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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시판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예쁜 호수를 가진 사파.

베트남 사파(Sapa)는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350km 떨어진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작은 도시이다.







대략적인 사파 인근의 개념도.







사파는 20세기 초 프랑스에 의해 개발되었다.

남쪽에는 달랏, 북쪽에는 사파를 휴양지로 지정하여 개발한 것이 그 유래이다.

당시에는 Chapa라는 프랑스어로 불리웠지만 이후에는 베트남식으로 SaPa로 명명되었다.

한자 표기로는 沙垻.


계곡을 가로지르며 판시판 산(Phan Xi Păng, Fansipan)으로 오르는 케이블카가 저 멀리 보인다.

해발 1,650m 고산지역이라 한 여름에도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서늘하다.







사파에는 블랙 흐멍, 플라워 흐멍, 레드 자오 족을 비롯한

12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은 대표적으로 라오짜이, 따반, 깟깟 마을이 있다.







사파 노트르담 대성당과 사파역이 모여있는 사파의 중심광장.

운동장으로도, 공연장으로도 특히 주말에는 야시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사파는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고있는 소수민족들이 수제 직물이나

농산물, 임산물 등을 거래하는 곳이며, 소수민족 마을로의 트레킹이나

판시판 산으로 가는 허브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파의 밤.







벽에 걸린 그림이 돋보이는 사파의 어느 음식점.







1930년대 프랑스 식민 시절에 프랑스 풍으로 건축된 사파 노트르담 대성당.







성당 안에서는 의식이 진행중이다.







아직 완전하게 갖춰지지 않은 듯 보이는 쇼핑몰과

판시판 케이블카로 향하는 모노레일을 탈 수 있는 사파역이 함께 입주한 사파 선플라자.







베트남이 1945년 프랑스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호치민이 세웠다는 독립기념탑.







밤이 찾아온 사파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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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개장되었다는 놀이시설인 판타지파크에서 시간을 보낸 후,







분수대 광장으로 나가 보았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도착할 때에 비해 다소나마 안개가 걷혀 있다.







프랑스 마을의 개념도.

27번이 분수대 광장, 그 옆 25번이 놀이시설인 판타지파크이다.







세인트데니스 교회 (Saint Denis Church).







세인트데니스 교회의 내부.







19세기 프랑스 교회와 우체국, 가옥 등을 재현해 놓은 

프랑스 마을의 거리로 이국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놓았다.







곳곳에 세워둔 조각상.







프랑스 마을이 끝나는 곳, 이른바 종교적이고 영적인 구역 안에는

영주영사(嶺主靈祠, 린쭈어린뚜)가 위치해 있다.

그 앞쪽 누각 안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 모셔져 있다.







영주영사 종루(라우쯔엉)의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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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 가는 길.







1965년 개관된 이후로 5번의 확장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유물만 약 70만여점에 이른다고 한다.

보통 그 중에 6천여 점의 유물만 전시된다고...







송, 원, 명, 청 대의 국보급 유물들로 중국 본토보다

더 알찬 유물들로 채워진 고궁박물원.

중국의 웬만한 보물은 여기에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의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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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中正)기념관에서 바라본 자유광장(自由廣場) 방향.

양 옆으로는 국립희극원과 국립음악청이 있다.

중정은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본명...







대리석으로 지어진 중정기념관의 외관.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이었던 장제스를 기념해 1976년에 기공,

1980년에 완공되었다.

2층으로 구성되었지만 높이는 70m나 된다.

계단은 장제스 총통의 나이와 같은 84계단... 







재현해 놓은 장제스 총통의 집무실.







전시실에는 그의 유품과 업적을 사진과 기념품 등으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물 중에는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수여한 대한민국 1등 

건국공로훈장도 포함되어 있다.







기념관 내의 장개석 총통 동상. 

높이 6.3m에 무게는 25t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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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속 작은 유럽이라 불리는 마카오. 

그곳에는 포르투갈의 통치를 받은 영향으로 유럽풍의 크고 작은 건축물과 

광장 등이 많이 남아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자그마한 도시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자그마치

25곳이나 된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거기다가 서로 인접해 있어서 도보로도 충분히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은  

큰 매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릴 세나도 빌딩 (民政總署大樓 / Edificio do Leal Senado)

1784년에 마카오 정부청사로 지어졌다. 

현존하는 건물은 1874년에 재건된 것으로 남유럽 건축양식의 색깔을 띄고 있다.   

1층의 도서관은 1929년에 개관되었다.







세나도 광장 (議事亭前地 / Largo do Senado Square)

초창기로부터 이어온 마카오의 중심지로서 현재에도 많은 공식적인 행사와 

축제의 장소로서 각광받고 있으며 광장 양편으로는 19세기와 20세기에 지어진 

파스텔 색조의 신고전주의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1993년에는 광장의 앞면을 검은색과 하얀색 조약돌을 사용, 물결무늬로 포장하여 

지중해의 분위기가 나도록 조성하였다.


세나도 광장을 비롯하여 마카오의 많은 광장들은 모자이크 바닥으로 되어있다.

깔사다(Calcada)라 부르는 이 장식은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것 중의 하나로  

석회석을 조각으로 잘라서 바닥을 장식하는데 보통 문자나 별, 조개 등의 모양을 넣기도 하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오른쪽 건물은 자선사업을 위해 지어진 자비의 성채(자애당)로 

1569년 마카오의 첫 주교에 의해 설립되었다.

중국에 첫 서양스타일의 탁아소와 고아원을 포함한 병원이 설립된 것이다.

옆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박물관에는 선교와 관련된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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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도미니크 성당 (玫瑰堂 / Igreja de S. Domingos).

                               도미니크회 사제들에 의해 1587년에 건축되었으며 중국에 지어진 첫 번째 성당이다.

                               한 때는 관공서와 군 시설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고 한다.  







                               성당의 디자인은 화려하며 특히 바로크풍의 제단은 웅장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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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나도 광장에서 성 바울 성당의 유적으로 가는 길에는 육포를 파는 가게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일명 육포골목으로 불린다.


                               마주 보이는 건물은 마카오의 대표적인 아이콘 중 하나인 성 바울 성당의 유적 

                               (大三巴牌坊, Ruinas de S. Paluo)으로 마터 데이 교회 잔해의 정면을 보여준다. 

                               이 교회는 1594년에 설립되어 1762년에 문을 닫은 성 바울 대학 중 일부였으며 

                               극동에 지어진 첫 유럽풍의 대학이었다.

                               성 바울 성당은 1580년에 지어졌으나 1595년과 1601년에 순차적으로 훼손되었는데,

                               1835년의 화재로 대학과 성당은 정문과 정면계단, 건물의 토대만을 남긴채 모두 불타 버렸다.


                               성 바울 성당의 유적과 연결된 계단 아래쪽에 자리한 작은 광장은 예수회 기념 광장이다. 







                               성 바울 성당 유적 뒷편에는 성당 터에서 발굴된 마카오 선교사들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과 16~19세기의 카톨릭 성화와 조각품 등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천주교 예술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왼쪽으로 보이는 층을 이룬 유리칸 사이에는 유골들이 들어있다.







대성당 및 대성당 광장 (大堂,大堂前地 /  Igreja da Se&largo da se).  

해마가 물을 뿜는 중국풍의 분수와 함께 대리석으로 된 대형 십자가가 놓여있다.

거기에 더해 포르투갈풍의 깔사다와 타일 벤치 등 동서양의 문화가 

한 곳에 뒤섞여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건물은 대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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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 성당 (聖安多尼敎堂 / Lereja de Santo Antonio).

마카오에서 오래된 성당 중 하나이다.

1558~1560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이후 1874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1930년대에 재건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신부였던 김대건 신부가 

이곳 성 안토니오 성당에서 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자그마한 별실에는 김대건 신부의 목상이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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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차사원 (哪吒廟 / Templo de na tcha).  

                               이 사원은 1888년에 지어져 당시에 급속도로 번지고 있던 전염병을 막기위해 

                               귀신을 물리친다는 신(神), 나차에 바쳐졌다.

                               나차사원은 간단한 재료로 만들어진 작은 단실건물로,

                               바로 왼편으로는 잔해만 남은 구 시가지 성벽이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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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요새 (大炮台 / Fortaleza do Monte).

1617년에 건설되어 1626년에 완공된 몬테요새는 사다리꼴 모양으로 

약10,000㎡ 지역을 점유하고 있으며 마카오의 방어를 위한 중심부였다.

1622년에는 네덜란드의 침입에 맞서 싸우기도 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원래 300여년 동안 제단으로 사용되었으나 포르투갈인에 의해 요새로 전환되었다.

                               후에 마카오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육군막사, 감옥, 관측소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요새 위쪽에는 마카오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400년 전부터 오늘날 까지의 마카오의 문화를 접해 볼 수 있는데, 

전시실은 3개의 층에 3개의 주제로 '마카오의 기원',  

'마카오의 대중예술과 전통', '마카오의 현재'로 나뉘어 있다.







이곳은 성바울 성당의 유적과 마카오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카오 외항 방향의 모습으로 강 건너편은 중국의 주하이시(珠海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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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란 남쪽, 원래 채석장이었던 이곳을 일종의 테마파크 관광지로 바꾸어 놓았다.

이름하여 가루다 공원... 

게와까 파크로도 불리우는 이 공원의 정식 명칭은 

GWK Cultural Park로, GWK는 Garuda Wisnu Kencana의 약칭이다.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았으며, 언제 완성될지도 모른다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비쉬누(Vishnu)상.

                               높이가 22m나 된다.


                               이곳에는 힌두신화에 나오는 물의 신인 비쉬누 신과 그가 타고 다니던

                               독수리인 가루다의 거대 조각상이 설치되어 인도네시아의 상징이 되고 있다.

                               비쉬누는 힌두교 3대 신의 하나로, 커다란 금시조(金翅鳥)를 타고 다니며 

                               악을 제거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평화의 신이다.







비쉬누 신이 타고 다니던 가루다.


가루다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조(神鳥)로, 가루라(迦樓羅)

또는 금시조로도 불린다.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큰 새로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八部衆)의 

하나이며 조류의 왕으로 불리우며 용(龍)을 잡아 먹는다고 한다.

특히 가루다는 싸울 때 거의 호각(互角)을 이루었기 때문에 신들의 호감을 

얻게 되었고, 이후 비쉬누의 신봉자가 되어 비쉬누의 탈 것으로 선택되었다고 한다.

가루다는 태양신으로도 알려졌는데 황금 날개에 태양을 싣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운반했다고 하며 인간 세상과 신의 세상을 오갈때 이동하는 

하나의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 가루다상과 비쉬누상을 합쳐 약 150m 높이의 거대 조각상을 완성시킬 것이라 

하는데, 그때에는 발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 한다.







가루다 동상 앞, 대리석을 채취한 공간에는 

넓은 잔디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광장 양쪽으로는 석벽이 버티고 서 있다.

이 석벽은 쌓아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의 채석장 석회암을 

깎아내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곳은 발리 힌두신들의 성지로 개발중이기도 하지만 짐바란베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해 현지인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patung perdamaian이라 쓰여진 조각물.

말레이시아어인 perdamaian은 영어로 peace, 즉 평화라고 하니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세워진 듯 하다.







왼쪽으로 비쉬누상이, 그리고 중앙 정면에는 가루다상이

서로 외면하듯 서 있다.

사실 이곳에서는 이 두 개의 조각물 외에 특별히 볼 것은 없다.







                               마치 음험한 협곡을 지나는 느낌이다.







                               늦게 도착한 탓인지 한바퀴를 채 돌아보기도 전에 이내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발리 전통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참고/ 위키백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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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보리에 위치한 호미곶관광지.

새천년기념관 전망대 위에 서니 해맞이 광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외곶(冬外串) 또는 장기곶(長鬐串)으로도 불리는 이곳 호미곶(虎尾串)은

새천년 한민족해맞이 축전 개최장소로 1만여평의 부지에 

상생의 손, 성화대, 불씨함, 연오랑세오녀상, 햇빛채화기,

공연장 등이 건립되어 있다.







해맞이광장 왼편으로는 국립등대박물관과 공연장, 

그리고 호미곶 등대가 위치해 있다.







호미곶면 대보리 마을방향, 맞은편 방파제가 있는 곳은 대보항이다.

대보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특히 가자미 · 문어 ·  

대구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호미곶의 상징이 된 상생(相生)의 손.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 도우며 살자는 뜻으로

사람의 양손을 청동으로 빚어 바다와 육지에 각각 설치한 이 조형물은 

서로 마주보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1999년 12월에 만들어졌다.  

육지쪽은 높이 3m이다. 


오른쪽에는 새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영원히 꺼지지 않은 불꽃으로 

남게 될 불씨함이 놓여져 있다.

1999년 12월 31일 변산반도의 일몰 불씨와 2000년 1월 1일 영일만 

호미곶의 일출 불씨, 그리고 같은 날 동해 독도의 일출 불씨와 날짜변경선이 

통과하는 남태평양 피지섬의 일출 불씨가 합화, 보관되어 있다. 







                               육지의 왼손과 120m의 거리를 두고 바다쪽에 있는 오른손.

                               높이는 8m이다.  







                               2011년에 완공된 바다쪽 전망데크.

                               보기에는 그저 바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것일 뿐, 

                               특별한 느낌은 없다. 







바다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맞이 광장.


오른쪽 둥근 원모양을 한 건물은 연면적 5101㎡ 규모로 지어진 새천년기념관이다. 

1층 '빛의 도시 포항속으로' 전시실, 2층 포항바다화석박물관, 

3층 영상세미나실, 시청각실, 지하 1층 공예공방체험실, 

그리고 옥탑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다.







                               한반도 최동단에 위치하며 일명 대보등대(大甫燈臺)라고도 불리우는 호미곶 등대.

                               대한제국 융희 원년(1907)에 일본 선박이 대보리 앞바다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것을 계기로 지어졌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을 맡아 1908년 12월에 준공된 

                               국내 최대, 최고(最古)의 등대이다.


                               등대구조는 팔각형의 근대식 건축양식으로 철근은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지어졌다.

                               높이는 26.4m이다. 

                               등탑 내부는 6층으로 각층 천정에는 대한제국의 황실문양인 오얏꽃(李花)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1982년 경상북도에서 지방기념물 제3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호미곶 국립등대박물관.

산업기술의 발달과 시대적 변화로 사라져가는 항로표지의 시설과

장비를 영구히 보존 전시하기 위해 1985년에 개관되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은 해양관이다.


지도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호미곶은 

동쪽으로 치우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출은 물론 일몰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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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의 중심에 있는 바딘(Ba Dinh)광장은
1945년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이를 중심으로 국회의사당, 공산당사, 주석궁 등의 
정부 행정기관과 외국공관, 그리고 호치민 영묘를 비롯하여 
호치민 생가와 박물관 등이 위치해 있다.






바딘광장 한쪽에는 짙은 갈색의 대리석으로 된 사각형 모양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이는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이루어낸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호치민의 묘소인 영묘(靈廟)이다.

호치민은 베트남 전쟁 중인 1969년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유언에서 자신을 화장하여 재를 셋으로 나눈 후, 베트남 북 · 중 · 남부에
고루 뿌리고 어떠한 우상화 작업도 하지말라고 일렀으나 그의 추종자들이
국민적 영웅을 한 줌 재로 둘 수 없다 하여 방부처리, 이곳에 안치하고 있다.
호치민 묘소는 21.6m 높이로 3개층으로 나뉘어 있으며, 1973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75년에 완공되었다.
호치민 외에도 이렇게 방부처리한 인물로는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이 있다.






호치민(胡志明, 1890~1969)은 베트남의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정치인으로,
북베트남의 총리와 대통령을 지냈다.
1945년,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을 세웠으며, 초대 대통령으로
베트남의 식민지 해방과 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런 업적을 높이 사 기존 사이공이라는 도시명을 버리고 호치민으로 바꾸었다.
호치민이라는 이름은 '깨우치는 자'라는 뜻으로,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호 아저씨(伯胡)'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바딘광장 주도로를 중심으로 한쪽에는 호치민 영묘가,
                               그 반대쪽으로는 잔디밭으로 이루어진 넓다란 광장이 마주보고 있다.

 





호치민 영묘 맞은편으로 펼쳐진 잔디밭이다.
하나의 크기가 가로 세로 약 5m정도로 바둑판같이 모두
174개가 모여 있는데, 이는 같은 수의 무명용사를 상징한다.






                               잔디밭 건너편으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무명용사탑을 세워 두었다.






호치민 영묘 뒷편에는 호치민 생존 당시의 거소 및 사무실용 목조건물, 
그리고 호치민 박물관 등의 유적지가 있다.
이는 호치민이 1954년 12월부터 1969년 9월까지 
15년동안 거주하고 일하던 과정과 관련된 유적들이다.

위 건물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주석부(主席府)로, 
당시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총독부이자 총독의 관저로 알려져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호치민이 194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해 3개월을 이곳에서 살았으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전기 배관공이 거주하던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외국의 국빈들을 모시는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호치민이 두 번째 살았던 관저.
                               프랑스군이 침략했을 때는 전기공의 집이었으나 1954년부터
                               1958년까지는 그가 이 집을 사용했다.
                               이곳에는 호치민이 호화스럽게 먹을 수 없다고 하여 마련한
                               1식 3찬의 식탁, 그리고 평소 쓰던 책과 시계 등이 놓여있다.






                               부처나무라 부르는 붓목(BUT MOC, 부처나무).
                               나무 주위, 죽순 모양으로 솟아 오른 것은 신기하게도 이 나무의 뿌리이다.
                               그 모양이 남근 모양이었다가 점점 자라면서 스님형상을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나무 아랫부분의 하얀색은 벌레들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발라 놓은 고무나무의 수액이다.






호치민 생가를 끼고 있는 연못.
오른쪽 건물은 그가 1958년 5월부터 1969년 8월까지
살았던 나산(Nha San)이다.
그러나 이 집들은 대통령이 머물렀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소박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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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대구광역시 수성구 대흥동에 위치한 대구스타디움.
자연속으로 들어온 쾌적한 모습이다.
왼편으로 늘어선 7개의 기둥은 매표소. 








대구스타디움 서쪽 주차장 부지에는 대구, 경북 최초의 몰링형 상가인
대구스타디움 몰(Mall)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몰링이란 쇼핑, 문화, 의료 업무 등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을 의미한다.

이곳에는 이번 선수권대회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해줄 국제방송센터(IBC)를 
비롯하여 외국방송사의 부스, 그리고 메인프레스센터(MPC) 등이 입주하게
되며, 대형마트와, 멀티플렉스 영화관, 푸드코트, 전문의류상가 등도
함께 들어서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대회가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사중이라, 혹시나 방송에
차질을 가져오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2005년부터 매년 대구국제육상경기를 벌여왔던 바로 그 자리이다.
                               관중석 66,422석 규모의 다목적경기장으로, 2001년 6월 개장시
                               대구월드컵경기장으로 불렸으나 2008년 3월 5일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의 개최를 목적으로
                               건립되었으며, 2003년부터는 K-리그 대구FC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2011년 5월에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국제공인 Class-1 인증을
                               받은 바 있다.








                               경기장 서편으로는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윗부분 도로 저편에는 대구미술관이 위치해 있으며 
                               그 인근에는 육상진흥센터 공사가 한창이다.








대구스타디움의 개 · 보수공사는 일찌감치 마무리되어
대회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전체적인 대회준비 작업도 마무리에 들어가 대회 인프라
구축작업이 99% 정도로 완료된 상태다.
이미 지난 5일에는 대회사상 처음으로 건립된 선수촌이 완공되어
공개된 바 있으며, 10일부터는 선수들의 입촌이 시작된다.








                               대구스타디움의 외관은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인 초가지붕을
                               형상화했으며 자연채광 또한 가능하다. 


                  ▶ 관련/ 2011/07/08 - [History] -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0/01/07 - [History] - 눈이 내린 대구스타디움에서...
                                2011/02/22 - [History] - 눈이 있는 풍경 - 대구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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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폐막 전날인 9월 3일에는 휠체어 육상 남자부 T53 400m
경기와 여자부 T54 800m 경기가 열린다.
이 경기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에 요청해 마련한
이벤트 경기로, 2005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부터 진행되어 왔다.

참고로 남자 400m육상의 세계기록은 비장애인인 마이클 존슨(미국)의 43초18을 비롯,
장애인(휠체어)부문에서는 장리신(중국)이 양쪽 다리 무릎 아래가 없는
의족 스프린터인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공)와 같은 45초07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블레이드 러너'라는 애칭을 가진 피스토리우스는 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400m 경기와 1,600m 계주에 출전하여 비장애인 선수와 경쟁하는 최초의 장애인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홈페이지.






Travel





롤러코스터가 어지럽게 얽혀져 있는 테마 놀이공원인 환락곡(환러구, Happy Valley).
2009년 10월 베이징에서 선정, 발표한 신 16경에 포함되었다. 
2010년 7월에 오픈했다는 이 롤러코스터는 높이 60m에
133.6km/h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 트랙길이는 850m의 규모라 한다.








베이징 환락곡은 총면적 56만㎡로 2006년 7월에 완공되어 개방되었다.
현재 중국 최대 규모의 투자, 최대 면적을 자랑하며 국제화 및 현대화가
가장 잘된 테마공원으로 문화체험 및 오락종목이 많은 곳이다.

놀이시설 개념도 자세히 보기








뽀족하게 솟은 저 탑은 베이징 시내의 여러 건물들 사이에서
가장 특색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6개의 테마구역(샹그릴라, 아틀란티스, 개미의 왕국, 잃어버린 마야,
에게해의 항구, 와일드 피요르드 등)으로 구성된 환락곡,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아틀란티스구역이다.
그 외에도 50여 개의 테마경관과, 10여 개의 테마공연, 30개가 넘는
테마 오락시설, 20여 개의 테마 게임 및 상업 보조시설들로 하나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세계를 선사한다.








                               영화 '워터월드'를 연상케 하는 세트구성이다.
                               소형 모터보트를 탄 사람이 물 위를 부지런히 휘젓고 다니며 
                               분위기를 연출해 보이고 있다.








그곳 한 켠에는 산토리니의 모습을 배경으로 문화광장이 마련되어 있다.
왼쪽으로는 후룸라이드 놀이시설이다.








후룸라이드.
그 아래로는 그리스 아테네 신전의 모습도 보이고...








                               높은 낙차를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 때문에 배가 가려져 버렸다.
                               관람석 사이에 유리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 직접적인 물벼락은 
                               피할 수 있지만, 느낌에는 그대로  물을 뒤집어 쓴 것 같다.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진다.








거대한 트로이목마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놀잇배가 여유롭게 호수 위를 오간다.
30만㎡가 넘는 녹화와 8만㎡를 차지하고 있는 호수는 이곳에 양호한 생태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기도 하다.







참고/ 베이징관광국 공식 홈페이








Travel





                                             자금성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추선상에는 남쪽으로 부터 태화문(太和門),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 건청문(乾淸門),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곤영궁(坤寧宮), 곤영문(坤寧門), 
                                             천일문(天一門), 흠안전(欽安殿), 승광전(承光殿), 순정문(順貞門), 
                                             신무문(神武門) 등 주요한 궁전과 궁문이 나란히 세워지고,
                                             그 가운데 오문과 신무문은 자금성의 남북 성문을 이루고 있다.
                                             또한 자금성의 동서 양측에도 동화문(東華門), 서화문(西華門)이 있다.








자금성(쯔진청, 紫禁城)의 정문은 천안문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정문은 높이 38m, 벽의 두께가 무려 36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문이라는 오문(午門)이다.
중국에서는 옛날에 북(北)을 자(子), 남(南)을 오(午)라고 했는데,
오문은 자금성의 중심축 남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금성은...








태화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중국 최대의 목조문인 태화문.
문 앞 계단 동, 서쪽으로는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청동사자상이 자리잡고 있다.








오문과 태화문을 거치면 나타나는 넓다란 광장... 그리고 태화전이다.
태화전은 남북 33m, 동서 60m의 건물로서 중국 최대의 목조건물이며,
황제의 즉위식, 새해의 제사, 황태자의 탄생 축하 등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지금의 건물은 1695년 청나라 강희제 때 세번째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태화전의 지붕은 금색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기 때문이라 한다.









                               보화전 뒷편에서 바라본 내정의 정문인 건청문.
                               건청문은 자금성 내에서 가장 화려하며 위엄이 있어 황실의 신성함과 
                               권력을 나타내는 전문이다.
                               이곳을 경계로 황제와 황후의 생활공간인 내정과 외조가 구분된다.

                               보화전의 이 운용석조(雲龍石雕)는 자금성에서 가장 큰 돌이라 한다.
                               황제를 상징하는 9마리의 용과 장수의 복을 의미하는 산과 절벽, 바다 
                               그리고 운해가 조각되어 있다.








보화전을 뒤에서 되돌아 봤다.
보화전은 주로 조정의 각종 의식을 여는 곳이다.








황제의 침실 겸 집무실이었던 건청궁의 내부.
정대광명이라 쓰여진 편액 아래 황제의 보좌가 놓여있다.








                               황제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수목이 전혀 없는 자금성 내부에
                               유일하게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가꾸어 놓은 어화원 내의 정자.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을 나오면 저 멀리 자금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경산공원이 마주보고 있다.
                               경산공원은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목을 매 자살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곳은 이화원의 만수산처럼 인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금성을 빙 둘러 너비 52m, 깊이 6m, 그리고 3.8km에 이르는 길이로 
                               해자를 만들면서 그곳에서 파낸 흙과, 땅 밑을 뚫고 들어올지도 모를 
                               침입자를 막기위해 40여장의 벽돌을 바닥에 깔면서 자금성 바닥을 7m까지 
                               파내기도 했다는데, 그때 나온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저 경산공원이라고 한다.

                               풍수지리학상 궁궐 뒤에는 산이 있어야 좋다고 해서 그렇게 만들었다니, 
                               역시 스케일 만큼은 정말 대단한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
해자로 둘러쌓여 있는데, 해자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성을 보호하며
방화기능도 겸했다고 한다.

자금성은 현재는 고궁박물원으로 전용되어 고궁 안의 여러 전(殿),
당(堂), 궁(宮) 등은 진열실로 이용되고 있으며, 중국 역대의 채도(彩陶),
청동기, 칠기, 직물, 조각, 회화 등 여러 예술품을 진열하고 있다.



참고/ 이곳,



History





지난 4일, 이 곳 대구에도 눈이 왔었습니다.
눈 때문에 가슴 설레이는 그럴 나이는 이미 지났지만,
마침 볼일도 있고해서 다녀 오는 길에 가까운 대구스타디움으로 향했습니다.
월드컵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스타디움 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스타디움의 서쪽광장 조형물 왼편으로는 외지로, 작은 공연등이 열리는 무대가,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수변관으로, 대구스포츠기념관과 월드컵웨딩홀이 위치해 있습니다.








                              흰 눈 위에 얹혀진 붉은색의 조형물이 
                              평소 때보다 더 자극적이고 강렬하게 보입니다.








광장 한 쪽에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모델을 자청하며 서 있고...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위치한 대구스타디움은
관중석 66,422석 규모로, 최대 수용가능인원은 약 7만여명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의 개최를 목적으로
2001년 대구월드컵경기장으로 개장하였으며,
2008년 3월 5일부터는 대구스타디움으로 개칭하였습니다.
또한, 다가오는 2011년에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이 곳에서 열릴 예정으로 있습니다.








스타디움 전면광장에 있는 굴뚝을 닮은 매표소 건물입니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유니버시아드로(路)로, 범안로와 경산시내를 연결하는 도로입니다.








내린 눈으로 인해 스타디움 안쪽도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이 대구스타디움의 지붕은  좌석의 74%에 자연채광을 가능하게 하는
테플론 코팅막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스타디움 밖, 또 다른 한 쪽 눈 위에는 
연인들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고백, 혹은 약속이 새겨져 있습니다.
글씨는 잔가지를 꺾어서 만들었는데, 정성이 엿보이는 걸로 보아 진심인 것 같습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겠지만,
그 마음만큼은 영원히 오래도록 남았으면 합니다.








이미 일부는 녹아서 물방울이 되어 떨어져 내립니다.
그리고 이제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눈은 아무런 일도 없었는 듯 사라져 버리고
주위의 모든것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건데, 소리없이 왔다가 흔적도 없이 가버리는 
환영(幻影)과 같은 존재가 바로 이 눈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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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속의 사진 나부랭이 /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저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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