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의 입구에는 영사각이라는 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이는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외가람각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때를 벗는 목욕을 하게 된다.
전남 순천 송광사의 세월각, 척주각이 이와 같은 용도라 한다.
경남 기념물 제17호로,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 자락에
위치한 표충사, 그 절의 정문인 수충루의 모습이다.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드문 서원 정문 형태의 누각인데, 이는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시고 서산대사와 기허대사의 위패를 같이 모신 표충서원이
표충사(表忠寺) 경내에 있기 때문이다.
표충사는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명명한 절이다.
654년(태종무열왕1)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竹林寺)라 하였으며,
829년(흥덕왕 4) 인도의 승려 황면선사(黃面禪師)가 현재의 자리에 중창하여
영정사(靈井寺)라 이름을 고치고 3층석탑을 세워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전한다.
절 이름을 표충사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은 표충사(表忠祠)를 밀양시
무안면에서 옮겨오면서 부터 라고 한다.
왼쪽으로 부터 표충서원, 표충사(表忠祠), 유물관.
표충서원은 영조 20년(1744년) 왕명으로 조정에서 임진왜란때 구국구민하신
3대 성사를 모시고 매년 춘추로 제향을 올리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종 8년(1871년)에는 대원군에 의해 서원철폐령이 내렸으나 이곳 표충서원은
훼철을 면했다고 한다.
또한 표충사는 임진왜란때 승병장으로 큰 활약을 펼쳤던 사명대사의 충정과
깊은 관련이 있어 이 유물관에는 사명대사와 관련된 16건 79점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사천왕문에서 바라본 수충루.
근래에 조성된 사천왕문의 목조사천왕상.
표충사의 사당영역과 사원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이 사천왕문은
원래는 대광전 맞은편 우화루 앞쪽에 있었으나, 최근 사당영역을
새롭게 조성하고 절의 진입로를 옮기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표충사 삼층석탑과 석등.
▶ 표충사 삼층석탑 (보물 제467호),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7.7m의 3층 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본적으로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상륜부에는
여러 장식과 함께 아직도 철주가 높이 솟아 있고, 삼층의 지붕 모서리에는
작은 풍탁을 달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다.
기단과 지붕돌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늦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 표충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
이 석등은 기둥돌(竿柱石)과 등(燈)을 넣는 화사석(火舍石), 그리고 화사석을
받쳐주는 위 받침돌(上臺石)과 지붕돌(屋蓋石) 등을 모두 갖추었다.
다만 석등의 전체를 지탱해 주는 받침대(基壇)와 기둥을 받쳐주는
아래 받침돌(下臺石)은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조각의 수법이나 규모 등 전체적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의
석등으로 추정된다.
표충사 대광전(大光殿)과 팔상전(八相殿).
▶ 표충사 대광전(大光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이다.
대광전은 표충사의 중심 불전(佛殿)으로 가운데 있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질병과 무지를 다스리는 약사불을, 서쪽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각각 봉안하고 있다.
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는 하지만, 전란 등으로 불타 버린 것을
1929년에 다시 지었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八作) 다포계(多包系) 양식으로,
기둥머리의 용머리 조각과 추녀의 장식들이 화려하고 섬세하며, 기둥과
기둥 위 장식들의 간격이 동일하게 배치되어 균형미를 잘 살리고 있다.
또한 건물 네 귀퉁이에는 추녀가 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4개의 기둥(活柱)을
따로 두어 추녀를 받치고 있으며, 건물을 받쳐주는 받침돌(基壇石)과
주춧돌(礎石)은 다듬은 돌로 되어 있어 건물의 품위를 높여주고 있다.
특히 4개의 기둥 중 앞쪽의 기둥은 팔각형인데 반해 뒤쪽의 기둥은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구성은 매우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건물은 화려하고 섬세한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다.
▶ 표충사 팔상전(八相殿).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1호 이다.
팔상전은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표현한 탱화와
존상(尊像)을 모시는 법당이다.
팔상은 하천(下天), 탁태(託胎), 강탄(降誕), 출가(出家), 항마(降魔)),
성도(成道), 전법륜(轉法輪), 입열반(入涅槃)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충사에는 조선 철종대에 환월선사(幻月禪師)가 지장전 옛 터에 세운
팔상전이 있었으며, 지금의 것은 표충서원이 있던 곳에 1971년 옮겨 온 것으로
그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표충서원은 사명대사 8세 법손 월파당 천유(月坡堂 天有)가 서산(西山),
송운(松雲), 기허(騎虛) 삼대사(三大師)의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享祀)를 받들던 곳이다.
왼쪽부터 관음전과 명부전.
▶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한다.
표충사 관음전에는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상징하는 42수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좌우보처로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응림해 있으며,
후불탱화로는 1930년에 조성된 천수천안관세음보살 탱화가 모셔져 있다.
▶ 표충사 명부전(冥府殿)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저승의 유명계(幽明界)를 사찰 속에 옮겨 놓은 법당이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며,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표충사 경내에 관음전과 나란히 있는 이 명부전의 건립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임진왜란 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광해군 때에 복구되지만 숙종 때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주지 도한(道閑) 등에 의해
다시 곧바로 복구가 이루어진다.
헌종 때에는 월파선사(月坡禪師)가 명부전 자리를 서산(西山), 송운(松雲), 기허(騎虛)
삼대사(三大師)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影堂)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지금 전하는 것은 1929년에 복원한 것을 1989년에 개축한 것이다.
이곳 표충사에는 예전에 TV에 출연했던 경력이 있는,
그래서 이제는 유명인사가 다 되어버린 토끼스님이 살고 있다.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고 예불시간이 되면 스스로 알아서
법당으로 들어가 절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표충사에 터를 잡은지 오래, 그래서 이제는 사찰의 식구가 다 되어버렸다는 그 토끼...
더운 날씨 때문일까. 건물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 잠깐동안 바깥의 동정을 살피더니
이내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식육목 고양이과의 포유류인 고양이.
고양이는 야생성으로 인해 야간시력은 사람보다 우수하나 낮 시간의 시력은 열악하다.
또한 모든 고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유전학적 특징도 지니고 있다.
고양이는 전형적인 육식동물로 생리작용이 고기를 소화시키는데 최적화 되어 있어
식물과 같은 것을 소화시키는 데는 제한이 따른다.
따라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
비록 공동생활을 하게 될 경우라도 무리의식이 없어서 사회적이지는 않으며,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또한 고양이의 간은 사람이나 개와 같은 다른 동물에 비해 해독력이 떨어지는 편이어서
가정에서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물질도 고양이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
고양이를 죽이거나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불행을 당하게 된다는 믿음은
동양뿐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에도 있을 정도로 이에 관한 미신은 많다.
어느 곳에서는 고양이가 시체를 뛰어 넘으면 시체가 움직인다고 하여
그 가까이에 두지 않는 풍습까지도 있다고 하니...
고양이는 영악한 면 때문에 요물의 이미지로 인식되어
사람들로부터 기피를 당해왔으며, 특히 공포영화에서는
불길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받는 애완동물로 다시 태어났다.
토끼목 토끼과 동물의 총칭, 토끼.
종류가 많은데, 일반적으로 토끼라고 하면 유럽굴토끼의 축용종(畜用種)인
집토끼를 가리킬 때가 많다.
토끼류는 일반적으로 멧토끼류(野兎類)와 굴토끼류(穴兎類)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종에 따라 크기는 매우 다양하며 작게는 1~1.5kg, 크게는 7~8kg에 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