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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넘나들었을 법한 불국사의 일주문.

경북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불국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축조 당시에는 무려 80여 개의 건물에 총 2천 칸에 달하는 규모였으나
1593년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소실되었고, 선조 37년(1604년)경부터 약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에는 비로전 중수가 이루어졌다.
이후, 일제때인 1924년에는 다보탑의 해체보수를 포함하여 법당의 중수 등
대규모의 개수공사가 이루어졌고, 1970년에는 복원공사를 착수, 1973년에
완료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본사의 하나로 사적 제50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천왕문에는 수미산의 동서남북 4주를 지킨다고 하는 사천왕상이 서 있다.

불국사는 528년에 창건되었고 751년 김대성에 의해 대가람으로 중창되었다.
불국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법흥왕 15년(528)에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이 발원하여 창건했다는 설,
그리고 5세기 초인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그 중 두 번째 설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세 번째 설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이라 신빙성이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본다.








지금은 법고가 있으나 원래는 범종각이었던 중간의 범영루(泛影樓)를 기준으로
좌측 서쪽으로는 연화교와 칠보교가, 우측 동쪽으로는 청운교와 백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들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아랫계단의 청운교, 그 윗부분의 백운교는 청년과 노인의 모습을
빗대어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불국사의 창건 및 사상적 배경은 네이버백과사전으로








남향으로 중앙에 위치한 대웅전 앞에는 석등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다보탑(국보 20호), 서쪽으로는 석가탑(국보 21호)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두 탑은 높이가 10.4m로 같다.

석가탑은 완전한 형태로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우리나라 석탑의 원형으로 
이후 대부분의 탑은 이를 모방하게 된다.
그러나 다보탑은 이에 비해 매우 화려하다. 어쩌면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두 탑이
한 곳에 나란히 서 있는데도 보기에는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특히 석가탑은 백제의 장인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와의 슬픈 설화가 서려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역사서 어디에도 아사달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기에 
이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참고)

다보탑은 지난 2008년 해체수리에 들어가 1년만에 새단장을 끝낸 바 있다.








대웅전 뒷쪽에 위치한 경론(經論)을 강설(講說)하는 강당인 무설전(無說殿).

경론을 강설하는 곳임에도 무설이라고 한 것은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이
언어 수단으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임을 표현한 것이다.
670년경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최초로 강의를 하였고, 창건이후 여러 차례
중건· 중수를 거쳐 1973년에 복원되었다. 건축양식은 조선후기에 속한다.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관음전.

불국이란 정토(淨土)인 부처님의 나라 불국토를 뜻한다.
불교의 가르침에 의한다면 사바세계와 불국토는 결코 둘이 아니다.
하지만 사바세계에서 불국토에 이르는 길은 매우 험난하며 그 길을
계단이나 연못 등으로 상징해 놓고 있다.








진리와 빛을 다스리는 비로자나 불상이 모셔진 비로전,
오른쪽 계단 위에는 관음전이 위치해 있다.

원래 이름이 '화엄불국사'였던 불국사는 크게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석가모니불이 주재하는 사바세계인 대웅전 영역,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표현한
극락전 영역, 그리고 비로자나불의 연화장(蓮華藏)세계가 구현된
비로전 영역이 그것이다.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羅漢)을 모신 나한전.
이곳 뒷마당과 담장 위에는 자그마한 소원 돌탑들로 가득하다.








극락정토의 주불로서 중생의 고난과 고통을 살피고 구제하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전.

그런데 석등 앞에는 황금돼지상이 하나 서 있다.
이는 지난 2007년 한 관광객이 극락전 현판 뒷편에 가려져 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50cm가량 되는 돼지를 발견한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돼지는 재물과 의식의 풍족함을 상징하며 복을 가져다 주는 길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입구 서쪽의 연화교 칠보교 맞은편에는 높이가 2.9m 정도되는 
                               화강암으로 된 당간지주 두 쌍이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절에 법회나 행사가 있을 때에는 높은 장대를 세워서 알리는데, 
                               당간지주는 이 장대를 버텨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곳 청운교 앞은 원래는 연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없어지고 나무를 심어놓았다.



                               참고/ 네이버지식iN,  네이버캐스트, HB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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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에 위치한 미륵신앙(彌勒信仰)의 요람으로 불리우는 법주사.
먼저 일주문과 수정교를 지나고 나면, 가람에 들어서는 첫 입구라 할 금강문(金剛門)을 만나게 된다.
좌우로는 돌담으로 회랑을 형성하고 있으며, 인왕상을 봉안하기 때문에
인왕문(仁王門)이라고도 부른다.

법주사는 553년 (신라 진흥왕 14)때 의신(義信)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성덕왕 때 중수를 하였는데, 현재 남아 있는 석물(石物)은 모두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현존하는 목조건물은 모두 조선 후기의 것이다.








                              이곳 금강문 안에는 1974년에 조성한 금강역사 2위와, 사자를 탄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함께 봉안하였다.
                              대체로 문 양쪽에는 금강저(金剛杵)나 칼과 창을 손에 들고 있는 금강역사가 모셔진다.
                              그래서 왼쪽에는 밀적금강(蜜跡金剛),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을 모시는데,
                              혹 입을 벌리고 있는 상을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상을 우금강역사라 부르기도 한다.








                              금강문을 지나자 하늘을 향해 뻗은 두 그루의 나무가 시원스럽게 맞아준다.
                              바로 뒤의 건물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으며 사천왕상을 봉안한 
                              사천왕문으로, 국내의 천왕문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지붕 위쪽으로는 바로 뒤에 위치한 팔상전의 꼭대기 층이 넘겨다 보인다.








                              팔상전. 국보 제55호로 지정되었으며 5층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조탑이며 탑 중에서도 가장 높은 건축물이기도 하다.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한 것인데, 
                              안쪽 벽면에는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높이 33m로, 동양 최대 규모의 미륵불 입상인 금동미륵대불(청동미륵대불).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을 처음 지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되어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
                              1990년에는 붕괴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으며,
                              2000년 들어서는 원래의 제 모습을 찾아 주고자 금동미륵불로 복원공사를 했다. 
                              당시, 3mm 두께로 황금을 입히는데 모두 80kg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대웅보전에서 팔상전에 이르는 앞마당에는 신라시대의 걸작이라 할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이 서 있다. 
                              국보 제5호로, 높이 3.3m에 이르는 팔각석등이다.
                              신라시대의 석등은 대게 하대석과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대석을 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높이 치켜들어 상대석을 떠받치는 
                              독특한 양식으로 되어있다. 








보물 제915호로 지정된 대웅보전.
창건무렵인 신라 때에는 미륵장륙상을 모신 용화보전이 미륵신앙 도량인
법주사의 중심역할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대웅보전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지금의 건물은 고려 중기에 처음 세운 것으로 보이며, 1624년(인조 2)에 중건하였고
이후 잦은 중수를 거듭하였지만, 조선 중기의 양식을 잘 갖추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벽암대사가 중창한 이후 400년 만인 2005년,
4년간의 공사끝에 옛모습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대웅보전 앞에 보이는 석탑은 보물 제15호로 지정된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으로,
상대석에 사천왕이 새겨져 있어 그렇게 부른다.








                              두툼한 판석과 커다란 그릇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의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 
                              우리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보살상으로
                              전체 높이가 2m에 이르며, 보물 제1417호로 지정되었다.
                              전체적으로 선이 굵고 대담한 기법이 돋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희견보살은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 스스로 몸과 팔을 불태워 
                              소신(燒身)공양을 올렸다는 보살이다.
                              그러나 이 보살상의 주인공을 석가여래의 으뜸가는 제자였던 
                              가섭존자(迦葉尊者)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가섭존자는 석가가 입멸한 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말고 
                              세상에 남아, 가사와 발우를 전하라는 석가여래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경설을 바탕으로
                              이를 형상화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능인전 옆의 추래암(墜來岩) 암벽에 새겨진, 전체 높이 5m의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으로서 보물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의상(倚像)이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마애불로서 이러한 예는 경주 남산의 삼화령 미륵불이 유일한 작품인데, 
                              그 양식상의 특징과 연관지어 미륵불로 추정하고 있다. 








오른편으로 높이 솟은 것은 당간지주로, 고려 초인 1006년(목종 7)에 조성되었는데
당시에는 높이가 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뒤 조선 후기인 1866년(고종 3)에는 대원군의 명령으로 국가에서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하면서 사찰의 많은 금속물들이 징발 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당시 용화전의 미륵장륙상과 이 철당간이 사라졌다.
이후, 1910년경에는 22m 높이의 철당간을 확대, 복원하였고, 1972년에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참고/ 법주사 홈페이지.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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