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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의 랜드마크로 1991년 7월에 착공하여 1994년 10월에 완공된 

                               동방명주 TV탑(東方明珠電視塔).

                               '동방의 빛나는 구슬'이라는 뜻으로 크고 작은 구 11개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높이 350m, 총높이 468m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방송탑으로는

                               세계 5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전망대로 올라가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이어졌다.







기네스북에 올라있다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263m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섰다.

황푸강(黃浦江) 건너편 푸시(浦西) 방향으로는 근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선 와이탄(外灘)이다.


충적평야인 탓인지 전체적인 지세는 평탄하다.

산맥이 적으며 지대가 낮아 평균 해발고도는 4m정도이며,

상하이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은 항저우만에 위치한 다진산(大金山)으로

고도는 103m라고 한다.







창강(长江) 하구에 위치해서인지 모래를 가득 실은 운반선이 자주 오간다.

밤이 되면 화려한 야경과 함께 유람선이 다니는 곳이다.







20층 이상 건물이 3천여 개를 넘고, 30층이 넘는 고층 건물 수가 

아주 많은 도시 중 하나라는... 







                               오른쪽으로 가장 높게 올라간 건물은 2008년에 착공하여 2015년에 완공된

                               높이 632m, 121층의 상하이 타워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다음으로 높은 건물이다.

                               1층 로비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약 360도 가까이 비틀어서 올라가는 형태는

                               비상하는 용을 상징한다.

                               그 옆의 병따개 모양을 한 건물은 2008년에 완공된 492m의 상하이환구금융센터(SWFC),

                               그리고 그 앞쪽에는 진마오타워(金茂大厦:금무대하)가 위치해 있다.







                               상하이는 1842년 아편전쟁 후 체결된 난징조약에 의해 개항되어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극동 최대의 도시로 발전하여

                               아시아 금융의 중심이 되었다.







                               1978년 개혁개방정책에 의해 외국 자본이 유입되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고, 1992년 이래 본격적으로 개발된 푸둥지구의 발전으로

                               고도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그 아래층에 위치한 투명유리바닥으로 된 전망대.

전망대는 높이 90m 지점의 하구체 전망대와 263m 지점의

상구체 전망대, 그리고 특별 전망대인 350m 지점의 태공창이 있다. 


상하이의 면적은 6340.5㎢로 서울 면적의 10배 정도 되며,

남북으로는 최대 120km, 동서로는 최대 100km가 된다.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일조량과 강우량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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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 바로 앞은 예원상성(豫園商城: 위위안 상청)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시장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명, 청시대의 풍격을 모방한 7개의 고건축물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다.

예원상성의 면적은 7.5만㎡







골동품점, 먹거리 시장, 찻집 등등...







다리가 아홉번 꺾여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 구곡교.

다리가 지그재그 모양으로 꺾여있는 것은 귀신이 직선으로만

이동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다리 중앙에 있는 것은 호심정(湖心亭: 후신팅)으로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방문을 하여 사인을 남겨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1784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중국 전통 남방식 누각의 멋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만두집...







작지만 시원한 연못은 여유로움을 더해준다.







구곡교와 호심정을 중심으로 한 파노라마.

이 길은 예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고건축물 상점 중의 하나인 화보루(華寶樓).

공예품을 취급하는 곳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 명나라, 청나라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너무나 중국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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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4대 정원 중의 하나인 예원(豫園)은 상하이 구시가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명청시대 양식의 정원으로 중국 정원 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원은 반윤단(潘允端)에 의해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 1559년, 명조의

                               관리였던 그의 아버지 반은(潘恩)을 기쁘게 하기위해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거의 20년이 걸린 1577년에 완공되었다. 

                               하지만 완공이 되었을 때는 이미 그의 부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그 자신도 몇 년 살지 못하고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당시 황제에게만 허용되던 용의 형상을 정원 곳곳에 조각해 놓았다.

이런 사실이 발각되면서 처형의 위기에 몰리자, '원래의 용은 발톱이 5개이나 

이곳에 있는 짐승은 발톱이 3개라 이무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상인이 매입을 하여 1760년까지 방치되다가 1842년 아편전쟁이

일어나면서 영국군이 이곳을 5일간 점령했다고 한다.

태평천국의 반란 동안에는 황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다시 일본군에 의해 손상을 입었고,

1956~1961년, 정부에 의해 보수되어 1961년에 일반에 개방되었다.

1982년에는 국가 단위의 문화재로 공포.







                               커다란 잉어들이 노니는 정원의 연못, 삼곡교(三曲橋).







옥화당과 함벽루를 잇는 다리, 적옥수랑(积玉水廊).







내원(內園), 원래 성황묘의 부속 정원이었으나 1959년 보수하면서

예원의 일부로 조성되었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문은 물론, 바닥의 모자이크 문양도

다양하여 시선을 끈다.







내원 안의 '고희대(古戏台).







                               유달리 섬세하면서도 화려해 보이는...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물.

오늘날 예원의 면적은 2만평방미터의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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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는 주가각(朱家角: 주자자오)은 상하이

시내 중심에서 약 48km 떨어진 상하이 칭푸 구 내에 자리잡고 있다.







주가각은 송나라 대에 시장이 형성되어 수상교통의 요지로

방직업이 발전하였고, 군사적 요충지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상하이 시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방생교(放生橋) 위에서 본 풍경.

명 융경(隆慶) 5년(1571)에 건립된 교각으로 상하이 최대의 석조 아치형 교각이다. 

하지만 물은 깨끗하지가 않다.







수향마을답게 전형적인 강남 양식의 수로와 가옥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면적은 수면을 포함하여 138.6㎢.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는 강을 따라

나룻배가 쉴새없이 떠 다닌다.







수로 곳곳에는 독특한 모양의 다리가 가로지르고 있고... 







                               좁은 골목에는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을사람들의 정신적인 중심 역할을 했을법한 성황묘(城隍廟).

성황묘는 중국에서 성황신을 받드는 도교 사당으로, 성황신은 도시와

그 주민들을 수호한다고 믿어 각 도시에는 반드시 설치되었다고 한다.






                               마을 골목길 한편에는 화동지역(华东地区)의 유일한 청대의 우체국 옛터인 

                               대청우국(大淸郵局)이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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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와이탄(外灘:외탄) 푸둥지역의 야경.

와이탄은 상하이의 주요 건물과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로 꼽힌다.


빌딩숲을 끼고 흐르는 이 강은 황푸강(黃浦江)으로 타이후(太湖)에서 발원해 

상하이를 거치는 등 전체 113km를 흘러 창강(長江)으로 들어간다.

폭은 300~700m, 평균 수심은 9m이다.







황푸강 유람선 선착장.







황푸강을 기준으로 푸둥(浦東)지구와 푸시(浦西)지구로 구분되는데,

사진으로 보이는 곳은 고색창연함이 두드러지는 푸시지역이다. 







전체 길이가 1.7km에 이르는 와이탄은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가

상하이 등 5개의 항구를 개항하면서 지배국이 행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하는 

조계(租界)로 내어놓은 지역이었다.

중국의 조계지는 청나라말 열강 등의 중국진출로 인하여 중국이 타국에

임대해준 지역을 말하는데, 그 때 이 조계지 안으로는 '개와 중국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법령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을 포함한 유럽 열강이 이곳으로 진출하여 쌓아올린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신·구의 조화라고나 할까, 100년 이상된 유럽풍의 건물들이 들어선

                               푸시지역과는 반대로 건너편 푸둥지역은 초고층의 빌딩들이 숲을 이루어

                               극과 극의 풍경을 보여준다.







다양한 모양을 한 유람선들은 관광객들을 태우고

강 위를 분주히 오가고...







상하이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탑 옆을 스치듯 지나간다.

홍콩에 비해 규모가 좀 떨어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정취는 있다.







                               빌딩 숲 사이로 유난히 돋보이는 동방명주탑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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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푸둥(浦東)국제공항은 상하이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상하이시 푸둥 신구에 위치해 있다.







1999년 10월, 기존의 상하이 훙차오 국제공항에서 홍콩과

마카오행 항편을 포함한 국제선을 이관해 정식 개항하였다.







                               2005년, 제2 활주로 개설,

                               2007년, 제2 청사 완공...







공항버스는 8개 노선과 공항 내선, 야간선 등 다양하게 운행된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 상하이 지하철 2호선 룽양루역까지는 2002년에 개통된

자기부상열차가 연결되어 있다.







계류장.







관제탑.







푸둥국제공항 청사는 우리나라 인천국제공항과 많이 닮아있다.

두 공항 설계자가 같은 인물이라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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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가장 동쪽 끝에 있는 섬,

독도평화호를 타고 사동항을 떠나 그토록 밟아보고 싶었던 땅,

독도로 향한다.







사동항에서 출발한지 2시간 20분여...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자 자주 주권을 상징하는 독도가 창가에 모습을 드러내자 

갑자기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사진에서 왼쪽 섬은 서도, 오른쪽 섬은 동도...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牛山島)', '삼봉도(三峰島)', '가지도(可支島)'라

불렀으며, 울릉도 주민들은 돌을 '독'이라고 하고 돌섬을 '독섬'이라고 했다.

그리고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도(獨島)가 되었다고 한다.

독도가 행정지명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06년(광무10년)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로 알려져 있다.







드디어 우리의 땅 독도, 그 중에서 동도에 발을 내딪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외에 89개의 작은 돌섬과 암초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관광객들은 오를 수 없는 정상을 향해 데크길을 오른다.


                               독도는 해저 약 2,000m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생성시기는 대략 460만 년 전부터 약 250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울릉도(약250만 년 전)보다 약 200만 년 앞서고 제주도(약120만 년 전)보다도 

                               약 340만 년 앞서 생성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형이 되는 섬이라 할 수 있다. 







동도는 높이 98.6m, 둘레 2.8Km, 면적 73,297㎡이며

서도는 높이 168.5m, 둘레 2.6Km, 면적 88,740㎡의 크기이다.

동도와 서도의 전체 면적은 187,554㎡.







괭이갈매기가 알을 낳아놓고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모습.

독도에는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등 희귀한 해조류들이 살고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도 일원의 섬 178,781㎡를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하였다.







                               동도 경비대 막사 옆에 설치된 우체통.

                               2003년 4월에 설치되었으며, 우리의 땅으로서 대한민국의

                               보편적 우편서비스를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투함된 우편물은 2개월에 한번씩 수거 발송된다고 한다.







                               독도경비대 막사앞 암벽의 한국령 표석.

                               1954년 울릉경찰서에서 동도 정상에 독도경비초소를 짓고

                               해안가에 독도 영토 표석을 건립한 이후,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평면으로 정지작업을 해놓은 곳에 새긴 것이다. 

                               글씨를 쓰고 새긴 이는 한진호 씨이다.







'태평양을 바라본다'라는 뜻을 가진 

망양대(望洋臺)로 가는 길.







                               얼굴바위.

                               상투를 틀어올린 사람의 옆 얼굴모양으로, 삽입해 놓은 이니셜 우측을 보면

                               찾을 수 있다.

                               독도의 지층구조는 대부분 화산활동으로 인해 분출된 알칼리성 화산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부분의 암석은 현무암과 조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엄지바위라고도 불리는 서도의 탕건봉을 내려다보며... 

                               탕건봉 오른쪽에는 삼형제굴바위가 위치해 있다.

                               삼형제굴바위는 모습이 비슷한 세 개의 굴이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독도를 멀리서 바라보면 동도와 서도 사이의 이 바위가 마치 하나의

                               산봉우리처럼 보이기도 해서 독도를 다른 이름으로 '삼봉도'라고도 부른다.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칼을 갈았다는 숫돌바위.

                               바위의 암질이 숫돌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도와 151m의 최단거리로 서로 의지하며 마주보고 있는 서도.

현재 어민숙소 1동이 들어서 있어 비상시에 대피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 지구상에 다케시마라는 이름은 없다, 다만 독도만 있을 뿐이다.'


독도는 문헌상으로 삼국사기 신라본기 편에서 밝혀진 것처럼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복속시킨 이래 단 한번도

한국 영토에서 분리되거나 타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905년 남의 영토를 일개 지방 관청의 고시로 

시마네 현으로 편입시킨 것은 상식밖의 일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따라서 독도는 아름다운 우리의 땅으로,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의 끊임없는 관심과 국토수호의 

의지가 뒷받침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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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항에서 행남등대 반대편쪽 해안산책로를 걸어봤다.

그러나 얼마못가 길은 막혀있었다.







통구미 마을의 거북바위.

투구모양으로 높이 솟은 바위가 눈길을 끈다.

바위 위로 올라가는 형상의 거북이와 내려가는 거북이가 

보는 방향에 따라 6~9마리 정도 보인다고 한다.







현포항에 이르니 높이 199m의 암석 봉우리인 노인봉이 맞아준다.

가까이서 보면 노인의 주름살같이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왼쪽 저 멀리로는 송곳과 같이 뾰족하게 툭 튀어나온 모양의 송곳봉이 보인다.

높이가 430m인 이 봉우리는 불과 100m이내의 짧은 거리로 바다와 접해있다.







노인봉 쪽에서 바라본 공암(코끼리바위).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모양으로 현포와 천부 사이에 있다. 







2002년 창건된 대한불교 조계종 영추산 성불사.

미륵봉과 송곳산이 함께 자리잡은 곳, 송곳봉 아래에는

약사여래대불이 모셔져 있다.

울릉도 최초의 노천 부처님으로써 독도수호와 을릉도의 

안녕을 빌며 국태민안을 염원하기 위해 조성된 기도도량이다.







나리분지너와집.

나리분지는 1만 년 전 화산대 폭발에 의해 형성된 분화구의 내부에

만들어진 평지로, 울릉도 지역의 유일한 평지 형태의 밭을 볼 수 있다.

앞에 보이는 너와집은 울릉도 개척 당시의 재래집 형태를 

간직하고 있으며, 1940년도에 건축한 것이라 한다.







해발 440여m의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 저동방향으로 본 모습.

입구 차도에서 전망대까지는 약 15분 정도 소요되는데, 전망대에

올라서면 관음도와 죽도, 저동항과 행남등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바위 구멍인 풍혈과 삼나무 숲을 거쳐 만난 봉래폭포.

25m에 이르는 3단 폭포로 1일 유량이 3,000톤에 이른다고 한다.







평화로운 저동항의 모습.







저동항에서 도동항 방향으로 이어지는 행남해안산책로.

물빛이 참으로 곱기도 하다.

저 멀리 바다 위로 납작 업드린 죽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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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항 여객선 터미널을 떠나 4시간을 달려 도착한

태고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신비의 섬, 울릉도.







울릉도 도동항.


수백만년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울릉도는 남성적인 힘이 있는

기암괴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그대로 자라나는 산채며, 청정 바다 속의 각종 해산물 등

풍부한 먹거리는 물론,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한 해양성 기후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1998년 8월에 세워진 독도박물관 입구의 표석. 

독도박물관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울릉군에서 대지를 제공하고,

삼성문화재단이 건축한 건물에 고(故) 이종학 초대관장이 30여년간

수집한 자료와 그 외 개인, 기관 등의 자료를 토대로 1997년에 설립되었다.

그 위로 향토사료관과 독도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도동항에서 행남등대를 거쳐 저동 촛대암에 이르는 2.6km의 

                               도동·저동(행남)해안산책로를 걸어본다.

                               이번 발걸음은 행남등대까지 다녀올 참이다.







기암절벽과 천연동굴이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대자연의 절경이

해안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다.







                               곳곳에 현무암질 용암류와 조면암 같은 화산암과 응회암 및

                               부석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해식동굴과 타포니 등의 지질로 해안산책로는 말 그대로 자연 지질공원이라 할 수 있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신생대 제3기에서 제4기 초에 걸쳐 화산작용에 의해 형성된

                               종상화산(鐘狀火山)으로, 지질은 조면암, 안산암, 현무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의 중앙부에는 최고봉인 성인봉(984m)이 있고, 그 북쪽 비탈면에는 칼데라화구가

                               무너져 내려 생긴 나리분지와 알봉분지가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화산체이므로 평지는 거의 없고 해안은 대부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닷길을 벗어나 대나무숲을 지나 행남등대로 향한다.







                               도동등대라고도 불리는 도동항로표지관리소.

                               1954년 12월 무인등대를 운영해 오다가 독도 근해 어업이 증가함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광력을 증가하여 1979년 6월 유인등대화 하였다.

                               등탑은 백색원형 콘크리트조이며 높이는 22.8m이다. 







행남등대에 올라서니 그 너머로 저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가슴이 탁 트여지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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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읍 사동리 새각단 관광휴양시설지구내에 위치한

유럽식 별장형 휴양지인 대아울릉리조트.

105,600㎡의 부지 위에 연면적 7,260㎡의 시설과

야외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객실수는 150실이며, 부대시설로는 세미나실과 노래방, 수영장,  

그리고 스크린 골프연습장 등이 갖춰져 있다.







나리분지를 제외하고 평지가 거의 없는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리조트 단지가 계단처럼 층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객실로 올라갈 때에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려올 때에는 도보로 내려와야 한다는 불편함은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는 듯 했다.







전 객실에서는 바다와 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대아울릉리조트 안내도.







바다에서 바라본 대아울릉리조트.




▶ 대아울릉리조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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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담길이란 묵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박한 담화가 그려져 있는

골목을 의미하는데, 담에 그려진 이야기가 지역 어르신과 작가,

그리고 여행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으로

담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먼저 논골3길을 따라 올라가 등대오름길로 내려오는 코스를 밟아 보기로 한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정겨움이 가득한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본다.


논골담길은 논골 1,2,3길 및 등대오름길 등 모두 네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길마다 모두 다른 주제로 꾸며져 있다.







동해문화원이 주관한 2010 어르신 생활문화전승사업 묵호등대담화마을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지역 어르신들과 예술가들이 참여해 조성된 길,

아기자기한 벽화들로 꾸며진 이 감성스토리 마을의 뒷골목 끝에는

묵호등대가 있다. 







막 바다를 뛰쳐나온 듯한 물고기떼가 허공을 유영하고 있고, 

그 무리의 행렬은 큰 역동성으로 다가온다.







                               손을 대고 돌리면 금방이라도 돌아갈 것만 같은 바퀴... 

                               실재하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들도 있었다.







언덕을 올라가 만난 묵호등대쪽의 작은 부스,

시내버스의 종점이라고...







묵호항 동문산 위에 1963년 6월에 건립된 묵호등대.

해발고도 67m에 자리잡았으며, 백원형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높이는 12m로 내부 2층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묵호등대에서 내려다 본 동해바다.

뛰어 내리면 곧장 바다로 풍덩 빠져버릴 것만 같다.







                               묵호등대의 위용.







묵호등대 위에서 내려다본 묵호항의 모습.


묵호항은 원래 삼척 일대의 무연탄을 수송하던 자그마한 항구로

1941년 8월에 개항되었다고 한다.

1976년에 대규모 확장공사에 착수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묵호등대에서의 방향과 거리를 나타낸 이정표.







내려가는 길에는 기찻길이 이어지듯 또 다른 작품들로 이어져 있다.







이리저리 눈길을 주다보니 이제 거의 다 내려왔다.

마음씨 좋아보이는 논골주막 주모의 배웅을 받으며 이 길의 모퉁이를

돌아서니 바로 바닷가가 나타났다. 

이 길은 등대오름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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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의 정동쪽이자 전국에서 바다가 제일 가까운 역이라는

정동진역.







1962년 8월 9일 역사 신축 착공,

11월 6일 보통역으로 영업, 11월 11일 역사 준공...







정동진역의 모래시계 소나무.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 후 고현정소나무로 명명되기도 했다.

수종은 해송.







맑은 물빛을 자랑하는 바닷가의 풍경.







그 반대쪽...







배가 산으로 올라갔다.

호텔 겸 레스토랑인 정동진 썬크루즈.







그 아래 바닷가에는 미니 크루즈선이...







모래시계공원에는 커다란 해시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시간박물관이라는 볼거리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특별한 감흥은 없고, 그저 레일바이크만

요란하게 오가던 곳으로 기억될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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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문국의 도읍지인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위치한 산운생태공원,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산운마을로 들어가 본다.

산운(山雲)이라는 이름은 금성산 수정계곡 아래에 구름이 감도는 것을 보고

붙여졌다고 한다.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40여 채의 고택이 마을 안에 오밀조밀 모여있다.

                               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마을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산운마을은 의성에서 대감마을로 불리는 전통반촌으로, 영천이씨 집성촌이다.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잡은 마을 뒤쪽으로는 수 많은 전설을 간직한 

금성산(金城山)과 바로 그 옆에 비봉산(飛鳳山)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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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2호인 학록정사는 영천 이씨(李氏) 산운리 입향조(入鄕祖)인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 1531~1609) 선생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영조 26년(1750)경에 건립하였다.

선생은 명종 17년(1562)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강릉부사, 형조참의를 거쳐 강원도

관찰사에 이르렀으며, 임진왜란 때는 강릉부사로서 전공을 세워 당상관에 특진되었다.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으로 팔작지붕과 문틀 등은 당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학록정사 현판은 표암 강세황의 필적이다.







학록정사 강당과 좌측의 관선헌(觀善軒).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인데 중앙 3칸에 대청을 두고 대청 좌우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자연석 막돌쌓기한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대청 전 후면에만 원주가 사용되었다. 

대청 후면에는 각 칸마다 벽을 치고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았다.







광덕사(光德祠).

강당 좌후측 광덕사(光德祠)에는 삼부자(학동 광준, 경정 민성, 자암 민환)의

불천위(不遷位)를 합사하고 있으며, 정면 우측에는 관리사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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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제237호인 소우당(素宇堂).


이 건물은 소우(素宇) 이가발(李家發)이 19세기 초에 건립하였고,

안채는 1880년대에 고쳐지었다고 전한다.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마을은 조선 명종년간에 

영천이씨(永川李氏)가 처음으로 고향에 들어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가옥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튼ㅁ'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남측 전면에는 'ㅡ'자형 문간채가 있고 문간채의 서쪽에는 외측간이,

안채의 북서쪽에는 내측간이 있다.

안채, 사랑채 일곽(一郭)의 서쪽으로는 별도의 담장을 돌려 공간을 

형성하고 원림(園林)을 조성하였다.

원림 중앙부에는 안사랑채 또는 별당으로 불리는 건물을 배치하고,

그 남쪽으로는 연못과 수림(樹林) 및 보도(步道)를 조성하여 정원으로 꾸몄다.

19세기 상류가옥의 멋과 함께 별서(別墅)건축의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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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당(雲谷堂).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74호이다.


이 건물은 현 소유주 이목의 5대조인 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 1768~1859)이

영월부사로 재직하던 1800년대 초기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집이다.

북쪽에 솟은 금성산을 뒤로 하고 남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안채에 사랑방 고방 등이 한 동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평면 구성은

'ㅁ'자형인데 앞채의 좌우에 전면으로 나와 있어 날개집의 한 유형에 속한다.

안채의 왼쪽 뒤쪽에는 사당이 있고 문간채는 한말에 소실되었다.

평면 형태는 'ㄷ'자 형태의 안채와 그 앞 좌측에 'ㄱ'자형의 사랑채, 

우측의 'ㄱ'자형의 고방채는 중문간을 통해 연접되어 'ㄷ'자형을 이루어

안채와는 상하 병렬로 연결되어 있다.

1920년대에 일부 개축되었으나 이 마을의 고가옥 중 대표적인 건물이라

볼 수 있다.







운곡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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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75호인 점우당(漸于堂).


이 건물은 현 소유주 이병직의 증조부인 죽파(竹坡) 이장섭(李章燮)이

1900년경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가옥이다.

영천 이씨들이 모여사는 마을 입구 평지에서 남서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운곡당과 담장을 공유하고 있다.

안채는 사랑채와 연결이 되어 'ㄷ'자형의 평면을 이루었고,

맞은편에 'ㅡ'자형의 헛간채가 있어 '튼ㅁ'자형의 평면 배치를 하고

남동쪽으로는 대문채가 자리하고 있다.

평면 구성이나 목구조 기법에서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으나, 부근에

운곡당, 소우당 등이 인접하고 있어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살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예가 되고 있다.






참조/ 현장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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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이 끝물을 보이던 지난 4월 중순의 어느날,

미니 주산지로 불리우는 경상북도 경산시에 위치한 반곡지의 풍경이다.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드리워져있고 주변에 복사밭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사진찍기 좋은 명소...














마치 나무가 뿌리가 아니라 물에 박고있는 가지를 빨대삼아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조차 들게 하는 그런 풍경이다. 














규모는 작지만 막 돋아난 나뭇잎들로 인해 봄의 싱그로움이 더해진,

그리하여 몸과 마음까지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 바로 이곳

경산 반곡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지금은 그 때와 달리 나무의 위세는 더 당당해져 있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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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천마산은 완만한 경사길로 되어있어 부담없이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석성봉수대(石城烽燧臺).

                               석성봉수대는 황령산, 간비오산봉수대와 더불어 이미 세종7년(1461년)

                               이전부터 있어 온 것으로, 영조 원년(1725년) 동래부사 이중협의 건의에 따라

                               구봉산으로 옮기기까지 300여년간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이다.

                               현재의 봉수대는 1971년 천마산악회에서 주변의 돌을 모아 만든 것으로,

                               기초부분의 석축과 주변에서 발견된 기와조각 등으로 보아 

                               상당한 규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에서 보면 드넓게 펼쳐진 남해바다는 물론 인근의 가덕도, 구봉산,

                               황령산과 멀리 대마도까지 조망되어 예로부터 국토의 남동부를 지키는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잠시 오르니 전망대가 나타나고...







천마산 조각공원을 지나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니.

또 다른 전망대가 나타난다.







저 멀리로는 광안대교와 해운대 달맞이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남항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자갈치시장 방면으로는 부산타워가 우뚝 서 있는 용두산공원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이어주는 영도대교부산대교,

그리고 부산항대교까지의 조망이 시원하다.







영도구 너머 바다 위로는 행여 시야에서 멀어질세라 

오륙도가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건넨다.







부산 천마산에서의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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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앞으로... 

벽을 따라 떼를 지어 유영하는 화려한 색상의 물고기들.







감천 문화마을의 좁은 골목 곳곳에는 소소한 작품들과

포토존이 만들어져 방문객들을 반긴다.







작고 사소한 것에도 시선을 잡아 끌여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







낙서는 창작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지.







태극도는 1918년에 조철제가 증산사상에 기초하여 세운 종교로서

4천여 명의 태극도 신도들이 반달고개 주변에 모여 집단촌을 만들었는데,

이 태극도 신앙촌이 중심이 되어 1958년 현재의 감천2동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감천동은 한국전쟁 당시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 근현대사의 흔적과 기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산복도로는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지역의 지형적 특성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문화적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는 감천동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계단식 구조는 뒷집을 가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런만큼 서로를 배려하며 살을 부비고 살아가는 마을이 

바로 이곳 감천문화마을이라 할 수 있다.







새 옷으로 갈아입는 감천문화마을.

지난 3월의 모습이다.







                               감천(甘川)의 옛 이름은 감내(甘內)이다. 

                               감은 '검'에서 온 것이며, '검'은 신(神)이란 뜻이다.

                               그리고 천은 '내'를 한자로 적은 것이다.

                               다른 유래로는 물이 좋아서 감천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內'를 적어 감내(甘內) 또는 감래(甘來)라 하였고 

                               다내리(多內里:多大 안쪽마을)로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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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와 경상남도 마산을 잇는 구마고속도로 건설 기념탑.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 현풍휴게소에 위치해 있다.


                               '번영의 조국이여 조상이 남기신 문화유산을 기틀삼아 새시대의 예지와

                               맘으로 약진을 거듭하니 역사의 시련기에 겨레의 웅지와 충성을 다하는 

                               민족총력의 업적들을 다시 후세에 물려 길이 평화와 복락을 누리도록 하려 함이다.

                               아름다운 조국강토의 영원한 혈맥이 될 고속도로에 위의 축원을 담아 한탑을 세우다.

                               1977년 12월 17일'

                               앞면 글씨 : 대통령 박정희     건립 : 건설부     조각 : 김세중







                               1976년 6월 착공, 1977년 12월 2차로로 준공.

                               2008년 구마고속도로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으로 명칭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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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기념비.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 조각동산의 200평 부지에 건립된 이 기념탑은

높이 6m, 직경 90cm의 청동 기념탑 3개로 세워졌다.


대구사범학교 8,9,10기생들을 주축으로 문예부, 연구회, 다혁당 등의 활동을 통하여

조국독립의 길을 모색하던 중 1941년 일경에 발각되어 300여명의 대구사범출신들이

검거되었다.

이 중 35명이 구속되어 가혹한 고문과 수형생활로 5명이 옥중에서 순국하였고,

조국광복과 더불어 출옥한 후에도 12명이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 기념탑은 대구사범동창생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98년 3월 1일 건립하였다.







                               대둔산 승전탑.

                               1950년 10월 3일부터 1955년 1월 2일까지 5년간에 걸쳐 대둔산 일대에서

                               활동중인 빨치산 및 영호남지역에서 패주 북상하던 북괴군 3,412명을 섬멸하면서

                               경찰, 국군, 애국청년단원 등 전사자 1,376명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1986년 6월에 준공되었다.


                               당시 대둔산을 거점으로 활동한 공비들은 현재의 논산시, 완주군 일대와 멀리 공주,

                               대전까지 원정하여 410여회에 걸쳐 경찰관서를 습격하고 양민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고,

                               이에 충남경찰국은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강경경찰서에 대둔산지구 전투경찰대를

                               창설하여 대대적인 공비 토벌작전을 전개함으로서 대둔산 일대의 공비를 소탕하였다.







                               대둔산 동학군 최후 항전지.

                               동학전쟁 때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은 대둔산에서 일본군에

                               마지막 항전을 벌이다 모두 대둔산의 바위벼랑에서 몸을 던져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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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 내장사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서보단기념비(誓報檀記念碑)와 사적비(事績碑).


사적비 뒷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서기 1895년 을미 8월 명성왕후가 폭악무도한 왜적들에 의하여 시해되니 2천만 국민의 슬픔과

울분은 하늘에 사무치고 일본에 대한 복수의 소리가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터져 나왔다.(중략)

1903년 7월 15일 이곳 내장산에서 추모대회가 열렸는데 26개군에서 54명이 참가해 서보단을 쌓고 

북쪽을 향하여 통곡하는 가운데 복수를 맹서하고 매년 8월 20일 추모제를 거행키로 했다.'

1991년, 서보단기념사업추진회가 추모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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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 망우당공원 내에 위치한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1991년에 세워졌다.


                               '비 내리는 고모령'은 1948년 현인이 부른 노래로 현인과 함께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사가 유호와 작곡가 박시춘의 작품이다.

                               현인의 음반 작업을 맡은 유호는 가사 독촉에 시달리고 있던 중

                               우연히 지도책을 꺼내 보다가 대구에 있는 고모라는 지명을 발견하고 

                               어머니와 이별하는 아들을 소재로 이 노래를 만들었다.

                               실제 고모령은 형제봉 사이를 넘는 고개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알리는

                               비석이 제2작전사령부 안에 세워져 있다. 

                               2012년 모명재길이 만들어지면서 고모령 일부 구간을 고모령길로 명명하게 되었다.







                               조선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1552~1617)의 동상. 

                               이 역시 망우공원내에 위치해 있으며 공원 이름은 그의 호인 망우당(忘憂堂)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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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대학교 내 민속촌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길 오른편으로는 구계서원이, 저 멀리로는 의인정사가 눈에 들어온다. 




                               ▶ 관련 / 2014/04/09 - [History] - 영남대학교 민속촌







까치구멍집.


이 집은 영양 남씨들이 모여 살았던 경북 안동시 도목리에서

1975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경북 북부지역 산간촌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을 한 집으로,

소 마굿간을 비롯한 모든 편의시설을 집안으로 끌어 들이고 있는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공간이 닫혀있음으로 해서 비롯되는 오염된 공기는 지붕 양쪽에

공기 배출구를 만들어 뽑아 내었는데, 이 공기 배출구 모양이

까치집처럼 생겼다고 하여 이 집을 까치구멍집이라고 부른다.







                               우거진 송림 속에 위치한 쌍송정.







이곳을 방문한 지난 2014년 11월, 때마침 제례를 올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영남대 민속촌 내 화산서원에서 봉행된 인동(仁同) 출신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1581~1656)선생의 석채례(釋菜禮) 의식이었다.

석채례란 새로 나는 나물과 생 채소로 스승을 기리는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화산서당은 만회당 장경우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효종 2년(1651)에 세운 건물이다.







예복을 갖춰입고 제례에 임하는 참석자들.







머리에 갓과 유건(儒巾)을 쓴 어르신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화산서당은 원래 칠곡군 석적면에 위치했었으나 이곳으로 이건 ·

복원을 완료하고 2009년 11월 4일 준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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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에 위치한 활엽수림인 계정(桂亭).

수령 10~250여년 된 이팝나무 외 538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고 있으며 

1997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능묘 입구에는 자인에서 관직을 지낸 사람들의 공덕비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한(韓)장군 묘.


이곳은 신라 혹은 고려 때 도천산에 왜구가 출몰하여 주민을 괴롭히자

한장군이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여원무(女圓舞)를 추어 도천산 아래 

버들못(柳堤池)으로 왜구를 유인, 칡그물로 가두어 검흔석(劍痕石)에 올려놓고

참수시켰다는 한장군의 묘이다.

1968년 8월 자인중고등학교 본관 건물 신축을 위해 공사중 석실묘가 발견되어

발굴조사를 한 결과, 두개골이 포함된 유골과 은으로 장식한 갑옷 투구,

녹슨 철제창, 그리고 많은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묘를 한장군의 실묘(失墓)라고 확정하고 출토된 부장품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옮겼으며, 유해는 1969년 5월 10일 이곳에 옮겨 한장군 묘를 만들어 매년 단오절에

한장군 제를 올리고 있다.  

지금은 그 부장품이 2011년 12월 29일 대구박물관으로 이거(移去)되어 보관, 소장하고 있다.







진충묘(盡忠廟).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경산자인단오제 여원무의 주인공인 한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며, 일제 때 일본인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으나 해방 후

북사리의 한당(韓堂)을 계정숲에 이건(移建)하여 현재의 진충묘가 되었다.

정면3칸 측면1칸 맞배지붕의 사당이다.







자인현청의 본관이었던 시중당(使衆堂).

1637년(인조15)에 자인현감 임선백(任善伯)이 건립한 자인현(慈仁縣)의 정청(政廳)으로 

일명 무금헌(撫琴軒)이라고도 하는데, 여러차례 이건하였다가 1980년에 

현재의 위치인 계정숲으로 이건하였다.


이 숲은 한장군을 모시는 성지로서 그리고 자인 단오굿의 굿판으로서 향토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그 외에도 생물학적, 역사적, 민속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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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정기룡 장군의 사당인 경충사(景忠祠) 및 유허지.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소재해 있으며

정기룡 장군의 유품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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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에 위치한 성황사(城隍祠).

이 고장의 수호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으며 고려후기 명신인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垈) 선생을

수호신, 일명 성황신으로 모시고 공의 위업과 영력으로 고을민의 안녕과

부귀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왔다.

김지대 선생은 젊은 시절 거란과의 전쟁시 國患臣之患, 親憂子所愚,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라는 시를 지어 주목을 받고 조정에 발탁되었다.

이는 '나라의 근심은 신하의 근심, 어버이 근심은 자식의 근심이라,

어버이 대신 나라의 은혜를 갚는다면 충성과 효도를 함께 닦는 것이리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후 전라도, 경상도 안찰사를 역임하면서 청렴과 공정성으로 이름이 높았고

청도를 관적(貫籍)으로 하사받아 청도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후대에 이르러 목조신상은 망실되었고, 사당은 1960년경 풍우에 완전 소실된

것을 1997년에 복원하고, 수호신상은 2009년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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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갓바위로 오르는 길이다.

초입부터 오르막이 시작되고 관암사를 지나고부터는 본격적인 계단길이 이어진다.


관암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이지만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폐사되어 누가 언제 창건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갓바위 정상에서 내려다본 선본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

이 길을 통하면 좀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이곳 갓바위에서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이른 새벽부터 치성객으로 줄을 잇기도 하는데, 특히 초하루나 

요즘같은 입시철은 물론, 새해에는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많이 붐빈다. 




정성을 표현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는 두 손을 모아 참배를 하거나...







향을 피워 올리거나...


'향은 자신의 몸을 태움으로써 그 연기는 하나로 융합되는데,

그것은 희생과 화합을 의미하며 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향기와 즐거움을 주게 된다.

이것은 영혼의 심지에 진리의 불을 붙이는 구도자들이 취해야 하는 삶이며, 

자기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대승불교의 정신으로 궁극적으로는

해탈을 성취한다는 의미로 해탈향이라고도 한다.'







양초를 태우거나...


'사물의 수명이 다해 사라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촛불이 타면 양초는 사라지지만 양초를 이루고 있는 물질들은 

빛과 열, 그을음, 연기 등으로 모습을 바꿀 뿐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 못하여 사라져 가지만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다만 변화할 뿐이라는 것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 새로이 생기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다.







인등(引燈)을 밝히거나...


인등 또한 개인의 건강과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의미로 밝혀진다.







                               또는 직접 공물(供物)로 바치거나...







                               혹은 연등불사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어떤 형식 되었든 그들의 소망이 모두 다 이뤄지기를 기원해 본다.







병풍처럼 늘어선 암벽을 배경으로 남동쪽 방향으로 굽어보고 있는 관봉(冠峰)석조여래좌상.

표정이 아주 근엄해 보인다.


갓바위(관봉석조여래좌상)는 팔공산 남쪽 해발 850m의 관봉 정상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으로 전체 높이는 4m에 이른다.

머리 위에 두께 15cm정도의 판석을 갓처럼 쓰고 있기에 그렇게 부른다.

왼손에 작은 약호(藥葫)를 든 것으로 미루어 약사여래상으로 추정한다. 보물 제431호.







이곳에서 연무가 내려앉아 희미하게 드러난 대구 시가지를

한참이나 내려보다가 다시 발길을 되돌린다.







내려오는 길에는 부처님이 아주 인자한 표정으로 배웅을 해 주신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갓바위는 갓의 모양이 학사모와 비슷하여 특히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코 앞에 앞둔 지금은 수능 고득점을 기원하는 학부모들의 기도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수험생 모두의 행운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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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입구에 멈춰 선 전차.

이 381전차는 1930년경 일본에서 수입되어 서울 시내를 누비며 다녔던 전차로

1968년 11월까지 약 38년간 운행되었다.







전차는 1899년 5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운행되었는데,

1960년대 중반이후 버스와 자동차 등의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도로교통에 방해가 되자 1968년 11월 29일을 마지막으로 모든 전차의

운행이 중단되었다.







이곳에는 당시 아침 등교길의 한 풍경을 묘사해 두고 있다.







                               한 학생이 등교시간에 쫒긴 나머지 도시락을 집에 두고 온 것...







                               막내동생을 들쳐업은 어머니가 도시락을, 누이동생은 모자를 들고

                               뒤따라 오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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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잊은 코스모스가 만개한 경주 첨성대의 한여름.







그리고 조명으로 더 돋보이는 첨성대의 위용.







                               경주 황성공원 내에 세워진 김유신장군상.

                               경주의 조각가인 故김만술 선생이 만들고 경상북도가 1977년 9월 1일 준공했다.

                               옆면에는 화랑도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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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동구 대림동, 금호강변의 모습이다.







                               연꽃단지 바로 인근에는 금호강둑을 따라 조그마한 전망대와 함께

                               16만㎡ 규모의 안심습지가 위치해 있다.

                               안심습지는 인접 지역보다 강폭이 넓은 금호강에 제방을 쌓음으로서

                               금호강 일부가 분리되어 형성된 배후습지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안심습지는 그 옆의 금호강 일대를 포함한다.







이곳에서는 연꽃과 버드나무 그리고 갈대가 어우러져 있는 가운데

물옥잠, 자라풀, 마름, 생이가레, 줄, 부들 등과 같은

습지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생태학습장으로서 개개비, 덤불해오라기, 물닭,

백로류 등의 동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기도 하다.







더위에도 미동도 않고 서 있는 왜가리.


특히 겨울에는 가창오리, 원앙, 큰고니, 쇠부엉이, 수리부엉이,

흰꼬리수리 등의 희귀종과 오리류, 그리고 고슴도치, 너구리,

고라니, 수달 등의 포유류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흰뺨검둥오리는 시원한 물을 피해 일광욕을 즐기거나,







한가하게 수영을 즐기며 더위를 잊고 있었다.


오히려 여름보다는 겨울이 더 생동감이 있을 것 같은

그런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참고 / 대구시생태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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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대림동에 위치한 안심연꽃단지,

지난 7월 말경, 그곳에 설치된 연꽃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이곳 연근재배단지는 전체 면적이 55ha에 이르며,

단일재배지로는 전국 최대의 연근재배단지로 손꼽힌다.







그러나 더운 날씨에 모두 연잎 뒤로 숨어버린걸까. 

일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에는 연잎에 비해 

연꽃이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곳곳에 꽃잎을 떨어뜨린, 아직은 여물지 못한 연밥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많지가 않았다.

                               알고보니 절정기는 이미 지나 있더라는...







그렇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무관심한 듯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짧은 산책을 즐길 뿐이다.







                               며칠 후에 다시 찾은 연꽃단지.

                               그동안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연잎 사이의 간격이

                               다소 엉성하게 벌어져 있었다.







곳곳에서는 연근 수확이 시작되었고...







누군가는 이곳에서 금방 캐낸 싱싱한 연근과 연잎, 

그리고 연밥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추억까지

바구니에 담아 가기도 했다.








p.s. / 이번 포스팅부터는 댓글창은 닫아두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그냥 가볍게 눈팅만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방명록은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을 경우에만 사용하시고,

         통상적인 안부는 제가 방문드릴 때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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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위치한 석탄박물관의 중앙전시실.


'석탄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며 탄광을 통해 비로소

인간에게 의미있는 물질이 된다.

그리고 탄광은 석탄이 형성된 지질시대로 들어가는 문이며

갱도는 그 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석탄개발은 1896년 러시아인인 니시첸스키(Nisichensky)가

함경도 경성과 경원지방의 석탄채굴권을 획득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실제로 개발에 착수한 것은 1903년 궁내부 내장경 이용익과 프랑스 용동상회가

합동개발계약을 체결한 평양사동탄광이 최초였다.


이후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호황을 누리다가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국민생활수준의 향상으로 가스가 보급되면서 연탄의 사용량은 크게 줄어들게 되었고,

그 결과 1989년부터 1996년까지 모두 334개의 탄광을 폐광시킴으로서 석탄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중앙전시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광부들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이 블럭 모양으로 전시되어 시선을 끈다. 


                               문경은 우리나라 5대 탄광으로서 대한석탄공사 은성광업소 역시

                               한때 최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후 폐광되고 그 자리에 석탄산업합리화 사업단에서 1999년 5월에

                               석탄박물관을 개관하였고, 2003년에는 광원사택전시관을 개관하였다.

                               그리고 2010년 3월에는 중앙전시실을 리모델링을 한데 이어

                               2011년에는 광원사택전시관을 탄광사택촌으로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2층 전시실에서는 석탄과 광물화석, 석탄의 이용 및 역사

그리고 생산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선풍기, 대한석탄공사 마크, 다리미, 송풍기, 화로,

배급장, 삼척개발주식회사 졸업기념, 표창장 등 당시의 물품들.







14년간 탄광에서 근무한 진폐환자의 실제 폐의 모습.







3층 전시실은 광부들의 생활상과 석탄생산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탄층으로부터 석탄을 절취하거나 붕괴시키는 작업, 즉 채탄(採炭)작업을 하는 모습으로

부존상태나 형태에 따라서 괴탄(塊炭)이나 분탄(粉炭)으로 채굴한다.








갱도 밖으로 운반된 석탄에서 암석이나 이물질 등을 제거하면서

크기와 형태 및 탄질별로 분류하는 선탄장(選炭場)의 모습.







광부들은 두 하늘을 덮어쓰고 산다고 한다.

보통 일상적인 하늘과, 하루 3교대 8시간 동안 일하는 갱도 천장이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하늘과 같다는 의미이다.


자리를 옮겨 실제 갱도 전시관인 은성갱으로 향한다.

극한의 환경에서 생활했던 광부들과 만나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실제 갱도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은성갱은 문경시 가은읍의 '은'자와 마성면의 '성'자가 합쳐서 된 말이다.

                               석탄을 캐내기 위하여 1963년에 뚫은 이 갱도는 1994년 은성광업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사용했다.

                               갱도의 깊이는 약 800m이고 석탄을 캐낸 총 연장 길이가 무려 400km나 되며

                               광산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이곳에서 일한 사람은 4,3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곳 은성갱은 불연속 탄층(고구마 탄층)으로 많은 양의 석탄을 캐내기는 어려웠으나

                               질이 높은 열량의 석탄을 해마다 30만톤 이상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비록 비좁고 불편한 자리지만 잠시나마 고단함을 잊는

오롯한 그들만의 시간이었을 갱내에서의 식사시간.

괜히 마음이 짠해져 온다.


여담으로 광부와 쥐는 아주 친한 사이라고 한다.

쥐가 살고 있다는 것은 갱내에 유해한 가스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쥐는 출수(出水)사고나 붕괴사고를 미리 예감하기 때문에

갱내에서 쥐를 함부로 잡지않고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기도 했다고 한다.







갱도를 빠져나오면 1960~70년대 은성광업소 사택촌을 배경으로

일반 가정은 물론 이발관, 목욕탕, 주포(酒舖), 구판장, 식육점 등

당시 광부의 생활상을 재현한 탄광사택촌이 나온다.

물론 녹음된 소리를 통해 이들의 대화도 엿들어 볼 수 있다.







참고/ 문경석탄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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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은오픈세트장은 제1, 제2, 제3촬영장 등 세 개의 촬영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3촬영장부터 역순으로 돌아보기로 한다.

                               그 입구이자 출구이기도 한 성곽의 모습으로 안내 팸플릿에는

                               요동성이라 표기된 곳이다.







제3촬영장은 요동성과 성내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성 위에 올라보니 초가집과 관아, 그리고 약초와 술을 파는 시장이 있는

성내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조그마한 미니마을이라 할 수 있겠다.


가은오픈세트장은 부지면적 43,999㎡에 건축면적 3,189㎡의 규모로  

실제 현존하는 고구려성의 답사와 수개월간의 자료조사를 거쳐

충분한 고증을 바탕으로 고건축 복원공법을 통해 재현한 세트장으로

2006년 6월에 완공되었다.







SBS의 '연개소문'을 시작으로 '세종대왕', '왕녀 자명고', '천추태후', '선덕여왕',

'계백', '근초고왕', '광개토대왕', '뿌리깊은 나무', '대왕의 꿈', 영화 '군도',

'정도전' 등이 이곳 가은오픈세트장에서 촬영되었다.







인접한 제2촬영장.

제2촬영장은 안시성과 성내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로 구성된 성내마을.







제2촬영장의 안시성을 나와 제1촬영장으로 향한다.

맞은 편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은 제3촬영장의 시설물들이다.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산길을 굽이돌아 오르니 제1촬영장의 평양성이 맞아준다.

제1촬영장은 평양성, 고구려궁, 고구려마을, 신라마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2, 제3촬영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주막과 대장간 등이 있는 고구려 마을.







고을의 양반들이 살았음직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신라궁, 그런데 효율적이게도 다른 한 쪽은 고구려궁으로

한 건물에 두 개의 궁궐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고구려궁 뒤쪽으로는 김유신, 김춘추, 연태조의 집을 비롯하여 민가,

대장간 등이 세워져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오픈 세트장은 총 35여 곳이라 한다. 

대부분의 세트장이 수익을 창출하는 곳은 전무한 실정에서

이곳 문경의 문경새재오픈세트장과 가은오픈세트장은 유료관객

66만명 이상으로 상대적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 케이스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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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 금오산 기슭에 위치해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

그 초입의 모습이다.







생가로 통하는 골목길.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살다가 간 박정희 대통령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민족중흥관을 지나쳐 곧바로 생가부터 찾아보기로 한다.







생가내에는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1979년에 설치한 추모관이 들어서 있다.

왼쪽부터 추모관, 사랑채, 안채.







사랑채.

초가집이자 토담집으로 58㎡의 규모이다.


대한민국 제5대~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1917~1979)가 태어나서

1937년 대구사범학교 졸업하고 문경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할 때까지 공부하던 집이다.

박대통령 부모님이 1916년 약목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신축한 건물로

1960년 말경 지금의 모습으로 보수하였다.







박정희대통령의 공부방.

당시에 사용했던 책상과 책꽂이가 남아있다.

박대통령은 1917년 11월 14일 이 방에서 태어났다.







관리사이자 안채.

건물 왼쪽 방은 박대통령이 오셨을 때 방문객 접견실로 사용되었고,

오른쪽 방은 현재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건립당시 안채는 초가였으나 1964년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되었다.

평면이 ㄱ자형이며 시멘트 벽돌로 지은 기와집이다.

114㎡의 면적으로 1960년대 개축시의 시대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당시 박대통령 수행원 대기소.







집 한쪽에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사용하셨던 펌프가 설치된 우물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체험용으로 설치된 것이다.







추모관 정면에는 내외분의 영정이 설치되어 있고,

벽면에는 생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있다.







민족중흥관.

부지 2328㎡, 연면적 1207㎡에 지하 1층, 지상 1층의 규모로 지어졌으며

전시실 3곳과 돔영상실, 기념품판매소 등을 갖추고 2013년 1월에 문을 열었다.







당시 청와대 집무실에서 사용했던 스탠드, 명패, 의자, 전화기 등의 집기류.

왼쪽 벽에 걸린 것은 신의식 전 국회의원이 집무실에 증정한 

대한민국 헌법차트(대통령 기록관 소장)이다.


특히 '제삼민주공화국 대통령 박정희'라고 씌여진 자그마한 명패가 인상적인데,

뒷면에는 '새일꾼이 되었으니 황소같이 일하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박정희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새마을운동.

당시에는 이 깃발아래 전국민이 하나가 되어 똘똘 뭉쳤었다.

1973년에 제작, 보급한 새마을기를 포함하여 새마을 노래가 담긴 LP레코드판,

우표발행대장, 교육수료증, 새마을 훈장 등 당시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외의 업적으로는 국민의무교육 시행, 치산녹화 달성, 국민교육헌장 제정 및 선포,

포항종합제철소 준공, 7.4남북공동성명 발표, 한일국교 정상화, 국민복지연금법 제정,

경부고속도로 개통, 수출 100억불 달성, 제1~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추진, 

의료보험제도 시행, 향토예비군 및 민방위대 창설, 쌀 자급자족 달성, KIST설립,

공업단지 조성 및 중화학공업 육성, 자연보호운동, 자주국방의 실현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민족중흥관 내의 돔스크린.

                               이곳의 스크린은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보기드문 특수시스템으로 

                               수직 220도, 수평 360도로 바닥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영상이 상영되는 하이퍼돔으로 되어있다.







                                      민족중흥관 입구에는 박대통령 내외분의 다정한 한때를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님이 고이 잠든 곳에 


                                      1975년 8월 14일 박정희



                                      님이 고이 잠든 곳에

                                      방초만 우거졌네

                                      백일홍이 빵긋 웃고

                                      매미소리 우지진데

                                      그대는 내가 온 줄 아는지

                                      모르는지 무궁화도 백일홍도

                                      제철이면 찾아오고

                                      무심한 매미들도

                                      여름이면 또 오는데

                                      인생은 어찌하여

                                      한 번 가면 못 오는고

                                      님이 잠든 무덤에는

                                      방초만 우거지고

                                      무궁화 백일홍도

                                      제철 찾아 또 왔는데

                                      님은 어찌 한번 가면

                                      다시 올 줄 모르는고

                                      해와 달이 뜨고 지니

                                      세월은 흘러 가고

                                      강물이 흘러 가니

                                      인생도 오고 가네

                                      모든 것이 다 가는데

                                      사랑만은 두고 가네




                                      1974년 8월 15일, 박대통령 저격미수사건으로 사랑하는 부인을

                                      떠나보낸 후 그가 직접 지었다는 시이다.

                                      결국 그도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 인간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올해는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4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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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청룡과 황룡이 살았던 곳이라 해서 쌍용계곡이라고 했다던가...

그 중에서도 사우정(四友亭)이라는 정자가 떡 버티고 서 있는 곳에서

잠시 더위를 피했다.


사우정은 정자의 네 기둥에 적혀있는대로 고산(高山), 유수(流水), 

명월(明月), 청풍(淸風) 이 네가지를 벗하며 살아가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마침 때가 때인지라 이곳도 여지없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바로 옆, 계곡을 끼고 휘돌아 가는 산의 녹음은

물만큼이나 시원하게 다가온다.







                               바위에 뿌리를 박고있는 소나무 또한 

                               그 자체로도 완벽하게 조화롭고...







물이 있는 이상, 이곳에는 더위가 발붙일 틈이 없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이곳 계곡은 평정을 되찾았다.

수 많은 사람들로 시달림을 받았을, 그러나 지금 그들은 떠나가고 없다.

오롯히 휴식만 있을 뿐, 한적하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저 앞, 산의 품속으로 뛰어든 건물 또한

말 그대로 운치있는 풍경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몇 년전 잠시 머물기도 했던 STX리조트가 바로 저기였던 것이다.



관련 / 2010/03/01 - [Travel] - 문경 STX 리조트







바로 이곳에서 건져올린 다슬기...

경상도에서는 고디,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워지고 있는 바로 그 놈이다.




...............................................................................................................................................................................





되돌아 오는 길, 문경시 창동쪽 영강을 따라가다

잠시 강물에 발을 담궈보기도 했다.

쌍용계곡 역시 영강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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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金井山)은 부산과 양산에 걸쳐 있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이다.

주봉은 고당봉으로 북으로는 장군봉, 남쪽으로는 상계봉을 거쳐

백양산까지 산세가 이어져 있다.

산세는 그리 크지는 않으나 곳곳에 울창한 숲과 골마다 맑은 물이 항상 샘솟고

화강암의 기암절벽이 있어 부산이 자랑하는 명산이 되었다.







범어사와 금강암을 지나 아기자기한 산길을 얼마간 오르니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인 금정산성의 북문(사적 제215호)이 나타난다.









                               북문에서 올려본 고당봉.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문에 설치되었으며

                               1701년~1703년(숙종 29년)에 건설이 완료되었다.

                               벽 공사는 1707년에 끝났으며, 길이 17.3km, 높이 1.5~3m,

                               성 내부의 넓이는 8.2㎢의 규모이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성곽이 유실되었으나 1972년부터 복원작업에 들어가

                               동문, 남문, 서문이 1974년 완공되었다.







정상을 향하는 도중 잠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다 보았다.

옅은 안개가 능선을 잡아삼키고 있는 모습이다.







위쪽을 바라보니 정상은 바로 코앞이고...







고당봉 정상 바로 아래에는 기도처인 고모령 신당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샤머니즘 민속신앙으로 하늘에서 고모할머니가 내려와

산신이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평생을 불심으로 살다간 밀양박씨 화주보살의 이야기가 서려있다고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밀양사람인 박씨가 불가에 귀의, 임진왜란으로 잿더미가 된  

범어사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절의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신명을 바쳤다.

어느덧 나이가 많아 이 보살은 큰스님에게 자신이 죽으면 화장을 하여

고당봉에 고모영신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주면 수호신이 되어 범어사를 돕겠다는

유언을 하고 숨을 거둔다.

큰 스님은 유언대로 행하고 해마다 단오날에 산신제를 지냈더니

범어사가 번창하게 되었다는...







                               금정산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고당봉(姑堂峰)위에 섰다.

                               바로 아래 길게 세워진 바위가 정상석이다.


                               고당봉은 높이가 801. 5m로 부산광역시와 양산시의 경계면에 위치해 있으며,

                               낙동강 지류와 동래구를 흐르는 수영강의 분수계를 이루는 화강암의 봉우리이다.

                               이곳에서는 김해국제공항과 광안대교, 그리고 맑은 날에는 김해시와 창원시 일부 및

                               대마도까지 보인다는데 지금은 시계가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거쳐왔던 북문이 저 아래 뿌옇게 흐려 보인다.


고당봉에 흰구름이 걸려 있으면 마치 천상의 세상을 연상케 한다는

뜻에서 금정8경 중 고당귀운(姑堂歸雲)에 해당된다.







                               발 아래로는 마치 넓은 평원에 선 듯 숲이 무성하다.

                               이어지는 능선은 자욱한 안개에 몸을 감추고 있어 신비감마저 들게하고... 







주위를 조망하며 잠시 상념에 잠겨본다.







희뿌연 안개에 더 이상 먼곳까지 조망해 볼 수 없음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운치가 있어 위로를 삼아본다.







                               온 길 반대편으로도 길은 이어지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결국 왔던 길로 되돌아 선다.







                               내려가는 길에는 금정산과 범어사라는 이름의 연원이 된 금샘을 찾아보았다.

                               금정산 고당봉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솟아있는 바위 위 평탄한 면의

                               웅덩이에 물이 고여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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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내에는 청룡암, 내원암, 계명암, 대성암, 금강암, 안양암, 미륵암,

원효암, 만성암, 지장암 등 10개의 부속암자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인 금강암의 입구이다.

부산 범어사 입구에서 고당봉 방향 약 10분여 거리, 본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에서 범어천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암을 지나 금정산성 북문으로

가는 길까지 지천으로 널려있는 바위를 만날 수 있다.

이 암괴류는 폭이 70m정도로 산사면 방향으로 길이 2,500m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짧은 돌계단 위 일주문부터가 범상치 않다. 

                               현판과 주련이 모두 한글로 되어있다니...







일주문을 들어서니 절의 구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 크지않은 규모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주 깔끔하게 잘 정리된 느낌이다.

대자비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선혜당과 자혜당이 있고 그 뒷편에

나한전과 삼성각, 약사전, 범종각이 위치해 있다.







중앙에는 주불전인 대자비전이 자리하고 있다.

법당에는 아미타불이 본존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불로 모셔졌다.

지붕의 용마루도 특이하다.


금강암은 1803년 취규 선사가 창건하였으며 1863년 응허화상이 중건하였고,

1899년 영남 최초의 선원을 개설, 영남선원의 효시가 되었다.







자혜당, 맞은 편에는 같은 규모의 선혜당이 마주보고 있다. 







                               대자비전 오른쪽 뒷편에 위치한 삼성각.







                               나한전약사전.

                               약사전은 나한전 바로 아래 동굴 속 법당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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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461호 인 조계문(曹溪門)의 모습이다.


                               가람 진입로에 순차적으로 세운 삼문 중의 첫째 문으로 산문(山門)이라고도 하며,

                               기둥이 일렬로 나란히 서서 지붕을 받치므로 일주문이라고도 한다.

                               조계문은 기둥 2개만으로도 지지가 되는 여느 사찰의 일주문들과 달리

                               자연 암반 위에 돌기둥 4개를 세워서 3칸을 형성했다.

                               한국 사찰에서는 그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자연과 조화된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광해군 6년(1614) 묘전(妙全)화상이 창건한 후 숙종 20년(1694)에 수리했으며,

                               숙종 44년(1718)에 돌기둥으로 교체해서 지금에 이른다.

                               대웅전을 지은 조헌(祖軒)스님이 도대목(都大木)을 맡았던 까닭에 두 건물의 법식이

                               거의 동일하며, 조선 중기의 다포식 건축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범어사 입구 어산교(魚山橋)에서 조계문에 이르는 길은 울창한 노송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고 해서 금정8경 중 제1경 어산노송(語山老松)이라 한다.







2010년 방화로 완전 소실, 15개월만에 복원된 바 있는 천왕문.

1964년 재건될 당시의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전통방식을 따라 복원되었다.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 3대 사찰로 꼽히는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18년(678)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중의 하나로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에 최전성기를 누렸으며,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탔으며 1602년 복원되었으나 또 화재가 발생하였다.

대웅전과 일주문은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광해군 5년(1613)에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건한 이후로 크고 작은 중건과

보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범어사 및 범어사 말사의 불교문화재를 보관, 전시하고 연구하는 성보박물관.

2003년 3월 개관한 이 박물관에는 국가지정문화재 5점을 포함한 54점의

지정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설법전(說法殿).


범어사라는 이름은 '하늘의 물고기'라는 의미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 있는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속에 금빛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금샘'이라고 하였고, 그 물고기와 우물, 그리고 산 이름을 따서 범어사(梵魚寺)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범어사 은행나무.

                               수고 25m, 나무둘레 6.6m의 크기이다.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후 노승 묘전스님께서 옮겨 심은 것으로 

                               수령이 약 580년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나무의 은행이 열리지 않아 3백년 전에 절에서 맞은 편에 은행 수나무 한 그루를

                               심어주었는데, 그 후부터 한 해 약 30여 가마의 은행을 따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990년에는 땅벌을 쫓기위해 연기를 피운다는 것이 그만 나무에 불이 붙어 아직까지도 

                               불에 탄 자국이 역력하다.

                               이 나무는 범어사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며 소원성취를 비는

                               수호목으로서 범어사의 역사를 알고 있는 장수목이기도 하다.







                               대웅전으로 통하는 짧지만 운치있는 길.







대웅전 앞마당.

중앙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지장전과 팔상 독성 나한전,

우측으로는 관음전이 배치되어 있다.







미륵전과 종루.

스님들이 향하는 곳은 금어선원(金魚禪院)이다.







                               범어사 삼층석탑 (보물 제250호).


                               신라 말기의 화강석제 석탑으로, 높이는 4m이다.

                               2중 기단 면석(面石) 상하에 탱주를 대신하여 안상(眼象)을 새겨넣은 점이 특이하다.

                               제1탑신은 특히 커서 2층 이상의 감축률이 눈에 띈다.

                               '범어사사적기'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이 세웠다고 한다.







                               대웅전 (보물 제434호)


                               조선중기의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집 계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있어 측면에는 공포를 배치하지 않았다.

                               대신 측면에는 높은 기둥 2개를 세워 중종량(中宗樑)을 받치게 하였으며, 

                               그 위에 또 종량(宗樑)이 있는데 박공 머리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모든 이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해 주시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관음전.

관음전은 원통전(圓通殿) 또는 보타전(普陀殿)이라고도 한다.







지장전.

고종 28(1891)에 양화대사가 중수, 1988년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원래의 자리는 팔상전 앞, 지금의 서지전 자리였으나 1990년 대웅전 옆에 있던 탑을 

일주문 옆 탑전으로 옮기고 지금의 자리에 지장전을 신축하였다.

안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리고 시왕상을 봉안하였고

문 입구에는 금강역사가 있다.







팔상 독성 나한전(부산직할시 유형문화재 제63호).


이 건물은 팔상전(八相殿), 독성전(獨聖殿), 나한전(羅漢殿) 세 불전을 연이어

하나의 건물 속에 꾸민 특이한 불전이다.

팔상전은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를 봉안하고 있으며,

독성전은 홀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나반존자 즉, 독성을 모셨으며,
나한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우에 16나한을 모셨다.

원래 팔상전과 나한전은 광해군 6년(1614) 묘전화상이 별도 건물로 지었으나,

광무 10년(1906) 학암(鶴庵)대사가 두 불전 사이에 독성전을 꾸며서 세 불전이

한 건물에 포함되게 했다.

특히 말세(末世)의 미륵신앙과 관련있는 독성전의 반원형 문얼굴과 선남선녀의

초각, 화려한 솟을빗꽃살문에서 이 지역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을 엿볼 수 있다.

1906년 중건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1706년 이래의 건축형식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독성전(獨聖殿).

                               문틀을 하나의 통재를 사용해서 반원형으로 구부려 만든 모습이 독특하다.

                               창방 사이의 삼각형 벽체부분에는 통판(通板)으로 넝쿨 형상을 초각하였으며,

                               창호도 팔상전과 나한전이 교살창인데 비해 독성전은 화문살로 아름답게 꾸미는 등

                               장식수법이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







                               [1] 대웅전, [2] 보제루, [3] 관음전, [4] 지장전, [5] 팔상 독성 나한전

                               [6] 휴휴정사 (템플스테이), [7] 비로전, [8] 미륵전, [9] 종루, [10]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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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속의 사진 나부랭이 /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저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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