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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위치한 청도읍성.

청도읍성의 북문인 공북루(拱北樓)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2017년 8월에 복원, 준공된 서문의 무회루 (撫懷樓).

무회루는 백성을 편안히 어루만진다는 뜻을 가졌다.







 조선시대의 장터?







무회루는 북문과 흡사하게 옹성을 만들고 문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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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m 정도되는 동쪽 성벽은 복원중이다.







동문지인 봉일루(捧日樓) 자리.







옛 성벽의 흔적들...







청도군은 지난 2005년 청도읍성 복원사업에 나서 1~3단계 별로 정비사업 중으로,

현재 남은 구간은 남문 성벽 550m와 서문 잔여구간 240m 정도이다.




▶ 관련 / 2017/06/05 - [Travel] - 청도읍성 (淸道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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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로에 위치한 달성공원의 입구.


이곳은 대구시민의 휴식처로 삼한시대에는 달불성(達弗城)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선조 29년(1596) / 경상감영 설치. 

광무 5년(1905) / 공원 조성.

1963년 / 사적 제62호로 지정.

1965년 2월 / 달성공원 종합조성계획 확정. 

1969년 / 달성공원 개원. 

1970년 / 동물원 개원.

2000년 4월부터 무료개방.







정문을 들어서면 몇 개의 길로 갈라진다.


달성공원에는 129,700㎡(39,234평) 규모의 토성을 비롯하여 동물사, 잔디광장,

향토역사관 등이 자리해 있다.







                               최제우 동상.

                               1964년 순교 100주년 기념 동상건립위원회에서 세웠다.

                               최제우는 동학을 창시하였으며 사도로 백성을 선동하고 민심을

                               어지럽힌다고 하여 체포, 1864년 대구에서 순교하였다.







관풍루(觀風樓).


목조와가 2층(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방문화재 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선조 30년(1597)에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으나 선조 34년(1601) 현 경상감영공원이 건립되면서

경상감영 정문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1906년 대구읍성 철거시 이곳 달성공원으로 이전되었다.







물개사.


이곳에는 호랑이 등 포유류 25종, 타조 등 조류 53종이 생활하고 있다. 







호랑이사.







어린이 헌장비.

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헌장비가 이곳에 있었으나 허물어져 

1970년에 다시 대구시에서 세웠다.







바로 보이는 정문 오른편 건물은 1997년에 개관된 향토역사관이다.

1,2층은 문화관으로 이 지방의 향토역사와 문화유산을 전시해 두었다.







                               이상화 시비.

                               1948년 김소운, 이윤수, 구상 등 시인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로 기록된다.


                               이 외에도 왕산허위 선생 순국기념비, 이상룡 선생 구국기념비, 달성서씨 유허비,

                               서병오 선생 예술비, 서동균 선생 예술비 등이 자리해 있다.







사자사.







달성은 경주의 월성(月城)처럼 평지에 있는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축성한 것이

특징으로, 청동기시대 이래로 이 지방의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던 집단들이

그들의 생활근거지에 쌓은 성곽으로 추측된다.

성벽의 아래층에는 조개무지 유적이 있고 목책(木柵)의 흔적도 있다.

따라서 달성은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난 형식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점해왕 15년(261)에 달불성(達弗城)을 쌓고 나마극종(奈麻克宗)을 

성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 합병된 뒤에는 군사요지로 중시되었으며, 그 후 고려 공양왕 2년(1390) 토성에 석축을 더했다.

조선조 선조 29년(1596)에는 석축을 더하고 경상감영을 이곳에 둔 일이 있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축조되었고, 주위 길이는 약 1,300m, 폭 66m, 높이는 4~10m 정도이다.







2010년부터 대구시가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을 추진해 왔지만, 

이전 후보지인 대구 수성구와 달성군이 동물원 유치를 두고 갈등을 빚어

현재는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 / 달성공원관리사무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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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북부해수욕장이 영일대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새출발을 했다.

기존의 북부해수욕장은 1976년 개장 당시 시청의 북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단순히 붙여진 명칭으로 공식지명이 아님에도 널리 사용되어 공식지명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고 한다.

이미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지난 6월 18일 북부해수욕장을

'영일대해수욕장'으로 결정 고시함에 따라 6월 29일 선포식 행사를 가진 바 있다.







POSCO... 바다위에 떠 있는 섬 같은, 그들만의 왕국. 







                               지난 6월 29일 개방된 국내 최초의 해상누각, 영일대(迎日臺).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의 새로운 상징으로 백사장에서 바다로 80m 길이의 

                               인도교가 설치되고 그 안쪽에 세워졌다.  







영일대는 말 그대로 (동해의)해를 맞이한다는 뜻을 지녔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육지와 떨어져 있어서인지 바람만큼은 시원했다.







영일대에서 바라본 영일대해수욕장.







해수욕장에서 영일대 방향으로...

그 뒤 언덕 너머로 환호공원의 전망대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지난 6월, 해수욕장을 일찌감치 개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경북 동해안에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냉수대가 발생했다는 소식 때문인지

그저 한산하기만 했다.







따가운 햇빛을 피해 그나마 다소 시원한 그늘을 찾아 

휴식을 즐기는 몇몇 사람들 뿐...







고운 모래사장에는 사람 발자국 못지않게 새들의 발자국도

제법 많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 봤던 조형물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고요한 바다에는 한줄기 시원한 물줄기가 오색 무지개 꿈을 쏘아 올리며 

                               무더위를 식혀주고 있었다.







몇 안되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는 않다.







늦은 오후가 되니 먼 바다로부터 슬금슬금 해무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덩달아 온도도 급속히 내려가는 느낌이다.







해가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은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포항의 명소로 거듭나기 시작한 영일대해수욕장에서는 다양한 행사도 예정되어 있다.

제13회 포항바다국제공연예술제가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이곳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일원에서 펼쳐지며,

제10회 포항국제불빛축제도 7월 26일부터 8월 4일까지 형산강 체육공원과 

이곳 영일대해수욕장 일대에서 개최된다.

또한 경북도는 7월 15일부터 8월 31일까지 이곳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해양레저스포츠

청소년체험교실을 초 · 중 ·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운영한다고 한다.






관련 / 2013/05/07 - [Travel] - 포항 북부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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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黃梅山)은 경상남도 합천군과 산청군의 경계에 있는 

높이 1,108m의 산으로 1983년 11월 18일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난 2012년 CNN이 선정한 '한국 방문시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선'에도 이름이 올라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먼저 정상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황매산은 산 정상부근에 주차시설과 오토캠핑장이 있어 

노약자라도 쉽게 접근을 할 수 있다.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능선에 오르니 황매산성이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는 누각이 나타나고 

그 주위로 철쭉이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정상쪽 능선이 굽이치듯 

날렵하게 솟아올라 있고... 







정상을 연결하는 데크 계단길은 초목 사이로 비집듯 들어앉아 있었다.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정상.

벌써부터 사람들이 빼곡하게 올라서 있다.

주능선은 대체로 큰 나무가 없어 조망이 막히지 않은 상태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그 반면에 따가운 햇볕은 피할 수가 없다.







황매산 정상석.

전망대에서 좀 더 뒤쪽으로 올라야만 만날 수 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황매평전.







다시 왔던 길로 발길을 되돌린다.


마주보이는 베틀봉에서 왼쪽 모산재 방향으로 능선이 굽이치고 있다.

발 아래 능선을 가로지르는 길을 중심으로 왼쪽은 합천지역으로 주차장과

연결이 되어 있으며, 오른쪽 길은 산청지역으로 영화주제공원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곳은 영화 '단적비연수'와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드라마 '주몽'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베틀봉으로 향하는 길...







베틀봉쪽 가장 화려한 모습을 자랑한다는 군락지에는 

아직 꽃은 크게 보이지 않고 녹음만 짙어져 있다.

아니 벌써 지고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해발 800m지점에는 전국 최대규모의 철쭉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철쭉은 약 50만㎡의 산상평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 때 이곳은 목장이었다고 한다.

소떼들이 다른 풀은 다 뜯어먹고 독성이 있는 철쭉만 먹지 않아 

지금의 군락이 형성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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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石門).
바위와 절벽 사이로 자연적인 출입구가 형성되어 있어
석문이라 붙여졌다.
이곳을 통과하면 이 골짜기의 또 다른 세계, 곧 선경(仙境)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석문이라는 글씨가 바위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또 다른 바위에 남아있는 글씨, 이로 미루어보아 옛날 이곳에는
산수정(山水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사실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최근 그 곁에는
                               조그마한 정자가 하나 들어섰다. 
                               그러나 원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산수정은 1893년 각남면 진사인 소강(小岡) 최익주(崔翼周, 1851~?)가
                               창건한 정자로, 고을의 인사들이 산수계(山水契)를 만들어
                               사계절 이곳에서 시를 짓고 읊었다고 한다.
                               이곳을 시정(詩亭)골이라 부르는 것은 여기서 유래한다.

                               1962년, 남산계곡에 있던 퇴락한 산수정의 목재와 기와를 
                               화강지 언덕으로 옮겨와 화악루(華岳樓)를 지었다.   







                               유하담(流霞潭).
                               '유하(流霞)'는 '신선이 마시는 좋은 술'이라는 의미도 있고,
                               글자 그대로 '흐르는 노을'을 뜻하기도 한다.
                               이곳의 경치에 취해 술을 마시면 그 술이 바로 유하주일 것이요,
                               햇살에 금빛 노을처럼 일렁이는 물결을 품었으니 그 또한 유하담인 것이다.






                               계곡과 정자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아마도 녹음이 짙어지면 또 다른 풍경이 되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누각.
                               조그맣게 조성된 광장에는 이제껏 거쳐왔거나 앞으로 마주치게 될
                               명소들을 알리는 표지석이 놓여있다.






                               남산계곡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소(沼).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의 지형은 대체로 완만하다. 
                               따라서 웅장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아기자기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기러기가 내려앉은 형상의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낙안봉(落雁峯).
                               낙안봉 일대는 큰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기러기 형상의 바위에 글을 새겨 놓았다.
                               이는 중국 화산의 남쪽 봉우리가 낙안봉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금사계(金沙界).
                               '더 이상 세속(世俗)의 유람객은 올라오지 말라'는 뜻을 품고 있다. 
                               금사계는 불교 용어로 '금모래가 펼쳐진 세계'를 의미하며
                               관세음보살의 주거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 계곡 위쪽에는 신둔사가 위치해 있다.

                               금사계 맞은편 높은 바위에는 주자가 지은 '무이구곡가' 중
                               제8곡의 마지막 시구에서 빌려온 '막언차지무가경
                               자시유인불상래(莫言此地無佳景 自是遊人不上來,
                               이곳에 아름다운 경치가 없어 유람객이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 마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취한 것으로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져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 금사계를 끝으로 위쪽으로는 신둔사로 향하는
                               포장도로와 연결된다.






                               이 외에도 연주단(聯珠湍), 일감당(一鑑塘), 옥정암(玉井巖),
                               용항 등의 볼거리와 글씨가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외형상 이곳 남산계곡은 다른 여느 계곡과
                               크게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지난날 우리 옛 조상들의 풍류와 정취를
                               발견하고 그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다소 의외였다.

                               이 밖에도 이곳 인근에서는 보조국사가 손수 심었다는 수령
                               800여 년의 은행나무가 있는 적천사를 비롯, 죽림사 등
                               신라 고찰과도 만날 수 있다.
                               특히 남산계곡 초입에 있는 석빙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청도읍성, 향교, 도주관 등
                               선조의 얼이 담긴 문화유적들을 함께 탐방할 수 있다.



                               ▶ 관련 / 2011/07/12 - [Travel] - 청도 - 청도읍성, 선정비군, 석빙고, 도주관, 척화비
                                              2011/10/26 - [Travel] - 청도 남산 (南山), 그리고 신둔사(薪芚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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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의 입구, 문묘문(文廟門).

공자(孔子)와 베트남의 대 유학자를 모신 유교 사원인 문묘(Van Mieu-Quoc Tu Giam). 
1070년 리탄통(Ly Thanh Tong)황제가 공자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11세기 리 왕조(李朝)가 하노이에 독립왕조를 세우기 전에는 1000년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었는데 당시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대표적인 곳이 바로 이곳이다.
리 왕조 동안에는 불교에서 유교로 국교가 전환되면서 문묘는 당시 정신적인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며, 1076년에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 유학자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태양을 상징하는 규문각(奎文閣). 

                               이곳 문묘는 벽을 경계로 모두 5개의 마당으로 나뉘어 있으며 
                               문묘문, 규문각, 연지, 대성전, 공자 사당, 종루 등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 통로와 문은 황제 전용이다.






                               19세기 원조(沅朝)시대에 만들어진 규문각에는 1484년부터
                               300여년간 시행한 과거시험의 합격자 명단이 새겨진 
총 82개의
                               진사제명비(進士題名碑)가 세워져 있다.
                               이는 각각 다른 얼굴을 한 거북이가 떠받치고 있는데, 
                               머리가 높을수록 관직 또한 높다고 한다.
                               거북의 머리가 검게 닳아 있는 것은 이를 쓰다 듬으면 시험에 
                               합격한다는 믿음 때문이며, 십장생인 거북이 등에
                               비석을 세운 것은 '오래도록 빛나라'라는 의미이다. 

                               문묘의 마당은 중국 고전에 대해 3년마다 치르는 과거 시험장소로
                               이용되었고 우수한 인재는 지방 관리를 감찰하는
                               암행어사로 활동했다. 







                               윗쪽에 걸린 만세사표(萬世師表) 편액은 '만세에 귀감이
                               되는 분'이라는 의미로 공자에 대한 존경을 표시한 것이라 한다.
                               이곳은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녀의 학업성취와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공자상(孔子像).
                               공자 사당의 중앙에는 공자가, 양 옆으로는 증자(曾子), 맹자(孟子),
                               안자(顔子), 자사(子思) 등 4성(四聖)의 상(像)이 각각 봉안되어 있다.






문묘라고는 하지만 향을 사르고 기원하는 모습에서  
불교적인 느낌이 강하게 받게 된다.






                               생각보다 넓은 규모임에도 대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다.






대성전 뒤에 위치한 또 다른 건물인 국자감(國子監).
'꾸억뜨쨤(Quoc Tu Giam)'으로 발음되는 이 국자감은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자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우리나라의 성균관과 비슷하다.
이곳은 강당, 도서관, 제기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구성되어 있다.






                               베트남의 대 유학자인 쭈반안(Chu Van An, 주문안, 周文安, 1292~1370)의 상.
                               국자감에는 대학 총장 등 최고의 학덕을 쌓은 분들의 상이 모셔져 있다.






                               문묘 한켠에는 수령이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고목이 버티고 서 있다.
                               아마도 이 나무는 동남아시아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 
                               반얀나무(榕樹, Banyan Tree)가 아닌가 한다.
                               반얀나무는 성장방식이 아주 독특하여 가지가 위로 뻗다가
                               길게 쳐지면서 지면에 닿으면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줄기를
                               형성해 성장하는 방식으로 영역을 넓혀가는데, 결국에는
                               단 한 그루의 나무로 숲의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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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청도읍성(淸道邑城)이 자리하고 있다. 
읍성은 왜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동래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도로변에 축성한
성 중, 지방관아가 소재한 고을의 방어를 목적으로 축성된 성곽을 말한다.
청도읍성의 정확한 축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석축(石築)과 토축을 혼합한 형태였으나, 청도군수 이은휘(李殷輝)가
선조 23년(1590년)부터 2년에 걸쳐 완공하면서 지금과 같은 석성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 북문(공북루) 및 옹성. 



청도읍성은 둘레가 1,570보(약 1.88km), 높이는 5자 5촌(약 1.65m)의 규모로
동문 · 서문 · 북문이 있었다.
임진왜란과 여러 번의 화재로 소실되기도 하였지만 수 차례 개축하여 읍성을
유지하여 왔고, 고종 7년(1870년)에 남문을 건립하여 4문을 갖추게 되었다.




                                                            ▲ '해동지도'에 나타난 청도읍성.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시화와 도로 개설로 문루는 철거되고
                                                          성벽 일부는 훼손되었으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경상북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청도읍성은 성의 기저부가 전역에 남아 있고,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자세한 기록이 있어 발굴조사와 고문헌 고증을 거쳐 북문(공북루)을
                                                          중심으로 성벽과 옹성 등 성곽을 복원해 나가고 있다.








현재 청도읍성은 일부만 복원이 된 상태로, 북쪽의 성벽을 따라
자그마한 연못과 정자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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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의 동쪽 성벽 아래에는 그동안 선정을 베푼 벼슬아치(官吏)들을
표창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청도의 선정비군(善政碑群)이 늘어서 있다.
1675년부터 1904년까지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모두 30기(관찰사 2기,
군수 25기, 찰방 3기)이다.








이 선정비들은 읍성 외곽 서상리, 동천리, 남성현 등 주요 도로변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비석이 있던 주변 도로가 확장되면서
발견된 비석들을 도주관(객사)으로 옮겨 보관해 오다 2008년
청도읍성 동문지 주변으로 이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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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바로 동쪽에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석빙고가 자리하고 있다.
석빙고의 입구 왼쪽에는 석비(石碑)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 · 쓰인 재료 · 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날짜와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그 중에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빙고는 화강석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4.4m,
길이 14.75m, 폭이 5m의 장방형 구조로, 다듬은 돌로 윗부분을
반원형인 홍예(虹霓)로 들어 올리고 잡석으로 벽을 쌓았다.  
현재는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가 4군데
남아 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내부는 계단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경사가 져 있고
                               중앙에는 배수구가 있어 경사를 따라 물이 외부로 배출되도록 하였다.








천정에는 환기구멍이 있었으리라 짐작이 되지만 무너져내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지금까지 전하는 6기(
청도, 경주, 영산, 창녕, 현풍, 안동)의 석빙고 중 청도 석빙고는
경주 석빙고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황해도 해주까지 합하면 총 7개의 석빙고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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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관(道州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석빙고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도주(道州)는 청도의 옛 이름으로 이 건물은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客舍)로 쓰이던 곳이다.
객사는 중앙에 정청(政廳)을 두고 좌우에 동헌, 서헌을 둔 구조로 정청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어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를 하였다.
동 · 서헌은 접객시설로 외국 사신들이나 중앙관리들의 이동시 접대 및 유숙하던 곳이었다.








도주관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으나 노후하여 중종 38년(1543년) 관찰사 임백령이
중창하였고, 주세붕이 쓴 '도주관 중수기문'에 중창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후 정청과 우객사만이 남아 있었으나 2006년 좌객사를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익공(翼工)집이며, 동 · 서헌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정청의 외관은 기둥을 건물 폭에 비하여 높게 세워 좌우 건물보다 높고 험준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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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주관 입구에는 고종 8년(1871년) 병인 · 신미양요를 치른 뒤
                               쇄국의 결의를 다지고 국민들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斥和碑)가 옮겨져 있다. 




                               참고/ 현장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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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012년 4월, 광화문 광장에서 바라본 광화문.








궁궐 안쪽에서 바라다 본 광화문.

사적 제117호로 지정된 경복궁은 1395년에 창건된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명칭은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왔다.
북으로 백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의 중심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소되었다가 고종때인 1867년에 이르러서야 중건되었다.
경복궁 안에는 국보인 근정전, 경회루 외에도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등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궁내에 준성된 전각은 총 390여 칸이었다.








경복궁의 중문이자 구중궁궐로 들어가는 두번째 문인 흥례문(興禮門).
흥례문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세종 때에
처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권피탈 후 경복궁은 철저히 짓밟히기 시작하여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건립하기 위해 이 일대를 전부 헐어버림으로써 궁궐로써의 면모를
완전히 잃게 만들었다.
이후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식민지 정책의 표상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사라지고, 2001년이 되어서야 이 자리에 본래의
전각들을 복원하면서 경복궁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간다.








                               영제교 남쪽에서 바라본 근정문(勤政門).
                               근정문에서는 왕과 문무백관이 조참의식(소조회)을 행하였으며
                               즉위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는데 단종은 근정문에서 즉위를 한 첫 번째 왕이다.








                               입궐하는 신하들의 마음을 씻고 액을 물리치는 역할을 한 금천(禁川),
                               그리고 이를 지키는 천록(天鹿). 
                               천록은 중국의 공상적인 동물의 이름으로, 노루를 닮아 꼬리가 길고
                               외뿔(一角)인 것은 천록, 두뿔(雙角)인 것을 벽사(僻邪)라고 한다.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에는 백악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
                               즉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어구의 중앙에
                               영제교(永濟橋)라는 다리가 놓여있다.
                               어구와 영제교는 근정문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들의 조회시에
                               신하들이 도열할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남쪽 행각의 가운데에 위치한 근정문(勤政門).
그 좌우에는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고, 동쪽 행각에는
융문루(隆文樓)가, 서쪽 행각에는 융무루(隆武樓)가 있다.
정전 영역의 입구에 해당한다.








                               국보 제223호로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고 신하들의 하례와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 쓰이던 근정전의 조정. 
                               조정이란 넓은 마당을 의미하는데 넓은 박석을 깔고 좌우로 품계석을 설치하였다.
                               이 마당에서는 노인들을 격려하는 기로연(耆老宴)이나 과거시험도 치뤄졌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정전의 안쪽에는 바닥에 전돌을 깔고 북쪽 가운데에 임금님의 어좌를 설치하였다.
                               어좌 뒤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해와 달, 그리고 다섯봉우리의 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를 놓았고 천장에는 칠조룡(七爪龍)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왕과 신하들이 정사를 논하던 편전인 사정전(思政殿).








외국사신의 접대나 군신간의 연회장소로 사용하던 국보 제224호인 경회루(慶會樓).
침전인 강녕전 서쪽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현재의 경회루는 고종 4년(1867)에 중건된 것이다.

참고로, 지난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이곳 경회루를 둘러볼 수 있는 
특별관람행사를 
인터넷 예약자에 한해서 실시하고 있다.








                               경회루 연못 주변에는 담장이 둘러쌓여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동서남북의 담장이 철거되었으며
                               2004년~2005년에 각각 북쪽과 동쪽 담장이 복원되었다.








경복궁의 서북쪽에 위치한 태원전(泰元殿) 일대.
태원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던 건물이다.








향원정(香遠亭).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연못을 파고 그 가운데에 
섬을 만들면서 지어놓은 2층 규모의 정자로 1867~1873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취향교(醉香橋)라 하였다.








집옥재(集玉齋).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이 3채의 건물은 당초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188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 전각들도 옮겨온 것이다.
고종은 이 건물들을 어진의 봉안 장소와 서재 겸 외국사신의 접견장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이 3채의 건물은 당시로서는 신식이라고 생각되던 중국풍을 받아들여 경복궁의
다른 전각들과 달리 중국식 양식으로 지어졌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경복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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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실의 여름 별궁이자 최대 규모의 황실 정원이라는
이허위안(園, 이화원, Summer Palace)에 들어섰다.

넓다란 호수와 그 위를 떠 다니는 유람선이 먼저 반겨준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다리는 길이 150m의 스치쿵차오(十七孔橋)로, 
쿤밍호 남동부에 위치한 난후다오(南湖島)를 연결하며,  
중국정원 내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이허위안은 1750년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원래 이름은 칭이위안(淸漪園)이었다.
그 후 1860년에 영불연합군에 의해 소실되었던 것을
1886년에 재건하면서 이허위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자금성의 10배 정도의 크기로써, 특히 청나라의 마지막 황후인
서태후가 이곳에서 별궁으로 피서를 즐겼다고 한다.
총면적 2.9k㎡, 호수의 둘레 8km로,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호수는 쿤밍호(昆明湖)로, 전체면적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인공호수이다.
그리고 우측으로 보이는 산은 약 60m높의 완셔우산(萬壽山)으로
쿤밍호를 조성할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이다.
쿤밍호와 완셔우산을 중심으로 각종 전각과 사원, 회랑 등
3천여 칸의 전통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길이 728m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는 창랑(長廊)이 위치한
저곳으로는 아쉽게도 발걸음을 하지 못했다.








퉁뉴(銅牛).








                               스치쿵차오 초입에 세워진 정자.








                               대지면적 약 1ha정도의 난후다오(南湖島)로 건너왔다.
                               섬 위에는 룽왕먀오, 한쉬탕, 젠위앤탕, 웨보러우 등의 건축물이 있다.








자산(假山)에 있는 한쉬탕(堂), 3층으로 된 섬의 중심 건물이다.
쿤밍호에서 실시하던 해군훈련을 지켜보던 장소로 사용되었고,
청(淸)의 광서(光緖)시기에 단층 건물로 개축되었다.









                               완셔우산 앞 거대 석고대 위에 만들어진 불향각(佛香閣).
                               높이가 41m로, 전 지붕이 3층 4겹의 처마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 위로는 놀잇배가 지나 다니고, 그 주위 나무 사이로는 언뜻언뜻
전각이 들어 서 있는, 마치 여름 피서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는 듯 
아주 평화로운 풍경이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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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의 입구에는 영사각이라는 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이는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외가람각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때를 벗는 목욕을 하게 된다. 
                               전남 순천 송광사의 세월각, 척주각이 이와 같은 용도라 한다.








                               경남 기념물 제17호로,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 자락에 
                               위치한 표충사, 그 절의 정문인 수충루의 모습이다.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드문 서원 정문 형태의 누각인데, 이는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시고 서산대사와 기허대사의 위패를 같이 모신 표충서원이 
                               표충사(表忠寺) 경내에 있기 때문이다.

                               표충사는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명명한 절이다.
                               654년(태종무열왕1)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竹林寺)라 하였으며, 
                               829년(흥덕왕 4) 인도의 승려 황면선사(黃面禪師)가 현재의 자리에 중창하여 
                               영정사(靈井寺)라 이름을 고치고 3층석탑을 세워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전한다.
                               절 이름을 표충사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은 표충사(表忠祠)를 밀양시 
                               무안면에서 옮겨오면서 부터 라고 한다. 








왼쪽으로 부터 표충서원, 표충사(表忠祠), 유물관.
표충서원은 영조 20년(1744년) 왕명으로 조정에서 임진왜란때 구국구민하신
3대 성사를 모시고 매년 춘추로 제향을 올리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종 8년(1871년)에는 대원군에 의해 서원철폐령이 내렸으나 이곳 표충서원은
훼철을 면했다고 한다.
또한 표충사는 임진왜란때 승병장으로 큰 활약을 펼쳤던 사명대사의 충정과
깊은 관련이 있어 이 유물관에는 사명대사와 관련된 16건 79점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사천왕문에서 바라본 수충루.








                               근래에 조성된 사천왕문의 목조사천왕상.
                               표충사의 사당영역과 사원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이 사천왕문은 
                               원래는 대광전 맞은편 우화루 앞쪽에 있었으나, 최근 사당영역을 
                               새롭게 조성하고 절의 진입로를 옮기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표충사 삼층석탑 석등









표충사 대광전(大光殿)과 팔상전(八相殿).









왼쪽부터 관음전과 명부전.









이곳 표충사에는 예전에 TV에 출연했던 경력이 있는,
그래서 이제는 유명인사가 다 되어버린 토끼스님이 살고 있다.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고 예불시간이 되면 스스로 알아서
법당으로 들어가 절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표충사에 터를 잡은지 오래, 그래서 이제는 사찰의 식구가 다 되어버렸다는 그 토끼...
더운 날씨 때문일까. 건물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 잠깐동안 바깥의 동정을 살피더니
이내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참고/ 표충사 홈페이지 및 현장 안내판,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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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끝도없이 하얀 수증기만 내뿜고 있는,
방파제 너머로 건너다 보이는 저곳은 또 다른 세상.








썰매를 타듯 눈 쌓인 언덕위를 내달리면,
이내 저곳으로 다다를 것만 같다.








흰 눈을 뒤집어 쓴 채 높은 하늘을 향한다.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기에 그저 당당할 뿐이다.








서로 몸을 밀착한 채 차가운 파도와 맞서다.








겨울, 시퍼렇게 멍든 바다...
그 주위로는 쌓인 눈으로 인해 백사장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지금 이곳의 주인은 그저 덩그렇게 놓여진 눈사람 하나,
                               모래밭과 넓디 넓은 바다가 모두 다 그의 차지다.








땅은 눈으로 뒤덮였고,
저 멀리 굴뚝에서는 솜사탕마냥 하얀 뭉개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하여 세상은 온통 하얗게 되었다.








지난달 중순,
햇빛 한 줌으로는 언 땅을 녹이기에는 너무나 힘겨워 보이는...
그런 어느 하루였다.
아마, 어제도 이곳에는 이와 같은 풍경이 연출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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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례문(復禮門),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위치한 병산서원의 정문이다. 
                              서원의 정문은 삼문(三門)이 일반적인데, 병산서원의 솟을삼문은 
                              가운데 칸만 판문(板門)이고, 좌우로는 담장과 구분되는 벽채를 한 칸씩 두고 있다.
                              '복례'라는 이름은 논어 '克己復禮爲仁'에서 유래한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을 함축한 경구(警句)로서,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라는 유학의 자기절제의 정신을 표현해 놓은 것이다.
                              원래 서원 측면에 있었던 것을 1921년 이 곳으로 이전시켰다.








입교당(立敎堂).
서원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강당으로,
원래의 명칭은 숭교당(崇敎堂)이었고 명륜당이라고도 불렀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이며,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뒷마당에서 바라 본 입교당의 마루와 만대루, 그리고 입구인 복례문.








신문(神門). 서원의 내삼문에 해당하며 향사(享祀) 때에 제관(祭官)들이 출입하였다.









만대루(晩對樓)는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이다.
200여명을 수용하고도 남음직한 장대한 이 누각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굽이도는 강물의 형상을 닮은 대들보의 모습은 건축물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조상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만대루의 2층 누각에서 여유로움을 맛보다.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百濟城樓)' 중 '푸른 절벽은
저녁무렵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그 이름처럼 해질 무렵에 2층 누각에 올라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는
이곳의 경치 중 으뜸이다.








서원 앞쪽으로 펼쳐진 넓은 백사장과 우뚝 솟은 병산(屛山).
그리고 그 밑을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은 무척이나 시원스럽게 보인다.








달팽이 뒷간.
서원 밖 주소(廚所, 부엌) 앞에 있는 화장실로, 진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끝 부분에 가리도록 둥글게 감아 세워 놓았는데, 그 모양새에서 이름을 따왔다.
출입문을 달아 놓지 않아도 안의 사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한 구조로,
지붕이 따로 없는 이 곳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뒷간의 안쪽 모습이다.
400여년 전 서원건물과 함께 지어졌으며, 옛 기록에는 대나무로 벽을 둘렀다고도 전해진다.
병산서원의 부속건물에 포함되어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보수작업이 이루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참고/ 병산서원 홈페이지 및 현장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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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초, 지나가는 가을의 뒷 꽁무니라도 잡아 볼 양으로 서둘러 나섰던 봉화 청량산.
                              언젠가 꼭 한번은 가 보리라 생각하여 마음속에 담아 놓고만 있던 곳이다.
                              청량사를 찾기 전에 먼저 청량산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축융봉(祝融峰)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산성 입구의 표지판이 정상까지가 2km로 1시간 10분여가 소요됨을 알린다.  
                              언덕길로 처음 한 구비를 돌아들면 바로 최단거리 코스인 산성길이 나오는데,
                              그 성곽을 따라 오르면서 밟게되는 계단이다.








얼마간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밀성대(密城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와서 산성을 쌓고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
명령을 어긴 죄인을 절벽 끝에서 밀어 처형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그 자리에는 세워진지 얼마되지 않아보이는 전망대가 계단이 통제된 채로 서 있다.








                              산성 또는 계단... 오르는 길은 깨끗하게 정비된 상태라 그 어느 쪽이라도 좋다.
                              당시 정상부위에서는 산성의 복원작업이 한창이었다.








해발 845.2m의 축융봉 정상에 다다르자, 구름 많은 날씨인데다가
바람길이 트였는지 갑자기 차가운 바람까지 불어와 몸이 저절로 움츠려든다.
우측에 보이는 망원경으로 반대편을 바라보면,
불쑥블쑥 솟아오른 청량산의 여러 암봉과 하늘다리가 잡힐 듯 다가온다.








청량산은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한국의 3대 기악으로 불리우며, 12개의 암봉을 가지고 있다. 
축융봉도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 중의 하나이기에,
이 곳에서는 맞은편의 나머지 11개의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단풍은 이미 잔해만 남아있는 상태여서 영락없는 초겨울의 풍경 그대로이다.

 








아침의 따뜻한 햇빛을 그대로 받고 있는 응진전,
그리고 아직 채 걷히지 않은 짙은 그림자 속으로 숨죽이듯 몸을 숨기고 있는 청량사가
그 안쪽으로 살며시 들여다 보인다.








각각의 이름을 가진,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여러 봉우리가 서로 몸을 기대고 있는 가운데,
좌측으로는 두 개의 봉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하늘다리가 길게 걸쳐져 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쪽도 마찬가지이다.
                              청량산의 하늘다리는 해발 800m지점의 왼쪽의 선학봉과 오른쪽의 자란봉을 연결하는 
                              길이 90m, 바닥폭 1.2m의 현수교로, 2008년 5월에 완공 되었다. 이는 국내에서 
                              산악지대에 설치된 다리로서는 가장 길고 가장 높아 청량산의 또 다른 명물이 되고 있다.
                              340kg/㎡의 통과 하중에 최대 100여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는 규모로,
                              올해에는 다리난간 중앙부분의 바닥재를 강화유리판으로 교체하여, 
                              계곡아래를 훤히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자 내청량사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른쪽으로는 외청량사인 응진전이 금탑봉의 난간에 아슬하게 걸려있는 형국이다.
암벽이 3개의 층을 이룬 금탑봉은 청량산을 대표하는 봉우리이기도 하지만,
유달리 노란색잎을 가진 생강나무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풍경과 이름에서 공통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바벨탑을 연상케 하는 모습의 금탑봉...
                              그 위에 얹혀진 응진전을 지나 왼쪽 절벽으로 굽이 돌게되면, 
                              청량사의 모습이 한 눈에 조망되는 어풍대를 만나게 된다.



                              참고/ 네이버테마백과사전. 청량산도립공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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