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 횟거리로 가장 인기가 높다는 다금바리.
그러나 외관상으로는 다금바리보다는 능성어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일반적으로 횟집에서 다금바리라 하여 판매되고 있는 것이
능성어라고 하니 헷갈릴만도 하다.
참고로 외관상으로 능성어는 줄무늬가 있지만, 다금바리는 줄무늬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줄무늬가 없고 하얀 반점같이 보인다고 한다.
또한 회를 떳을 때 능성어는 횟감 바깥부분에 빨간색이 섞여있지만
다금바리는 광어회와 비슷하게 회살전체가 하얀색이라고 한다. (출처/ 링크)
여하튼 그대로 바닷물에 담겨져 있어서 그런지 몸짓 하나는 활기차다.
수상어시장을 거쳐 더 넓은 바다로 나왔다.
주위는 온통 깎아지른 바위섬들로 하나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표현 그대로 수석의 전시장처럼 다양한 모양의 섬들이
스스로의 자태를 뽐내며 눈 앞으로 다가 왔다가
멀어져 가기를 반복한다.
특히 오른쪽 기암괴석은 베트남의 지폐에 사용된 바로 그 모델이다.
하롱베이 일대의 평균수심은 200m로
물이 들면 2,000여개, 물이 나가면 3,000여개의 섬들로
만상(萬象)을 이룬다.
이 3,000여개의 섬들 중 788개의 섬이
199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800개 정도만이 이름이 붙여졌다.
하늘에는 갈매기 대신에 독수리인듯한 새들이 간간이 날아 다닌다.
하롱베이에는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3가지가 없다고 한다.
갈매기와 파도, 그리고 비릿내가 그것인데,
갈매기는 석회석이 녹아내려 먹이가 되는 물고기가 살 수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갈매기의 천적인 원숭이, 독수리가 많이 서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고기가 없지는 않다.
파도는 3천여개의 섬이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면이 대체로 잔잔하며,
비릿내 역시 바다에 염분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기도 하고 습도가 비릿내를
흡수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롱베이의 또 다른 상징처럼 여겨지는 키스바위 또는 뽀뽀바위.
하부가 침식된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서로 마주보며 서 있는 형상이다.
몇 가지 해산물을 실은 바구니 모양의 배가
오가는 관광선들을 부지런히 쫒아 다닌다.
이 넓은 바다에서 기계적인 장치도 없이 직접 손으로 저어
이동한다는 것이 결코 쉬워 보이지도 않지만,
때로는 물이 스며들면 그것조차도 일일이 퍼내어야 할테니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얼마나 고된일일지...
선상에서 식사를 하다보니 정상에 전망대가 놓여진
높다란 섬 하나가 눈 앞으로 다가온다.
정상에 오르면 주위의 섬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바로 그 티톱섬이다.
티톱섬은 해발 300m정도의 섬으로, 올라가는 길은
428개의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 있다.
티톱섬이라는 이름은...
호치민이 대통령이 되고난 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구 소련의
우주비행사인 '티톱'이라는 사람을 초청, 함께 이 섬으로 오게 되는데
그 친구는 주위의 풍광에 취한 나머지 이 섬을 선물로 달라고 한다.
그러자 호치민은 베트남이 개인소유는 허용이 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이기도 하지만, 이 섬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백성의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고, 그 대신 섬이름을 그의 이름으로
해 주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시선을 좀 더 가까운 지역으로 당겨 보았다.
바다 위로는 크고 작은 배들이 떠 있고 그 뒤로는
작은 섬들이 중첩되어 이색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저 비밀스럽기만 한 하롱베이의 속살을 살며시
들여다 보는 기분이다.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 동북쪽으로 3~4시간여의 거리에 있는
수 많은 섬들과 바다가 빚어내는 절경이 있는 곳이다.
하롱베이.. 그곳에 한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선착장에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이 배들은 화장실과 주방이 갖추어져 있으며, 대게 1층은
테이블이 마련된 객실로 사용되고 2층은 테라스 공간으로
탁트인 전망을 볼 수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파도가 없는 곳이라 장시간 머물러도 무리가 없다.
수 많은 배들 중 하나에 올라 이곳 하롱베이의 탐승(探勝)에 나섰다.
베트남 최고의 경승지로 불리는 하롱만은 120km에 이르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면적은 약 1,553㎢에 이르고
1969개의 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배가 움직이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조그만 동력선이 하나 따라 붙는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열대 과일을 싣고 다니며
손님을 찾아 다니는 배로, 옷가지가 널려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선상에서 생활을 하는 것 같다.
배가 다가오더니 꼬마가 과일을 손에 들고 창 안으로 고개를 내민다.
이들은 때로는 어린아이를 앞세워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 과일이 놓여지고, 시선은 천천히 바다위를 향한다.
위/ Mang cut(망꿋)이라 부르는 망고스틴(Mangosteen).
아래/ 촘촘히 털이난 듯한 과일은 쫌쫌(Chom Chom)이라
부르는 람푸탄(Rambutan).
그리고 동글동글한 과일은 콰 냔(Qua nhan)이라 부르는
용안(龍眼, Longyan)으로, 껍질을 까면 씨가 마치 용의 눈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육은 포도같이 반투명하고 즙이 많고 단맛이 강하다.
하롱베이는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품 중 하나로
가히 베트남 최고의 절경일 뿐만 아니라 세계 8대
비경에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 인도차이나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바다의 계림,
혹은 세계 3대 절경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도 한다.
온갖 모양의 섬들이 바다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다.
하롱은 하룡(下龍)의 베트남식 발음으로, '용이 내려온 자리'라는 뜻이다.
이곳 사람들이 외적의 침입을 받아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용이 내려와 여의주를 내뱉어 외적을 물리쳤다는데
우도의 남동쪽 끝에 위치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우두봉(牛頭峰, 132m).
소의 머리 부분이라는 뜻이다.
쇠머리오름, 소머리오름, 우두악(牛頭岳)이라고도 하는데, 우도 사람들은 섬머리
또는 섬머리오름, 도두봉(島頭峰), 우도봉이라고 하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어쨌든 그 위에 서 있는 우도등대로, 구등탑(왼쪽)과 신등탑의 모습이다.
1906. 3 무인등대로 최초점등
1959. 9 유인등대로 기능 전환
1960. 3 무신호 설치 (에어사이렌)
2003. 12 등탑 개량 및 등대 미니어처 공원 조성
2005. 7 항로표지 체험관 신축
2006. 3 우도등대 점등 100주년
높이 16m의 대리석 구조로 이루어진 신등탑.
등명기의 불빛은 20초에 한번씩 반짝이며 광달거리는 50km이다.
그 앞에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6번째로 세워진 등간(燈竿)형태의 등대로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이다.
일제시대인 1906년 3월, 군사적인 목적으로 일본 군인들에 의해 나무로 만들어 졌으며
석유를 사용하는 버너방식의 호롱불을 켜 기둥에 올려 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적인 의미의 등대시설로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바다를 내려다 보며 서 있는 구등탑, 백색 원형으로 높이 7.7m의 연와조 구조이다.
1906년에 설치하여 97년간 운영하였으나 노후되어 2003년 11월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 등탑은 항로표지의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원형대로 영구히 보존하게 되었다.
이곳으로 오르는 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를 주제로 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및 세계의 유명한 등대 모형 14점을 전시하고 있다.
동천진동 포구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자갈해변을 끼고 도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인 '광대코지'가 우뚝 서 있다.
그 절벽에서 서쪽으로 바라 본 풍경으로 윗쪽 붉은 등대가 있는 곳이 천진항이다.
이 절벽 밑으로는 해식동굴이 여럿 형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의 동굴에는
한낮에도 달이 뜨며, 이를 '주간명월(晝間明月)'이라고 한다.
우도봉 남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아찔한 높이에 그저 내려다 보기만 해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다.
네이버 지도에서 캡쳐해 본 우도의 전경.
앞쪽이 우두봉으로, 그 우측 절벽위에는 우도등대가 얹혀져 있다.
석편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한 가지런한 단층으로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그 자연 위에 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초라해 보일 수 밖에 없다.
서빈백사(西濱白沙), 일반적인 백사장의 모습이 아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얗다.
우도홍조단괴해빈(牛島紅藻團塊海濱)으로 천연기념물 제438호이다.
과거에는 '산호사 해빈'으로 잘못 알려져 왔으나, 해빈 퇴적물을 이루는 구성요소가
홍조단괴임이 밝혀졌다.
네이버지도에서 캡쳐해 본 또 다른 위치에서의 모습.
우도와 성산 사이의 넓은 해역에는 광합성 작용을 하며 물 속에서 서식하는
석회조류(石灰藻類) 중의 하나인 홍조류가 탄산칼슘을 침전시켜 홍조단괴를 형성하고 있다.
얕은 바다에서 성장하던 홍조단괴는 태풍에 의해 바닷가로 운반되어 해빈(海濱) 퇴적물로
쌓이게 되었으며, 우도 홍조단괴 해빈에는 직경 4~5cm에 이르는 홍조단괴가 해안선을 따라
길이 수백m, 폭이 15m 정도로 퇴적되어 있다.
국내 뿐 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해빈 퇴적물이 이러한 홍조단괴로만 이루어진 경우는
매우 드물며, 학술적 가치도 높아 이 지역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보존하고 있다.
넓다란 대해에 기다랗게 드러누운 우도가 너무나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여느 등대와 마찬가지로 이 우도등대도 외로움을 탈 것만 같다.
자전거로 우도를 한 바퀴 돌아 보는 도중,
도보여행을 하시는 한 분이 잠시 앉아 쉬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옆으로 강아지 한 마리가 어슬렁 대기에
웬 녀석이냐고 여쭈어 봤더니 자신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저 알고 있는 것은 처음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뒤를 따랐다는 사실 한 가지 뿐이었다.
보아하니 혼자 걷는 길에 좋은 길벗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행동이 대견스러워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니
멋적은 듯 그만 시선을 저만치 먼 곳으로 돌려 버렸다.
우도라는 이름 그대로 물 위에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다.
전포망도(前浦望島)라 해서 제주 본도(本島)와 우도 사이에서 바라본
우도의 전경을 우도 8경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제주도 북제주군 우도면(牛島面)을 이루는 이 섬은
해안선 길이 17km, 최고점 132m로, 제주도의 부속도서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다.
성산포에서 북동쪽으로 3.8km, 구좌읍 종달리(終達里)에서 동쪽으로 2.8km 해상에
위치하며, 부근에 비양도와 난도가 있다.
1697년 (숙종23) 국유목장이 설치되면서 국마(國馬)를 관리, 사육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거주가 허락되었으며, 1844년(헌종10) 김석린 진사 일행이 입도하여 정착하였다.
원래는 구좌읍 연평리에 속하였으나 1986년 4월 1일 우도면으로 승격하였다.
남쪽 해안과 북동쪽 탁진포(濁津浦)를 제외한 모든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한라산의 기생화산인 쇠머리오름이 있을 뿐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지대이며,
고도 30m 이내의 넓고 비옥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 보리, 마늘 등이며, 가축 사육도 활발하다.
부근 해역에서는 고등어, 갈치, 전복 등이 많이 잡힌다.
부서진 산호로 이루어진 백사장 등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우도 8경이 유명하며,
인골분 이야기를 비롯한 몇 가지 설화와 잠수소리, 해녀가 등의 민요가 전해진다.
남서쪽의 동천진동 포구에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 상인들의 착취에 대항한
우도 해녀들의 항일항쟁을 기념하여 세운 해녀노래비가 있으며,
남동쪽 끝의 쇠머리오름에는 우도등대가 있다.
하고수동해수욕장,하고백사라 하여 맑은 옥빛 바다를 자랑하고 있는 이곳은
우도에서 가장 넓은 해수욕장에 속한다.
희고 고운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수심 또한 얕다.
신생대 제4기 홍적세(약 200만년~1만년전) 동안에 화산활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화산도인 이곳 우도에서 볼 수 있는 절경으로는 우도 8경이 있다.
■ 제1경/ 주간명월(晝間明月): 우도봉의 남쪽 해식동굴에서 한낮에 달이 뜨는 모습을 말한다.
바다가 잔잔하고 맑은 날 정오 즈음에 동굴 안으로 햇빛이 반사되어
동굴천장에 달이 뜬 모양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 제2경/ 야항어범(夜航魚帆): 여름밤 고기잡이 어선들의 불빛으로 우도 바다를
휘황찬란하게 밝히는 모습을 말한다.
■ 제3경/ 천진관산(天津觀山): 동천진동항에서 바라 보는 한라산의 모습을 말한다.
한라산을 비롯한 수많은 오름이 주위환경과 어울려 빼어난 모습을 자랑한다.
■ 제4경/ 지두청사(地頭靑莎): 등대가 있는 우도봉 정상에서 바라본 우도전경을 말한다.
■ 제5경/ 전포망도(前浦望島): 우도 밖에서 우도를 바라본다는 의미.
■ 제6경/ 후해석벽(後海石壁): 높이 20여m, 폭 30여m의 우도봉의 기암절벽(광대코지)을 말한다.
■ 제7경/ 동안경굴(東岸鯨窟): 우도봉 아래를 보면 검멀레 해변이 있는데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콧구멍'이라는 동굴이 있다.
썰물이 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길이 150m, 높이 20m, 넓이 15m)
■ 제8경/ 서빈백사(西濱白沙): 홍조류가 굳어져 만들어진 하얀 모래사장,
에메랄드빛 투명한 바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비양도 입구에 세워진 조개껍질로 만들어진 설치물.
우도가 섬 속의 섬이라면 비양도는 우도라는 섬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섬이다.
제주도에는 양쪽에 날개가 있다는 뜻으로 동비양과 서비양이 있는데,
동쪽은 우도의 비양도, 서쪽은 한림의 비양도이다.
동비양은 해가 떠오르는 곳, 서비양은 해가 지는 것을 건져 올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 우도의 비양도에서는 '인어공주' '시월애' 등의 영화가 촬영되기도 했다.
비양도의 끝머리에 서 있는 해안등대.
검멀레 해안. 응회암이 부서져서 모래와 섞인
검은 모래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해변이다.
검멀레 수직절벽에는 수천년 동안 파도에 의해 형성된 해식동굴이 있는데,
우도팔경 중의 하나인 고래굴이라는 뜻을 가진 '동안경굴'이 위치해 있다.
입구는 작지만 안쪽으로는 아주 넓은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도봉을 오르면서... 바로 아랫쪽이 검멀레해수욕장이다.
우도봉에 올라서면, 우도면 공설묘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제주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분묘의 봉분 주변에 사각형 또는 원형으로 돌담을 쌓는데
이를 '산담'이라고 한다.
제주의 산담에는 죽어서도 망자의 혼령이 집으로 찾아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입문(시문)을 만들어 두었다고 하는데, 그 출입문의 위치는 망자의 성별에 따라
우측은 남자, 좌측은 여자로 구분하였다.
시문이 없이 산담을 쌓는 경우에는 시문의 위치에 해당하는 곳에 돌계단을 만드는데,
이 계단은 사람이 드나들 계단이나 영혼이 드나들 시문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고 만든 것이다.
분묘에 산단을 쌓는 이유는 마소의 방목으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함이나
산불이나 들불에서 분묘를 보호할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사계해안도로에서 바라 본 형제섬.
사계리 포구에서 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크고 작은 섬 2개가
형과 아우처럼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렇게 부른다.
각양각색의 수중생물이 살고 있는 관계로, 5~7월이면 몰려드는
감성돔과 벵어돔을 잡으려는 낚시꾼과 다이버들로 붐비며,
평균수심은 15m로 최대 20m를 넘지 않는다.
또한 각종 돔 종류의 고급 어종들과 전복, 소라 등이 많아 이 지역 어부들과
해녀들의 주 소득원이 되는 훌륭한 어장이기도 하다.
이곳 송악산 일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던 곳이어서 당시 건설한 비행장, 고사포대와 포진지,
비행기 격납고 잔해 등이 흩어져 있다.
송악산 입구 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해안진지동굴.
이곳 해안절벽에는 너비 3~4m, 길이 20여m에 이르는 15개의 인공동굴이
뚫려 있어 가슴 아팠던 지난 날들을 말없이 증언해 보이고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은 미군의 본토 상륙에 대비하여
제주도를 결사항전의 군사기지로 삼았다.
송악산 해안동굴진지는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미군 함대를 향해
자살폭파공격을 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이다.
일본군은 송악산 해안을 따라 남서 방향으로 일(一)자, H자,
U자 모양으로 동굴식 갱도를 뚫어 놓았는데, 공사는 진해경비부 소속
제 201부대가 담당하였고, 제주도 주민들이 강제 동원되어 굴착작업을 하였다.
이 군사시설에는 일본 해군특공부대가 배치되어 바다로 들어오는
미군 함대를 겨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송악산을 오르면서 바라 본...
저 멀리 산방산에서 이곳까지는 사계해안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방파제 모양으로 가로지른 곳은 마라도행 유람선 선착장이며,
지금 밟고 서 있는 이곳 아래로는 해안진지동굴이 뚫려져 있다.
송악산의 정상이다. 저 멀리 산방산과 그 오른쪽으로 한라산이 보인다.
이곳 중턱의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가파도, 마라도, 형제섬의 전경과,
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깊은 분화구와 한라산을 배경으로 한
산방산의 모습이 시원하다.
송악산은 성산일출봉과 같이 해안에서 직접 솟아 있어
해발고도(104m)와 비고(99m)가 비슷한 오름으로, 주변의 산방산,
용머리, 단산 등의 기생화산체와 함께 지질, 지형적 측면에서
제주도의 형성사를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곳이다.
송악산에서 내려다 본... 평지에서 그대로 솟아오른 듯한
단산의 산세가 인상적이다.
이곳은 곰솔을 심어놓은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삼림이 적으며,
토양이 건조하여 생태계가 매우 단순하다.
거기다가 방목이 성하여 식물도 소수만이 자란다.
왼쪽에 움푹 파인 곳이 분화구이다.
송악산의 분화구. 내려다 보니 그 깊이에 아찔하다.
기생화산체로 단성화산(單性火山)이면서 꼭대기에 2중의 분화구가 있다.
용회암으로 둘러싸여 중앙에 큰 왕릉 모양으로 솟아 있는데,
제1분화구는 지름 약 500m, 둘레 약 1.7km이고, 제2분화구는 제1분화구 안에 있는
화구로서 지름 150m, 둘레 약 400m, 깊이 69m로 거의 수직으로 경사져 있다.
산 남쪽은 해안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중앙화구 남쪽은 낮고 평평한 초원지대이며,
그 앞쪽으로는 몇 개의 언덕들이 솟아 있다.
지구 표면적의 약 70.8%를 차지하며, 3억 6천만㎢의 면적으로
육지면적의 2.43배가 된다는 바다,
그 넓고 깊은 바다를 뚫고 올라, 가쁜 호흡을 토해내는 바위섬.
고대로 부터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넓이와 깊이로, 또는 해난으로 인한
희생으로 인하여 신비로움과 공포감을 함께 자아내게 했던 바다.
지금까지도 그 내면이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았기에, 여전히 두려운 존재로 남아 있다.
그렇거나 말거나, 크고 작은 배들은 그 바다 위로 나 있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무심히 오고 갈 뿐이다.
한 줄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를 양분하는...
비록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땅이지만,
두 발로 딛고 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냥 마음이 편안해진다.
거친 파도와 바람이 함께 만들어 놓은 상처,
아니면 인간에게 주는 바다의 또 다른 선물...
뭔가 일이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 혹은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면 생각나는 바다.
막힘없이 시원하게 터진 그 곳에서 인간은 꿈을 발견하게 되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짙푸른 바닷물에서 모험을 떠 올리며,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에서 용기와 도전을 배운다.
바다는 그 넉넉함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또 다른 삶의 지혜마저 일깨워 준다.
태양이 자세를 낮춤에 따라, 바다도 서서히 휴식을 준비한다.
인간에게 있어 또 하나의 삶의 터전이기도 한 이 바다는 곧 적막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아니,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도 누군가의 치열한 삶은 계속될 것이다.
초지 사이로 이어진 데크계단을 걸어올라 등대위에 다다랐다.
그 곳에서 바라 본 소매물도의 모습도 등대섬에 못지 않다.
거북의 형상을 한 소매물도의 한 자락이 대매물도를 향해 연민을 품은 듯 하다.
그 곳을 향해 자꾸만 달아나려 하는...
여전히 흐린 하늘을 무겁게 떠받치고 있는 등대.
등대 뒤쪽으로는 수직 천인단애이다.
그 낭떠러지 위에 살짝 얹혀진 등대가 사뭇 위태로워 보인다.
절벽 아래로는 이를 집어 삼킬 듯 파도가 할퀴고 있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호기심에 절벽 가까이 접근해서 아랫쪽으로 내려다 봤다.
바다위의 또 다른 작은 섬에서는 강태공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세월을 낚아 올리고 있고, 에메랄드 빛 바다색은 서늘함을 더해준다.
아찔한 절벽으로 형성된 이곳 등대섬에서는 '추락주의' 팻말 또한 심심찮게 보인다.
그런만큼 보는 즐거움 또한 배가된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위를 쉴새없이 오가는 유람선,
그리고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숨죽이듯 묵묵히 지나가는 화물선.
모두가 무심히 그냥 지나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아마도 그들의 시선만큼은 이 곳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등대섬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떠나 오면서 뒤돌아 본 소매물도.
우측으로 선착장과 마을이 보이는데, 그 곳에서 좌측 사선방향으로 산을 올라서면
뒤쪽으로 등대섬이 나타난다. 중간부분의 제일 높이 솟은 곳은 해발157m의 망태봉 정상이다.
소매물도는 면적 0.51㎢, 해안선 길이 3.8km, 최고점 157.2m의 크기를 가진
고만고만한 섬이지만, 그 몇 배 이상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멋진 섬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 소매물도의 주변 지명유래
▶ 당산제와 중당제
◎ 당산제/ 제사는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 첫 계명시(첫닭 우는 시각)에
신단(神壇)앞에 제물을 진설(陳設)하고 분향한 다음, 정해진 순서대로 제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소지(종이를 불사르는 것)를 한다.
◎ 중당제/ 정월 초하룻날 이른 아침, 집집마다 밥상을 차리고 나와 중당에 모아 놓고
마을의 평안과 뱃길의 무사 및 풍어를 비는 제사를 지냈다.
▶ 망태봉
소매물도 마을의 뒷산 해발 152m의 봉우리로 옛날 이 산 정상에서 섬사람들을
노략질하는 해적들의 동정을 망보던 망대가 있었다 하여
'망대봉'이라 한 것이 '망태봉'으로 와전되었다.
▶ 상어굴
이 굴은 소매물도 서쪽 해안 절벽 아래에 난 신비한 동굴로 100m의 기암절벽에
바다로 향하여 뚫린 50m가량 되는 동굴이다.
해마다 산란기가 되면 굴 입구에 거대한 상어떼들이 몰려들어 암수끼리 짝짓기를 하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는데 '상어굴'이란 상어떼들이 짝짓기를 하는 굴이라 하여 일컬어진 이름이다.
▶ 멸나래
멸(멸치를 이 고장 사람들은 그냥 멸이라 한다)을 널어 말리는
나래(너럭바위-널따란 반석)라 하여 일컬어진 지명이다.
▶ 남매바위
소매물도 북쪽 해안에 나란히 위치한 흡사 거북이 모양의 두 개의 오묘한 바위를 가리키며,
위에 있는 바위를 오빠바위라 하고 바닷가에 있는 바위를 누이동생바위라 한다.
이 바위는 직경이 10여m에 높이 약 5m로서 쌍둥이 남매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 글씽이강정
진시황이 서불이란 신하로 하여금 불로불사약을 구하여 오도록 명하여,
선남선녀 무리 각각 3000명씩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구하러 해동국인 한반도 남해안을
배를 타고 지나면서 천하절경인 곳마다 서불과차란 글을 새겨 놓았다고 하는데,
소매물도 등대섬에도 굴 절벽에다 서불과차란 네 글자를 새겨
가까스로 판독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 곤장여 (촛대바위)
등대섬의 최남단 쪽빛 물감을 짓이겨 푼 듯한 짙은 청람색 바다위에 우뚝 서 있는,
형상이 마치 촛대를 닮은 듯한 바위
▶ 큰굴비와 작은굴비섬
'굴비'란 지명유래에 대해서 확실히 아는 사람이 없다. 글자 그대로의 굴비란 뜻은
소금에 얼간해서 통으로 말린 조기를 말하는데,
이런 뜻의 굴비와 이 두 섬 이름인 굴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굴비섬의 한문표기는 구을비(九乙非)로 되어 있는데, 이는 음 그대로 음역해서 적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이 두 굴비섬을 멀리서 조망해 보면, 흡사 상주가 상복을 입을 때 두건위에 덧쓰는 굴건(屈巾)이나
벼슬한 중이 쓰는 갓인 '글갓'처럼 보이는데, 굴건이나 글갓이 굴비로 변하지 않았나 추측하기도 한다.
▶ 전갱이강정
두령여 남쪽 드넓게 펼쳐져 나간 서쪽 바다로 향해 뚫린 강정.
전갱이란 농어목 전갱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몸길이 40cm가량에
긴 방추형으로 몸빛은 등쪽은 암록색이고 배쪽은 은백색이다.
온대성 어종으로 우리나라 연안에 널리 분포하며 부산에서는 메가리,
전남에서는 매생이라고도 불리는데, 바다 물고기가 풍성했던 시절 멸치떼는 말할 것도 없고
이따금 전갱이 떼가 몰려들어 본 강정안이 물이 말라 붙을 정도로
밀려드는 지형이라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다음날, 어제 갔던 길을 그대로 다시 올랐다.
등대섬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건만, 날씨는 아쉽게도 어제와 달리 구름이 많다.
이미 한차례 눈인사를 주고 받은 뒤여서 인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벌써 친근감마저 느껴지고...
언제 나타났는지 유람선 한 척이 다가와 등대섬을 한바탕 쓰윽 훝어 보고는
그냥 뒤쪽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아마 저기서 올려다 보는 풍경도 여기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못지 않으리라.
아랫쪽 전망대에서 바라 본 등대섬으로, 해식단애와 어울린 등대가 멋스럽다.
그러나 흐려서 바래버린 하늘색 때문에 등대의 윤곽이 그대로 묻혀버려 아쉽기만 하다.
같은 위치에서... 수려한 풍광 때문이어서 인지
어느 각도에서 보나 그대로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 같다.
바다를 향해 우뚝 서 있는 기암석.
무너져 내린듯한 그 아랫쪽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위쪽에 보이는 섬은 대매물도.
기암석 위쪽으로 길이 보인다.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그 뒤로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작은 배는 한껏 내달리고...
그와는 반대로 제법 커다란 배는 오히려 더 여유롭게 떠다닌다.
이렇듯 바다는 그냥 평온하게 보일 뿐, 오가는 배들로 인해 쉽게 잠들줄을 모른다.
바닷길이 열린 탓인듯, 한동안 적막감에 쌓여있던 등대섬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서서히 활기를 찾아간다. 그 위에 홀로 서 있는 하얀 등대도 한동안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 소매물도등대는...
▶ 최초점등일 : 1917. 08. 05
▶ 면적 : 74.009㎡ (22.388평)
▶ 운용표지
광파표지 - 시인거리 약 46km
음파표지 - 청취거리 약 9km
이곳 소매물도 등대는 하얀색의 원형 콘크리트 구조물로 높이는 16m이며,
주변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그 모양 또한 고풍스런 느낌을 준다.
등대불을 밝히는 등명기는 2209*1085cm의 대형 프리즘 렌즈를 사용하고 있어,
그 규모가 웅장하면서 48km거리까지 불빛을 비추기 때문에 남해안을 지나는
선박들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물이 들고 남에 따라 소매물도와 동쪽의 등대섬을 연결시켜주었다가 다시 나누어지는
70m의 열목개 자갈길. 그 길을 건너서 드디어 등대섬으로 진입했다.
그 곳에서 소매물도쪽으로 바라다 본 모습이다.
▶ 열목개/ '열린 목'이라 하여, 물이 나서(간조시) 소매물도와 등대도 사이에 목이 드러나
뱃길을 막았다가 만조시 이 좁다란 목이 물속에 잠기게 되면, 동서 바다가 열려
배를 타고 지나갈 수 있어 부른 지명이라고도 하고, '여린 목'이라 하여 두 섬을 잇는 목이
여리고 가늘게 생겼다 하여 부른 이름이라고도 한다.
목개는 '열린 목' 또는 '여린 목'이 '열목'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영에서 뱃길로 약 20km 해상에 위치한 매물도는, 행정구역상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속하며 '대매물도'와 '소매물도'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 우리나라 섬 중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소매물도로 향했다.
거제 저구항에서 30여분 걸려 소매물도에 도착하니, 선착장 왼쪽으로
병풍같이 둘러쳐진 해안절벽이 가장 먼저 맞아준다.
그 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짙푸른 남해바다가 무척이나 시원스럽다.
소매물도는 지난 2003년 해양부가 전국의 어촌을 대상으로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꼽히기도 했다.
선착장, 우측으로는 절벽길이다.
평지가 드물고, 해안 곳곳에 해식애가 발달한 지형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리자 마자 바로 언덕길이다. 첫 풍광부터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짐을 풀고나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등대섬이 궁금하여 곧바로 망태봉으로 향했다.
선착장에서 망태봉까지 0.75km, 망태봉에서 등대까지는 1.30km로, 고만고만한 거리이다.
도중에 만난, 1996년도에 폐교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폐쇄되어 있는 소매물도 분교장터의 모습으로,
곳곳에 수국이 피어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니, 너무나 조용하여 으시시한 분위기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이 곳은 영화 '파랑주의보'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능선에 올라서서 잠시 꺾어 내려가자, 눈에 익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만 보아 오던 바로 그 등대섬이었다. 일명 쿠크다스 섬이라고 했던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전체 모습을 조망해 보기 위해 오른 망태봉 정상, 그 곳에서 바라 본
등대섬의 모습으로, 마치 바다위를 헤엄쳐 가는 거북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등대섬 저 뒤쪽으로는 기암절벽이 형성되어 있어 파도와 어우러지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주황색 지붕을 한 건물은 항로표지관리소.
■ 소매물도의 자연환경
▶ 기상/ 평균기온 14.7℃(최저 -10.7℃, 최고 36.9℃), 평균풍속 2.5m/s(최대 46.6m/s)
연평균 강수량 1,562.7mm, 상대습도 65.4%
▶ 지형/ 표고 20m 미만(45.6%), 경사 20%초과(75.8%)
▶ 식생/ 식재한 소규모 곰솔군락과 초본류의 이차초지로 대별됨.
▶ 경관/ 등대섬 전체는 통영8경에 속하며 경관이 뛰어나다.
등대섬의 기암절벽 사이로 시퍼런 파도가 몰려와 하얗게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하루 두 번 있는 썰물때에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연결하는 바닷길이 열려
이 길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물론, 지금 이 정도라도 충분히 등대섬으로 건너갈 수는 있으나,
물때가 닫히는 시간이라 섣불리 나서지를 못하고 그냥 되돌아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쉬울 것은 없다. 내일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
되돌아 오면서 망태봉을 거쳐 내려서자 마자, 올라갈때 보이지 않던
돔형 지붕의 구조물이 눈에 들어 온다. 이 건물은 이전의 '세관 매물도 감시서'로
2~3명의 세관직원이 상주하면서 밀수를 방지하기 위해 레이더와 망원경을 이용,
단속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대로 방치된 상태다.
독특한 모양새로 시선을 끌기에, 그대로 두기에는 아까운 구조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무쪼록, 계속 그대로 방치되어 흉물로는 남아있지 않았으면 한다.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에 위치한 구조라해수욕장은 와현해수욕장과 함께
거제도에서 두 곳 밖에 없는 백사장이 있는 해수욕장으로,
길이 1km의 해안으로 펼쳐진 모래가 부드럽고, 수심이 완만하며,
수온 또한 해수욕하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선 중기에 축성한 구조라성지와 내도, 외도, 해금강 등 이름난 여러 명승지가
가까이 있어 유람선을 타고 이곳들을 두루 관광해 볼 수도 있다.
유람선 선착장은 구조라해수욕장 바로 옆 구조라항에 위치해 있다.
또한 이 곳에서는 싱싱한 생선회와 멸치, 미역 등의 특산품도 만나 볼 수 있다.
구조라해수욕장 서쪽 해상으로 빤히 바라다 보이는, 효자의 전설이 담겼다는 윤돌섬.
이 섬은 육지와는 약 500m정도 떨어져 있으며 무인도로,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생달나무 등 상록 활엽수 및 노거수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경남 기념물 제239호로 지정되어 천연림으로 보호되고 있는만큼,
일반인의 출입 또한 금지되어 있다.
■ 윤돌섬의 전설
윤씨 삼형제와 함께 윤돌섬에 사는 늙은 노파는, 북병산 밑 양지마을에 사는
김망월이라는 홀아비 늙은 어부와 함께 서로 외로움을 달래게 된다.
노파할멈이 매번 아들 삼형제 몰래 망월노인을 찾아가곤 했는데,
이 윤돌섬은 북병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그 줄기가 간조때면 물위로 드러나기 때문에
윤돌섬에서 양지마을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엄동설한이 되고나서 부터는 간조때를 기다려 섬과 육지사이를
버선을 벗고 걸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자니 추위때문에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라,
그토록 보고싶은 망월영감을 만나지도 못하고 그저 애만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 본 윤씨 삼형제가 홀어머니를 위해
징검다리를 놓아주게 되면서 부터는 버선을 벗지 않고서도 건널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섬을 효자섬이라고 불렀다가, 윤씨 삼형제가 돌다리를 놓았다는 의미의
윤돌섬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설처럼 바닷길은 사람이 건널 수 있을 만큼 물이 빠지지는 않는다.
다만 1년에 딱 한 번, 진도 바닷길이 열리는 시기에는 거제도와 연결이 된다고 한다.
그러한 사연을 담은 윤돌섬 주위로 고깃배들만 무심히 오가고...
해수욕장 전면으로 보이는...
저 멀리 왼쪽, 동그랗게 봉긋이 솟은 섬이 해금강이다.
해금강을 배경으로 오가는 여러 종류의 배들.
내륙형 해안이어서 인지 대체로 조용하고, 호수처럼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곳 구조라해수욕장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모래질이 좋기는 하지만
백사장의 폭이 좁으며, 따가운 햇볕을 가려줄 그늘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