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례문(復禮門),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위치한 병산서원의 정문이다.
서원의 정문은 삼문(三門)이 일반적인데, 병산서원의 솟을삼문은
가운데 칸만 판문(板門)이고, 좌우로는 담장과 구분되는 벽채를 한 칸씩 두고 있다.
'복례'라는 이름은 논어 '克己復禮爲仁'에서 유래한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을 함축한 경구(警句)로서,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라는 유학의 자기절제의 정신을 표현해 놓은 것이다.
원래 서원 측면에 있었던 것을 1921년 이 곳으로 이전시켰다.
입교당(立敎堂).
서원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강당으로,
원래의 명칭은 숭교당(崇敎堂)이었고 명륜당이라고도 불렀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이며,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병산서원은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선조 5년(1572)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을 이 곳으로 옮겨 온 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이다.
풍악서당은 원래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이었다.
류성룡은 선조 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한 뒤
1614년에 선생을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 곳에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세웠다.
이로써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 서원이 되었으며,
철종 14년(1863)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존속된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 하나이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과 만대루를 지나면 강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동재 뒤편으로 서 있는 것은 서원 관리인이 살았던 고직사(庫直舍)이고,
입교당의 서쪽 뒤편에 서 있는 것은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다.
입교당의 동쪽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과 사당인 존덕사(尊德祠)가 있고,
내삼문 동쪽에는 전사청(典祀廳)이 있다. 열려 있는 복례문 앞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거나,
서원 안에서 만대루를 통해 바깥을 내다보면 어디 하나 막힘이 없이 탁 트여 있어
건물과 건물 밖의 자연이 하나인 듯 느껴진다.
병산서원은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 점에서 한국 서원건축의 백미로 이름 나 있다.
뒷마당에서 바라 본 입교당의 마루와 만대루, 그리고 입구인 복례문.
신문(神門). 서원의 내삼문에 해당하며 향사(享祀) 때에 제관(祭官)들이 출입하였다.
정면 3칸의 솟을삼문으로 사당의 출입문답게 붉은 색칠을 하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고 있다.
이곳을 들어서면 서애 류성룡과 그의 셋째 아들인 수암(修巖) 류진(柳袗, 1582~1635)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尊德祠)가 있다.
류진이 이 곳에 추가로 배향된 것은 현종 3년(1662)이다.
사당은 신성한 공간이며 위엄을 갖추어야 하기에 내삼문의 좌우로는 담장을 둘렀다.
경사진 지형에 서원을 짓고 가장 높은 곳에 사당을 배치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또한 강학공간은 선비 정신에 따라 검소하고 단아하게 꾸민데 비해,
제향공간은 단청도 하고 태극문양으로 장식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제향공간으로 존덕사(尊德祠), 신문(神門), 전사청(典祀廳)이 있고,
강학공간으로 입교당(立敎堂),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으며,
부속건물로 장판각(藏板閣), 만대루(晩對樓), 복례문(復禮門), 주사(廚舍) 등이 있다.
만대루(晩對樓)는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이다.
200여명을 수용하고도 남음직한 장대한 이 누각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굽이도는 강물의 형상을 닮은 대들보의 모습은 건축물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조상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만대루의 2층 누각에서 여유로움을 맛보다.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百濟城樓)' 중 '푸른 절벽은
저녁무렵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그 이름처럼 해질 무렵에 2층 누각에 올라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는
이곳의 경치 중 으뜸이다.
서원 앞쪽으로 펼쳐진 넓은 백사장과 우뚝 솟은 병산(屛山).
그리고 그 밑을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은 무척이나 시원스럽게 보인다.
달팽이 뒷간.
서원 밖 주소(廚所, 부엌) 앞에 있는 화장실로, 진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끝 부분에 가리도록 둥글게 감아 세워 놓았는데, 그 모양새에서 이름을 따왔다.
출입문을 달아 놓지 않아도 안의 사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한 구조로,
지붕이 따로 없는 이 곳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뒷간의 안쪽 모습이다.
400여년 전 서원건물과 함께 지어졌으며, 옛 기록에는 대나무로 벽을 둘렀다고도 전해진다.
병산서원의 부속건물에 포함되어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보수작업이 이루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