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k의 사진놀이터.

'분류 전체보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31 Page) :: spk의 사진 놀이터
Travel





보물 제383호인 돈화문(敦化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태종12년)에 처음 지어졌다.
지금의 돈화문은 1609년(광해군 원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敦化는 '중용'의 대덕돈화(大德敦化)에서 가져온 것으로
'(큰 덕은 백성 등을) 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금천교(錦川橋)와 진선문(進善門).

                               궁궐의 정문을 지나면 금천교에 이르는데 금천교는 1411년에 축조된
                               궁궐의 초입부에 놓인 돌다리로 두 개의 홍예를 내어 풍수지리상
                               길한 명당수를 흐르게 한다.
                               이 다리 아래에는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해태상과 거북상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진선문은 창덕궁의 중문으로 태종 때 신문고를 설치해 두었던 곳이다.


                               창덕궁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은 물론,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행해졌던 인정전(仁政殿).
국보 제225호로 궁궐의 대표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인정전 월대(月臺)의 중앙 답도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봉황이 새겨져 있다.








                               조선의 궁궐 정전에는 공통적으로 정면에 임금의 용상(龍床)과 나무로 만든
                               곡병(曲屛)을 두고 뒤에는 일월오악병(日月五岳屛)을 둘렀는데
                               일월오악도에는 해와 달, 다섯개의 산봉우리, 폭포, 파도,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천장에는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다.
                               1908년 전기시설이 가설되면서 이곳 인정전에 전등이 설치되었다.









창덕궁 인정전의 지붕에는 9개의 잡상(雜像, 어처구니)이 놓여있다.


 







왕비의 침전으로 지어졌으나 임금도 자주 거처하였다는 보물 제816호인 대조전(大造殿).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왕비의 침전인 서온돌과 임금의 침전인 동온돌로 나뉘어진다.
이 건물에는 용마루가 없는데 이는 용으로 비유되는 임금이 잠자는 곳에 
또 다른 용을 나타내는 용마루가 있으면 두 용이 충돌한다 하여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1917년 이 건물이 불에 타자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을 옮겨다 지었으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후인 순정효황후가 사용했던 침대. 
대조전에 비치되어 있으며 길이 224cm, 폭 154cm, 높이 113.5cm의 크기이다.
1988년경 한차례 일부 수리가 있었으나 매트리스 중앙부가 함몰되고
덮개천도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수리 · 복원하였다.








경훈각(景薰閣) 뒷편에는 계단식 화단인 화계(花階)를
조성하고 괴석을 설치하였다.
좌측 구조물은 벽돌로 쌓아 만든 굴뚝으로 가운데에는 
사슴과 학을 조각해 장식하였으며, 우측 계단과 연결된 문은
북쪽 후원으로 통하는 출입문이다.

 







                               왕세자가 교육을 받거나 책을 읽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잠시
                               왕가의 내의원으로 쓰이기도 했던 성정각(誠正閣).
                               지금은 후원으로 가는 길에 조선시대에는 중회당이 있었으며,
                               이 일대는 왕세자의 거처인 동궁이었다.
                               또한 순조의 장남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때 주로 기거하면서
                               정궁으로 쓰던 곳이기도 하다.

                               성정각의 동쪽 누각에는 동쪽을 향해 희우루(喜雨樓),
                               남쪽을 향해 보춘정(報春亭)이란 편액이 각각 걸려있다.  
                               희우루는 '가뭄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하다'라는 뜻으로
                               1777년(정조1년), 매우 가물었을 때 이 누각을 중건하기 시작하자마자
                               비가 내렸고, 또 얼마간 가뭄이 들었다가 누각이 완성되어 임금이
                               행차하자 또 다시 비가 내렸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보춘정은 '봄을 알린다'는 뜻으로 봄은 동쪽을 의미하며
                               태양이 뜨는 방향, 즉 왕세자를 일컫는다.









                               이 외에도 창덕궁은 비원(秘苑)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후원(後苑)과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황실 가족이 마지막까지 머무르던 낙선재가 유명하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창덕궁 홈페이지




'Tra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립서울현충원  (0) 2011.04.07
N서울타워  (16) 2011.04.04
창경궁(昌慶宮)  (14) 2011.03.29
영덕 장사해수욕장에서...  (10) 2011.03.26
영일 장기읍성  (18) 2011.03.08
Travel





창경궁의 정문이자 보물 제384호인 홍화문(弘化門).

창경궁은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이 창덕궁 동쪽에 1483년에 완공한 궁궐로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지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 · 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 · 환경전 · 경춘전 ·
인양전 · 통명전 등의 침전 및 양화당 · 여휘당 · 사성각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 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으며 창덕궁과
경계없이 하나의 궁궐로 사용하여 둘을 합쳐 동궐(東闕)이라 칭하였다.
창건 초기에는 쓰임새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 · 
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정궁의 역할을 하면서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옥천교(玉川橋)를 사이에 두고 명정문에서 바라 본 홍화문.
옥천교는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御溝) 위에 설치한 다리다.
조선시대의 왕궁은 모두 명당수 위의 석교를 건너서
정전(正殿)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졌다. 








명정문(明政門). 이곳을 들어서면 명정전이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하면서 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4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다.








국보 제226호인 명정전(明政殿).
24개의 품계석(品階石) 사이로 명정문과 연결되는 어도가 깔려있다.
이곳에서는 임금님이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국가적인 행사가
거행되었으며 1544년 인종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정전인 명정전과 명정문, 홍화문은 광해군 8년(1616)에 중건된 이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 중 명정전은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으로, 조선 왕궁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명정전의 내부 바닥에는 전(塼)을 깔았고, 뒤편 중앙부에는 왕좌인 
                               용상이 있는데 그 뒤로 일월도의 병풍이 놓여져 있다.
                               그 위로는 닫집으로 된 보개(寶蓋)가 있고 천정의 중앙부에는 
                               한층을 접어올린 쌍봉문(雙鳳紋)이 있는 보개천정을 장식하였으며,
                               그 주위로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명정전의 뒷면 중앙 어칸(御間) 앞으로 설치된 복도.
빈양문과 연결되며 이곳을 통하면 바로 내전으로 들어서게 된다.
마주 보이는 건물은 명정전이다.









함인정(涵仁亭)과 그 뒤의 환경전(歡慶殿).
이곳에는 원래 성종 15년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 11년(1633)에 인경궁의
함인당을 이건하여 함인정이라 했다.
이곳은 특히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물 제846호인 풍기대(風旗臺). 풍기대 위의 구멍에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재던 것이다
                               영조 8년(1732)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 높이는 228.1cm,
                               하부대석 높이는 92.4cm, 상부 팔각주의 높이는 135.7cm이다.









통명전(通明殿). 보물 제818호이다.
창경궁의 연조 공간으로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이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중건된 것으로 지붕 위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 문화재청 창경궁



'Tra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N서울타워  (16) 2011.04.04
창덕궁(昌德宮)  (17) 2011.04.01
영덕 장사해수욕장에서...  (10) 2011.03.26
영일 장기읍성  (18) 2011.03.08
포항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적산가옥)  (12) 2011.03.01
Travel




동해안 7번 국도,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 위치한
장사해수욕장(長沙海水浴場).
백사장 길이 900m에 폭 50m로 평균 수심은 1.5m 정도이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경사가 완만하며, 백사장에 울창한 송림이 있어
여름철에는 가족 피서지로 적합하다.








이곳은 6.25전쟁때 장사상륙작전의 전적지이기도 하다.








국도변에 인접하여 있기에 지나는 길에 잠시들러
가벼운 휴식과 함께 마음의 여유라도 찾아봄직하다.








장사해수욕장은 면 소재지에 위치한 관계로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영덕군에서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바가지 요금이 없다고 한다.
인근에 경보화석박물관과 삼사해상공원이 위치해 있다.








바닷물은 더 없이 투명하고...








백사장 또한 깨끗하기만 하다.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저 아가씨들의 발을 보라.
이 추운 겨울인데도 맨발이지 않은가.








특히 이곳에는 가자미 · 넙치 · 우럭 등이 많아
바다낚시꾼들이 연중 찾아들고 있다고 한다.








                               누구 말마따나 이렇게 넓은 바다에 고작 새우 한 마리를 
                               매달아 놓고 물고기가 물어주기만을 기다리다니...
                               어찌보면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지만, 생각과 달리 물고기가 
                               그것을 발견하고 입질을 해댄다는 사실이 그저 신통하기만 하다.
                               물론 그만큼 이 바다에는 물고기가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늦은 오후가 되니 고즈넉한 정취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주위 사람들이 낚아 올리는 물고기들을 보고나서 부터는
한 마리라도 더 잡아야겠다는 욕심이 앞섰지만,
자리를 뜰 즈음에는 비록 망에는 물고기 한 마리 담겨있지 않았어도 
아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희안하게도 마음은 더 편안해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건 순전히 바다 때문인 것 같았다.
바다는 모든 것을 잊게 해주고 마음을 비우게 해 주었다.
아마도 그것이야 말로 바다가 주는 진정한 힘은 아닐런지...





'Tra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덕궁(昌德宮)  (17) 2011.04.01
창경궁(昌慶宮)  (14) 2011.03.29
영일 장기읍성  (18) 2011.03.08
포항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적산가옥)  (12) 2011.03.01
포항함 체험관  (0) 2011.02.20
Animal




눈이 내린 들판이라 해서 그저 적막만이 감도는 것은 아니다.
분주하게 재잘거리며 공간을 휘저어 다니는 참새들이 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떼로 몰려 다니며 이리저리 오가기 바쁘다.








그러다가 간혹 햇빛이 내려비치기라도 하면
한적한 곳에 모여앉아 따뜻한 일광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비록 메마르고 추운 겨울이지만, 오롯이 함께 하기에
이들에게는 외로움이란 자리를 잡을 틈이 없어 보인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까치들이 용케도 눈 속에 묻힌
먹을꺼리를 찾아내어 열심히 쪼아대고 있고...



...............................................................................................................................................................................





노랑턱멧새는 가만히 주위를 관망하며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즐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텃새이자 겨울새로
뒷머리의 깃이 약간 길어서 세울 수 있다.








미동도 않은채 뭔가 깊은 상념에 빠진듯한 또 다른 노랑턱멧새 암컷.
뒷머리 깃과 눈썹, 멱의 빛깔이 연하고 머리는 갈색이다.








노랑턱멧새 수컷.
수컷은 머리꼭대기와 뺨, 가슴이 검고 눈썹무늬와 멱은 노란색이다.
이들은 보통은 4~5마리, 많게는 10마리씩 무리지어 땅 위에서
식물의 씨앗과 벌레 등의 먹이를 찾는다.



...............................................................................................................................................................................





척색동물문 포유강 우제목 사슴과 고라니속의 고라니도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몸통은 황갈색이며 털의 끝은 검정색이다.
얼굴은 회갈색 또는 황갈색이고, 아래턱과 목 부위는 회백색,
그리고 복부쪽은 황백색이다.
새끼는 흰색 점무늬가 세로로 열을 지어 있으며 생후 2개월 정도 후에 없어진다.
암수 모두 뿔이 없으나 수컷은 긴 송곳니가 길게 자라난 엄니를 가지고 있으며
암컷은 길이가 짧아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물을 좋아하며 수영을 잘하는 고라니는 단독생활을 하기에
무리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유난히도 외로워 보인다.
이들은 대게 새벽과 해질녘에 가장 많은 활동을 한다.



...............................................................................................................................................................................





이들의 눈에는 이 새하얀 눈은 과연 어떤 존재로 비춰질까.
이색적이고도 재미있는 놀이터?
아니면 삶을 위태롭게 하는 위협적인 존재?

잠시 스쳐 보기에는 이들에게 있어서의 겨울이라는 계절은 
그저 힘겨운 시간의 연속으로만 기억되어질 것만 같다. 



참고/ 네이버자연도감



'Anim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곤충 - 19  (15) 2011.09.16
새 - 13 (동고비, 참새, 제비)  (12) 2011.07.26
새 - 12 (콩새, 호랑지빠귀)  (26) 2010.12.12
나비 - 5  (18) 2010.11.01
동물 - 6  (16) 2010.10.28
Travel




마주 보이는 산 정상부의 구조물이 바로 영일 장기읍성(迎日 長鬐邑城)이다.
사적 제386호로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에 위치해 있다. 
산성의 역할을 겸한 읍성으로 해발 252m인 동악산에서
해안쪽인 동쪽으로 뻗어내려오는 지맥 정상에 축성된 형태이다.
 







읍성이란 지방의 관아와 민가의 취락지를 함께 둘러서 쌓은 성으로,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장기읍성은 산꼭대기에 있으면서 읍치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어
읍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기록에 의하면 고려 현종 2년(1011)에
동으로는 왜적, 북으로는 여진족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토성으로 처음 쌓았고
조선시대 세종 21년(1439)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당시 읍성의 둘레는 2,980척(약 1,392m)에, 높이 10척으로
4개소의 우물과 음마지(飮馬池)로 사용되는 2개소의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성의 형태는 타원형으로 3개의 성문과 옹성, 그리고 치성을 갖추고 있다.








현재 읍성의 둘레는 1440m, 성벽높이 약 3.7~4.2m,
성벽 두께는 하부가 약 7~8m, 상부가 약 5m라고 한다.








옹성(甕城)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또 한 겹의
성벽을 둘러 쌓아 이중의 성벽을 만드는 성곽 구조물로
월성(月城)이라고도 한다.
성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옹성을 통과해야 하며,
성문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 접근하는 적을 삼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장기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성내에는 교육기관인 장기향교와 동헌터가 남아 있는데,
동헌은 면사무소 안으로 이전하여 보호하고 있다.








읍성은 대부분 복원된 상태이나 한쪽 능선으로는
성곽이 새로이 복원, 축성되고 있다.
보기보다는 능선이 꽤나 가파르다.








또한 이곳 장기읍 일원은 조선시대 유교의 대가 우암(尤庵) 송시열(宋詩烈)과
실학파의 태두(太斗)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문화재청 홈페이지.



'Tra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경궁(昌慶宮)  (14) 2011.03.29
영덕 장사해수욕장에서...  (10) 2011.03.26
포항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적산가옥)  (12) 2011.03.01
포항함 체험관  (0) 2011.02.20
중국 베이징(북경) - (15) 수도박물관(首都博物館)  (14) 2011.02.11
Natural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고 했던가.
그런 면에서 보면, 지난 겨울은 진정한 의미의
겨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혹독하리만큼 추웠던...
그런만큼 견디기는 쉽지 않았으나, 계절의 제자리를
찾은 듯하여 한편으로는 반가운 그런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겨울이 아니다.
그렇다고 봄도 아니다.
다만 따뜻해진 햇볕만이 봄이 가까이 와 있음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미 남녘에서는 봄소식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터...
머지않아 이곳에서도 곧 현란한 색의 축제가 시작될 것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야 말, 봄이라는 이름의...








봄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가까이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다만 눈에 나타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혹시 모를 일이다.
봄은 이미 우리곁으로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의 우둔함을 탓하고 있을런지도...








지난 세월동안 꿋꿋하게 살아온 생명들,  
이제는 파릇한 새싹들을 피워낼 일만 남았다.
그러나 이번 봄도 아주 짧게 스쳐지나가버려
오히려 아쉬움만 남겨주는 것은 아닌지...









생의 절정에서 더 이상의 미래는 필요하지 않다.
다만 행복한 오늘만이 있을 뿐이다.
겨울을 이겨낸 것에 대한 보상...
그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봄은 여름을 너머 가을로, 
                               그리고 또 그렇게 겨울로 되돌아 갈 것이고...

                               순리에 역행하지 않는 자연의 그 청정함과 순수함은 
                               어쩌면 인간들이 바라는 궁극적인 목표일런지도 모른다.
                               결국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수 밖에 없기에, 
                               인간의 삶에 대한 해답은 굳이 먼 곳이 아닌 
                               가까운 자연에서부터 찾아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Natur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섯 - (1)  (8) 2011.04.28
봄.. 봄...  (15) 2011.04.19
결실 - 12  (12) 2010.12.30
가을... 그 빛에 취하다 - 2  (20) 2010.11.18
가을... 그 풍성함을 위하여  (19) 2010.09.20
Travel





                               전체적으로 일본 목조주택의 구조적, 의장적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다이토 여관(大藤旅館).
                               각 층에 많은 방을 가진 2층 목조건물로 1938년에 신축되었으며, 
                               담벼락에 붙여놓은 사진은 당시의 모습이다.

                               일제강점기때 어업 침탈의 현장이기도 한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장안동 골목 470m거리에는 적산가옥 50여 채가 남아있다.
                               절반 가까이는 빈집이라고 하는데, 일부는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요리집 안성정(安城亭), 주인 니바야시마스에이(二井林增英).

                               적산(敵産)은 본래 '자기 나라의 영토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 
                               또는 적국인의 재산'을 뜻하나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 남겨놓고 간 집이나 건물을 지칭한다.
                               국내의 적산가옥은 해방 후 일반인들에게 대부분 불하(拂下)되었다.(네이버용어사전)








                               1922년에 신축된 하리야마식당 야마구치마사유키상점.
                               지금은 많이 낡은 모습이나 내부 목조계단과 난간 · 만월을 상징하는 
                               원형 창호 등, 전체적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종로거리' 혹은 '선창가'로 불리웠던 이곳 구룡포에는 
                               일제 강점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당시 구룡포 앞 바다는 황금어장으로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고용해 
                               엄청난 어획고를 올렸는데, 그도 그럴것이 조선인 어선은 100여척에 
                               불과한 반면 일본인 어선은 900여척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어부들만도 1만 2천여명, 그 중 구룡포에 
                               주소지를 둔 일본인만도 1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일군사'에는 1933년 구룡포에는 270여가구 1100여명의 
                               일본인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구룡포의 최전성기는 1930~1940년대로, 1970년대까지는 
                               호황을 누렸지만 대형선박이 출현한 1980년대 말부터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한다.
                              








적산가옥 한 쪽 언덕에 위치한 구룡포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이 계단을 오르면 충혼탑 · 충혼각과 만나게 된다.

일본인들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가 보이는 이곳 뒷산에 공원을 만들고
신사를 세우면서 당시 후원을 한 일본인들의 이름을 비석에 새겨
공원입구 계단 양쪽에 나란히 세웠다.
그러나 해방이후 충혼탑을 건립하면서 시멘트로 기록을 없애고
그 비석을 거꾸로 돌려 구룡포 유공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현재 구룡포공원에는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으며, 
그 뒤편에는 충혼각이 있다.








                               구룡포를 일본의 전진기지로 발전시키는데 공을 세운 
                               일본인 '도가와 야사브로(十河 彌三郞)'를 기리는 송덕비. 
                               해방이 되자 대한청년단원들은 신사를 부수면서 
                               이 비의 비문에 시멘트를 발라 놓았다.








구룡포공원에서 내려다 본 구룡포항.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홍보전시관.

1938년 구룡포어업조합장을 지낸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가 살았던
구룡포 243번지 건물로 당시 일본가옥의 형태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남아있는 일본인 가옥 중에서 가장 크고 격식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며,
'一'자형 평면 형태의 지상 2층 목조건물로 1923년에 신축되었다.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2층 전시장.
1층에서는 당시의 사진자료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위 왼쪽/ 주전자, 오른쪽/ 1930년판 중학교 수학교과서.
아래쪽/ 겨울 난방용으로 사용했던 화로.

그 외에도 다양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미닫이 문을 비롯하여 
다리미, 이발기, 일본도(日本刀) 등이 전시되어 있다.





'Tra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덕 장사해수욕장에서...  (10) 2011.03.26
영일 장기읍성  (18) 2011.03.08
포항함 체험관  (0) 2011.02.20
중국 베이징(북경) - (15) 수도박물관(首都博物館)  (14) 2011.02.11
중국 베이징(북경) - (14) 용경협(龍慶峽)  (14) 2011.02.08
Landscape




눈이 내리는 이 세상만큼은 오로지 순수하고
깨끗함만으로 가득할 뿐이다.








추위때문에 큰 눈송이로 성장하지 못하고 내리는 가루눈이다.
함박눈보다는 풍족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눈은 눈이다.
다만 한가지 불만이라면 잘 뭉쳐지지가 않는다는 것인데,
눈사람을 만들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함박눈은 포근한 날이라야만 볼 수 있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소리없이 내려앉는 눈송이마다 두런두런... 따뜻하고 정감있는
이야기들이 하나씩 녹아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눈이 내리는 날이면 웬지 마음이 더 포근해지는 느낌이다.








소나무의 강인함과 눈송이의 연약한 느낌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유난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눈이 내리고 쌓이면서
말라버린 가지 위에서 하얀 꽃으로 피어났다.








그것도 아주 탐스러운 꽃송이를 피워 올렸다.
일순간,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아 난 듯 하다.








비록 지금은 차가운 몸이지만, 이내 녹아 땅 속으로 스며들면서 
이를 자양분 삼아 또 다른 생명들을 피워 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어느새 따뜻한 봄의 모습으로
우리들 가까이에 다가서 있을 것이다.
얼었던 호수물이 풀린걸 보니 이제 그럴 날도 머지 않았다.
아니, 보이는 것과는 달리 적어도 마음만큼은 이미 완연한 봄의 느낌이다.
그런걸 보면, 역시 봄은 머리보다 가슴으로부터
먼저 찾아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Landscap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가 있는 풍경  (10) 2012.04.10
뒤늦게 찾아가 본 대구 해맞이공원의 유채밭  (15) 2011.05.17
겨울바다  (12) 2011.02.15
겨울소경(小景)  (14) 2011.01.20
가을의 뒤편에서...  (22) 2010.12.09
History





대구광역시 수성구 대흥동에 위치한 대구스타디움은
1997년 7월 28일에 착공하여 2001년 5월 20일 완공되었다.








지금은 무척이나 포근해진 날씨지만, 일주일여 전만 해도
이곳 대구에도 눈이 내렸었다.
대구스타디움 내 분수가 있는 수변시설이 흰 눈에 가려져 
분간이 쉽지 않게 되었다.

대구스타디움에는 암벽등반장 · 인라인스케이트장 · 
자동차극장 등의 다양한 부대시설이 들어서 있다.
거기에다 인근에는 대구시립미술관이 올해 문을 열 계획이고,
새로운 야구장 또한 내년 하반기에 착공하여 2014년에 준공될 예정이다.
이로써 이 지역은 명실공히 스포츠와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레저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될 전망이다.








                               관중석은 주경기장 6만 5,857석, 보조경기장 2,500석 규모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오는 8월 개최되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트랙이 새롭게 바뀌었다.
                               기존의 붉은색 우레탄 포장을 뜯어내고 이탈리아 몬도사에서 만든 
                               파란색 트랙으로 단장된 것이다.

                               2010년 12월 17일 공개된 이 트랙은 천연탄성복합고무 소재로 만들어져 
                               탄성력이 우레탄보다 약 1.3배가 크며, 트랙밑에 펌프역할을 하는 
                               격자구조층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트랙에서 230차례 이상의 세계신기록이 나와 
                               '기록제조기'라고도 불리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파란색 트랙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스타디움의 지붕은 지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세계인을 한 지붕안에 포용한다는 의미이다.








그 지붕 덕분에 우천시에도 관람객 72%가
비를 맞지 않고도 관람할 수 있다. 
물론, 눈이 내릴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온통 하얗게 변한 풍경에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감이 흐려진다.
이미 눈 밟는 재미를 떠나 발을 옮기기조차 버거워지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내린 폭설... 그 귀한 눈 덕분에 
또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게 된 대구스타디움이었다.








대구스타디움 서편주차장 부지에는 대구 · 경북 최초의 복합몰인
대구스타디움몰이 조성중이다.
5만㎡ 부지에 지하 2층~ 지상1층 규모로 오는 5월말 준공하여
7월 1일 오픈 예정이며 연면적은 4만6천635㎡이다.

이곳에는 대구세계육상대회의 메인프레스센터와 국제방송센터가
들어서게 되며, 지하 2층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 외에도 대형 면세점과 유통업체, 그리고 122개의 일반점포도 
함께 입점하게 될 예정이다.


관련/ 2010/01/07 - [Landscape] - 눈이 내린 대구스타디움에서...



참고/ 네이버캐스트,



Travel




                               포항함(PCC-756)은 2010년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북한의 잠수정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과 동일한 제원을 가진 함정으로, 
                               우리 해군의 주력 1200톤급 초계함이다. (제원은 맨 아래사진 참조)








전투정보실.
전투에 필요한 레이더를 관측하며 포를 발사하는 전투지휘소이다.
포항함의 모든 무기의 발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포항함은 1984년에 취역하여 25년간 우리의 바다를 수호하면서
250여회의 출동임무를 수행, 대간첩작전 지원 및 후방 경계 책임의
핵심세력으로 활약하였으며, 1986년에는 동해 최전방에서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는 무장 선박을 침몰시키는
전과를 세우기도 하였다.

2009년 6월 30일 동해함(PCC-751)과 함께 퇴역하여 포항 동빈내항에서
체험관으로서 2010년 6월 12일 개관되어 활용되고 있다.








함정의 상갑판에 위치한 함교(艦橋, 조타실).
함정의 조종실이자 전투나 항해시 함장이 지휘하는
지휘소이기도 하다.

포항함은 함포와 어뢰, 미사일, 폭뢰 등으로 무장하고
해상초계와 대수상함전, 대잠수함전, 대공전 등을
전개하기 위하여 건조되었다.








함교에 위치한 전탐기(전파탐지기, 레이더).








                               중앙 복도 좌우측으로는 여러 용도의 격실이 배치되어 있으며,
                               가파른 계단과 좁은 통로 등의 구조로 인하여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천안함과 제원은 동일하지만 내부구조는 같지 않다고 한다.








함승조원 110여명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취사장.








장교들의 회의 장소이자 사관식당이기도 한 사관실에는
천안함의 희생자와 고 한주호 준위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함수 갑판 위에는 고 한주호 준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실물과 똑 같은 크기로 황동으로 제작되었다.








포항함 체험관은 체험관과 홍보관 · 안보관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홍보관은 포항함 건조에서 퇴역까지의 과정과 해군의 홍보 동영상,
해군에서 취역중인 최신 함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천안함 희생자의 추모코너가 마련되어 있는 곳은 안보관에 해당된다.





Landscape




바다는 지나가는 인간의 두 발과 시선을 붙잡는다.
인간은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그 곁으로 다가간다.








여름날의 번잡하고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너무나도 차분하고 조용한 겨울날의 모습이다.








그렇게 매섭던 추위도 흘러가는 강물은 어쩔 수 없었는가 보다.
강물은 거침없이 흐르고 흘러 바다로 향하고,
그 바다는 긴 여정의 종착지가 되어준다.








철 지난 바닷가라 하지만, 바다에 제철이 어디 있으랴.
사시사철, 저마다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이 바다이기도 한 것을...
특히 고즈넉한 겨울날의 바다는 뭔지모를 진득한 맛이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맑고 깨끗한 얼굴이다.
오염이라는 것을 모르는...








맑고 투명함에 온몸은 물론이고 마음속까지 정화되는 느낌이다.
아마도 그것은 추운 이 겨울날에도
많은 이들이 바다를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쉼이 있는 그곳,
바다...








파도는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인간을 희롱해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오히려 그것에서 즐거움을 맛본다.
그런 것을 보면, 바다는 마법과 같은 존재이기도 한 것 같다.








껍데기이자 겉모습..
생각해 보건데, 눈으로 만이 아닌 온 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바다라는 것은 아닐런지...
아마도 그런 연후에라야 바다를 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Landscap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뒤늦게 찾아가 본 대구 해맞이공원의 유채밭  (15) 2011.05.17
눈이 있는 풍경  (0) 2011.02.27
겨울소경(小景)  (14) 2011.01.20
가을의 뒤편에서...  (22) 2010.12.09
가을... 그 빛에 취하다 - 4  (16) 2010.11.22
Travel





고궁박물원과 중국역사박물관에 이어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수도박물관(首都博物館)내의 전시물이다.
수도박물관은 1981년에 공식적으로 개관하였으나 전통적인 미와
현대적인 건축의 요소를 융합하여 2006년에 재개관 하였다.

다른건 제쳐두고, 그 곳의 전시물을 몇 가지 감상해 보기로 한다.
유물에 대한 설명은 능력 밖이라 그저 눈으로만...








수도박물관은 총면적 6,000㎡, 지상 6층, 지하 1층의 규모로
총 5,622점의 전시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전통 유물보다는 생활사 유적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지는데,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유물과 과거의 베이징 건축물 모형 및 
자료들, 그리고 옛 베이징의 문화 등이 전시된 공간이 그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미술 · 회화 · 서예 등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된 공간이다.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된...








                               옛 베이징의 민속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이 모형은 결혼식 풍경을 재현해 놓은 것으로,
                               신부를 태운 가마의 행진이 되겠다.
                               그냥 보기만 해도 꽤나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각 시대마다 대표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진품보다는 복사품이 많다는 것이 다소 흠일 듯 하다.
                               사실 그렇다하더라도 그 흠결을 찾기가 쉽지않아 문외한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이곳에는 전시실 외에도 다목적 홀 · 멀티미디어실 
                               그리고 경극을 공연하는 극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유물 복원과 보존과정 · 도자기 제작 · 먹물갈기 ·  
                               경극분장 등의 체험활동 또한 가능하다고 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으로 동방여행을 떠나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원나라에서 관직에 올라 17년을 살았다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에 관한 이야기는 이곳으로...








                               중국 공산당의 혁명에 대한 역사 등도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인민일보 북평판(北平版)으로, 창간호로 보인다.
                               북평이란 지금의 베이징을 1928년 시(市)로 정할 때 개칭한 이름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일간신문으로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인민일보는 
                               중국 13억 정부의 대변지이며 중앙당 기관지로, 중국 공산정권이 
                               대륙을 통일하기 전인 1948년 6월 15일 허베이(河北)성 핑산(平山)현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화북국의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1949년 중국공산정권이 베이징으로 진주하자 3월 베이징으로 이전하면서 
                               그해 8월 중국공산당 중앙의 기관지로 변경되었다.

                               1985년에는 인민일보의 자매지로 해외판을 창간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한글, 주간)으로 2010년 9월에 창간되어 
                               서울에서 발행되고 있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

                               많이 부족함에도... 관심을 가지고 중국 베이징에 대한 
                               포스팅을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Travel





                               높이 70m의 용경협 댐.

                               용경협은 북경시 연경현에 소재하고 있으며, 베이징에서 85km정도 떨어져 있다.
                               1973년 10월에 계곡을 막아 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인공호수로,
                               여름에는 북경지역 최고의 피서지로 꼽힌다.
                               매년 1월부터 2월 말까지 이곳에서는 빙등 예술축제 행사가 열리며,
                               얼음조각 국제경연대회가 개최되기도 한다.








                               댐 오른쪽에는 몸부림치는 용의 형상을 한 터널이 있다. 
                               내부에는 몇 대의 에스컬레이터로 이어져 있는데, 길이는 258m에 이른다. 
                               1996년 유람선이 있는 댐 위에 까지 올라가는 이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면서 베이징의 16명소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장강소삼협(長江小三峽) 혹은 소이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작은 계림(小桂林)으로도 불리우는 용경협의 산수를 잘 표현한 한 구절의 시가 있다.

                               소삼협(小三峽)이 삼협을 능가하니 그 산은 삼협보다 험준하고
                               소이강이 이강을 능가하니 그 물 또한 이강보다 맑도다.








                               유람선 선착장 위쪽으로는 465m 길이의 케이블카가 
                               댐을 가로지르고 있다.








- 용경협의 전체 면적은 119㎢이며, 총길이는 21km이다. 
- 용경협호의 면적은 34만㎡이며, 용적은 850만㎡, 높이는 60여 미터이다.
- 용경협곡의 전체 길이는 21km정도이나 그 중에서 유람선이
  운행하는 거리는 약 7km 가량 된다.

금강사(金剛寺) · 옥도산(玉渡山) · 신선원(神仙院) · 옥황정(玉皇頂) · 해타산 등의
관광명소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타산이 2,241m로 가장 높다.








                               마주 보이는 절벽에는 장쩌민(江澤民)의 필체로 용경협임을 알리고 있다.
                               1992년 5월 장쩌민 총서기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관광지구의 이름을
                               용경협으로 정식 사용하게 되었다.
                               왼쪽으로 보이는 산은 3면이 물로 에워싸인 봉관도.









협곡을 굽이 돌때마다 좌우로 기암절벽이 잇따라 펼쳐지면서 장관을 보여준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한 폭의 길고 거대한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절벽 위쪽으로는 구연동 · 금강산 · 신선원 등의 등산코스도 있다.








만약 신선이 존재한다면 이런 곳에서나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지금은 댐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이지만
그 이전, 본래의 모습은 또 어떠했을지 궁금증이 일어난다.








                               강 위 180m 정도 되는 높이에 외줄이 걸려 있다. 그 위에서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탄 사람이 서커스 묘기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기로는 실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설치물같다는 느낌이다.








                               금강사와 마주한 골짜기에는 붓 모양의 신필봉(神筆峰)이 우뚝 서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진나라 때 '상곡군'이라 불리웠던 연경현에 예서체를 
                               발명한 왕차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시황이 그 사실을 알고 
                               여러차례 입궁명령을 내렸으나 왕차중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격노한 진시황은 신하를 시켜 왕차중을 잡아들였으나, 함양으로 압송하는 도중에
                               한 마리의 큰 봉황으로 변하여 다시 상곡군으로 돌아가 두 개의 깃을 
                               송산(松山) 아래로 떨어뜨려 대핵산과 소핵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서체를 발명한 그 신기한 붓은 공중에서 용경협으로 떨어져 하나의 
                               봉우리로 변하였다고 하며, 이후 그 봉우리를 신필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 용경협



Travel





롤러코스터가 어지럽게 얽혀져 있는 테마 놀이공원인 환락곡(환러구, Happy Valley).
2009년 10월 베이징에서 선정, 발표한 신 16경에 포함되었다. 
2010년 7월에 오픈했다는 이 롤러코스터는 높이 60m에
133.6km/h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 트랙길이는 850m의 규모라 한다.








베이징 환락곡은 총면적 56만㎡로 2006년 7월에 완공되어 개방되었다.
현재 중국 최대 규모의 투자, 최대 면적을 자랑하며 국제화 및 현대화가
가장 잘된 테마공원으로 문화체험 및 오락종목이 많은 곳이다.

놀이시설 개념도 자세히 보기








뽀족하게 솟은 저 탑은 베이징 시내의 여러 건물들 사이에서
가장 특색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6개의 테마구역(샹그릴라, 아틀란티스, 개미의 왕국, 잃어버린 마야,
에게해의 항구, 와일드 피요르드 등)으로 구성된 환락곡,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아틀란티스구역이다.
그 외에도 50여 개의 테마경관과, 10여 개의 테마공연, 30개가 넘는
테마 오락시설, 20여 개의 테마 게임 및 상업 보조시설들로 하나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세계를 선사한다.








                               영화 '워터월드'를 연상케 하는 세트구성이다.
                               소형 모터보트를 탄 사람이 물 위를 부지런히 휘젓고 다니며 
                               분위기를 연출해 보이고 있다.








그곳 한 켠에는 산토리니의 모습을 배경으로 문화광장이 마련되어 있다.
왼쪽으로는 후룸라이드 놀이시설이다.








후룸라이드.
그 아래로는 그리스 아테네 신전의 모습도 보이고...








                               높은 낙차를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 때문에 배가 가려져 버렸다.
                               관람석 사이에 유리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 직접적인 물벼락은 
                               피할 수 있지만, 느낌에는 그대로  물을 뒤집어 쓴 것 같다.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진다.








거대한 트로이목마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놀잇배가 여유롭게 호수 위를 오간다.
30만㎡가 넘는 녹화와 8만㎡를 차지하고 있는 호수는 이곳에 양호한 생태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기도 하다.







참고/ 베이징관광국 공식 홈페이








Travel





천단공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기년전을 향해서 가는 길이다.

베이징 황성 내에는 네 개의 제단이 있는데, 남쪽의 천단(天坛) ·
북쪽의 지단(地坛) · 동쪽의 일단(日坛) · 서쪽의 월단(月坛)이 그것이다.
이름에서 보듯이 각각 그 대상이 달라 하늘 · 땅 · 해 · 달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중 천단은 가장 중요시되던 제단으로, 환구단 · 황궁우 · 기년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년전은 명청시대 황제가 천신에게 제를 올리던 도교제단으로
매년 풍년을 기원했으며, 비가 오지않을 경우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곳의 넓이(273만㎡)는 무려 자금성의 네 배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 · 최대의 제전이기도 하다.








천단공원을 들어서면 기년전 입구까지 긴 회랑이 이어진다.
넓은 부지만큼이나 체육장과 잔디밭 · 광장등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다.

140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명의 영락제 18년인 1420년에 완공된 이 천단은
건설 당시에는 천지단이라 불렸고, 1530년에 3개의 제단(일단 · 지단 · 월단)을
추가하면서 천단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1961년 최초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선포되었고,
199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으며, 천안문 ·
자금성 태화전과 함께 북경의 상징적인 건물이 되고 있다.








                               파란 지붕의 원형건물인 기년전이 눈에 들어온다.
                               단청은 황금빛과 청색으로 되어있다.

                               기년전은 3층 월대 위에 3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유리기와를 올려 지붕을 만들었으며, 
                               들보 · 마룻대 · 못 따위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공법으로 지어졌다.
                               명나라 시대에는 위쪽에는 청색과 황녹색으로 되어 있었지만 
                               건륭제가 1751년에 중건을 하면서 청색으로 바꾸었다. 
                               1889년 낙뢰에 의해 소실된 후 1906년에 다시 재건되었으며,
                               높이 38m, 지름 32m의 규모라고 한다.








                               기년전의 앞에는 기곡단의 동배전, 서배전이 있다.
                               동배전에는 각종 제기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서배전은 제천예의관이라 하여 기년전의 역사를 전시해 두었는데 
                               기년전 건물 내부의 모습을 함께 살펴 볼 수 있다.








                               황제가 이동하는 남북방향의 계단에는 가마가 지나가는 
                               답도로 되어있고 나머지는 일반 계단이다.
                               1층 계단 답도에는 산과 구름, 2층에는 학, 그리고 3층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








                               기년전의 내부는 황궁우와 마찬가지로 대들보를 쓰지 않은채 
                               기둥만으로 천장을 지탱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있다.
                               녹나무로 된 기둥은 모두 28개로, 아름다운 금빛무늬를 새긴 안쪽의 네개는 
                               용정주라 하여 최상층의 처마를 지탱하고 있다.

                               용정주의 네 기둥은 사계절을 상징하고, 중간의 12기둥은 1년 12달을 
                               바깥 12기둥은 1일의 12시각을 각각 상징하며, 둘을 합해 
                               한 해의 24절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보좌에는 황천상제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그 뒤로는 용과 봉황이 
                               세밀하게 조각된 병풍이 세워져 있다.








기년전의 내부에서 위로 올려다 본 단면도.








                               황제가 된다는 것은 신과 교류하며 백성의 안위를 약속받는다는 뜻...
                               그러기에 제천(祭天) 의식은 예로부터 국가의 중요한 행사로서 
                               역대 황제에 의해 행해졌다.


                               더불어... 

                               그 옛날, 매년 이곳에서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여 하늘에 제를 올렸듯이 
                               우리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이웃분들에게도 
                               강녕(康寧)과 더불어 더 큰 행복이 내려지기를 기원해 본다.

                               새해에는 두루두루 평안하고 좋은 일들만 있으시길...



                               참고/ 네이버캐스트, 위키백과.



Travel





십찰해(什刹海, 스차하이) 인근의 한 골목길을 둘러봤다.
중국에서는 이런 좁은 골목길을 후통(胡同)이라고 한다.
개발에 밀려 많은 후통들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지만,
오히려 일부지역은 외국인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요구르트 맛이 난다는 쑤안니우나이(酸牛奶).
발효시킨 우유라는 뜻으로, 줄여서 쑤안나이(酸奶)라고도 부른다.
빨대가 꼽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빈병인 것 같다.








                               골목길 한켠에 다양한 색상의 신발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거의 다 짝이 맞지 않다.
                               추측해 보건데, 아마도 도난방지를 위한 고육책이 아닐까 싶다. 
                               가져가 봐야 한 짝으로는 소용이 없을테니...








또 다른 한켠에는 예전 북경성 안 사람들의 시간을 통제했다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있다.
저 건물은 고루와 마주하고 있는 종루이다.
낮에는 종루에서 종을 치고 고루에서 북을 쳐서, 그리고 밤에는
종루에서 종만을 쳐서 시각을 알렸다고 한다. 









갑옷으로 무장을 한 병사의 형상으로
벽면이 장식되어 있다.








                               가정의 화복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은 
                               세상 어디에서나 똑 같다.








                               십찰해 투어에 사용되는 자전거를 이용해 만든 인력거.
                               십찰해란 바다가 있는 열 개의 사찰이라는 뜻인데, 
                               실은 바다가 아니라 인공호수이다. 
                               내륙에 사는 몽골사람들이 이곳 물을 보고 감격하여 
                               바다라 불렀다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가게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종류의 술병들...








골목을 분주히 오가는 자전거가 이곳의 일상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오른쪽, 나무에 가려진 건물은 위에서 언급한 고루이다.





Travel





                               798예술구는 베이징시 조양구 따샨즈(大山子)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예술인들의 작업실이 모여있는 예술거리로, 공장지역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탓에 무척이나 독특한 분위기이다.








                               798예술구는 따샨즈 예술구라고도 불리우는데,
                               798이라는 이름은 이곳 예술특구 내부에 있는 
                               길 이름인 798에서 따왔다고 한다.








베이징 정부가 지정한 최초의 예술특구인 798예술구는 
원래 구소련과 독일의 기술로 세운 공장지대로, 
무기와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곳이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무기생산이 활력을 잃게 되면서 
                               이전하는 공장들이 많게되자, 2001년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들면서 798은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2006년 정부에 의해 최초 10개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베이징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일부 남아있는 공장들은 
                               지금까지도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골목마다 숨어있는 조각과 
                               그림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는 400여개가 넘는 전문 화랑과 갤러리,
그리고 독특한 인테리어의 수 많은 카페와 아트샵들이 들어서 있다.








                               전시장의 입장료는 극히 일부분을 빼고는 거의 무료이며,
                               음식점, 커피점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이곳 798예술구는 말 그대로 예술품을 생산해 내는 공장인 셈이다.

시간상의 제약에다가, 때마침 스쳐지나간 엄청난 양의 폭우로 인해 한동안
발이 묶여버리는 바람에 더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더구나 예술품을 꼼꼼히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Landscape




겨울이 찾아온 산속, 한적한 호수...
얼핏 보기에는 그저 적막하고 황량하기만 한 그 속에도 움직임은 있다.
얼지 않은 수면의 고요한 일렁임,
잠시 스쳐가는 가벼운 바람에도 크게 과장하듯 몸을 낮추는 갈대,
그리고 또...








햇빛을 받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는 물오리들도 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는 이 작은 호수는 오롯이 그들을 위한 
삶의 터전이 되어주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주위를 들러보면
먹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건지...








                               꽁꽁 얼어버린 수면위를 뒤뚱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어 다니는 두 마리의 거위.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다정한 모습이다. 
                               그것만으로도 아주 따뜻하고 정겨운 풍경이다.
                               이 추운 겨울, 혼자가 아닌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보이지는 않지만, 추위에 냉랭하게 얼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저 속에는 분명 또 다른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잔뜩 말라버려 생명이란 없는 듯 보이지만,
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 다시 시퍼렇게 되살아 날... 
은연중에 아직은 멀기만한 봄에 대한 희망이 조심스럽게 읽혀진다.



...............................................................................................................................................................................





'뼈 속에 스며드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어찌 매화 향기를 얻으리오'

혹독함이 더 할수록 그 끝은 더 달다고 했던가.
그 믿음은 곧 희망이 되어 오늘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줄곧 앞만 보며 쫒기듯 달음질 쳐 가는 이 세상에,
때로는 잠시 멈추어 서서 뒤를 되돌아 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지난 그 흔적을 되짚어 가다보면, 당시에는 미쳐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념들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수정하고 다듬어 가다보면 앞으로의 삶에 대한 
                               훌륭한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Landscap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이 있는 풍경  (0) 2011.02.27
겨울바다  (12) 2011.02.15
가을의 뒤편에서...  (22) 2010.12.09
가을... 그 빛에 취하다 - 4  (16) 2010.11.22
가을... 그 빛에 취하다 - 3  (0) 2010.11.21
Travel






북경의 관문인 거용관 장성이다. 팔달령 만리장성과 더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북경에서 북서쪽으로 약 6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왼쪽 건물은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關)'이라는 문루이며, 그 우측에는
화포로 중무장할 수 있는 이층 벽돌건물의 돈대가 세워져 있다.
생각보다는 꽤 큰 규모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이자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우기도 하는
만리장성은 그 시원을 보통 진나라 시황제 때로 잡지만, 그보다 훨씬전인
춘추시대(BC770~BC443)때 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들어서면서 북쪽 흉노족의 침입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들 성벽을 연결, 증축한 것이다.
이후 당, 송, 원나라를 거치며 보수를 계속하였으며, 명나라때 대대적인
개축이 있었다 한다.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장성을 오르면서 내려다 본 문루와 망루.

북경으로 들어가는 천하의 요새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 거용관이 처음 축조된 것은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때였다.
당시에는 거용새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그후 1368년 명나라 시조인 주원장이 원나라가 침입할 것을 대비해 보수 및 증축을 했다.
명대 이전 베이징의 최종 방어선이었기 때문에 이 부근의 장성은
몇 겹의 복잡한 축조가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서 거용관은 가장 안쪽에 위치한다.








                               두 번째 돈대까지는 넓은 길이지만, 그 위로 부터는 비좁은 계단길이라
                               정체가 빚어진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장성의 길이는 2,700km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길이가 약 6,400km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의 만리장성은 중국 동쪽 보하이만의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시작하여
                               서쪽 타클라마칸사막의 자위관(嘉峪關)에서 끝이난다.








                               발 아래로 성벽이 길게 뻗어있다.
                               저 아래쪽 강물을 가로질러 돈대가 세워지고, 맞은편 산을 타고 계속 이어진다 .

                               만리장성은 모두가 똑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쪽 보다는 동쪽이 더 견고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성벽은 평균높이 7.8m, 평균폭은 윗부분이 5.8m, 밑부분이 6.5m로,
                               이는 성벽 위로 말 5~6마리, 또는 병사 10여명이 나란히 갈 수 있는 너비이다.
                               그 위에 100여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아래쪽 건물은 황제가 이곳으로 행차했을 때 거처할
행궁과 사당, 그리고 주둔군을 위한 시설들로 보인다. 









사랑의 자물쇠... 이곳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켠에는 옛 병기들을 복원하여 전시해 두기도 했다.








길게 늘어선 깃발은 바람에 휘날리고...








2009년 4월,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을 산해관장성에서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후산(虎山)장성'으로 수정하여 발표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의 총 길이는 8851.8km라고 주장했다.
2008년까지는 베이징 인근의 산해관이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여겨졌지만,
2008년 12월 국가 조사팀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던 후산장성을
발견하면서부터 동단을 이곳으로 수정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고학계는 후산장성이 고구려인들이 쌓은 고구려성으로
판단하고 있어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30만명의 군사를 비롯하여 수 백만 명의 백성과 죄수를 동원해 건설되었고,
그 중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인원이 희생되기도 하여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혹평까지 듣기도 하는 만리장성...
그 곳과 관련하여 생겨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 뒤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숨어있다고 한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네이버용어사전,



Travel




쏠라나(SOLANA)는 조양공원의 서북쪽 호수변에 자리잡은
유럽식 건축 스타일의 고급 쇼핑몰이다.








                               SOLANA는 한적한 호수, 우아한 건축물, 낭만적인 작은 길을 가진 비즈니스 마을로,             
                               '햇빛의, 태양의' 라는 뜻을 지닌 영어의 Solar에서 그 의미를 가져왔다.








                               2,3층 건물 19개 동이 유럽의 작은 마을처럼 아기자기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600여 상가와 1천여개의 브랜드, 30여 개의 음식점, 20여 개의 
                               호수변 바와 영화관, 그리고 스케이트장이 들어서 있어 
                               쇼핑과 문화활동을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다.








                               주위 강 주변의 야외 테라스에서는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여유를 즐길 수도 있으며, 
                               저녁이 되면 화려한 분수쇼를 볼 수도 있다.



...............................................................................................................................................................................





The Place로 알려진 세무천계(世贸天阶, 스마오티엔지에).
남북쪽을 가로지르는 쇼핑거리로, The Place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대형복합쇼핑몰이다.
베이징의 밤에 볼거리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거리는 모두 석재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 거리의 천정에는 아시아 최초이자 라스베가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길이 250m, 너비 30m의 전자 드림 와이드스크린이 걸려 있어 여러가지 형상을 보여준다.








                               마사지샵, 의류, 악세서리 등을 쇼핑할 수 있으며 명품샵 또한 볼 수 있다. 
                               그리고 계단 광장과 옥외장소도 갖추고 있다.



                               참고/ 베이징관광국 공식홈페이지.



Travel





                                             자금성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추선상에는 남쪽으로 부터 태화문(太和門),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 건청문(乾淸門),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곤영궁(坤寧宮), 곤영문(坤寧門), 
                                             천일문(天一門), 흠안전(欽安殿), 승광전(承光殿), 순정문(順貞門), 
                                             신무문(神武門) 등 주요한 궁전과 궁문이 나란히 세워지고,
                                             그 가운데 오문과 신무문은 자금성의 남북 성문을 이루고 있다.
                                             또한 자금성의 동서 양측에도 동화문(東華門), 서화문(西華門)이 있다.








자금성(쯔진청, 紫禁城)의 정문은 천안문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정문은 높이 38m, 벽의 두께가 무려 36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문이라는 오문(午門)이다.
중국에서는 옛날에 북(北)을 자(子), 남(南)을 오(午)라고 했는데,
오문은 자금성의 중심축 남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금성은...








태화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중국 최대의 목조문인 태화문.
문 앞 계단 동, 서쪽으로는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청동사자상이 자리잡고 있다.








오문과 태화문을 거치면 나타나는 넓다란 광장... 그리고 태화전이다.
태화전은 남북 33m, 동서 60m의 건물로서 중국 최대의 목조건물이며,
황제의 즉위식, 새해의 제사, 황태자의 탄생 축하 등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지금의 건물은 1695년 청나라 강희제 때 세번째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태화전의 지붕은 금색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기 때문이라 한다.









                               보화전 뒷편에서 바라본 내정의 정문인 건청문.
                               건청문은 자금성 내에서 가장 화려하며 위엄이 있어 황실의 신성함과 
                               권력을 나타내는 전문이다.
                               이곳을 경계로 황제와 황후의 생활공간인 내정과 외조가 구분된다.

                               보화전의 이 운용석조(雲龍石雕)는 자금성에서 가장 큰 돌이라 한다.
                               황제를 상징하는 9마리의 용과 장수의 복을 의미하는 산과 절벽, 바다 
                               그리고 운해가 조각되어 있다.








보화전을 뒤에서 되돌아 봤다.
보화전은 주로 조정의 각종 의식을 여는 곳이다.








황제의 침실 겸 집무실이었던 건청궁의 내부.
정대광명이라 쓰여진 편액 아래 황제의 보좌가 놓여있다.








                               황제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수목이 전혀 없는 자금성 내부에
                               유일하게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가꾸어 놓은 어화원 내의 정자.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을 나오면 저 멀리 자금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경산공원이 마주보고 있다.
                               경산공원은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목을 매 자살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곳은 이화원의 만수산처럼 인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금성을 빙 둘러 너비 52m, 깊이 6m, 그리고 3.8km에 이르는 길이로 
                               해자를 만들면서 그곳에서 파낸 흙과, 땅 밑을 뚫고 들어올지도 모를 
                               침입자를 막기위해 40여장의 벽돌을 바닥에 깔면서 자금성 바닥을 7m까지 
                               파내기도 했다는데, 그때 나온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저 경산공원이라고 한다.

                               풍수지리학상 궁궐 뒤에는 산이 있어야 좋다고 해서 그렇게 만들었다니, 
                               역시 스케일 만큼은 정말 대단한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
해자로 둘러쌓여 있는데, 해자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성을 보호하며
방화기능도 겸했다고 한다.

자금성은 현재는 고궁박물원으로 전용되어 고궁 안의 여러 전(殿),
당(堂), 궁(宮) 등은 진열실로 이용되고 있으며, 중국 역대의 채도(彩陶),
청동기, 칠기, 직물, 조각, 회화 등 여러 예술품을 진열하고 있다.



참고/ 이곳,



Travel





                               전문대가를 거쳐 톈안먼(천안문)광장으로 향한다.








정양문의 전루를 거쳐 성루(城樓)로 향하는 길이다.
이 성루와 성루 남쪽에 있는 전루(箭樓)를 통칭하여 전문(前門)이라고 한다.
전문은 베이징 내성의 정문으로 황제가 내성과 자금성을 출입할 때 쓰던
황제 전용 어문이며, 황제가 천단으로 제사드리러 가기 위해 통과하던 문이기도 하다.
전문은 본래 여정문(麗正門)으로 불리다가 1437년에 정양문(正陽門)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건물을 통과하면 바로 모주석기념관과 더불어 톈안먼 광장과 만나게 된다.








톈안먼 광장 동쪽에 위치한 1959년에 완공된
중국국가박물관(역사박물관, 혁명박물관)의 모습이다.
그 맞은편 광장 서쪽에 위치한 같은 해에 건립된 인민대회당
(국회의사당) 등과 더불어 중국이 자랑하는 10대 건축에 포함된다.








오른쪽 인민영웅기념비와 그 왼쪽 인민대회당.

인민대회당은 중국 인민대표대회 회의장으로 1959년에 완성되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리며,
5년에 한번 중국 공산당 총회가 열린다.
1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고,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연회장도 갖추고 있다.








                               톈안먼 광장의 중심부에는 37.94m 높이의 인민영웅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20세기 중국의 혁명과정에서 희생된 인민들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서 
                               1958년에 완성되었으며, 비석의 대리석 받침대 네 면에는 근대 약 100년간의 
                               혁명역사를 조각한 8개의 부조가 있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가인 마오쩌둥(毛澤東)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모주석(毛主席)기념당.
1976년에 착공해 마오쩌둥 사망 1주년인 1977년에 완공되었다.
입구의 모주석기념당이라는 글자는 화궈펑(華國鋒)의 휘호이다.
참배시간이 아니어서인지 이곳에서 두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기원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마오쩌둥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이곳으로...








모주석기념당 양쪽 측면에는 2개의 대형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중 왼편을 장식하고 있는 군상(群像)조각이다.








40만 명의 인원을 수용한다는 톈안먼 광장이다.
북쪽으로는 청(淸)나라 황성의 정문인 톈안먼이 위치해 있다.
1989년 6월 4일, 후야오방(胡耀邦)의 사망을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이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계엄군을 동원하여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만오천명 이상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톈안먼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현장이다.








톈안먼은 명나라 때인 1417년(영락15)에 착공되어 1420년(영락18)에 완공되었으며,
당시에는 승천문(承天門)이었다.
1457년에 화재로 훼손된 것을 1465년에 재건하면서 정면폭이 9칸인 문루식 패루로 만들었다.
이후 1644년 소실되었다가 1651년에 다시 복구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목조 패루에서 성루로 증축하고 톈안먼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문 중앙에 마오쩌뚱(毛澤東)의 대형 초상화와 양 옆으로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고 새겨진 현판이 내걸렸다.
이 문 앞에는 한백옥으로 다듬어진 돌다리인 와이진수이차오(外金水橋)가 놓여져 있고
그 밑으로는 진수이허(金水河)가 흐르고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메이데이와 국경절이 되면 퍼레이드가 벌어지는데,
톈안먼 문루(門樓)는 그 사열대가 된다.
마오쩌뚱(毛澤東)은 이 문루에서 1949년 10월 1일 중공정권의 수립을 선언하였고,
1966년에는 홍위병(紅衛兵)을 열병하기도 했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위키백과.



Flower




쌍떡잎식물 대극과의 한해살이풀인 설악초,
오이포르비아 마르지나타(Euphorbia marginate Pursh)라고 부르며,
영명은 Snow on the Mountain이다.
전체가 독성이 있어서 식용해서는 안된다.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인 코스모스.
설상화는 색깔이 연분홍색 · 흰색 · 붉은색 등 매우 다양하고,
통상화는 꽃밥이 짙은 갈색이고 열매를 맺는다.
코스모스란 그리스어의 코스모스(kosmos)에서 유래했는데 이 식물로 장식한다는 뜻이다.

설상화 : 국화나 민들레처럼 꽃잎이 합쳐져서 1개의 꽃잎처럼 된 꽃.
관상화(管狀花) : 화관의 형태가 가늘고 긴 관 또는 통 모양인 꽃으로 통상화라고도 한다.








꽃향유.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산에서 자라며, 꽃은 9~10월에 붉은 빛이 강한 자주색 또는 보라색으로 핀다.
가을에 꿀벌에게 꿀을 제공하는 밀원식물이며 어린순은 나물로 식용한다.



...............................................................................................................................................................................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낙동구절초(落東九節草).
들국화의 일종으로 넓은잎구절초에 비하여 잎몸이 두껍고 밑 부분이 차차 좁아진다.
꽃은 9~10월에 흰색 또는 분홍색으로 피고 열매는 10~11월에 익는다.

노란 산국과 감국, 흰빛의 구절초, 연한 보라색의 쑥부쟁이, 연한 자주색의 해국,
거기다 여름철이 개화기임에도 가끔 늦게 피기도 하는 연한 자주색의 벌개미취...
다들 꽃 모양이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구절초.

잎이 가늘고 깊게 갈라지면 산구절초(가는잎구절초), 
잎이 넓고 얇게 갈라지면 구절초(넓은잎구절초)로 구분한다. (참고)



...............................................................................................................................................................................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개쑥부쟁이.
꽃은 7~8월에 자줏빛으로 피고 열매는 털이 나며 9~10월에 익는다.
한국특산식물로 전국에 분포한다.








꽃잎이 져버린...



...............................................................................................................................................................................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마편초과의 관목인 란타나(lantana).
꽃의 색은 흰색, 분홍색, 오렌지색, 노란색, 붉은색 등으로 아름답다.
꽃의 색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칠변화(七變花)라는 이름이 있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Flow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리핀 세부(Cebu) - 꽃(1)  (14) 2011.05.30
꽃 (41) - 튤립 / tulip  (14) 2011.05.03
꽃 - 39 [국화(菊花) - 2]  (16) 2010.12.05
꽃 - 39 [국화(菊花) - 1]  (24) 2010.11.29
꽃 - 38  (22) 2010.10.04
Natural




결실이란 가을에만 거두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여름, 산 속 어느 모퉁이에서는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지요.








따뜻한 햇볕을 듬뿍 받으며 방울토마토도 영글어갔습니다.
보기에도 너무나 풍족해 보이는 풍경들이었지요.








그리고 숲 어느 한 구석에서는 이름모를 야생초 하나가 외계인 마냥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을 치켜들며 주위를 탐색하기도 했었습니다.








그것 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열매도 있었습니다.
꽃사과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여름을 거쳐 찬바람이 불어올 즈음에는
열매들만 오롯이 나뭇가지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산돌배, 돌배, 콩배...
콩배는 열매의 크기가 돌배나 산돌배 보다 훨씬 작은 1cm 정도로
말 그대로 콩만 하며, 산돌배는 열매의 꽃받침이 남아있어 돌배와
구별이 된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 녀석은 돌배와 가까운 것 같습니다.








쌍떡잎식물 감나무목 감나무과의 낙엽교목인 고욤나무.
고욤, 고양나무, 소시(小枾)라고도 합니다.
열매에는 타닌이 들어 있으며 빛깔은 노란색 또는 어두운 자줏빛이지요.
어릴적, 장독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까치밥이라도 남겨둔 것일까요. 가을이 되어 이미 수확을 마쳤음에도
몇 알의 포도송이는 여전히 그 밭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넉넉한 주인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져 왔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온 결과인 것 같습니다.
맺어진 열매의 크기만큼 그 과정에서 흘렸을 땀방울 또한 적지 않았을 터이니,
결국, 부단한 노력만이 알찬 결실로 보답되어진다는 교훈을
이들 열매들을 보면서 다시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한 해의 끝에 선 지금, 저의 손 안에는 과연 어떤 열매가 쥐어져 있는지
스스로 지난 날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실망스럽다는 말은, 당연하게도 그만큼 노력이 부족했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러나 저의 모든 이웃분들은 한 해를 보내면서 여러 좋은 결실로
마무리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 알차고 더 큰 결실들로 맺어가시길 기원합니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Natur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봄...  (15) 2011.04.19
계절, 봄을 기다리며...  (0) 2011.03.06
가을... 그 빛에 취하다 - 2  (20) 2010.11.18
가을... 그 풍성함을 위하여  (19) 2010.09.20
봄의 예감  (17) 2010.03.15
Travel




전문대가(첸먼 거리, 前門大街)의 시작을 알리는 패루(牌樓).
베이징에서 가장 큰 길거리 패루라고 하며, 역사적 문헌과
사진을 근거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패루란 경축의 의미로 큰 거리를 가로질러 세운 시설물을 말한다.








약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거리는 전문 앞에 전루(箭樓)를
시작으로 남북으로 845m가량 길게 뻗어있는 모습이다.








전문대가는 자금성 남쪽 성문인 전문(前門) 앞에 위치한 번화가로,
이곳 북쪽에는 성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정양문(正陽門, 오늘날의 전문)이
세워져 있어 명대부터 민국시기까지는 정양문대가(正陽門大街)로 불렸다.
그러나 1965년부터는 정식명칭이 전문대가로 명명됐다.








전문대가는 명대(明代)에 전국 각지에서 과거시험 준비생들이
몰려들면서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쭉 뻗은 길 좌우로 깨끗하게 단장된 상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중앙 통로는 넓고 시원하며 회색조의 건물들로 인해 차분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전문대가의 뒷골목은 다소 다른 풍경이다.
크고 작은 간판들로 현란한 모습이다.
특히 음식점 앞을 지날 때에는 중국음식 특유의 향취가 코를 찔러댄다.








골목마다 호텔, 음식점, 기념품가게 등
다양한 업종들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대가의 중앙 통로에 웬 레일인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먼발치에서 전차가 다가왔다.
                               이곳 양 극단 중심을 오가는 궤도전차로 당당차(當當車)라고 부른다고 한다.
                               당당차는 과거에 전문대가를 시발점으로 운행했던 1920년대 베이징의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보행자들에게 주의를 주기위해 발판을 밟으면 
                               당당하는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다시 시작지점으로 되돌아 왔다.
패루(牌樓) 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정양문의 전루(箭樓)로 성루의 남쪽
정면에 위치하며, 과거에는 화살 및 총포를 발사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한다.
원래는 성루와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도로를 직선으로 정비하면서
성벽을 허물어 지금은 망루만 남아있다.
저 뒤로 천안문광장과 자금성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가 볼 참이다.








Travel





건물 뒷편으로 베이징시 조양구 공인체육관의 인공호수가 보인다.
이 호수 아래에는 부국해저세계(푸궈하이디스제, 富國海底世界)
박물관이 시설되어 있다.
중국과 뉴질랜드의 합작으로 1997년 11월에 개관하였으며,
건축면적은 7800㎢이다.








상어, 가오리, 뱀장어, 산호초, 랍스터, 해마, 불가사리 등
수 천여종의 해양 생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18개의 다양한 테마를 가진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거의 모든 열대성 물고기들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컷던 탓일까.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는 하지만...








전시물의 내용 등, 그냥 보기로는 국내에서 본
여느 아쿠아리움과는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각기 다른 수조 속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어지럽게 오가고...








어쩌다 이곳으로 오게된건지...

파충류 중 가장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커다란 거북이가 물 속을 유영하며 다가온다.








                               손이라도 있으면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일 것 같은, 
                               실고기목 실고기과의 바닷물고기인 해마도 
                               이곳 한 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중심 전시장의 투명 아크릴로 만들어진 지하터널이다.
                               약 450만 리터의 해수가 수조속에 담겨져 있으며,
                               아시아 최장길이인 20m의 긴 무빙워크를 따라 관람할 수 있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etc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관엽식물인 포인세티아.


관련/ 2009/12/21 - [Flower] - 꽃 - 34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독일의 종교 개혁가인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는 영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전도활동을 하여
'독일의 사도'라고 일컬어지는 성 보니파티우스의 이야기입니다.

게르만족에 의해 해마다 숲속의 전나무에 인신제물이 바쳐지는 것을 
보게 된 그는 그 나무를 베어 소녀를 구해 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로 인하여 재앙이 닥쳐오리라고 두려워하였으나,
그 나무는 다음해 봄이 되고 또 다시 싹이 돋아나도 재앙은 없었다지요.
이에 감복한 사람들은 개종을 하게 되고, 그 나무를 둘러싸고 감사를 드리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습관처럼 그 나무에 모여들어 예배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뒤에 크리스마스의 장식으로서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산타클로스의 효시로 알려진 인물은 270년경 소아시아 지방(지금의 터키 영토)의
항구도시였던 파타라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선심이 많았던 사람으로 후에 미라(Myra)의 대주교가 되어
남볼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고 하지요.

또한 산타클로스는 붉은 모자를 쓰고 붉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1931년 미국의 해돈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를 위한 그림에서
코카콜라의 상징색인 붉은색을 산타클로스에게 입히면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시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신앙의 여부를 떠나,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가슴설레어 하는 그런 날이기도 하지요.
성탄의 기쁨을 가지신 모든 분들에게 축복이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이전에도 그랬고, 또 그 이전에도 그랬듯이
우리들은 항상 이때가 되면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을 담아서 무언가 다짐을 해보곤 합니다.
바로 미래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못다이룬 꿈일 경우 
이를 점검하고 수정해 나가는 것이지요.

새해에는 모두가 그 꿈에 희망이라는 이름의 날개를 달고
힘차게 출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을 가진 자 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큰 꿈을 안고 봄에 씨앗을 뿌린 자 만이
돌아오는 가을을 기다릴 자격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지나가는 2010년은 모두에게 행복하고 좋은 일들로만 
기억되는 한 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2011년은 보다 더 큰 희망이
성취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올 한 해동안 변함없이 지켜봐 주신 저의 모든
이웃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보다 더 행복하시고, 더 건강하시고... 
거기에다 행운과 축복까지 함께 한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 좀 성급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성탄절을 핑계로 새해인사까지...^^;;;
-- 위 이미지 액자 속 아이콘 배열에는 특별한 기준이 없습니다.
   허접하지만, 저의 이웃분들은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시다는 의미를 담아 본 것이지요. 

   혹시 누락된 분이 계시다면, 그저 하나의 상징일 뿐이니 넓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참고/ 네이버용어사전, 위키백과.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리핀 세부(Cebu) - 여행... 그리고 음식  (16) 2011.06.28
다음 로드뷰...  (0) 2011.04.07
자동차 엠블럼  (0) 2010.07.01
담, 혹은 벽  (17) 2010.01.04
성탄, 송년... 연하카드로 전하는 새해인사  (22) 2009.12.24
Travel





베이징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2008년 8월 1일,
중국 1호점으로 개관한 우리나라의 롯데백화점.

왕푸징(왕부정)은 약 1km거리 양편으로 약 180여개의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베이징 최대의 번화가이자 상점가로,
한국의 명동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700여년전 원대 왕조의 여러 기관과 왕족들의 저택인
왕부가 몰려 있었으며, 명대 때부터 이미 상업활동이 활발했었다고 한다.
당시 황실의 우물이 있었기에 그 이름을 따서 왕푸징이라 부른다.








1955년 중국 정부의 투자로 세워진 국영백화점이자
베이징 제1호 백화점인 베이징백화점.  
시계탑은 왕푸징의 상징이 되고 있다.








                               사실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대형 백화점에서부터 소규모의 상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서 찾지 못할 아이템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동양 최대의 쇼핑몰인 동방신천지를 비롯하여 동방광장, 신동안시장, 
                               그리고 왕푸징의 역사와 함께 한 동안시장, 백화대루 등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오른쪽 건물은 북경에서 1,2위를 다툰다는 대형서점인 왕푸징서점이다.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합작품이라는 왕푸징 교당(敎堂).
                               북경 4대 천주교 성당 가운데 하나로, 명나라 말기에 
                               2명의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이 곳에서는 중국의 특이하고도 다양한 먹거리들과도 만날 수가 있는데, 
간식으로 유명한 샤이오츠지에(먹자거리)와 꼬치로 유명한 꼬치거리까지
가까이 포진하고 있어 입까지 즐겁게 한다.
길 건너로는 왕푸징의 명물인 꼬치거리로, 꼬치를 파는 포장마차가
도로를 따라 약 100m에 걸쳐 줄지어 서 있다.








하늘의 비행기, 땅 위의 책상, 그리고 바다의 잠수함을 빼고는 모두 다
먹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바로 이들 중국인들을 두고 한 말일터...  
전갈, 불가사리, 해마, 지네 등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하고도
이색적인 음식들을 맛볼 수가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



Travel





중국 황실의 여름 별궁이자 최대 규모의 황실 정원이라는
이허위안(園, 이화원, Summer Palace)에 들어섰다.

넓다란 호수와 그 위를 떠 다니는 유람선이 먼저 반겨준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다리는 길이 150m의 스치쿵차오(十七孔橋)로, 
쿤밍호 남동부에 위치한 난후다오(南湖島)를 연결하며,  
중국정원 내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이허위안은 1750년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원래 이름은 칭이위안(淸漪園)이었다.
그 후 1860년에 영불연합군에 의해 소실되었던 것을
1886년에 재건하면서 이허위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자금성의 10배 정도의 크기로써, 특히 청나라의 마지막 황후인
서태후가 이곳에서 별궁으로 피서를 즐겼다고 한다.
총면적 2.9k㎡, 호수의 둘레 8km로,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호수는 쿤밍호(昆明湖)로, 전체면적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인공호수이다.
그리고 우측으로 보이는 산은 약 60m높의 완셔우산(萬壽山)으로
쿤밍호를 조성할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이다.
쿤밍호와 완셔우산을 중심으로 각종 전각과 사원, 회랑 등
3천여 칸의 전통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길이 728m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는 창랑(長廊)이 위치한
저곳으로는 아쉽게도 발걸음을 하지 못했다.








퉁뉴(銅牛).








                               스치쿵차오 초입에 세워진 정자.








                               대지면적 약 1ha정도의 난후다오(南湖島)로 건너왔다.
                               섬 위에는 룽왕먀오, 한쉬탕, 젠위앤탕, 웨보러우 등의 건축물이 있다.








자산(假山)에 있는 한쉬탕(堂), 3층으로 된 섬의 중심 건물이다.
쿤밍호에서 실시하던 해군훈련을 지켜보던 장소로 사용되었고,
청(淸)의 광서(光緖)시기에 단층 건물로 개축되었다.









                               완셔우산 앞 거대 석고대 위에 만들어진 불향각(佛香閣).
                               높이가 41m로, 전 지붕이 3층 4겹의 처마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 위로는 놀잇배가 지나 다니고, 그 주위 나무 사이로는 언뜻언뜻
전각이 들어 서 있는, 마치 여름 피서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는 듯 
아주 평화로운 풍경이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Travel


중국 베이징에 다녀온건 지난 8월의 일이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해가 바뀌는 시점이 된 지금에서야 올려본다.  
대체로 사전을 들추는 듯한 분위기로 약 15회 정도의 분량이 될 것 같은데,
이왕 늦은것... 수박 겉핥기식으로 쉬엄쉬엄 정리해 보려 한다.
물론 여행기라고는 할 수 없다.
이제껏 그래왔듯이 그다지 재미는 없을거라는 얘기다.

지난 7월부터 중국 전역에서는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계속되었고, 8월 11일의 경우만 해도 중국 충칭에서는
43도까지 치솟았다고 했다.
그런 보도를 보고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말로만 듣던 천안문과 자금성,
그리고 만리장성 등의 모습을 직접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가는 날 부터 가랑비가 시작되더니 한때만 햇볕이 반짝거렸을 뿐,
대체로 궂은 날씨... 결국 마지막 날에는 장대비까지 쏟아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더위가 다소 누그러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말이다.








중국은 BC221년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처음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중국 최후의 통일왕조인 청(淸)나라에 이어 국민당의 국민정부가 세워졌고,
1949년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정식명칭인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은 22개의 성(省), 5개의 자치구,
4개의 직할시, 2개의 특별행정구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홍콩, 마카오를 제외한 지역을 중국대륙(중국본토)으로 칭한다.








베이징부근은 2000년 훨씬 이전부터 이미 중국 동북부 국경지대의 중요한
군사,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원대(元代, 1271~1368)인 1267년 이곳에
대도(大都)라는 이름의 신도시가 건설되어 행정수도가 되었다.
명(明, 1368~1644)의 제1,2대 황제 재위기간에는 난징(南京)을 수도로 삼았으며,
전대의 수도였던 대도는 베이핑(北平)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명의 제3대 황제는 베이핑을 다시 수도로 삼고 베이징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그 후 베이징은 국민정부가 난징을 다시 수도로 삼았던 짧은 기간을 빼고는
계속 수도로서의 지위를 지켜왔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로서 줄잡아 7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
특히 원(元), 명(明), 청(淸) 3개 왕조에 걸쳐 수도로 있었기에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고 과언이 아니다.
16개 구와 2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은 16,807km² 로
서울, 인천, 경기도를 포함한 것보다 넓다.
정식 명칭은 베이징직할시(北京直轄市)이며, 약칭하여 징(京)이라고도 부른다.

베이징은 미국 '외교정책' 잡지가 발표한 2010년 세계도시 랭킹에서
도시 규모와 경제력, 상업활동 등 종합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15위에 오르기도 했다.
인구는 1,800만명 정도이며 유동인구는 50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서양의 기준으로 보면 베이징의 생활리듬은 느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먹고 싶을 때는 마음껏 먹는 그들이다.
중국인들은 집치장과 옷차림 보다도 먹는 것을 첫째로 꼽는다고 한다.
먹는 것 외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베이징의 특산 요리로는 오리구이인 베이징카오야(烤鸭), 궁팅차이(菜),
탄자차이(菜), 불고기, 샤브샤브가 5대 요리로 꼽힌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인 관계로 문화 수준이 비교적 높고 예절 바르며
정치에 대한 관심이 크다.
대륙적인 기질로 여유만만하고 스케일이 큰 반면 상대방을 의심하고
여간해서는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중국인, 만만디(慢慢的)는 느릿느릿한
사림이라는 뜻으로 그들을 두고 흔히들 하는 말이다.








                               중국은 56개 민족이 거주하는 다민족국가이다.
                               한족(漢族)이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55개의 소수민족이 8%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중국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돈을 중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아이 돌잔치에 돈, 연필, 실 등을 잔치상에 
                               올리는데 비해 그들은 붓과 함께 주산을 올릴 정도다.
                               그리고 수 많은 신(神)들을 섬기기도 한다. 
                               조상신은 물론 땅의 신, 집의 신, 화장실, 대문, 부뚜막의 신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돈의 신인 전신(錢神)이 있으며 재신(財神)도 있다.








베이징은 계획도시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길이 동서 아니면 남북으로 나 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길을 가르쳐 줄 때, 대체로 전후좌우 방향이 아니라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알려 준다.
또한 그들은 버스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가 하면 폭넓은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시내교통은 주로 트롤리버스와 버스에 의존하고 있으며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베이징의 경우 3명당 2대 꼴로 자전거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연극으로는 경극(京劇)이 있다.
                               베이징에서 발전하였다 하여 경극이라 하며 
                               14세기부터 널리 성행했던 중국 전통가극인 곤곡(崑曲)의 요소가 
                               가미되어 만들어졌다.








여타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중국에서도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부유층과 국유기업 관리등이 실제로 받는 월급외에 각종 제도적 허점과
편법을 이용해 각종 부수입을 챙김으로써 빈곤층이 벌어 들이는 수입의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배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건에 있다는 것이다. 
1988년 상하위 10%간의 소득격차가 2007년 23배로 늘어났다는 공식 통계가
있긴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입까지 포함하면 실제 차이는 55배 가량
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출처/ 와우뉴스)
2009년 중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3600달러에 달했다.

한편으로는 백만장자 또한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명품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명품 소비규모는 94억달러에 달해
세계시장 점유율 27.5%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한다.








중국의 전체 인구는 2008년 기준으로 13억 3004만명이다.
중국 정부는 인구증가가 중국의 경제발전의 혜택을 나눠 먹어야 할
입만 늘려 놓은 셈이라는 판단아래 교육과 선전 및 상벌을 통해
1자녀갖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으나, 농촌의 전통적인 남아선호
관념 등의 이유로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참고/ Daum 백과사전, 위키백과.
중국인을 이해하는 열 가지 핵심. 네이버지식iN,



1 ··· 28 29 30 31 32 33 34 ··· 49
블로그 이미지

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속의 사진 나부랭이 /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저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s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