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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정문이자 보물 제384호인 홍화문(弘化門).

창경궁은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이 창덕궁 동쪽에 1483년에 완공한 궁궐로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지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 · 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 · 환경전 · 경춘전 ·
인양전 · 통명전 등의 침전 및 양화당 · 여휘당 · 사성각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 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으며 창덕궁과
경계없이 하나의 궁궐로 사용하여 둘을 합쳐 동궐(東闕)이라 칭하였다.
창건 초기에는 쓰임새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 · 
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정궁의 역할을 하면서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옥천교(玉川橋)를 사이에 두고 명정문에서 바라 본 홍화문.
옥천교는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御溝) 위에 설치한 다리다.
조선시대의 왕궁은 모두 명당수 위의 석교를 건너서
정전(正殿)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졌다. 








명정문(明政門). 이곳을 들어서면 명정전이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하면서 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4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다.








국보 제226호인 명정전(明政殿).
24개의 품계석(品階石) 사이로 명정문과 연결되는 어도가 깔려있다.
이곳에서는 임금님이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국가적인 행사가
거행되었으며 1544년 인종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정전인 명정전과 명정문, 홍화문은 광해군 8년(1616)에 중건된 이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 중 명정전은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으로, 조선 왕궁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명정전의 내부 바닥에는 전(塼)을 깔았고, 뒤편 중앙부에는 왕좌인 
                               용상이 있는데 그 뒤로 일월도의 병풍이 놓여져 있다.
                               그 위로는 닫집으로 된 보개(寶蓋)가 있고 천정의 중앙부에는 
                               한층을 접어올린 쌍봉문(雙鳳紋)이 있는 보개천정을 장식하였으며,
                               그 주위로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명정전의 뒷면 중앙 어칸(御間) 앞으로 설치된 복도.
빈양문과 연결되며 이곳을 통하면 바로 내전으로 들어서게 된다.
마주 보이는 건물은 명정전이다.









함인정(涵仁亭)과 그 뒤의 환경전(歡慶殿).
이곳에는 원래 성종 15년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 11년(1633)에 인경궁의
함인당을 이건하여 함인정이라 했다.
이곳은 특히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물 제846호인 풍기대(風旗臺). 풍기대 위의 구멍에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재던 것이다
                               영조 8년(1732)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 높이는 228.1cm,
                               하부대석 높이는 92.4cm, 상부 팔각주의 높이는 135.7cm이다.









통명전(通明殿). 보물 제818호이다.
창경궁의 연조 공간으로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이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중건된 것으로 지붕 위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 문화재청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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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7번 국도,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 위치한
장사해수욕장(長沙海水浴場).
백사장 길이 900m에 폭 50m로 평균 수심은 1.5m 정도이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경사가 완만하며, 백사장에 울창한 송림이 있어
여름철에는 가족 피서지로 적합하다.








이곳은 6.25전쟁때 장사상륙작전의 전적지이기도 하다.








국도변에 인접하여 있기에 지나는 길에 잠시들러
가벼운 휴식과 함께 마음의 여유라도 찾아봄직하다.








장사해수욕장은 면 소재지에 위치한 관계로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영덕군에서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바가지 요금이 없다고 한다.
인근에 경보화석박물관과 삼사해상공원이 위치해 있다.








바닷물은 더 없이 투명하고...








백사장 또한 깨끗하기만 하다.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저 아가씨들의 발을 보라.
이 추운 겨울인데도 맨발이지 않은가.








특히 이곳에는 가자미 · 넙치 · 우럭 등이 많아
바다낚시꾼들이 연중 찾아들고 있다고 한다.








                               누구 말마따나 이렇게 넓은 바다에 고작 새우 한 마리를 
                               매달아 놓고 물고기가 물어주기만을 기다리다니...
                               어찌보면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지만, 생각과 달리 물고기가 
                               그것을 발견하고 입질을 해댄다는 사실이 그저 신통하기만 하다.
                               물론 그만큼 이 바다에는 물고기가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늦은 오후가 되니 고즈넉한 정취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주위 사람들이 낚아 올리는 물고기들을 보고나서 부터는
한 마리라도 더 잡아야겠다는 욕심이 앞섰지만,
자리를 뜰 즈음에는 비록 망에는 물고기 한 마리 담겨있지 않았어도 
아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희안하게도 마음은 더 편안해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건 순전히 바다 때문인 것 같았다.
바다는 모든 것을 잊게 해주고 마음을 비우게 해 주었다.
아마도 그것이야 말로 바다가 주는 진정한 힘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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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이는 산 정상부의 구조물이 바로 영일 장기읍성(迎日 長鬐邑城)이다.
사적 제386호로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에 위치해 있다. 
산성의 역할을 겸한 읍성으로 해발 252m인 동악산에서
해안쪽인 동쪽으로 뻗어내려오는 지맥 정상에 축성된 형태이다.
 







읍성이란 지방의 관아와 민가의 취락지를 함께 둘러서 쌓은 성으로,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장기읍성은 산꼭대기에 있으면서 읍치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어
읍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기록에 의하면 고려 현종 2년(1011)에
동으로는 왜적, 북으로는 여진족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토성으로 처음 쌓았고
조선시대 세종 21년(1439)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당시 읍성의 둘레는 2,980척(약 1,392m)에, 높이 10척으로
4개소의 우물과 음마지(飮馬池)로 사용되는 2개소의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성의 형태는 타원형으로 3개의 성문과 옹성, 그리고 치성을 갖추고 있다.








현재 읍성의 둘레는 1440m, 성벽높이 약 3.7~4.2m,
성벽 두께는 하부가 약 7~8m, 상부가 약 5m라고 한다.








옹성(甕城)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또 한 겹의
성벽을 둘러 쌓아 이중의 성벽을 만드는 성곽 구조물로
월성(月城)이라고도 한다.
성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옹성을 통과해야 하며,
성문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 접근하는 적을 삼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장기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성내에는 교육기관인 장기향교와 동헌터가 남아 있는데,
동헌은 면사무소 안으로 이전하여 보호하고 있다.








읍성은 대부분 복원된 상태이나 한쪽 능선으로는
성곽이 새로이 복원, 축성되고 있다.
보기보다는 능선이 꽤나 가파르다.








또한 이곳 장기읍 일원은 조선시대 유교의 대가 우암(尤庵) 송시열(宋詩烈)과
실학파의 태두(太斗)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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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으로 일본 목조주택의 구조적, 의장적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다이토 여관(大藤旅館).
                               각 층에 많은 방을 가진 2층 목조건물로 1938년에 신축되었으며, 
                               담벼락에 붙여놓은 사진은 당시의 모습이다.

                               일제강점기때 어업 침탈의 현장이기도 한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장안동 골목 470m거리에는 적산가옥 50여 채가 남아있다.
                               절반 가까이는 빈집이라고 하는데, 일부는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요리집 안성정(安城亭), 주인 니바야시마스에이(二井林增英).

                               적산(敵産)은 본래 '자기 나라의 영토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 
                               또는 적국인의 재산'을 뜻하나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 남겨놓고 간 집이나 건물을 지칭한다.
                               국내의 적산가옥은 해방 후 일반인들에게 대부분 불하(拂下)되었다.(네이버용어사전)








                               1922년에 신축된 하리야마식당 야마구치마사유키상점.
                               지금은 많이 낡은 모습이나 내부 목조계단과 난간 · 만월을 상징하는 
                               원형 창호 등, 전체적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종로거리' 혹은 '선창가'로 불리웠던 이곳 구룡포에는 
                               일제 강점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당시 구룡포 앞 바다는 황금어장으로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고용해 
                               엄청난 어획고를 올렸는데, 그도 그럴것이 조선인 어선은 100여척에 
                               불과한 반면 일본인 어선은 900여척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어부들만도 1만 2천여명, 그 중 구룡포에 
                               주소지를 둔 일본인만도 1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일군사'에는 1933년 구룡포에는 270여가구 1100여명의 
                               일본인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구룡포의 최전성기는 1930~1940년대로, 1970년대까지는 
                               호황을 누렸지만 대형선박이 출현한 1980년대 말부터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한다.
                              








적산가옥 한 쪽 언덕에 위치한 구룡포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이 계단을 오르면 충혼탑 · 충혼각과 만나게 된다.

일본인들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가 보이는 이곳 뒷산에 공원을 만들고
신사를 세우면서 당시 후원을 한 일본인들의 이름을 비석에 새겨
공원입구 계단 양쪽에 나란히 세웠다.
그러나 해방이후 충혼탑을 건립하면서 시멘트로 기록을 없애고
그 비석을 거꾸로 돌려 구룡포 유공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현재 구룡포공원에는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으며, 
그 뒤편에는 충혼각이 있다.








                               구룡포를 일본의 전진기지로 발전시키는데 공을 세운 
                               일본인 '도가와 야사브로(十河 彌三郞)'를 기리는 송덕비. 
                               해방이 되자 대한청년단원들은 신사를 부수면서 
                               이 비의 비문에 시멘트를 발라 놓았다.








구룡포공원에서 내려다 본 구룡포항.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홍보전시관.

1938년 구룡포어업조합장을 지낸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가 살았던
구룡포 243번지 건물로 당시 일본가옥의 형태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남아있는 일본인 가옥 중에서 가장 크고 격식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며,
'一'자형 평면 형태의 지상 2층 목조건물로 1923년에 신축되었다.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2층 전시장.
1층에서는 당시의 사진자료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위 왼쪽/ 주전자, 오른쪽/ 1930년판 중학교 수학교과서.
아래쪽/ 겨울 난방용으로 사용했던 화로.

그 외에도 다양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미닫이 문을 비롯하여 
다리미, 이발기, 일본도(日本刀)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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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함(PCC-756)은 2010년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북한의 잠수정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과 동일한 제원을 가진 함정으로, 
                               우리 해군의 주력 1200톤급 초계함이다. (제원은 맨 아래사진 참조)








전투정보실.
전투에 필요한 레이더를 관측하며 포를 발사하는 전투지휘소이다.
포항함의 모든 무기의 발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포항함은 1984년에 취역하여 25년간 우리의 바다를 수호하면서
250여회의 출동임무를 수행, 대간첩작전 지원 및 후방 경계 책임의
핵심세력으로 활약하였으며, 1986년에는 동해 최전방에서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는 무장 선박을 침몰시키는
전과를 세우기도 하였다.

2009년 6월 30일 동해함(PCC-751)과 함께 퇴역하여 포항 동빈내항에서
체험관으로서 2010년 6월 12일 개관되어 활용되고 있다.








함정의 상갑판에 위치한 함교(艦橋, 조타실).
함정의 조종실이자 전투나 항해시 함장이 지휘하는
지휘소이기도 하다.

포항함은 함포와 어뢰, 미사일, 폭뢰 등으로 무장하고
해상초계와 대수상함전, 대잠수함전, 대공전 등을
전개하기 위하여 건조되었다.








함교에 위치한 전탐기(전파탐지기, 레이더).








                               중앙 복도 좌우측으로는 여러 용도의 격실이 배치되어 있으며,
                               가파른 계단과 좁은 통로 등의 구조로 인하여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천안함과 제원은 동일하지만 내부구조는 같지 않다고 한다.








함승조원 110여명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취사장.








장교들의 회의 장소이자 사관식당이기도 한 사관실에는
천안함의 희생자와 고 한주호 준위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함수 갑판 위에는 고 한주호 준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실물과 똑 같은 크기로 황동으로 제작되었다.








포항함 체험관은 체험관과 홍보관 · 안보관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홍보관은 포항함 건조에서 퇴역까지의 과정과 해군의 홍보 동영상,
해군에서 취역중인 최신 함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천안함 희생자의 추모코너가 마련되어 있는 곳은 안보관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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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원과 중국역사박물관에 이어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수도박물관(首都博物館)내의 전시물이다.
수도박물관은 1981년에 공식적으로 개관하였으나 전통적인 미와
현대적인 건축의 요소를 융합하여 2006년에 재개관 하였다.

다른건 제쳐두고, 그 곳의 전시물을 몇 가지 감상해 보기로 한다.
유물에 대한 설명은 능력 밖이라 그저 눈으로만...








수도박물관은 총면적 6,000㎡, 지상 6층, 지하 1층의 규모로
총 5,622점의 전시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전통 유물보다는 생활사 유적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지는데,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유물과 과거의 베이징 건축물 모형 및 
자료들, 그리고 옛 베이징의 문화 등이 전시된 공간이 그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미술 · 회화 · 서예 등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된 공간이다.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된...








                               옛 베이징의 민속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이 모형은 결혼식 풍경을 재현해 놓은 것으로,
                               신부를 태운 가마의 행진이 되겠다.
                               그냥 보기만 해도 꽤나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각 시대마다 대표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진품보다는 복사품이 많다는 것이 다소 흠일 듯 하다.
                               사실 그렇다하더라도 그 흠결을 찾기가 쉽지않아 문외한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이곳에는 전시실 외에도 다목적 홀 · 멀티미디어실 
                               그리고 경극을 공연하는 극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유물 복원과 보존과정 · 도자기 제작 · 먹물갈기 ·  
                               경극분장 등의 체험활동 또한 가능하다고 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으로 동방여행을 떠나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원나라에서 관직에 올라 17년을 살았다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에 관한 이야기는 이곳으로...








                               중국 공산당의 혁명에 대한 역사 등도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인민일보 북평판(北平版)으로, 창간호로 보인다.
                               북평이란 지금의 베이징을 1928년 시(市)로 정할 때 개칭한 이름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일간신문으로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인민일보는 
                               중국 13억 정부의 대변지이며 중앙당 기관지로, 중국 공산정권이 
                               대륙을 통일하기 전인 1948년 6월 15일 허베이(河北)성 핑산(平山)현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화북국의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1949년 중국공산정권이 베이징으로 진주하자 3월 베이징으로 이전하면서 
                               그해 8월 중국공산당 중앙의 기관지로 변경되었다.

                               1985년에는 인민일보의 자매지로 해외판을 창간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한글, 주간)으로 2010년 9월에 창간되어 
                               서울에서 발행되고 있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

                               많이 부족함에도... 관심을 가지고 중국 베이징에 대한 
                               포스팅을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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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 70m의 용경협 댐.

                               용경협은 북경시 연경현에 소재하고 있으며, 베이징에서 85km정도 떨어져 있다.
                               1973년 10월에 계곡을 막아 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인공호수로,
                               여름에는 북경지역 최고의 피서지로 꼽힌다.
                               매년 1월부터 2월 말까지 이곳에서는 빙등 예술축제 행사가 열리며,
                               얼음조각 국제경연대회가 개최되기도 한다.








                               댐 오른쪽에는 몸부림치는 용의 형상을 한 터널이 있다. 
                               내부에는 몇 대의 에스컬레이터로 이어져 있는데, 길이는 258m에 이른다. 
                               1996년 유람선이 있는 댐 위에 까지 올라가는 이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면서 베이징의 16명소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장강소삼협(長江小三峽) 혹은 소이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작은 계림(小桂林)으로도 불리우는 용경협의 산수를 잘 표현한 한 구절의 시가 있다.

                               소삼협(小三峽)이 삼협을 능가하니 그 산은 삼협보다 험준하고
                               소이강이 이강을 능가하니 그 물 또한 이강보다 맑도다.








                               유람선 선착장 위쪽으로는 465m 길이의 케이블카가 
                               댐을 가로지르고 있다.








- 용경협의 전체 면적은 119㎢이며, 총길이는 21km이다. 
- 용경협호의 면적은 34만㎡이며, 용적은 850만㎡, 높이는 60여 미터이다.
- 용경협곡의 전체 길이는 21km정도이나 그 중에서 유람선이
  운행하는 거리는 약 7km 가량 된다.

금강사(金剛寺) · 옥도산(玉渡山) · 신선원(神仙院) · 옥황정(玉皇頂) · 해타산 등의
관광명소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타산이 2,241m로 가장 높다.








                               마주 보이는 절벽에는 장쩌민(江澤民)의 필체로 용경협임을 알리고 있다.
                               1992년 5월 장쩌민 총서기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관광지구의 이름을
                               용경협으로 정식 사용하게 되었다.
                               왼쪽으로 보이는 산은 3면이 물로 에워싸인 봉관도.









협곡을 굽이 돌때마다 좌우로 기암절벽이 잇따라 펼쳐지면서 장관을 보여준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한 폭의 길고 거대한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절벽 위쪽으로는 구연동 · 금강산 · 신선원 등의 등산코스도 있다.








만약 신선이 존재한다면 이런 곳에서나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지금은 댐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이지만
그 이전, 본래의 모습은 또 어떠했을지 궁금증이 일어난다.








                               강 위 180m 정도 되는 높이에 외줄이 걸려 있다. 그 위에서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탄 사람이 서커스 묘기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기로는 실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설치물같다는 느낌이다.








                               금강사와 마주한 골짜기에는 붓 모양의 신필봉(神筆峰)이 우뚝 서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진나라 때 '상곡군'이라 불리웠던 연경현에 예서체를 
                               발명한 왕차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시황이 그 사실을 알고 
                               여러차례 입궁명령을 내렸으나 왕차중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격노한 진시황은 신하를 시켜 왕차중을 잡아들였으나, 함양으로 압송하는 도중에
                               한 마리의 큰 봉황으로 변하여 다시 상곡군으로 돌아가 두 개의 깃을 
                               송산(松山) 아래로 떨어뜨려 대핵산과 소핵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서체를 발명한 그 신기한 붓은 공중에서 용경협으로 떨어져 하나의 
                               봉우리로 변하였다고 하며, 이후 그 봉우리를 신필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 용경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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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가 어지럽게 얽혀져 있는 테마 놀이공원인 환락곡(환러구, Happy Valley).
2009년 10월 베이징에서 선정, 발표한 신 16경에 포함되었다. 
2010년 7월에 오픈했다는 이 롤러코스터는 높이 60m에
133.6km/h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 트랙길이는 850m의 규모라 한다.








베이징 환락곡은 총면적 56만㎡로 2006년 7월에 완공되어 개방되었다.
현재 중국 최대 규모의 투자, 최대 면적을 자랑하며 국제화 및 현대화가
가장 잘된 테마공원으로 문화체험 및 오락종목이 많은 곳이다.

놀이시설 개념도 자세히 보기








뽀족하게 솟은 저 탑은 베이징 시내의 여러 건물들 사이에서
가장 특색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6개의 테마구역(샹그릴라, 아틀란티스, 개미의 왕국, 잃어버린 마야,
에게해의 항구, 와일드 피요르드 등)으로 구성된 환락곡,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아틀란티스구역이다.
그 외에도 50여 개의 테마경관과, 10여 개의 테마공연, 30개가 넘는
테마 오락시설, 20여 개의 테마 게임 및 상업 보조시설들로 하나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세계를 선사한다.








                               영화 '워터월드'를 연상케 하는 세트구성이다.
                               소형 모터보트를 탄 사람이 물 위를 부지런히 휘젓고 다니며 
                               분위기를 연출해 보이고 있다.








그곳 한 켠에는 산토리니의 모습을 배경으로 문화광장이 마련되어 있다.
왼쪽으로는 후룸라이드 놀이시설이다.








후룸라이드.
그 아래로는 그리스 아테네 신전의 모습도 보이고...








                               높은 낙차를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 때문에 배가 가려져 버렸다.
                               관람석 사이에 유리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 직접적인 물벼락은 
                               피할 수 있지만, 느낌에는 그대로  물을 뒤집어 쓴 것 같다.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진다.








거대한 트로이목마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놀잇배가 여유롭게 호수 위를 오간다.
30만㎡가 넘는 녹화와 8만㎡를 차지하고 있는 호수는 이곳에 양호한 생태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기도 하다.







참고/ 베이징관광국 공식 홈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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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공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기년전을 향해서 가는 길이다.

베이징 황성 내에는 네 개의 제단이 있는데, 남쪽의 천단(天坛) ·
북쪽의 지단(地坛) · 동쪽의 일단(日坛) · 서쪽의 월단(月坛)이 그것이다.
이름에서 보듯이 각각 그 대상이 달라 하늘 · 땅 · 해 · 달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중 천단은 가장 중요시되던 제단으로, 환구단 · 황궁우 · 기년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년전은 명청시대 황제가 천신에게 제를 올리던 도교제단으로
매년 풍년을 기원했으며, 비가 오지않을 경우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곳의 넓이(273만㎡)는 무려 자금성의 네 배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 · 최대의 제전이기도 하다.








천단공원을 들어서면 기년전 입구까지 긴 회랑이 이어진다.
넓은 부지만큼이나 체육장과 잔디밭 · 광장등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다.

140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명의 영락제 18년인 1420년에 완공된 이 천단은
건설 당시에는 천지단이라 불렸고, 1530년에 3개의 제단(일단 · 지단 · 월단)을
추가하면서 천단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1961년 최초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선포되었고,
199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으며, 천안문 ·
자금성 태화전과 함께 북경의 상징적인 건물이 되고 있다.








                               파란 지붕의 원형건물인 기년전이 눈에 들어온다.
                               단청은 황금빛과 청색으로 되어있다.

                               기년전은 3층 월대 위에 3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유리기와를 올려 지붕을 만들었으며, 
                               들보 · 마룻대 · 못 따위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공법으로 지어졌다.
                               명나라 시대에는 위쪽에는 청색과 황녹색으로 되어 있었지만 
                               건륭제가 1751년에 중건을 하면서 청색으로 바꾸었다. 
                               1889년 낙뢰에 의해 소실된 후 1906년에 다시 재건되었으며,
                               높이 38m, 지름 32m의 규모라고 한다.








                               기년전의 앞에는 기곡단의 동배전, 서배전이 있다.
                               동배전에는 각종 제기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서배전은 제천예의관이라 하여 기년전의 역사를 전시해 두었는데 
                               기년전 건물 내부의 모습을 함께 살펴 볼 수 있다.








                               황제가 이동하는 남북방향의 계단에는 가마가 지나가는 
                               답도로 되어있고 나머지는 일반 계단이다.
                               1층 계단 답도에는 산과 구름, 2층에는 학, 그리고 3층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








                               기년전의 내부는 황궁우와 마찬가지로 대들보를 쓰지 않은채 
                               기둥만으로 천장을 지탱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있다.
                               녹나무로 된 기둥은 모두 28개로, 아름다운 금빛무늬를 새긴 안쪽의 네개는 
                               용정주라 하여 최상층의 처마를 지탱하고 있다.

                               용정주의 네 기둥은 사계절을 상징하고, 중간의 12기둥은 1년 12달을 
                               바깥 12기둥은 1일의 12시각을 각각 상징하며, 둘을 합해 
                               한 해의 24절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보좌에는 황천상제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그 뒤로는 용과 봉황이 
                               세밀하게 조각된 병풍이 세워져 있다.








기년전의 내부에서 위로 올려다 본 단면도.








                               황제가 된다는 것은 신과 교류하며 백성의 안위를 약속받는다는 뜻...
                               그러기에 제천(祭天) 의식은 예로부터 국가의 중요한 행사로서 
                               역대 황제에 의해 행해졌다.


                               더불어... 

                               그 옛날, 매년 이곳에서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여 하늘에 제를 올렸듯이 
                               우리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이웃분들에게도 
                               강녕(康寧)과 더불어 더 큰 행복이 내려지기를 기원해 본다.

                               새해에는 두루두루 평안하고 좋은 일들만 있으시길...



                               참고/ 네이버캐스트,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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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찰해(什刹海, 스차하이) 인근의 한 골목길을 둘러봤다.
중국에서는 이런 좁은 골목길을 후통(胡同)이라고 한다.
개발에 밀려 많은 후통들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지만,
오히려 일부지역은 외국인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요구르트 맛이 난다는 쑤안니우나이(酸牛奶).
발효시킨 우유라는 뜻으로, 줄여서 쑤안나이(酸奶)라고도 부른다.
빨대가 꼽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빈병인 것 같다.








                               골목길 한켠에 다양한 색상의 신발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거의 다 짝이 맞지 않다.
                               추측해 보건데, 아마도 도난방지를 위한 고육책이 아닐까 싶다. 
                               가져가 봐야 한 짝으로는 소용이 없을테니...








또 다른 한켠에는 예전 북경성 안 사람들의 시간을 통제했다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있다.
저 건물은 고루와 마주하고 있는 종루이다.
낮에는 종루에서 종을 치고 고루에서 북을 쳐서, 그리고 밤에는
종루에서 종만을 쳐서 시각을 알렸다고 한다. 









갑옷으로 무장을 한 병사의 형상으로
벽면이 장식되어 있다.








                               가정의 화복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은 
                               세상 어디에서나 똑 같다.








                               십찰해 투어에 사용되는 자전거를 이용해 만든 인력거.
                               십찰해란 바다가 있는 열 개의 사찰이라는 뜻인데, 
                               실은 바다가 아니라 인공호수이다. 
                               내륙에 사는 몽골사람들이 이곳 물을 보고 감격하여 
                               바다라 불렀다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가게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종류의 술병들...








골목을 분주히 오가는 자전거가 이곳의 일상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오른쪽, 나무에 가려진 건물은 위에서 언급한 고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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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8예술구는 베이징시 조양구 따샨즈(大山子)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예술인들의 작업실이 모여있는 예술거리로, 공장지역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탓에 무척이나 독특한 분위기이다.








                               798예술구는 따샨즈 예술구라고도 불리우는데,
                               798이라는 이름은 이곳 예술특구 내부에 있는 
                               길 이름인 798에서 따왔다고 한다.








베이징 정부가 지정한 최초의 예술특구인 798예술구는 
원래 구소련과 독일의 기술로 세운 공장지대로, 
무기와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곳이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무기생산이 활력을 잃게 되면서 
                               이전하는 공장들이 많게되자, 2001년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들면서 798은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2006년 정부에 의해 최초 10개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베이징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일부 남아있는 공장들은 
                               지금까지도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골목마다 숨어있는 조각과 
                               그림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는 400여개가 넘는 전문 화랑과 갤러리,
그리고 독특한 인테리어의 수 많은 카페와 아트샵들이 들어서 있다.








                               전시장의 입장료는 극히 일부분을 빼고는 거의 무료이며,
                               음식점, 커피점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이곳 798예술구는 말 그대로 예술품을 생산해 내는 공장인 셈이다.

시간상의 제약에다가, 때마침 스쳐지나간 엄청난 양의 폭우로 인해 한동안
발이 묶여버리는 바람에 더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더구나 예술품을 꼼꼼히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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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관문인 거용관 장성이다. 팔달령 만리장성과 더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북경에서 북서쪽으로 약 6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왼쪽 건물은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關)'이라는 문루이며, 그 우측에는
화포로 중무장할 수 있는 이층 벽돌건물의 돈대가 세워져 있다.
생각보다는 꽤 큰 규모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이자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우기도 하는
만리장성은 그 시원을 보통 진나라 시황제 때로 잡지만, 그보다 훨씬전인
춘추시대(BC770~BC443)때 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들어서면서 북쪽 흉노족의 침입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들 성벽을 연결, 증축한 것이다.
이후 당, 송, 원나라를 거치며 보수를 계속하였으며, 명나라때 대대적인
개축이 있었다 한다.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장성을 오르면서 내려다 본 문루와 망루.

북경으로 들어가는 천하의 요새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 거용관이 처음 축조된 것은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때였다.
당시에는 거용새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그후 1368년 명나라 시조인 주원장이 원나라가 침입할 것을 대비해 보수 및 증축을 했다.
명대 이전 베이징의 최종 방어선이었기 때문에 이 부근의 장성은
몇 겹의 복잡한 축조가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서 거용관은 가장 안쪽에 위치한다.








                               두 번째 돈대까지는 넓은 길이지만, 그 위로 부터는 비좁은 계단길이라
                               정체가 빚어진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장성의 길이는 2,700km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길이가 약 6,400km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의 만리장성은 중국 동쪽 보하이만의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시작하여
                               서쪽 타클라마칸사막의 자위관(嘉峪關)에서 끝이난다.








                               발 아래로 성벽이 길게 뻗어있다.
                               저 아래쪽 강물을 가로질러 돈대가 세워지고, 맞은편 산을 타고 계속 이어진다 .

                               만리장성은 모두가 똑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쪽 보다는 동쪽이 더 견고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성벽은 평균높이 7.8m, 평균폭은 윗부분이 5.8m, 밑부분이 6.5m로,
                               이는 성벽 위로 말 5~6마리, 또는 병사 10여명이 나란히 갈 수 있는 너비이다.
                               그 위에 100여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아래쪽 건물은 황제가 이곳으로 행차했을 때 거처할
행궁과 사당, 그리고 주둔군을 위한 시설들로 보인다. 









사랑의 자물쇠... 이곳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켠에는 옛 병기들을 복원하여 전시해 두기도 했다.








길게 늘어선 깃발은 바람에 휘날리고...








2009년 4월,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을 산해관장성에서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후산(虎山)장성'으로 수정하여 발표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의 총 길이는 8851.8km라고 주장했다.
2008년까지는 베이징 인근의 산해관이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여겨졌지만,
2008년 12월 국가 조사팀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던 후산장성을
발견하면서부터 동단을 이곳으로 수정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고학계는 후산장성이 고구려인들이 쌓은 고구려성으로
판단하고 있어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30만명의 군사를 비롯하여 수 백만 명의 백성과 죄수를 동원해 건설되었고,
그 중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인원이 희생되기도 하여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혹평까지 듣기도 하는 만리장성...
그 곳과 관련하여 생겨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 뒤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숨어있다고 한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네이버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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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라나(SOLANA)는 조양공원의 서북쪽 호수변에 자리잡은
유럽식 건축 스타일의 고급 쇼핑몰이다.








                               SOLANA는 한적한 호수, 우아한 건축물, 낭만적인 작은 길을 가진 비즈니스 마을로,             
                               '햇빛의, 태양의' 라는 뜻을 지닌 영어의 Solar에서 그 의미를 가져왔다.








                               2,3층 건물 19개 동이 유럽의 작은 마을처럼 아기자기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600여 상가와 1천여개의 브랜드, 30여 개의 음식점, 20여 개의 
                               호수변 바와 영화관, 그리고 스케이트장이 들어서 있어 
                               쇼핑과 문화활동을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다.








                               주위 강 주변의 야외 테라스에서는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여유를 즐길 수도 있으며, 
                               저녁이 되면 화려한 분수쇼를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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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lace로 알려진 세무천계(世贸天阶, 스마오티엔지에).
남북쪽을 가로지르는 쇼핑거리로, The Place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대형복합쇼핑몰이다.
베이징의 밤에 볼거리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거리는 모두 석재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 거리의 천정에는 아시아 최초이자 라스베가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길이 250m, 너비 30m의 전자 드림 와이드스크린이 걸려 있어 여러가지 형상을 보여준다.








                               마사지샵, 의류, 악세서리 등을 쇼핑할 수 있으며 명품샵 또한 볼 수 있다. 
                               그리고 계단 광장과 옥외장소도 갖추고 있다.



                               참고/ 베이징관광국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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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금성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추선상에는 남쪽으로 부터 태화문(太和門),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 건청문(乾淸門),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곤영궁(坤寧宮), 곤영문(坤寧門), 
                                             천일문(天一門), 흠안전(欽安殿), 승광전(承光殿), 순정문(順貞門), 
                                             신무문(神武門) 등 주요한 궁전과 궁문이 나란히 세워지고,
                                             그 가운데 오문과 신무문은 자금성의 남북 성문을 이루고 있다.
                                             또한 자금성의 동서 양측에도 동화문(東華門), 서화문(西華門)이 있다.








자금성(쯔진청, 紫禁城)의 정문은 천안문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정문은 높이 38m, 벽의 두께가 무려 36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문이라는 오문(午門)이다.
중국에서는 옛날에 북(北)을 자(子), 남(南)을 오(午)라고 했는데,
오문은 자금성의 중심축 남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금성은...








태화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중국 최대의 목조문인 태화문.
문 앞 계단 동, 서쪽으로는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청동사자상이 자리잡고 있다.








오문과 태화문을 거치면 나타나는 넓다란 광장... 그리고 태화전이다.
태화전은 남북 33m, 동서 60m의 건물로서 중국 최대의 목조건물이며,
황제의 즉위식, 새해의 제사, 황태자의 탄생 축하 등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지금의 건물은 1695년 청나라 강희제 때 세번째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태화전의 지붕은 금색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기 때문이라 한다.









                               보화전 뒷편에서 바라본 내정의 정문인 건청문.
                               건청문은 자금성 내에서 가장 화려하며 위엄이 있어 황실의 신성함과 
                               권력을 나타내는 전문이다.
                               이곳을 경계로 황제와 황후의 생활공간인 내정과 외조가 구분된다.

                               보화전의 이 운용석조(雲龍石雕)는 자금성에서 가장 큰 돌이라 한다.
                               황제를 상징하는 9마리의 용과 장수의 복을 의미하는 산과 절벽, 바다 
                               그리고 운해가 조각되어 있다.








보화전을 뒤에서 되돌아 봤다.
보화전은 주로 조정의 각종 의식을 여는 곳이다.








황제의 침실 겸 집무실이었던 건청궁의 내부.
정대광명이라 쓰여진 편액 아래 황제의 보좌가 놓여있다.








                               황제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수목이 전혀 없는 자금성 내부에
                               유일하게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가꾸어 놓은 어화원 내의 정자.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을 나오면 저 멀리 자금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경산공원이 마주보고 있다.
                               경산공원은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목을 매 자살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곳은 이화원의 만수산처럼 인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금성을 빙 둘러 너비 52m, 깊이 6m, 그리고 3.8km에 이르는 길이로 
                               해자를 만들면서 그곳에서 파낸 흙과, 땅 밑을 뚫고 들어올지도 모를 
                               침입자를 막기위해 40여장의 벽돌을 바닥에 깔면서 자금성 바닥을 7m까지 
                               파내기도 했다는데, 그때 나온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저 경산공원이라고 한다.

                               풍수지리학상 궁궐 뒤에는 산이 있어야 좋다고 해서 그렇게 만들었다니, 
                               역시 스케일 만큼은 정말 대단한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
해자로 둘러쌓여 있는데, 해자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성을 보호하며
방화기능도 겸했다고 한다.

자금성은 현재는 고궁박물원으로 전용되어 고궁 안의 여러 전(殿),
당(堂), 궁(宮) 등은 진열실로 이용되고 있으며, 중국 역대의 채도(彩陶),
청동기, 칠기, 직물, 조각, 회화 등 여러 예술품을 진열하고 있다.



참고/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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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대가를 거쳐 톈안먼(천안문)광장으로 향한다.








정양문의 전루를 거쳐 성루(城樓)로 향하는 길이다.
이 성루와 성루 남쪽에 있는 전루(箭樓)를 통칭하여 전문(前門)이라고 한다.
전문은 베이징 내성의 정문으로 황제가 내성과 자금성을 출입할 때 쓰던
황제 전용 어문이며, 황제가 천단으로 제사드리러 가기 위해 통과하던 문이기도 하다.
전문은 본래 여정문(麗正門)으로 불리다가 1437년에 정양문(正陽門)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건물을 통과하면 바로 모주석기념관과 더불어 톈안먼 광장과 만나게 된다.








톈안먼 광장 동쪽에 위치한 1959년에 완공된
중국국가박물관(역사박물관, 혁명박물관)의 모습이다.
그 맞은편 광장 서쪽에 위치한 같은 해에 건립된 인민대회당
(국회의사당) 등과 더불어 중국이 자랑하는 10대 건축에 포함된다.








오른쪽 인민영웅기념비와 그 왼쪽 인민대회당.

인민대회당은 중국 인민대표대회 회의장으로 1959년에 완성되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리며,
5년에 한번 중국 공산당 총회가 열린다.
1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고,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연회장도 갖추고 있다.








                               톈안먼 광장의 중심부에는 37.94m 높이의 인민영웅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20세기 중국의 혁명과정에서 희생된 인민들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서 
                               1958년에 완성되었으며, 비석의 대리석 받침대 네 면에는 근대 약 100년간의 
                               혁명역사를 조각한 8개의 부조가 있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가인 마오쩌둥(毛澤東)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모주석(毛主席)기념당.
1976년에 착공해 마오쩌둥 사망 1주년인 1977년에 완공되었다.
입구의 모주석기념당이라는 글자는 화궈펑(華國鋒)의 휘호이다.
참배시간이 아니어서인지 이곳에서 두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기원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마오쩌둥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이곳으로...








모주석기념당 양쪽 측면에는 2개의 대형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중 왼편을 장식하고 있는 군상(群像)조각이다.








40만 명의 인원을 수용한다는 톈안먼 광장이다.
북쪽으로는 청(淸)나라 황성의 정문인 톈안먼이 위치해 있다.
1989년 6월 4일, 후야오방(胡耀邦)의 사망을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이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계엄군을 동원하여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만오천명 이상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톈안먼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현장이다.








톈안먼은 명나라 때인 1417년(영락15)에 착공되어 1420년(영락18)에 완공되었으며,
당시에는 승천문(承天門)이었다.
1457년에 화재로 훼손된 것을 1465년에 재건하면서 정면폭이 9칸인 문루식 패루로 만들었다.
이후 1644년 소실되었다가 1651년에 다시 복구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목조 패루에서 성루로 증축하고 톈안먼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문 중앙에 마오쩌뚱(毛澤東)의 대형 초상화와 양 옆으로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고 새겨진 현판이 내걸렸다.
이 문 앞에는 한백옥으로 다듬어진 돌다리인 와이진수이차오(外金水橋)가 놓여져 있고
그 밑으로는 진수이허(金水河)가 흐르고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메이데이와 국경절이 되면 퍼레이드가 벌어지는데,
톈안먼 문루(門樓)는 그 사열대가 된다.
마오쩌뚱(毛澤東)은 이 문루에서 1949년 10월 1일 중공정권의 수립을 선언하였고,
1966년에는 홍위병(紅衛兵)을 열병하기도 했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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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대가(첸먼 거리, 前門大街)의 시작을 알리는 패루(牌樓).
베이징에서 가장 큰 길거리 패루라고 하며, 역사적 문헌과
사진을 근거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패루란 경축의 의미로 큰 거리를 가로질러 세운 시설물을 말한다.








약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거리는 전문 앞에 전루(箭樓)를
시작으로 남북으로 845m가량 길게 뻗어있는 모습이다.








전문대가는 자금성 남쪽 성문인 전문(前門) 앞에 위치한 번화가로,
이곳 북쪽에는 성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정양문(正陽門, 오늘날의 전문)이
세워져 있어 명대부터 민국시기까지는 정양문대가(正陽門大街)로 불렸다.
그러나 1965년부터는 정식명칭이 전문대가로 명명됐다.








전문대가는 명대(明代)에 전국 각지에서 과거시험 준비생들이
몰려들면서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쭉 뻗은 길 좌우로 깨끗하게 단장된 상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중앙 통로는 넓고 시원하며 회색조의 건물들로 인해 차분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전문대가의 뒷골목은 다소 다른 풍경이다.
크고 작은 간판들로 현란한 모습이다.
특히 음식점 앞을 지날 때에는 중국음식 특유의 향취가 코를 찔러댄다.








골목마다 호텔, 음식점, 기념품가게 등
다양한 업종들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대가의 중앙 통로에 웬 레일인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먼발치에서 전차가 다가왔다.
                               이곳 양 극단 중심을 오가는 궤도전차로 당당차(當當車)라고 부른다고 한다.
                               당당차는 과거에 전문대가를 시발점으로 운행했던 1920년대 베이징의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보행자들에게 주의를 주기위해 발판을 밟으면 
                               당당하는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다시 시작지점으로 되돌아 왔다.
패루(牌樓) 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정양문의 전루(箭樓)로 성루의 남쪽
정면에 위치하며, 과거에는 화살 및 총포를 발사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한다.
원래는 성루와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도로를 직선으로 정비하면서
성벽을 허물어 지금은 망루만 남아있다.
저 뒤로 천안문광장과 자금성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가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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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뒷편으로 베이징시 조양구 공인체육관의 인공호수가 보인다.
이 호수 아래에는 부국해저세계(푸궈하이디스제, 富國海底世界)
박물관이 시설되어 있다.
중국과 뉴질랜드의 합작으로 1997년 11월에 개관하였으며,
건축면적은 7800㎢이다.








상어, 가오리, 뱀장어, 산호초, 랍스터, 해마, 불가사리 등
수 천여종의 해양 생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18개의 다양한 테마를 가진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거의 모든 열대성 물고기들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컷던 탓일까.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는 하지만...








전시물의 내용 등, 그냥 보기로는 국내에서 본
여느 아쿠아리움과는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각기 다른 수조 속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어지럽게 오가고...








어쩌다 이곳으로 오게된건지...

파충류 중 가장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커다란 거북이가 물 속을 유영하며 다가온다.








                               손이라도 있으면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일 것 같은, 
                               실고기목 실고기과의 바닷물고기인 해마도 
                               이곳 한 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중심 전시장의 투명 아크릴로 만들어진 지하터널이다.
                               약 450만 리터의 해수가 수조속에 담겨져 있으며,
                               아시아 최장길이인 20m의 긴 무빙워크를 따라 관람할 수 있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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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2008년 8월 1일,
중국 1호점으로 개관한 우리나라의 롯데백화점.

왕푸징(왕부정)은 약 1km거리 양편으로 약 180여개의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베이징 최대의 번화가이자 상점가로,
한국의 명동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700여년전 원대 왕조의 여러 기관과 왕족들의 저택인
왕부가 몰려 있었으며, 명대 때부터 이미 상업활동이 활발했었다고 한다.
당시 황실의 우물이 있었기에 그 이름을 따서 왕푸징이라 부른다.








1955년 중국 정부의 투자로 세워진 국영백화점이자
베이징 제1호 백화점인 베이징백화점.  
시계탑은 왕푸징의 상징이 되고 있다.








                               사실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대형 백화점에서부터 소규모의 상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서 찾지 못할 아이템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동양 최대의 쇼핑몰인 동방신천지를 비롯하여 동방광장, 신동안시장, 
                               그리고 왕푸징의 역사와 함께 한 동안시장, 백화대루 등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오른쪽 건물은 북경에서 1,2위를 다툰다는 대형서점인 왕푸징서점이다.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합작품이라는 왕푸징 교당(敎堂).
                               북경 4대 천주교 성당 가운데 하나로, 명나라 말기에 
                               2명의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이 곳에서는 중국의 특이하고도 다양한 먹거리들과도 만날 수가 있는데, 
간식으로 유명한 샤이오츠지에(먹자거리)와 꼬치로 유명한 꼬치거리까지
가까이 포진하고 있어 입까지 즐겁게 한다.
길 건너로는 왕푸징의 명물인 꼬치거리로, 꼬치를 파는 포장마차가
도로를 따라 약 100m에 걸쳐 줄지어 서 있다.








하늘의 비행기, 땅 위의 책상, 그리고 바다의 잠수함을 빼고는 모두 다
먹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바로 이들 중국인들을 두고 한 말일터...  
전갈, 불가사리, 해마, 지네 등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하고도
이색적인 음식들을 맛볼 수가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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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실의 여름 별궁이자 최대 규모의 황실 정원이라는
이허위안(園, 이화원, Summer Palace)에 들어섰다.

넓다란 호수와 그 위를 떠 다니는 유람선이 먼저 반겨준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다리는 길이 150m의 스치쿵차오(十七孔橋)로, 
쿤밍호 남동부에 위치한 난후다오(南湖島)를 연결하며,  
중국정원 내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이허위안은 1750년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원래 이름은 칭이위안(淸漪園)이었다.
그 후 1860년에 영불연합군에 의해 소실되었던 것을
1886년에 재건하면서 이허위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자금성의 10배 정도의 크기로써, 특히 청나라의 마지막 황후인
서태후가 이곳에서 별궁으로 피서를 즐겼다고 한다.
총면적 2.9k㎡, 호수의 둘레 8km로,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호수는 쿤밍호(昆明湖)로, 전체면적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인공호수이다.
그리고 우측으로 보이는 산은 약 60m높의 완셔우산(萬壽山)으로
쿤밍호를 조성할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이다.
쿤밍호와 완셔우산을 중심으로 각종 전각과 사원, 회랑 등
3천여 칸의 전통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길이 728m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는 창랑(長廊)이 위치한
저곳으로는 아쉽게도 발걸음을 하지 못했다.








퉁뉴(銅牛).








                               스치쿵차오 초입에 세워진 정자.








                               대지면적 약 1ha정도의 난후다오(南湖島)로 건너왔다.
                               섬 위에는 룽왕먀오, 한쉬탕, 젠위앤탕, 웨보러우 등의 건축물이 있다.








자산(假山)에 있는 한쉬탕(堂), 3층으로 된 섬의 중심 건물이다.
쿤밍호에서 실시하던 해군훈련을 지켜보던 장소로 사용되었고,
청(淸)의 광서(光緖)시기에 단층 건물로 개축되었다.









                               완셔우산 앞 거대 석고대 위에 만들어진 불향각(佛香閣).
                               높이가 41m로, 전 지붕이 3층 4겹의 처마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 위로는 놀잇배가 지나 다니고, 그 주위 나무 사이로는 언뜻언뜻
전각이 들어 서 있는, 마치 여름 피서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는 듯 
아주 평화로운 풍경이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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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 다녀온건 지난 8월의 일이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해가 바뀌는 시점이 된 지금에서야 올려본다.  
대체로 사전을 들추는 듯한 분위기로 약 15회 정도의 분량이 될 것 같은데,
이왕 늦은것... 수박 겉핥기식으로 쉬엄쉬엄 정리해 보려 한다.
물론 여행기라고는 할 수 없다.
이제껏 그래왔듯이 그다지 재미는 없을거라는 얘기다.

지난 7월부터 중국 전역에서는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계속되었고, 8월 11일의 경우만 해도 중국 충칭에서는
43도까지 치솟았다고 했다.
그런 보도를 보고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말로만 듣던 천안문과 자금성,
그리고 만리장성 등의 모습을 직접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가는 날 부터 가랑비가 시작되더니 한때만 햇볕이 반짝거렸을 뿐,
대체로 궂은 날씨... 결국 마지막 날에는 장대비까지 쏟아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더위가 다소 누그러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말이다.








중국은 BC221년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처음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중국 최후의 통일왕조인 청(淸)나라에 이어 국민당의 국민정부가 세워졌고,
1949년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정식명칭인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은 22개의 성(省), 5개의 자치구,
4개의 직할시, 2개의 특별행정구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홍콩, 마카오를 제외한 지역을 중국대륙(중국본토)으로 칭한다.








베이징부근은 2000년 훨씬 이전부터 이미 중국 동북부 국경지대의 중요한
군사,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원대(元代, 1271~1368)인 1267년 이곳에
대도(大都)라는 이름의 신도시가 건설되어 행정수도가 되었다.
명(明, 1368~1644)의 제1,2대 황제 재위기간에는 난징(南京)을 수도로 삼았으며,
전대의 수도였던 대도는 베이핑(北平)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명의 제3대 황제는 베이핑을 다시 수도로 삼고 베이징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그 후 베이징은 국민정부가 난징을 다시 수도로 삼았던 짧은 기간을 빼고는
계속 수도로서의 지위를 지켜왔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로서 줄잡아 7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
특히 원(元), 명(明), 청(淸) 3개 왕조에 걸쳐 수도로 있었기에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고 과언이 아니다.
16개 구와 2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은 16,807km² 로
서울, 인천, 경기도를 포함한 것보다 넓다.
정식 명칭은 베이징직할시(北京直轄市)이며, 약칭하여 징(京)이라고도 부른다.

베이징은 미국 '외교정책' 잡지가 발표한 2010년 세계도시 랭킹에서
도시 규모와 경제력, 상업활동 등 종합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15위에 오르기도 했다.
인구는 1,800만명 정도이며 유동인구는 50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서양의 기준으로 보면 베이징의 생활리듬은 느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먹고 싶을 때는 마음껏 먹는 그들이다.
중국인들은 집치장과 옷차림 보다도 먹는 것을 첫째로 꼽는다고 한다.
먹는 것 외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베이징의 특산 요리로는 오리구이인 베이징카오야(烤鸭), 궁팅차이(菜),
탄자차이(菜), 불고기, 샤브샤브가 5대 요리로 꼽힌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인 관계로 문화 수준이 비교적 높고 예절 바르며
정치에 대한 관심이 크다.
대륙적인 기질로 여유만만하고 스케일이 큰 반면 상대방을 의심하고
여간해서는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중국인, 만만디(慢慢的)는 느릿느릿한
사림이라는 뜻으로 그들을 두고 흔히들 하는 말이다.








                               중국은 56개 민족이 거주하는 다민족국가이다.
                               한족(漢族)이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55개의 소수민족이 8%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중국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돈을 중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아이 돌잔치에 돈, 연필, 실 등을 잔치상에 
                               올리는데 비해 그들은 붓과 함께 주산을 올릴 정도다.
                               그리고 수 많은 신(神)들을 섬기기도 한다. 
                               조상신은 물론 땅의 신, 집의 신, 화장실, 대문, 부뚜막의 신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돈의 신인 전신(錢神)이 있으며 재신(財神)도 있다.








베이징은 계획도시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길이 동서 아니면 남북으로 나 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길을 가르쳐 줄 때, 대체로 전후좌우 방향이 아니라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알려 준다.
또한 그들은 버스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가 하면 폭넓은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시내교통은 주로 트롤리버스와 버스에 의존하고 있으며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베이징의 경우 3명당 2대 꼴로 자전거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연극으로는 경극(京劇)이 있다.
                               베이징에서 발전하였다 하여 경극이라 하며 
                               14세기부터 널리 성행했던 중국 전통가극인 곤곡(崑曲)의 요소가 
                               가미되어 만들어졌다.








여타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중국에서도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부유층과 국유기업 관리등이 실제로 받는 월급외에 각종 제도적 허점과
편법을 이용해 각종 부수입을 챙김으로써 빈곤층이 벌어 들이는 수입의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배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건에 있다는 것이다. 
1988년 상하위 10%간의 소득격차가 2007년 23배로 늘어났다는 공식 통계가
있긴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입까지 포함하면 실제 차이는 55배 가량
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출처/ 와우뉴스)
2009년 중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3600달러에 달했다.

한편으로는 백만장자 또한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명품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명품 소비규모는 94억달러에 달해
세계시장 점유율 27.5%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한다.








중국의 전체 인구는 2008년 기준으로 13억 3004만명이다.
중국 정부는 인구증가가 중국의 경제발전의 혜택을 나눠 먹어야 할
입만 늘려 놓은 셈이라는 판단아래 교육과 선전 및 상벌을 통해
1자녀갖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으나, 농촌의 전통적인 남아선호
관념 등의 이유로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참고/ Daum 백과사전, 위키백과.
중국인을 이해하는 열 가지 핵심. 네이버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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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넘나들었을 법한 불국사의 일주문.

경북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불국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축조 당시에는 무려 80여 개의 건물에 총 2천 칸에 달하는 규모였으나
1593년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소실되었고, 선조 37년(1604년)경부터 약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에는 비로전 중수가 이루어졌다.
이후, 일제때인 1924년에는 다보탑의 해체보수를 포함하여 법당의 중수 등
대규모의 개수공사가 이루어졌고, 1970년에는 복원공사를 착수, 1973년에
완료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본사의 하나로 사적 제50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천왕문에는 수미산의 동서남북 4주를 지킨다고 하는 사천왕상이 서 있다.

불국사는 528년에 창건되었고 751년 김대성에 의해 대가람으로 중창되었다.
불국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법흥왕 15년(528)에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이 발원하여 창건했다는 설,
그리고 5세기 초인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그 중 두 번째 설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세 번째 설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이라 신빙성이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본다.








지금은 법고가 있으나 원래는 범종각이었던 중간의 범영루(泛影樓)를 기준으로
좌측 서쪽으로는 연화교와 칠보교가, 우측 동쪽으로는 청운교와 백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들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아랫계단의 청운교, 그 윗부분의 백운교는 청년과 노인의 모습을
빗대어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불국사의 창건 및 사상적 배경은 네이버백과사전으로








남향으로 중앙에 위치한 대웅전 앞에는 석등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다보탑(국보 20호), 서쪽으로는 석가탑(국보 21호)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두 탑은 높이가 10.4m로 같다.

석가탑은 완전한 형태로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우리나라 석탑의 원형으로 
이후 대부분의 탑은 이를 모방하게 된다.
그러나 다보탑은 이에 비해 매우 화려하다. 어쩌면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두 탑이
한 곳에 나란히 서 있는데도 보기에는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특히 석가탑은 백제의 장인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와의 슬픈 설화가 서려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역사서 어디에도 아사달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기에 
이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참고)

다보탑은 지난 2008년 해체수리에 들어가 1년만에 새단장을 끝낸 바 있다.








대웅전 뒷쪽에 위치한 경론(經論)을 강설(講說)하는 강당인 무설전(無說殿).

경론을 강설하는 곳임에도 무설이라고 한 것은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이
언어 수단으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임을 표현한 것이다.
670년경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최초로 강의를 하였고, 창건이후 여러 차례
중건· 중수를 거쳐 1973년에 복원되었다. 건축양식은 조선후기에 속한다.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관음전.

불국이란 정토(淨土)인 부처님의 나라 불국토를 뜻한다.
불교의 가르침에 의한다면 사바세계와 불국토는 결코 둘이 아니다.
하지만 사바세계에서 불국토에 이르는 길은 매우 험난하며 그 길을
계단이나 연못 등으로 상징해 놓고 있다.








진리와 빛을 다스리는 비로자나 불상이 모셔진 비로전,
오른쪽 계단 위에는 관음전이 위치해 있다.

원래 이름이 '화엄불국사'였던 불국사는 크게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석가모니불이 주재하는 사바세계인 대웅전 영역,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표현한
극락전 영역, 그리고 비로자나불의 연화장(蓮華藏)세계가 구현된
비로전 영역이 그것이다.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羅漢)을 모신 나한전.
이곳 뒷마당과 담장 위에는 자그마한 소원 돌탑들로 가득하다.








극락정토의 주불로서 중생의 고난과 고통을 살피고 구제하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전.

그런데 석등 앞에는 황금돼지상이 하나 서 있다.
이는 지난 2007년 한 관광객이 극락전 현판 뒷편에 가려져 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50cm가량 되는 돼지를 발견한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돼지는 재물과 의식의 풍족함을 상징하며 복을 가져다 주는 길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입구 서쪽의 연화교 칠보교 맞은편에는 높이가 2.9m 정도되는 
                               화강암으로 된 당간지주 두 쌍이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절에 법회나 행사가 있을 때에는 높은 장대를 세워서 알리는데, 
                               당간지주는 이 장대를 버텨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곳 청운교 앞은 원래는 연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없어지고 나무를 심어놓았다.



                               참고/ 네이버지식iN,  네이버캐스트, HB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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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단지를 지나면서 갑자기 생각나 들러 본 곳이다.
힐튼호텔 앞 한 켠에 숨은 듯 위치한, 
보문정이라는 정자가 놓여진 아담한 규모의 연못이다.








어떤 연유로 만들어진지는 모르겠지만, 크고 작은 호수가 세 개나 된다.
도로변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이곳에 들어서면 번잡함은 느낄 수 없고
이렇게 여유로운 풍경만이 눈에 들어온다.








                              연못 주위로는 단풍나무들이 홍염을 내뿜고 있고... 
                              가을도 그렇지만, 특히 봄이 되면 아주 멋진 풍광을 
                              펼쳐 보인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가을의 정취가 그대로 묻어나 보인다.








물 위에도 고즈넉한 가을의 모습이 그대로 모사(模寫)되어 나타난다.
다만 이 풍경을 한꺼번에 담아내지 못하는 카메라의 화각이 아쉬울 뿐이다.
물론 허접한 실력도 예외는 아니지만...








                              일부 성급한 나무들은 잎을 거의 다 떨구었다.
                              보기에는 그저 홀가분해 보일 뿐이다.








연못 위로는 새파란 하늘이 내려와 
다소 혼탁해진 수면을 살포시 가려주고 있다.








차가운 물로도 꺼뜨릴 수 없는
뜨거운 가을의 열정...








아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산책을 겸해 사색에 잠겨 보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공간인 것 같다.



--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곳을 알게 된 건 
이웃 비바리님의 포스팅을 통해서 였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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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은 군사시설이 설치된 최고봉인 비로봉(1,192m)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동봉(해발 1,167m)과 서봉(1,150m)이 자리잡고 있다.
서봉에서 바라다 본 모습으로 왼쪽이 비로봉이고 오른쪽이 동봉이다.








서봉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놓여 있다.
삼성봉은 서봉의 옛 이름으로 신라시대 삼성암에서 3성인이
득도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 문헌에는 비로봉(정상, 일명 제왕봉)과 염불봉(동봉, 미타봉), 삼성봉(서봉)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팔공산, 동봉, 서봉으로 통용되고 있다.








동봉에서 팔공스카이라인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시원하다.
그러나 저 멀리 팔공CC가 아무리 봐도 눈에 거슬리는 형국이다.
그 우측으로는 약사여래불이 있는 관봉이 자리해 있다.

관련/ 2010/10/14 - [Travel] - 팔공산 갓바위 산행








수려한 산세를 훼손해가며 조성된 팔공CC는
말 그대로 흉물처럼 다가오고...








저 아래로 팔공산시설지구...
그곳에서 중간지점에 보이는 휴게소까지는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다.
바로 그 왼쪽 봉우리 사이로 보이는 것은 동화사이다.








팔공산 자락에 아늑하게 안겨져 있는 동화사.
통일대불이 능선 너머로 넘겨다 보인다.

관련/ 2009/05/11 - [Travel] - 대구 팔공산 동화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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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에서 내려다 본 장군암봉.
주추방골 계곡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동봉에서 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비로봉의 청운대와 그 절벽 아래에 위치한 팔공산 제일의
명당이라는 오도암(悟道庵).
신라 654년(태종무열왕 원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1963년 폐사이래 지금은 유허(遺墟)만 남아 있다.








팔공산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동쪽으로 동봉을 거쳐
염불봉-인봉-노적봉-관봉(갓바위)의 연봉으로 뻗고,
서쪽으로는 서봉에서 파계봉을 지나 한티재와 가산을 거쳐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까지 30km가 넘는 거리로
변화무쌍한 산세를 보여준다.
또한 한티재를 경계로 동쪽을 팔공산,
서쪽을 가산이라 나누어 부르고 있기도 하다.

관련/ 2010/02/02 - [Landscape] - 팔공산 비로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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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가까운 친척 한 분이 산행을 함께 하자고 했다.
                               가뜩이나 엉덩이가 무거운 성격이라 망설이고 있자니, 산행지가 영남알프스란다.
                               순간, 바로 일전에 봤던 유레카님의 산행사진이 떠올랐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간밤에 내리던 비는 그치고 흐린 하늘 한켠으로는 파란 하늘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점차 맑아질 것 같은 상쾌한 기분으로, 영남알프스라 불리우는 
                               간월산과 신불산이 위치한 울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목적지에 가까와질수록 점점 더 흐려지더니 급기야 비가...

                               점차 개일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기다려봐도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결국 서둘러 우의를 구입해 산행을 시작했다.
                               출발지는 등억온천지구 간월산장, 산길을 한참이나 오르고 나니 
                               포장된 임도가 나타났다. 간월재로 오르는 길이었다.
                               구절양장... 굽이굽이 저 길을 따라 한참이나 올라왔다.








간월재에 도착하니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짙게 낀 운무 때문에 주위사정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간월재 표지석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간월산(肝月山 1,069m)을 오르기로 했다.
좁은 산길 곳곳에는 물이 고여있어 질퍼덕하더니 급기야 바지를 흙탕물로 도배하고 만다.
예상보다는 한참을 걸어 정상석에 눈도장을 찍고 주위를 돌아 보지만
보이는 것은 여전히 짙게 낀 운무 뿐...

곧바로 간월재로 내려와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혹시라도 운무가 조금이라도
걷히지 않을까 하고 기다려 봤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신불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순간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하늘로 향하는 계단 같은, 예상치 않던 장면에 신비한 느낌마져 들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운무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나무데크를 밟으며 능선을 오른다.
길을 따라 빗물은 그대로 흐르고, 그 때문인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져 내린듯한
데크의 나무계단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산길이 으레 그렇듯이 편안한 길은 아니지만, 분명 정비는 필요할 듯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 그 길에 의지하여 꾸역꾸역 오르고 또 오른다.








                               신불산(神佛山 1,159m) 정상을 찍고 신불재를 향해 내려간다.
                               운무가 조금씩 걷혀가는 듯 하지만, 저 앞쪽이 억새군락지인 
                               신불평원일텐데도 조망은 신통치 않다.  
                               그곳에서 잠시 또 숨을 고르고...








주변을 막 둘러보려 하는데 일행이 빨리 오란다. 원점회귀 산행이다 보니
내려갈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이쪽 길은 간월산장과는 무관하단다.
그래서 부랴부랴 왔던 길을 되돌아서 다시 신불산 정상에 섰다.
신불산과 두번째 만나는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정상 바로 옆으로 난 길이 그곳과 연결이 된다고 누군가가 조언해 준다.
공룡능선이라 길이 험해 계속적으로 우회로를 찾아가야 한다는 주의를 덧붙이면서...
신불산을 다시 오르면서 만난, 같은 처지의 다른 두 팀과 함께 일단 내려가 보기로 한다.








그런데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능선이 칼날 모양이다.
공룡능선을 타기 전에 좌측길로 빠져야 한다는데, 그 길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 공룡능선까지 더 내려와 버린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안내표식도 거의 없고 우회로 또한 크게 선명하지 않으니...
결국 그대로 강행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다시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런데 왔던 길을 되돌아 가봐도 옆길은 예측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험한 길이라는데, 하산할 시간은 빠듯하고...
결국 이쪽 길을 포기하기로 하고 또 다시 신불산으로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신불산 정상과 만나는 세번째 길이었다.








다시 시작하는 하산길... 평탄한 길 때문에 마음은 다소 가벼워졌다.
그래도 지체는 할 수 없는 노릇, 서둘러 걷는다.

그런데 간월재가 눈에 들어올 즈음 갑자기 시야가 맑아진 느낌이다.
하늘 한켠으로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운무에 갇혀있던 간월재가 드디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간월재 옆 도로에는 자동차가 길게 이어져 있고...








아까 지나올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풍경을 즐길만한 여유조차 없다.
서둘러 산을 내려가야만 될 형편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오를땐 조망하지 못한 간월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석양의 빛을 받아 발그스름하게 붉어진 모습이다.
아니, 드러내지 않았던 얼굴을 이제서야 보이게 되었으니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모양이다.








아쉬운 마음에 간월재 표지석을 다시한번 쳐다보고는 발길을 재촉한다.
보아하니 우리 일행 뒤에는 아무도 없는 듯 하다.
그저 쫓기듯 앞만 보고 열심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을 시점이 되어서야 간신히 주차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영축산까지 가서 억새도 마음껏 감상해 보고 싶었지만, 사전준비없는
무대뽀 산행이다 보니, 엉뚱한 곳에서 체력을 너무나 많이 소비해 버렸다.
하룻만에 신불산을 세번이나 보다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만약의 경우 어두운 산길을 대비해서 가벼운 랜턴 하나 정도는
꼭 가지고 다녀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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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관음휴게소쪽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로 옆 감나무집 식당을 통해
산길로 접어 들었다. 그냥 산 능선을 따라 가볍게 갓바위까지 가볼 참이다.
주위가 잘 조망되지 않는 산길이지만 저 멀리 갓바위가 나뭇가지사이로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계속해서 그곳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가늠해 가며 열심히 발을 옮긴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주위를 가리던 나무들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고 
이내 사방이 확 트여져 왔다.
오른쪽으로 휘돌아 좌측 위 암자가 보이는 산봉우리 까지 가야 할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도중에 널찍한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굽이치는 저 산 너머로는 대구시가지가 기다랗게 누워있는 형상이다.
아마 왼쪽으로 보이는 터널은 익산포항고속도로 백안터널,
우측 아래로는 백안삼거리쯤 될 것 같다.








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진다.








저 멀리로 팔공산 비로봉과 동봉...

관련/ 2010/02/02 - [Landscape] - 팔공산 비로봉에서








팔공컨트리클럽도 한 눈에 조망된다.
멀쩡한 산을 깎아 만든 터라 그리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바로 그 위쪽으로는 동화사가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고...








                               바로 눈 앞에는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것만 같은 
                               바위덩어리가 커다랗게 떡 버티고 서 있다.








그리고 어느새 갓바위도 눈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몸을 일으켜 다시 길을 재촉, 목적지에 이르렀다.
관봉석조여래좌상은 여전히 그 자리다.

관련/ 2009/01/23 - [Travel] - 팔공산 갓바위








그 앞으로는 갖가지 소망을 담은 등산객들의 몸짓 또한 
이전과 다름없이 계속되고 있고...








산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때문일까.
산 아래 계곡으로는 주차장을 지나 선본사까지 널따란 도로가 파고 들었다.
저 주차장이 이번 산행의 출발지로, 좌측 능선을 따라 쭉 걸어 왔더랬다.








                               해동제일 기도성지... 
                               한동안 와 보지 않은 사이, 이전에 보이지 않던 일주문이 조성되어 있고,
                               진입도로도 말끔히 단장되어 있는 모습이다.
                               저 아래 주차장까지... 모두가 낯설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 길로 와본지가 너무나 오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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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의 입구에는 영사각이라는 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이는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외가람각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때를 벗는 목욕을 하게 된다. 
                               전남 순천 송광사의 세월각, 척주각이 이와 같은 용도라 한다.








                               경남 기념물 제17호로,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 자락에 
                               위치한 표충사, 그 절의 정문인 수충루의 모습이다.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드문 서원 정문 형태의 누각인데, 이는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시고 서산대사와 기허대사의 위패를 같이 모신 표충서원이 
                               표충사(表忠寺) 경내에 있기 때문이다.

                               표충사는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명명한 절이다.
                               654년(태종무열왕1)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竹林寺)라 하였으며, 
                               829년(흥덕왕 4) 인도의 승려 황면선사(黃面禪師)가 현재의 자리에 중창하여 
                               영정사(靈井寺)라 이름을 고치고 3층석탑을 세워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전한다.
                               절 이름을 표충사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은 표충사(表忠祠)를 밀양시 
                               무안면에서 옮겨오면서 부터 라고 한다. 








왼쪽으로 부터 표충서원, 표충사(表忠祠), 유물관.
표충서원은 영조 20년(1744년) 왕명으로 조정에서 임진왜란때 구국구민하신
3대 성사를 모시고 매년 춘추로 제향을 올리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종 8년(1871년)에는 대원군에 의해 서원철폐령이 내렸으나 이곳 표충서원은
훼철을 면했다고 한다.
또한 표충사는 임진왜란때 승병장으로 큰 활약을 펼쳤던 사명대사의 충정과
깊은 관련이 있어 이 유물관에는 사명대사와 관련된 16건 79점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사천왕문에서 바라본 수충루.








                               근래에 조성된 사천왕문의 목조사천왕상.
                               표충사의 사당영역과 사원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이 사천왕문은 
                               원래는 대광전 맞은편 우화루 앞쪽에 있었으나, 최근 사당영역을 
                               새롭게 조성하고 절의 진입로를 옮기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표충사 삼층석탑 석등









표충사 대광전(大光殿)과 팔상전(八相殿).









왼쪽부터 관음전과 명부전.









이곳 표충사에는 예전에 TV에 출연했던 경력이 있는,
그래서 이제는 유명인사가 다 되어버린 토끼스님이 살고 있다.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고 예불시간이 되면 스스로 알아서
법당으로 들어가 절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표충사에 터를 잡은지 오래, 그래서 이제는 사찰의 식구가 다 되어버렸다는 그 토끼...
더운 날씨 때문일까. 건물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 잠깐동안 바깥의 동정을 살피더니
이내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참고/ 표충사 홈페이지 및 현장 안내판,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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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지지는 않지만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흐르고 있을 바다...
그 수면위로 인간도 함께 미끄러져 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간은 멈춰지고,
적막속에 파도소리만 아련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하늘엔 구름만이 무심하게 흐를 뿐,
모든 것은 그대로 정지한 느낌이다.








물 위에 뜬 배도 예외는 아니다.
그 위에 올라탄 사람들조차 낚싯대를 드리운 채 꼼짝않고,
주위를 감싸고 도는 정적마져 그대로 즐기는 듯 하다.








무념무상, 모든 것을 털어내 버리는 과정이랄까.
물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또 다시 번잡한 것들로 가득 들어 차겠지만
지금 이 시간 만큼은 그저 비우고 또 다시 비워 낼 뿐이다.








                               마음이 가는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몸을 맡기기만 하면 그 뿐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이 시간이란 것...
어느새 푸른 하늘은 자취를 감추고
하늘색은 붉게, 급격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느끼지 못하는 사이 해거름은 점점 더 다가오고...
하루의 일상은 그렇게 벌써 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나마 흔적마저 없이 사라지기가 미안해서일까.
이글거리던 태양은 맑고 선명한 얼굴을 드러내면서
조용히 작별을 고한다.








어제도 그랬고, 지난 오랜 세월동안에도 변함없이 그래왔듯이
능숙하게 바닷물 속으로 몸을 담그며 뜨거워진 대지를 식혀준다.
결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냉정하게, 이별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듯이 그대로 쓰러져 간다.

그러나 그에 비하면 턱없는 연륜을 가진 여행자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야속함과 아쉬움으로 긴 여운이 되어 남는다. 
아니, 그 순간 그 열기가 가슴속으로 옮겨 들어온 듯
오히려 더 뜨겁게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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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기간, 다소 지겨우실만도 하련만...
이 포스팅을 끝까지 참고 지켜봐 주신 이웃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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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적인 뉴칼레도니아를 상징하는 듯한 플레임 트리(Flame Tree),
이름 그대로 불꽃을 날리는 듯한 강렬한 느낌이다.








쥐손이풀목 대극과의 상록교목인 마타피아 (자트로파 인테게리마 / Jatropha integerrima).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다육성 관엽식물로, 우기에는 잎과 꽃이 피나
건기에는 낙엽이 지고 휴면에 들어간다.








패션플라워 리겔라.
흔히들 보는 시계꽃을 패션플라워(passion flower)라고 하니,
그와 같은 과의 꽃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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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겐빌레아(Bougainvillea).
쌍떡잎식물 이판화군 중심자목 분꽃과의 한 속이다.
덩굴성 관목으로 남아메리카가 원산이며 13종 내외가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 2종이 주로 재배된다.








꽃은 4월에서 11월까지 연중 핀다.
포는 자줏빛이고 아름답기 때문에 꽃처럼 보이며,
그 안에 들어 있는 꽃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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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마편초과 란타나속의 관목인 란타나(Lantana camara).
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으로 란타나는 백당나무에 대한 라틴어 이름이다.
꽃이 백당나무와 유사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유래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꽃의 색은 흰색, 분홍색, 오렌지색, 노란색, 붉은색 등으로 아름답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꽃의 색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칠변화(七變花)라고도 불리운다.








꼭두서니목 꼭두서니과의 익소라속에 속하는 관엽식물인
익소라(Ixora), 그 중 익소라 더피(Ixora Duffii)라는 품종이다.
인도, 중국, 말레이시아 등이 원산이며 전세계적으로 약 400종이 분포한다.








모양이 다소 상이 하지만 피지의 피지언들과 괌의 차모로족이
귀 밑에 장식하는 용도로 많이 쓰이는 꽃, 플루메리아(러브하와이).

학명이 플루메리아(Plumeria), 영명이 프랜지파니(Frangipani),
템플트리 (Temple Tree)이며. 러브하와이 또는 하와이쟈스민으로 유통되기도 한다.
다육식물로 연중 꽃이 피며 멕시코와 서인도제도가 원산지이다.
인도에서는 묘지나 사찰의 경내에 많이 심고, 하와이에서는 목에 거는
화환을 만들거나 행사때에 귀에 꽂기도 한다.








                               잎이 없는 식물 폭죽초. 쌍떡잎식물 현삼과의 소관목이다.
                               학명은 루셀리아 에쿠이세티포르미스(Russelia equisetiformis), 
                               영명은 firecracker plant, coral plant, coralblow 이다.
                               열대 미국 및 멕시코 원산으로 상록 다년생이다.








                               쌍떡잎식물 아욱목 아욱과 무궁화속에 속한 식물을 총칭하는 
                               히비스커스(Hibiscus).
                               원예에서는 부상화(扶桑花)와 여기서 만들어진 여러가지 잡종을 가리킨다.
                               부상화는 동인도와 중국 원산으로 보고 있으나 열대지방에서 널리 재배하고 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꽃이 피지만 적당한 온도가 유지될 때는 연중 꽃이 피며,
                               특히 미국 하와이주에서는 3,000종 이상이 개발되어 주화(州花)로 되어 있기도 하다.
                               꽃의 색깔은 백색, 홍색, 자홍색, 적색, 등색, 황색 등이 있다.
                               꽃받침으로는 차를 만들기도 한다는데 오미자차와 비슷한 맛이라고 한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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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쉐라톤 라구나 괌 리조트 앞 바다는 온통 산호초 투성이다.
날카로운 탓에 밟고 다니기가 쉽지 않다.
자칫 발을 다치기라도 할까봐 부쩍 신경이 쓰인다.







따가운 햇살아래 물 밖으로 나온 불가사리는 
일광욕을 즐기고 있고,







해삼을 닮은 또 다른 녀석은 물 속에서
그대로 죽은 척, 꼼짝도 않는다.







그러나 녀석들과는 달리 바위 틈을 오가며 여유롭게 노닐던 게들은
침입자를 감지하는 순간부터 서둘러 몸을 숨기기에 바쁘다.







                               줄곧 시선을 떨군채 바다밑을 훑으며 지나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산호초 저쪽 끝에서 서너 명의 사람들이 뭔가를 어깨에 잔뜩 걸머진 채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묵직해 보이는 것이 가만히 보니 비늘빛이 고운 물고기들이었다.
                               호기심에 카메라를 들이대니 자랑스러운 듯 포즈를 취해 준다.







얼마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많은 양이다.
이런 꾸러미가 몇 개는 되어 보였다.
그물망도 보이기는 했지만, 오른쪽으로 보이는
저 쇠창살로 잡았다며 애써 몸짓을 해 보인다.







                               그리고 곁에 있던 또 다른 한 사람은 손에 들고 있던 두 마리의 물고기를 
                               입으로 가져 가더니 장난기 섞인 모습으로 포즈를 취해 준다.
                               그리고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아 두 마리의 물고기를 서로 비벼대며 
                               비늘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회를 만들어 먹을거라며 흐뭇한 표정이다.

                               갓 잡은 싱싱한 물고기, 그 맛은 어떨지... 성급하게도 그 대답은  
                               이미 입안에 자리잡기 시작한 군침이 대신해 주는 것 같다.
                               떡 줄 ×은 생각도 않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오로지 모든 것을 베풀어 주기만 하는 풍성한 
                               또 하나의 바다를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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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그늘아래 투명한 자연을 꿈꾸다.








열매 혹은 결실... 비록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만은 분명 축복인 것 같다.








때로는 정열적인 붉은색으로...








또 때로는 초록의 신선함으로... (대추야자)








자연은 그렇게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게코도마뱀으로 불러야 할까.
정원에서 자주 보이는 녀석인데, 인간의 영역까지 침범해 버렸다.
눈이 유난히 불거져 보이는 어린 녀석이지만,
발톱에 메니큐어를 칠한 듯한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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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속의 사진 나부랭이 /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저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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