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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위치한 양동(良洞)마을은, 경주시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여 있는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종가가 500여년 동안의 전통을 잇는 유서깊은 반촌마을이다.
1984년 12월 20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이기도 한 이 곳은, 수 많은 당시의 상류주택을 포함하여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반가옥은 이 곳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통감속편(국보283), 무첨당(보물411), 향단(보물412), 관가정(보물442),
손소영정(보물1216)을 비롯하여 서백당(중요민속자료23) 등 중요민속자료 12점과
손소선생분재기(경북유형문화재14) 등 도지정문화재 7점이 있다.








관가정(觀稼亭).
조선 성종(成宗)때 이조판서를 지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이 세운 정자로
보물 제442호이다.








                              건물의 평면구조는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는데, 가운데의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분된다. 안채 뒤에는 맞배지붕으로 된 사당이 있다.
                              안채는 중문 맞은편에 네모기둥을 사용하여 간소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사당과 누마루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누마루에 길게 난간을 돌려 정자의 격식을 갖추고 있다.
                              사랑채는 남자 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대문의 왼쪽에 사랑방과 마루가 있다.
                              마루는 앞면이 트여있는 누마루로 '관가정(觀稼亭)'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마을 입구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며, 주변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이 정자는 
                              사랑채의 건축형식이 돋보이며, 안채는 부엌이 안방과 다소 떨어진 우익사 맨 앞쪽에 
                              세로로 길게 자리잡고 있어 공간구성이 이채롭다.
                              보통 대문은 행랑채와 연결되지만, 이 집은 특이하게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어 
                              조선 중기의 남부지방 주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81년 보수 때 주위에 담장을 쌓고 일각대문을 내었다.








향단(香壇), 보물 제412호.

이 건물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있을 때, 모친의 병간호를 하도록
중종(中宗)이 목재를 하사해 지은 집으로, 그의 동생인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에게 주었다.
농재라는 호는 '귀먹은 듯 살아가라'는 현인의 가르침을 따른 것으로,
그는 형인 회재 이언적을 대신하여 벼슬을 마다하고 나이든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이 건물은 마을 전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위치와 모습에서 상류주택의 
                              일반적 격식에서 조금 벗어난 면도 가지고 있으며,
                              주생활(住生活)의 합리화를 도모한 우수한 건물이다.








또한, 두 곳에 뜰을 두고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붙여 전체가 '興)자 모양을 이루어
독특한 평면형태를 구성하고 있으며, 사가(私家)로서
건물 전체에 둥근 기둥을 사용하여 상류층 주택의 격식을 갖추었다.
원래 99칸이었다고 전하나, 일부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 50여칸이 보존되어 있다.








                              향단은 경사지를 두 개의 단으로 나누어 터를 닦았다.
                              윗단에는 사랑채와 안채 등 몸채를 배치하고, 한 층 밑에 조성한 아랫단에는 긴 행랑채를 
                              배열하였으며, 평면만큼이나 복잡한 동선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하인들은 행랑채 문간이나 부엌 행랑을 통해서만 드나들도록 되어 있어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주인과 부딪히는 일이 없다.








중요민속자료 제81호인 심수정(心水亭)
이 정자는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을 추모하여 조선 명종(明宗) 15년(1560년)경에
여강이씨(驪江李氏) 문중에 의해 지어졌다.








                              양동마을에는 여러 정자가 있지만 규모가 가장 크며, 맞은편 북촌에 자리잡은 
                              향단(香壇)에 딸린 정자로서, 철종(哲宗)때에 이 정자가 불타고 1917년경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7칸 대청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온돌방을 둔 팔작집으로,
                              서쪽 방 옆으로는 난간이 있는 누마루를 두어 향단이 있는 북촌 일대를 바라보기 좋게 하였다.
                              누마루 아래의 기둥은 팔각으로 하였다.
                              큰 규모의 정자에 필요한 칸 수와 기능을 고루 배려하여 잘 짜여진 구조로,
                              이 정자에 딸린 행랑채는 격식있는 소규모의 가옥으로 건실하게 구성되었다.








                              한적한 오솔길의 나무숲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양동마을.

                              이 양동마을은 현재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등재가 추진되고 있으며,
                              이미 지난 2009년 9월 1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실사단에 의해 실사에 들어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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