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의
2003년 12월의 모습이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2년(1865)에
대원군에 의해 재건되었다.
지금의 것은 1968년에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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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15 기념식은 세종문화회관,
독립기념관 등에서 열리던 것에서 벗어나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으로
이 곳 광화문과 흥례문사이의 공간에서
열릴 예정이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경복궁은
나라의 기운을 상징해 왔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1948년 8월 15일 경복궁내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이 열린이래
경복궁에서 열리기는 처음이라 한다.
그래서 다시 꺼내 본, 경복궁과
창덕궁의 모습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인 흥례문.
원래 1395년에 건립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때에 소실되어
1867년 흥선대원군이 중건하였고
일제시대때 조선총독부청사 건립을 위해
1916년 철거를 하면서 흥례문을 비롯한
주변행각(行閣)이 모두 파괴되었다.
해방이후 정부종합청사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용도로 쓰이다가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1996년에 철거되어
흥례문 등의 전각이 2001년 10월에
복원되었다.
근정전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자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목조 건축물로
임금의 즉위식이나
대례 따위를 거행하던 곳이다.
... 우리네 옛 건축물을 볼때 마다
드는 느낌은 시원함이다.
잘 구성된 공간과 건물을 따라 흐르는 선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침없다.
진정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곳,
그 곳이 바로 경복궁이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인정전의 모습이다..
창덕궁의 중심건물(正殿)로 조정의 각종의식
(임금에 대한 신하들의 새해인사 혹은
왕세자나 세자빈을 결정하였을 때 등
국가의 커다란 경사가 있을 때
왕이 이 곳으로 나아가 축하를 받았다)과
외국 사신의 접견장소로 사용된 곳이다.
창덕궁 낙선재.
낙선재는 조선 헌종 13년(1847)에
창덕궁 안에 지은 전각으로,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원래 이곳은 상중(喪中)에 있는 왕후들이
소복(素服) 차림으로 기거하던 곳이며,
1963년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이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상중에 왕후들이 기거하던 곳이라 하여
단청(丹靑)도 하지 않았다.
이방자(李方子)여사가 거처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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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14일,
일본은 중학교 교육지침서인 사회과 해설서에
독도가 자기네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을 명기하여
또 다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잊혀질 만 하면 들고 나오는
그네들의 단골 메뉴이기에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지난날에 대한 반성은 커녕
지금도 여전히 총성없는 침략을
계속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종결된 지난 날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고 유효한
침략의 역사인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그들이 보는 시각인 것 같다.
그래서 반성과 사과에 대한 논쟁이
아직까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지난날, 그들에 의해 저질러 온 악행,
특히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문화적인 파괴행위에 대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우리들의 문화재들이다.
이럴때일수록 필요한건 우리것을 지키고
잘 보존하려는 스스로의 주인의식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신적 유산이자 가치이며
한국인의 혼을 이어가는
하나의 길이기도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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