청량산은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한국의 3대 기악으로 불리우며, 12개의 암봉을 가지고 있다. 
축융봉도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 중의 하나이기에,
이 곳에서는 맞은편의 나머지 11개의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단풍은 이미 잔해만 남아있는 상태여서 영락없는 초겨울의 풍경 그대로이다.

 








아침의 따뜻한 햇빛을 그대로 받고 있는 응진전,
그리고 아직 채 걷히지 않은 짙은 그림자 속으로 숨죽이듯 몸을 숨기고 있는 청량사가
그 안쪽으로 살며시 들여다 보인다.








각각의 이름을 가진,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여러 봉우리가 서로 몸을 기대고 있는 가운데,
좌측으로는 두 개의 봉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하늘다리가 길게 걸쳐져 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쪽도 마찬가지이다.
                              청량산의 하늘다리는 해발 800m지점의 왼쪽의 선학봉과 오른쪽의 자란봉을 연결하는 
                              길이 90m, 바닥폭 1.2m의 현수교로, 2008년 5월에 완공 되었다. 이는 국내에서 
                              산악지대에 설치된 다리로서는 가장 길고 가장 높아 청량산의 또 다른 명물이 되고 있다.
                              340kg/㎡의 통과 하중에 최대 100여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는 규모로,
                              올해에는 다리난간 중앙부분의 바닥재를 강화유리판으로 교체하여, 
                              계곡아래를 훤히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자 내청량사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른쪽으로는 외청량사인 응진전이 금탑봉의 난간에 아슬하게 걸려있는 형국이다.
암벽이 3개의 층을 이룬 금탑봉은 청량산을 대표하는 봉우리이기도 하지만,
유달리 노란색잎을 가진 생강나무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풍경과 이름에서 공통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바벨탑을 연상케 하는 모습의 금탑봉...
                              그 위에 얹혀진 응진전을 지나 왼쪽 절벽으로 굽이 돌게되면, 
                              청량사의 모습이 한 눈에 조망되는 어풍대를 만나게 된다.



                              참고/ 네이버테마백과사전. 청량산도립공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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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새로 건립된 운문사의 주법당인 대웅전.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虎踞山)에 위치한 이 운문사(雲門寺)는
신라 진흥왕 21년(서기560년) 초창(初創)되어 대작갑사(大鵲岬寺)라 하였는데,
제1차 중수(重修)는 진평왕 때 원광국사(圓光國師)가,
제2차는 신라말에 보양국사(寶讓國師)가 하였다.
고려 태조는 동왕(同王) 20년(서기937)에 많은 전지(田地)를 내리고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賜額)하면서 운문사(雲門寺)라 불리어 오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 숙종(서기1105) 때 원응국사(圓應國師)가 3차 중수를 하였으며,
고려 고종(서기1250) 때 일연선사(一然禪師)가 주지(住持)로 주석(住錫)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고, 1958년에 비구니(比丘尼) 전문학원을
개설한 이래 한국의 대표적인 승가대학(僧伽大學)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835호로 지정된, 비로전(大雄寶殿, 毘盧殿).
1105년(고려 숙종10년)에 원응국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발견된 상량문의 기록으로 보아 1653년(조선 효종4년)에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대웅보전을 짓기 전, 운문사 신앙공간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으나 통칭하여 비로전이라고 부른다.
이는 문화재청 등록 당시 '운문사 대웅보전'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에 옛 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앞 쪽에 동과 서로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인데 규모와 양식이 서로 같다.
기단부분이 많이 손상되어 있던 것을 일제시대 때 일부 보수했으며, 높이는 5.4m로 보물 제678호이다.









                              이 비로전 내에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셨으며, 
                              좌측에는 신중탱화, 우측에는 삼장탱화를 봉안하였다.









만세루(萬歲樓).
신라 원광국사가 초창하여 고려의 보양국사가 중창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105년 원응국사가 3차 중창할 때의 것이다.









이 건물은 큰 법회시에 대웅전에 들어가지 못한 대중들이
대웅전을 향하여 법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것으로,
200여 평의 넓은 공간을 누각으로 조성하였다.









오백전(五百殿).
주불로 석가모니불과 좌보처 제화갈라보살, 우보처 미륵보살과 오백나한상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응공(應供)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이른 사람으로, 인간이 가진 욕망의 사슬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경지에 이른 수행자를 말한다.









운문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3기의 비석 중 중간에 위치한
보물 제316호인 원응국사비(圓應國師碑).
이 비는 고려 인종 때 건립된 것으로, 운문사의 3대 중창주인 고려 원응국사의
행적이 새겨져 있다. 높이는 230cm이며, 폭은 91cm이다.
다른 두 개의 비는 운문사의 또 다른 중창주인 설송대사비(雪松大師碑)와,
만세루와 대웅전을 중수한 사실을 기념하여 세운 운문사 중수(重修)기념비이다.









                              말끔한 운문사의 경내에서 북대암을 향해서 바라다 본 모습.








운문사 북쪽으로는 운문산성(일명 지룡산성) 바로 아래에 세워진
북대암이 올려다 보인다.
북대암은 운문산에서 최초로 세워졌으며, 운문사에 소속된 산내암자이다.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된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盤松)는
주변의 인공적인 압력 없이도 늘어져서 넓게 자라는 나무로 유명하다.
이 소나무는 어느 선사가 이 곳을 지나다가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꽂아둔 것이
뿌리를 내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 3일인 삼짇날에는 막걸리 12말을 희석하여 영양제로 부어준다.
높이는 약 6m이고,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2.9m이며, 수령은 450~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고즈넉한 늦은 오후의 햇빛이 머물고 있는 운문사 입구의 소나무 숲길.

                              소개된 외에도 운문사 경내(境內)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들이 있다.
                              석등(石燈, 보물 제193호), 사천왕석주(四天王石柱, 보물 제318호), 청동호(靑銅壺, 보물 제193호),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 보물 제317호).



                              참고/ 운문사 홈페이지, 현장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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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위치한 양동(良洞)마을은, 경주시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여 있는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종가가 500여년 동안의 전통을 잇는 유서깊은 반촌마을이다.
1984년 12월 20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이기도 한 이 곳은, 수 많은 당시의 상류주택을 포함하여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반가옥은 이 곳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통감속편(국보283), 무첨당(보물411), 향단(보물412), 관가정(보물442),
손소영정(보물1216)을 비롯하여 서백당(중요민속자료23) 등 중요민속자료 12점과
손소선생분재기(경북유형문화재14) 등 도지정문화재 7점이 있다.








관가정(觀稼亭).
조선 성종(成宗)때 이조판서를 지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이 세운 정자로
보물 제442호이다.








                              건물의 평면구조는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는데, 가운데의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분된다. 안채 뒤에는 맞배지붕으로 된 사당이 있다.
                              안채는 중문 맞은편에 네모기둥을 사용하여 간소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사당과 누마루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누마루에 길게 난간을 돌려 정자의 격식을 갖추고 있다.
                              사랑채는 남자 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대문의 왼쪽에 사랑방과 마루가 있다.
                              마루는 앞면이 트여있는 누마루로 '관가정(觀稼亭)'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마을 입구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며, 주변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이 정자는 
                              사랑채의 건축형식이 돋보이며, 안채는 부엌이 안방과 다소 떨어진 우익사 맨 앞쪽에 
                              세로로 길게 자리잡고 있어 공간구성이 이채롭다.
                              보통 대문은 행랑채와 연결되지만, 이 집은 특이하게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어 
                              조선 중기의 남부지방 주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81년 보수 때 주위에 담장을 쌓고 일각대문을 내었다.








향단(香壇), 보물 제412호.

이 건물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있을 때, 모친의 병간호를 하도록
중종(中宗)이 목재를 하사해 지은 집으로, 그의 동생인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에게 주었다.
농재라는 호는 '귀먹은 듯 살아가라'는 현인의 가르침을 따른 것으로,
그는 형인 회재 이언적을 대신하여 벼슬을 마다하고 나이든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이 건물은 마을 전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위치와 모습에서 상류주택의 
                              일반적 격식에서 조금 벗어난 면도 가지고 있으며,
                              주생활(住生活)의 합리화를 도모한 우수한 건물이다.








또한, 두 곳에 뜰을 두고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붙여 전체가 '興)자 모양을 이루어
독특한 평면형태를 구성하고 있으며, 사가(私家)로서
건물 전체에 둥근 기둥을 사용하여 상류층 주택의 격식을 갖추었다.
원래 99칸이었다고 전하나, 일부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 50여칸이 보존되어 있다.








                              향단은 경사지를 두 개의 단으로 나누어 터를 닦았다.
                              윗단에는 사랑채와 안채 등 몸채를 배치하고, 한 층 밑에 조성한 아랫단에는 긴 행랑채를 
                              배열하였으며, 평면만큼이나 복잡한 동선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하인들은 행랑채 문간이나 부엌 행랑을 통해서만 드나들도록 되어 있어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주인과 부딪히는 일이 없다.








중요민속자료 제81호인 심수정(心水亭)
이 정자는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을 추모하여 조선 명종(明宗) 15년(1560년)경에
여강이씨(驪江李氏) 문중에 의해 지어졌다.








                              양동마을에는 여러 정자가 있지만 규모가 가장 크며, 맞은편 북촌에 자리잡은 
                              향단(香壇)에 딸린 정자로서, 철종(哲宗)때에 이 정자가 불타고 1917년경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7칸 대청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온돌방을 둔 팔작집으로,
                              서쪽 방 옆으로는 난간이 있는 누마루를 두어 향단이 있는 북촌 일대를 바라보기 좋게 하였다.
                              누마루 아래의 기둥은 팔각으로 하였다.
                              큰 규모의 정자에 필요한 칸 수와 기능을 고루 배려하여 잘 짜여진 구조로,
                              이 정자에 딸린 행랑채는 격식있는 소규모의 가옥으로 건실하게 구성되었다.








                              한적한 오솔길의 나무숲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양동마을.

                              이 양동마을은 현재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등재가 추진되고 있으며,
                              이미 지난 2009년 9월 1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실사단에 의해 실사에 들어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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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외삼문으로서 정문 출입구인 역락문.
논어의 학이편에 나오는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위치한 이 옥산서원은
1967년 3월 8일에 사적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선생을 제향하고
후진(後進)을 교육하기 위해 조선 선조(宣祖) 5년(1572)에 설립되었다.
당시 경주부윤이었던 이제민(李齊閔)은 안강 고을의 선비들과 더불어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독락당 아래에 이 사당을 세웠으며, 사액(賜額)을 요청하여 1574년(선조7)에
'옥산'이라는 편액과 서책을 하사받았다.








                              경내에는 사당인 체인묘, 강당인 구인당(求仁堂), 기숙사인 동재(東齋, 민구재 敏求齋)와 
                              서재(西齋, 암수재 闇修齋), 무변루(無邊樓), 역락문(亦樂門), 어서각(御書閣), 
                              장서각인 청분각(淸芬閣)과 회재 선생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이 서원은 현존하는 서원 문고 가운데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현재 두 곳에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하나는 서원 경내에 있는 어서각(御書閣)소장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언적의 사저에 있는 독락당에 있는 소장본이다.
보관된 책 중에서 1513년에 간행된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傍目)'을 비롯, 
'삼국사기' 해동명적' 이언적수필고본일괄'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의 양식은 전면에 강학처(講學處)를 두고 후면에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 건축구조로 되어 있는데, 중심축을 따라서 문루, 강당, 사당이 질서있게 배치되어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된 강당이자 강학공간인 구인당(求仁堂)의 모습.
좌우로는 유생들이 수학하며 거처하는 재실로,
동재인 민구재(敏求齋)와 서재인 암수재(闇修齋)가 자리잡고 있다.
가운데 두 기둥 사이에 걸린 '옥산서원(玉山書院)'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문원공(文元公) 회재 이언적 신도비(神道碑).








서원 안으로 통하는 또 하나의 문인 세심문(洗心門).
서원 옆 계곡과 연결되어 있다.

16세기 영남사림파의 선구가 되는 이언적을 모신 만큼,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까지 영남사림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조선후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제외된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다.
일제 말기에 화재로 옛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곧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남향으로 자리잡은 옥산서원이 끼고 있는 계곡에 위치한 세심대(洗心臺).
이 곳을 돌아 계류(溪流)가 흐르고 있다.
세심대는 너럭바위로서 용추(龍湫)에서 떨어지는 물로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구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옥산서원내 곳곳에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석봉(石峯), 한호(韓濩),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등의 명필이 쓴 현판들이 있으며,
이 곳에서 북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는 회재의 별장이자 서재(書齋)였던
독락당(獨樂堂)이 위치해 있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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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 사이로 이어진 데크계단을 걸어올라 등대위에 다다랐다.
그 곳에서 바라 본 소매물도의 모습도 등대섬에 못지 않다.








거북의 형상을 한 소매물도의 한 자락이 대매물도를 향해 연민을 품은 듯 하다.
그 곳을 향해 자꾸만 달아나려 하는...









여전히 흐린 하늘을 무겁게 떠받치고 있는 등대.









등대 뒤쪽으로는 수직 천인단애이다. 
그 낭떠러지 위에 살짝 얹혀진 등대가 사뭇 위태로워 보인다.
절벽 아래로는 이를 집어 삼킬 듯 파도가 할퀴고 있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호기심에 절벽 가까이 접근해서 아랫쪽으로 내려다 봤다.
바다위의 또 다른 작은 섬에서는 강태공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세월을 낚아 올리고 있고, 에메랄드 빛 바다색은 서늘함을 더해준다.








아찔한 절벽으로 형성된 이곳 등대섬에서는 '추락주의' 팻말 또한 심심찮게 보인다.  
그런만큼 보는 즐거움 또한 배가된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위를 쉴새없이 오가는 유람선,
그리고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숨죽이듯 묵묵히 지나가는 화물선.
모두가 무심히 그냥 지나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아마도 그들의 시선만큼은 이 곳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등대섬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떠나 오면서 뒤돌아 본 소매물도.
우측으로 선착장과 마을이 보이는데, 그 곳에서 좌측 사선방향으로 산을 올라서면
뒤쪽으로 등대섬이 나타난다. 중간부분의 제일 높이 솟은 곳은 해발157m의 망태봉 정상이다.

소매물도는 면적 0.51㎢, 해안선 길이 3.8km, 최고점 157.2m의 크기를 가진 
고만고만한 섬이지만, 그 몇 배 이상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멋진 섬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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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어제 갔던 길을 그대로 다시 올랐다.
등대섬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건만, 날씨는 아쉽게도 어제와 달리 구름이 많다. 
이미 한차례 눈인사를 주고 받은 뒤여서 인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벌써 친근감마저 느껴지고...








언제 나타났는지 유람선 한 척이 다가와 등대섬을 한바탕 쓰윽 훝어 보고는
그냥 뒤쪽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아마 저기서 올려다 보는 풍경도 여기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못지 않으리라.









아랫쪽 전망대에서 바라 본 등대섬으로, 해식단애와 어울린 등대가 멋스럽다.
그러나 흐려서 바래버린 하늘색 때문에 등대의 윤곽이 그대로 묻혀버려 아쉽기만 하다.








같은 위치에서... 수려한 풍광 때문이어서 인지 
어느 각도에서 보나 그대로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 같다. 









바다를 향해 우뚝 서 있는 기암석.
무너져 내린듯한 그 아랫쪽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위쪽에 보이는 섬은 대매물도.








기암석 위쪽으로 길이 보인다.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그 뒤로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작은 배는 한껏 내달리고...








그와는 반대로 제법 커다란 배는 오히려 더 여유롭게 떠다닌다.
이렇듯 바다는 그냥 평온하게 보일 뿐, 오가는 배들로 인해 쉽게 잠들줄을 모른다.









바닷길이 열린 탓인듯, 한동안 적막감에 쌓여있던 등대섬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서서히 활기를 찾아간다. 그 위에 홀로 서 있는 하얀 등대도 한동안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소매물도 등대는...









물이 들고 남에 따라 소매물도와 동쪽의 등대섬을 연결시켜주었다가 다시 나누어지는
70m의 열목개 자갈길. 그 길을 건너서 드디어 등대섬으로 진입했다.
그 곳에서 소매물도쪽으로 바라다 본 모습이다.


열목개/ '열린 목'이라 하여, 물이 나서(간조시) 소매물도와 등대도 사이에 목이 드러나
뱃길을 막았다가 만조시 이 좁다란 목이 물속에 잠기게 되면, 동서 바다가 열려
배를 타고 지나갈 수 있어 부른 지명이라고도 하고, '여린 목'이라 하여 두 섬을 잇는 목이
여리고 가늘게 생겼다 하여 부른 이름이라고도 한다.
목개는 '열린 목' 또는 '여린 목'이 '열목'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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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뱃길로 약 20km 해상에 위치한 매물도는, 행정구역상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속하며  '대매물도'와 '소매물도'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 우리나라 섬 중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소매물도로 향했다.

거제 저구항에서 30여분 걸려 소매물도에 도착하니, 선착장 왼쪽으로
병풍같이 둘러쳐진 해안절벽이 가장 먼저 맞아준다. 
그 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짙푸른 남해바다가 무척이나 시원스럽다.
소매물도는 지난 2003년 해양부가 전국의 어촌을 대상으로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꼽히기도 했다.









선착장, 우측으로는 절벽길이다.
평지가 드물고, 해안 곳곳에 해식애가 발달한 지형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리자 마자 바로 언덕길이다. 첫 풍광부터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짐을 풀고나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등대섬이 궁금하여 곧바로 망태봉으로 향했다.
선착장에서 망태봉까지 0.75km, 망태봉에서 등대까지는 1.30km로, 고만고만한 거리이다. 

도중에 만난, 1996년도에 폐교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폐쇄되어 있는 소매물도 분교장터의 모습으로,
곳곳에 수국이 피어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니, 너무나 조용하여 으시시한 분위기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이 곳은 영화 '파랑주의보'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능선에 올라서서 잠시 꺾어 내려가자, 눈에 익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만 보아 오던 바로 그 등대섬이었다. 일명 쿠크다스 섬이라고 했던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전체 모습을 조망해 보기 위해 오른 망태봉 정상, 그 곳에서 바라 본
등대섬의 모습으로, 마치 바다위를 헤엄쳐 가는 거북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등대섬 저 뒤쪽으로는 기암절벽이 형성되어 있어 파도와 어우러지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주황색 지붕을 한 건물은 항로표지관리소.


■ 소매물도의 자연환경








등대섬의 기암절벽 사이로 시퍼런 파도가 몰려와 하얗게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하루 두 번 있는 썰물때에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연결하는 바닷길이 열려
이 길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물론, 지금 이 정도라도 충분히 등대섬으로 건너갈 수는 있으나,
물때가 닫히는 시간이라 섣불리 나서지를 못하고 그냥 되돌아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쉬울 것은 없다. 내일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









되돌아 오면서 망태봉을 거쳐 내려서자 마자, 올라갈때 보이지 않던
돔형 지붕의 구조물이 눈에 들어 온다. 이 건물은 이전의 '세관 매물도 감시서'로  
2~3명의 세관직원이 상주하면서 밀수를 방지하기 위해 레이더와 망원경을 이용,
단속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대로 방치된 상태다.









독특한 모양새로 시선을 끌기에, 그대로 두기에는 아까운 구조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무쪼록, 계속 그대로 방치되어 흉물로는 남아있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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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의 안내도.


거제포로수용소는...









▶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철조망이 둘러쳐진... 당시의 포로수용소를 생생하게 재현해 놓고 있다.








방대한 규모임을 짐작케 해주는 미니어쳐. 
포로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세세하게 표현해 놓았다.








끊어진 대동강 철교.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이 다시 후퇴하게 되자, 피난민들은 폭파된 평양의
대동강 철교를 타고 자유를 향해 처절하고 험난한 피난의 길에 올랐다.
비록 모형이지만, 끊어진 다리의 난간에 걸터앉은 망연자실한 표정의 피난민들이 안쓰럽게 보인다.








곳곳에 재현해 놓은 전장의 한 단면.








여러시설 가운데 특히 시선을 끄는 당시의 화장실,
물론 서로 등지고 앉았겠지만, 사다리같이 생긴 칸마다에 한 명씩 앉아
여러명이 동시에 볼일을 보게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시비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는 동물이며 올바름(正)과 힘(氣)의 상징인,
또한 길(吉)함을 상징하기도 하는 해태상. 당시 중공군 포로들이
하루속히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이것에 담아
막사의 한쪽에 설치 해 두었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재현해 놓았다. 









취사장의 모습이다.
수 많은 포로들을 수용하다 보니, 이 규모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이 곳을 스쳐간 사람들인 듯,
고단한 표정을 한 군상들이 그려진 벽 위를 짙푸른 덩굴들이 감싸고 있다.

6.25 당시, 사상대립으로 인한 아픈 기억이 그대로 담겨있는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경상남도 거제시 시청로에 위치해 있다.


참고/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  거제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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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에 위치한 구조라해수욕장은 와현해수욕장과 함께
거제도에서 두 곳 밖에 없는 백사장이 있는 해수욕장으로,
길이 1km의 해안으로 펼쳐진 모래가 부드럽고, 수심이 완만하며, 
수온 또한 해수욕하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선 중기에 축성한 구조라성지와 내도, 외도, 해금강 등 이름난 여러 명승지가
가까이 있어 유람선을 타고 이곳들을 두루 관광해 볼 수도 있다.
유람선 선착장은 구조라해수욕장 바로 옆 구조라항에 위치해 있다.
또한 이 곳에서는 싱싱한 생선회와 멸치, 미역 등의 특산품도 만나 볼 수 있다.









구조라해수욕장 서쪽 해상으로 빤히 바라다 보이는, 효자의 전설이 담겼다는 윤돌섬.
이 섬은 육지와는 약 500m정도 떨어져 있으며 무인도로,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생달나무 등 상록 활엽수 및 노거수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경남 기념물 제239호로 지정되어 천연림으로 보호되고 있는만큼,
일반인의 출입 또한 금지되어 있다.


윤돌섬의 전설


하지만 전설처럼 바닷길은 사람이 건널 수 있을 만큼 물이 빠지지는 않는다.
다만 1년에 딱 한 번, 진도 바닷길이 열리는 시기에는 거제도와 연결이 된다고 한다.








그러한 사연을 담은 윤돌섬 주위로 고깃배들만 무심히 오가고...








해수욕장 전면으로 보이는... 
저 멀리 왼쪽, 동그랗게 봉긋이 솟은 섬이 해금강이다.








해금강을 배경으로 오가는 여러 종류의 배들.








내륙형 해안이어서 인지 대체로 조용하고, 호수처럼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곳 구조라해수욕장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모래질이 좋기는 하지만
백사장의 폭이 좁으며, 따가운 햇볕을 가려줄 그늘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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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동안의 부산으로의 외출,
가는 도중 비가 흩뿌렸으나, 부산시청에 도착할 즈음 서서히 그쳤다.








그 곳에서 볼일을 본 후, 그대로 떠나기가 섭섭하여 가 본지 오래된 해운대에 잠시 들렀다.
한차례 두꺼운 안개가 휘감고 지나가고 난 후, 하늘 한쪽으로는 구름이 길을 비키고...
비가 온 뒤여서인지 생각보다 무척이나 한산한 모습이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다.
바다쪽 저 멀리로는, APEC정상회의 개최를 기념하는 등대가 우뚝 서서 시선을 끌어 당긴다.
이 등대는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들의 단합과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설치된 것으로,
한 송이 꽃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한 떼의 새들이 그 위를 무리지어 날아가며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꼭 겨울바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는 부산 해마루에 올라 달맞이 고개를 바라다 본다.
언덕위로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집들이 이국적인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는 가운데,
아랫쪽으로는 작은 포구인 청사포가 보인다.
하늘도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지만,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저 멀리 산 위로는 한줄기 운무가 감싸고 있고,
바다위 한쪽으로는 짙은 해무(海霧)가 띠를 만들며, 멈춘듯 그대로 떠 있다.
늦은 오후시간도 덩달아 정지된 듯, 적막감이 감돈다.








발 아래를 보니 어느새 해무가 가득 몰려와 바다위를 뒤덮었다.
그것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말이다.
그런데 그 위로 슬며시 내민 얼굴 하나가 있다... 등대다.
정작 길을 밝혀야 할 등대가 도리어 길을 잃어 버린 듯 하다.








해무가 비껴간 곳에 서 있는 청사포의 또 다른 등대..
이를 마지막으로 탁트인 바다를 찾아가 본 잠시동안의 드라이브는 끝이 났다.
먹먹하던 마음을 그곳에 내던지고, 아쉽지만.. 그대로 발길을 돌려 부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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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동구 불로동, 주택이 들어서 있는 야산 그 한쪽에
고분의 갯수가 총 211기에 이르는 대규모의 고분군이 자리잡고 있다.







 
1938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쳐 몇기만 표본 발굴 조사한 결과,
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사방벽을 쌓고 큼직한 판석으로 뚜껑을 덮은
장방형의 수혈식 석곽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금동제의 장신구와 철제무기,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으나
상당수의 고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라 한다.








삼국시대의 고분군으로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곳에 세워진 표지석의 글을 옮겨본다.









전면 우측으로는 조성중인 봉무산업단지가 보이고,
이 곳과의 사이에는 경부고속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또한 인근에는 공항이 위치해 있어, 뜨고 내리는 여객기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투기의 소음은 정말 만만찮다.
때문에 이 곳은 한시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









대구 일대에 현존하는 고분들 중 외형적인 형태를 가장 잘 갖추고 있고
좁은 지역에 많은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바로 이 불로동 고분군이다.








저 아래 보이는 작은집은 화장실이란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문을 열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생각보다 봉분이 많다.
크고 작은 봉분이 둔덕을 따라 쭉 이어져 있다.

한때 이 곳에는 불장난으로 추정되는 산불이 발생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일부엔 그을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봄이 되니 그 자리엔 어김없이 또 다른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우리네 정서에 비춰보면 아직까지는 무덤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지만,
그래도 한 없이 푸근하게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이 곳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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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호문(사천왕문)에 버티고 선 지국천왕.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한다는 사천왕 중에서 ,
동방을 지키는 지국천왕은 비파를 들고 있고,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은 금강검을 들고 있으며,
서방을 지키는 광목(廣目)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들고,
북방을 지키는 다문(多聞)천왕은 보탑을 들고 있다.








대웅전. (보물 제1563호)

동화사는 신라시대 때 처음 지어진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8차례에 걸쳐 새로 지어졌으며,
지금의 대웅전은 1727년(영조 3)에서 1732년(영조8)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가공하지 않은 아름드리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하여
자연미와 함께 건물의 안정감을 주고 있다..









대웅전의 불단위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그 양쪽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그 위쪽에는 엄숙한 부처님의 공간임을 강조하기 위한
닫집(불상을 감싸는 작은 집이나, 불상 위를 장식하는 덮개)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특히 대웅전 정면의 문짝은 활짝 핀 꽃잎을 색색으로 새긴 꽃살문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꽃살문짝은 부처님께 꽃을 공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 사진은 각기 따로 되어있는 두 개의 문짝을 연결해 이어붙인 모습이다.)








겹개벚나무라고도 하는 만첩개벚이 화려하게 피어있는
대웅전 우측 마당.









석탑뒤로 보이는 건물이 동별당이다.








통일범종루에 걸린 법고.









봉서루에서 연등이 걸린 옹호문을 향해...








오동나무 숲에 둥지를 튼다는 봉황새를 상징하며,
봉황이 깃든 누각이라는 뜻을 가진 봉서루.
계단아래 보이는 둥근돌은 봉황의 알을 상징하며,
동화사 가람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부도전에 새겨진 글귀.


이 동화사에는 당간지주, 비로암 3층석탑, 동화사입구 마애불좌상,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금당암 3층석탑, 석조부도군 등 6점의 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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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의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동화사의 초입에 있는 안내도이다.
그 곳 안내판에는 동화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보물243호로 동화사(桐華寺) 입구에 위치해 있는 마애불좌상.
암벽에 돋을새김한 불상을 마애불이라 하는데, 이 불상의 높이는 1.06m,
대좌 높이는 39cm, 그리고 광배 높이는 1.5m이다.








마애불좌상 바로 좌측에 위치한 봉황문.
이쪽 저쪽 모두 다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어 그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는 형국이다.









통일대전으로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 본...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1992년에 낙성되었으며 높이가 30m에 이르는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
7천만 겨레의 염원인 통일을 기원하고
민족자존의 새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석가탄신일을 앞에 둔 때라 미리 내걸린 연등이
대불 앞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 석조대불의 원석은 약 300톤의 규모로, 8등분으로 조성되어 조각되었다고 한다. 








훨씬 전인 지난 2004년 11월의 모습.









통일대불뒤로는 이러한 조각물들이 병풍을 두르듯 도열해 있다.








그 곳을 떠나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해탈교.
이 연못에는 다른 여느곳과 마찬가지로 동전던지기를 유도하는 장치가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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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차량의 소음, 깔깔대는 웃음소리...
그러나 그 소리보다 더 큰 것은 웽웽거리는 벌들과
허공을 가르는 하얀나비의 날갯짓 소리.








이 곳에서의 길은 다른 여느 길과는 다르다.
노란 물결위에 흰 양탄자가 깔린 듯 쭉 펼쳐진...
역설적이게도 유채보다는 오히려 이 길이 더 특별해 보인다.








데크위의 사람이 너무 지나가 버렸다.

이 곳에서는 혼자인게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그럴듯한 모델이 원하는 곳에서 포즈라도 한 번 근사하게 잡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그렇게만 좋아 보이던 꽃들이 슬며시 미워지는 순간이다.









지금만큼은 푸른하늘이 아니어도 좋다.
눈부신 이들 꽃이 내 눈 앞에 환하게 펼쳐져 있기에...








여느 다른꽃과 마찬가지로 머지않아 자취를 감추고야 말 이 풍경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고자 이들은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아니, 사진에서 뿐 만이 아니라
이들의 마음속까지도 노오란 꽃물들로 번져 갈 것만 같다.








이 곳을 지키고 서서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한참이나 기다렸다.
마침 여학생 두 명이 나란히 지나간다.








잠시 후, 또 다른 여학생이 되돌아 오면서
그대로 지나치는가 싶더니 데크에 나란히 걸터 앉는다.
그리고는 마치 연인이라도 되는 양 얼굴을 맞댄다.

그들의 속삭임이 이 곳까지 들릴 듯 하다.









마치 나를 위해 포즈라도 취해주듯, 이 쪽으로 또 다시 고쳐 앉는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보면서 무슨 얘긴가를 주고 받더니 그대로 환한 웃음이 터지고 만다.
아마 이 유채꽃이 그들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 아닐까 한다.








참새는 짹짹, 개미는...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한 무리의 새싹들이 첨성대 옆을 지나간다.


지금, 이 유채밭에 모여 드는건 나비와 꿀벌들 만이 아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멀찌감치 서서 한동안 지켜보는 걸로 그치지만,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급기야
하나, 둘씩, 이 유채밭으로 몸을 던지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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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궁궐이 있었던 곳으로 성의 모양이 반달모양을 하고 있어
반월성이라 불리는 이 곳,









그 곳에서 계림숲으로 이어지는 공한지에 유채꽃이 만발하여
볼 것 많은 경주에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외양은 단순한 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휴식으로, 위안으로, 또 즐거움 등으로 다양하게 비춰질...
혹, 당신에게 이 꽃은 어떤 의미가 될까.
어쩌면 그 화려함 때문에 느껴지는 질투? 








비록 헤치면 보잘 것 없는 한 송이의 꽃일 지라도
이 꽃이 모이고 모이면 이렇듯 시각적인 경외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경주를 상징하는 캐릭터인 관이와 금이가 유채밭을 지키고 서 있다.
이 둘의 이름은 금관의 글자를 의인화 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못마땅해서 일까, 얼굴표정이 잔뜩 화가난 모습이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그 옆에는 사진촬영용 조형물이 단촐하게 설치되어 있다.








한 무리의 병아리들도 춘흥을 못 이겨 나들이를 나왔다.
먼 훗날, 이들은 지금의 이 사진 한 장으로 이 곳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내딛는 발걸음 한 자국마다 세상사의 시름을 하나씩 벗어 던지고 지나간다.
아마도 이분도 이 곳을 떠날때 쯤이면 훨씬 가벼워진 발걸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유채꽃 단지를 흐르는 수로.
비록 물의 양은 많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 이들을 지배하는 건 온통 노란 꽃물 뿐,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그 진한 물로 물들여지고 있을...








위쪽은 내물왕릉이 위치한 고분군.
그날, 경주에는 노란 유채의 쓰나미가 덮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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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인 지난 5일, 아버님 산소에 들렀다가 지척에 있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의 산수유마을을 찾았다.
마침 이 곳에서는 산수유축제가 열리고 있고
거기에다 외가 친척분도 살고 계신다고 하니... 
그야말로 뜻하지 않은, 일석삼조의 나들이길이었다. 








3월 23일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바로 어제인 4월 10일까지 계속되었는데,
당시에는 행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른 분위기여서인지
산수유꽃의 색깔이 조금은 퇴색해 보였으나
한편으로는 그게 오히려 더 소박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늦여름에 열리는 빨간열매가 만개한 꽃들과 어울려 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 놈들은 겨우내내 이렇게 매달려 있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형적으로 약간 쪼그라들기만 했을 뿐,
오히려 윤기마져 감돌고 있었다.








산기슭을 따라 노랗게 물들인 꽃들이
그리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으면서
바라보는 이에게 평온함을 선사한다.








들판만 본다면 이미 여름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그러한 풍경이 지금 이 곳에 펼쳐지고 있다.








유치원 어린이, 병아리를 연상케하는 이 산수유꽃의
노란색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미지 그대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마냥 뛰어 놀고만 싶은...









조그만 개천을 따라 쭉 펼쳐진 산수유꽃길을 따라 걷다보면
일상사의 스트레스는 일찌감치 저 멀리로 물러나 있는 것 같다.








물기를 머금은 개천가에는 이름모를 풀들이 생기를 돋우고,
그 싱그러움이 부러운지 산수유 가지는 한껏 고개를 숙여 내려다 보고 있고...








푸르른 초원마냥 펼쳐진 마늘밭과 노란 산수유꽃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서로 대비가 되어 강렬하게 다가온다.








산수유나무를 따라 나 있는 산책길에는 일부만 자갈이 깔려 있을 뿐,
풋풋한 흙내음을 그대로 맡으며 밟아볼 수 있게 조성해 놓았다.
이 곳 산수유마을에는 다른 여느 축제의 인위적이고 번잡한 분위기와는 달리 
훨씬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녹아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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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머리를 맞댄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치열한 몸싸움이 계속되면서 머리쪽에서는 어느새 선혈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혈투다.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고 끝까지 버틸 태세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30분은 후딱 지나가고...
이젠 서서히 힘이 부쳐오는지 오버히트하듯 입에서 흰 액체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또 다시 머리를 맞댔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소의 우직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들이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정말 대단한 놈들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결정되는 승부,
결국 한 쪽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그대로 피해 달아나고 만다.
장장 한 시간여에 걸친 싸움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국제전으로 왼쪽의 우리 한우와 미국소와의 대결이다.
이 검은 미국소는 체중이 약 1톤에 달하는 거구이다.








그렇다고 기가 죽을 수는 없다.
길고 짧은 건 대어봐야 안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쨌거나 아무리 덩치가 크다 하더라도 한우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부치는 데는
견뎌낼 재간은 없었다. 결론은 당연히 우리 한우의 승리.

 
잠시들러 지켜 본 한낱 소들의 싸움구경에 지나지 않았지만,
바라보는 입장에선 다른 어느 경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독특하고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정작 순하디 순한 눈망울을 굴리며 우리네와 함께 해 온 이 놈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우직함과 뚝심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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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화양읍에 위치한 상설 소싸움 경기장.
작년까지는 개천둔치에서 열렸으나
돔형식의 실내 전용경기장이 새로 지어짐에 따라
올해는 이곳에서 지난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열렸다.









각종 고철을 재활용하여 탄생된 소가 다른 몇 개의 작품들과 함께
경기장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뿔의 모양이 크레인으로 대체되어 소의 강인한 이미지가 제대로 살아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로봇 같기는 하지만...








소싸움경기장의 내부.
돔형 천장의 일부를 여닫게 되어있어 자연채광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청도 소싸움대회는 지난 90년부터 영남소싸움대회를 시작으로 점점 규모를 키워 오면서
2007년~2008년에는 2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 대상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는 전국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96마리의 소가 출전했다고 한다.








입장이 끝난 후 코를 꿰고 있던 줄을 풀면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서로 머리를 맞대어 두툼한 뿔로 상대를 밀어내면서 무력을 행사하는데
힘이 부치면 그냥 달아나는 것으로 승부는 결정되게 된다.
이 넘들의 싸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또 다른 두 마리의 소가 서로 머리를 맞댄 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 째려보는 모습이 재미있긴 하지만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한껏 부릅뜬
두 눈빛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미루어 보건데 시작부터 만만한 경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내 두툼한 뿔로 상대를 밀어내며 강인한 힘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상대를 밀어부치는, 역동적인 동작이 펼쳐질때면
조용하던 경기장은 환호소리로 달아오른다.
그리고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경기에 몰입되어 간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소들은 점점 더 거칠게 모래판을 내달리고...








사실, 처음보는 소싸움이라 기대감은 크지 않았고
그냥 단순한 호기심 하나로 보게 됐는데, 지켜 볼수록
묘한 긴장감과 함께 독특한 재미로 다가왔다.








다른 팀은 불과 수 분내에 승부를 판가름 짓고 이내 물러갔지만
이 놈들은 한치의 양보도 없다.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긴장의 고삐는 한순간도 늦춰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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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한번은 꼭 가봐야 겠다고 생각해온 곳 중 한 곳인 화왕산.
마침 정월 대보름을 맞아 5만 6천평에 달하는 그곳 정상에서
억새를 태우는 행사를 한다기에 만사를 제쳐두고 향한 창녕.
그것도 3년마다 열리는 행사라 하니 더 더욱 그랬다.

창녕여고쪽 자하곡입구 도로에 차를 세우고 보니
잔뜩흐린 하늘에서 잠시 가랑비가 떨어진다.
조금 걱정되는 순간이다.
그것도 잠시, 길을 나섰다.
입구에서 부터 제법 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길을 잇고 있었다.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을 오르다가
도성암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여느 산이 다 그렇듯 가쁜 호흡을 토해내며 메마른 산길을 걸어 올랐다.
그러기를 2시간여, 갑자기 눈앞에 사발같은 넓다란 분지가 나타났다.








주위의 대부분은 가파른 경사지여서 정상에 이렇게 넓은 분지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 옛날 이곳은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뫼,큰불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실제로 전체적인 형태가 분화구 모양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화산의 폭발이 아니라 자연적인 침식으로 인해
형성되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 걸로도 알고 있다.
물론, 정확한건 아니지만...;;

화왕산(756.6m)은 억새밭과 진달래 군락으로 유명하며,
정상부에는 5만여평의 억새밭이 펼쳐져 있어
가을인 10월에는 억새제가, 그리고 3년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정상일대의 억새평전에서 달맞이와 억새태우기 행사가 열린다.


등반코스








                               600m 지대에 위치한 화왕산성.


                               ▶화왕산성(사적 제64호)









                               주위의 조망이 뛰어난 화왕산의 배바위.

                               1시간여 둘레를 한 바퀴 쭉 돌아본 후, 부대행사도 지켜보면서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억새태우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배바위쪽에서 서쪽으로 억새평전을 조망.








잔뜩 흐렸던 하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구름이 옅어지고
푸른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늘위로는 우포 따오기의 
                               순조로운 번식과 안녕을 기원하는 연이 날려지고...








                               행사가 무르익어가자 축원을 담은 대형 달집주위에는 
                               모여든 사람들로 점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억새태우기가 임박하자 
                               하나 둘씩 방화선 밖으로 물러나는...








                               5시가 되자 본행사가 시작되어
                               햇빛이 힘을 잃을 즈음 달집에 불이 붙여졌다.



                               ■ 2009(기축년)정월대보름 화왕산 억새태우기 행사
                                  주요행사 일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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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속의 사진 나부랭이 /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저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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