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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보이는 무변루(無邊樓)와 양쪽의 동·서재.

옥산서원(玉山書院)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인 구인당(求仁堂)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배향(配享)하고 있는 옥산서원은 경주시 안강읍에 위치하고 있다.







옥산서원 현판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글씨이며 바로 그 뒤에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쓴 또 다른 현판도 걸려 있다.

그리고 안쪽의 구인당(求仁堂) 현판과 무변루의 현판은 한호(韓濩), 

즉 한석봉(韓石峯)의 글씨라고 한다.



▶ 관련/ 옥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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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獨樂堂)의 대표적 공간인 계정(溪亭). 

계곡을 따라 지어진 정자가 시원하다.

옥산서원 인근에 위치한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지은 집이다.



▶ 관련/ 독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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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42호인 관가정(觀稼亭).

'농사짓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정자'라는 뜻으로, 실제로 

이곳에서는 양동마을 입구 반대편의 넓은 평야가 한 눈에 조망된다.

관가정은 조선 전기의 관리로서 중종 때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이 분가하여 지은 집이다.


경주시 강동면에 위치한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마을이자 성리학의 정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회재 이언적 선생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이전에 다녀올 때와는 달리 이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어서인지 주차장도 넓게 만들어져 있고 문화관도 

반듯하게 지어져 있었다.







여강 이씨의 대종가인 무첨당(無忝堂).

조선 중기에 세워졌으며 보물 제411호이다.

무첨당이란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라는 뜻이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건물로 종가집 본채의 

사랑채와는 별개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독서 등을 

할 수 있는 정자와 비슷한 성격의 사랑채이다.







무첨당 편액 오른편에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집권 전 이곳에 

들러 죽필(竹筆)로 썼다는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3호인 서백당(書百堂).


조선 전기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경주 손씨의 큰 종가로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서백당은 '참을 인(忍) 자를 1백번 쓰며 인내를 기른다'는 뜻이다.







사랑채 안마당에는 500여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향나무가 서 있고, 그 뒤로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위쪽의 기왓집은 보물 제412호로 지정된 향단(香壇)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모친 병환을 위하여 돌아왔을 때 중종이 지어준 

건물로 원래는 99칸이었는데 지금은 56칸이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 관련/ 양동마을



독락당은 물론, 양동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라 접근이 쉽지 않았다.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접근을 원천 봉쇄한 집도 적지 않았다.

수 많은 관광객들에 의해 사생활이 침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풀이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