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엔 아무런 통제없이 접근이 가능했을만큼
그 원형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걸로 생각된다.
독창적인 외형에 웅장함이 더해져 경외감마져 든다.
일제시대때 찍은 사진으로 추정.
수학여행 최고 명승지였던 경주 불국사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석탑 두기가 조성돼 있다.
바로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더 잘 알려진 불국사 삼층석탑이다.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에 동서방향으로 나란히 서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국보 20호와 21호로 지정돼 있고, 높이도 10.4m로 똑같다.
많은 학자들은 이 두 탑이 〈법화경〉 ‘견보탑품’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전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부처였던 다보여래는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나의 탑이 이 경을 듣기 위해
그 앞에 솟아나서 증명하고 장하다고 찬탄하리라”는 원을 세웠다.
그리고 〈법화경〉을 설하는 부처님 앞에 탑이 나타났다.
10원짜리 동전에 새겨져 더 친숙한 다보탑은
상상의 탑으로 생김 또한 일반적인 탑과 다르다.
석탑이지만 목조건축 양식을 차용해 연꽃 등 다양한 장식을 넣고 화려하게 꾸몄다.
아래 부분은 4개의 사각기둥을 세우고 계단을 만들었고
8각형의 탑신부 주위에는 8각형의 난간과 네모난 난간을 설치했다.
층수도 세기 어려워 2층, 3층 등 다양한 주장만 있을 뿐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원래는 네 마리였지만 한 마리밖에 남지 않은 계단 위의 돌사자는
부처님의 진리가 사방에 가득함을 상징한다.
안타깝게도 3마리는 일제시대 약탈당해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다보여래를 만난 석가모니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서편의 석가탑이다.
탑이 조성된 시기는 절을 창건한 연대인 경문왕 10년(751) 이후로 추정하는데
8세기 중기의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이 모습을 보여주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단단한 2층 기단으로 목조건축을 본 따서 위. 아래층 기단과
탑신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또 옥개석 끝을 날렵하게 처리해 곡선형태로 처리했으며,
탑 주위를 연꽃으로 장식한 것도 특징이다.
2층 탑신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국보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편 무영탑(無影塔)이라고 불리는 이 탑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백제의 석공인 아사달은 고향에 아내 아사녀를 두고 신라에 와서 석가탑을 지었다.
서라벌에 온 아사녀는 석가탑이 완성되면 영지(影池)에 비칠 것이라는 말만 믿고
영지 주변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못에 빠져 죽는다는 슬픈 얘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