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와 경상남도 마산을 잇는 구마고속도로 건설 기념탑.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 현풍휴게소에 위치해 있다.
'번영의 조국이여 조상이 남기신 문화유산을 기틀삼아 새시대의 예지와
맘으로 약진을 거듭하니 역사의 시련기에 겨레의 웅지와 충성을 다하는
민족총력의 업적들을 다시 후세에 물려 길이 평화와 복락을 누리도록 하려 함이다.
아름다운 조국강토의 영원한 혈맥이 될 고속도로에 위의 축원을 담아 한탑을 세우다.
1977년 12월 17일'
앞면 글씨 : 대통령 박정희 건립 : 건설부 조각 : 김세중
1976년 6월 착공, 1977년 12월 2차로로 준공.
2008년 구마고속도로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으로 명칭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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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기념비.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 조각동산의 200평 부지에 건립된 이 기념탑은
높이 6m, 직경 90cm의 청동 기념탑 3개로 세워졌다.
대구사범학교 8,9,10기생들을 주축으로 문예부, 연구회, 다혁당 등의 활동을 통하여
조국독립의 길을 모색하던 중 1941년 일경에 발각되어 300여명의 대구사범출신들이
검거되었다.
이 중 35명이 구속되어 가혹한 고문과 수형생활로 5명이 옥중에서 순국하였고,
조국광복과 더불어 출옥한 후에도 12명이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 기념탑은 대구사범동창생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98년 3월 1일 건립하였다.
대둔산 승전탑.
1950년 10월 3일부터 1955년 1월 2일까지 5년간에 걸쳐 대둔산 일대에서
활동중인 빨치산 및 영호남지역에서 패주 북상하던 북괴군 3,412명을 섬멸하면서
경찰, 국군, 애국청년단원 등 전사자 1,376명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1986년 6월에 준공되었다.
당시 대둔산을 거점으로 활동한 공비들은 현재의 논산시, 완주군 일대와 멀리 공주,
대전까지 원정하여 410여회에 걸쳐 경찰관서를 습격하고 양민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고,
이에 충남경찰국은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강경경찰서에 대둔산지구 전투경찰대를
창설하여 대대적인 공비 토벌작전을 전개함으로서 대둔산 일대의 공비를 소탕하였다.
대둔산 동학군 최후 항전지.
동학전쟁 때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은 대둔산에서 일본군에
마지막 항전을 벌이다 모두 대둔산의 바위벼랑에서 몸을 던져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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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 내장사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서보단기념비(誓報檀記念碑)와 사적비(事績碑).
사적비 뒷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서기 1895년 을미 8월 명성왕후가 폭악무도한 왜적들에 의하여 시해되니 2천만 국민의 슬픔과
울분은 하늘에 사무치고 일본에 대한 복수의 소리가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터져 나왔다.(중략)
1903년 7월 15일 이곳 내장산에서 추모대회가 열렸는데 26개군에서 54명이 참가해 서보단을 쌓고
북쪽을 향하여 통곡하는 가운데 복수를 맹서하고 매년 8월 20일 추모제를 거행키로 했다.'
1991년, 서보단기념사업추진회가 추모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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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망우당공원 내에 위치한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1991년에 세워졌다.
'비 내리는 고모령'은 1948년 현인이 부른 노래로 현인과 함께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사가 유호와 작곡가 박시춘의 작품이다.
현인의 음반 작업을 맡은 유호는 가사 독촉에 시달리고 있던 중
우연히 지도책을 꺼내 보다가 대구에 있는 고모라는 지명을 발견하고
어머니와 이별하는 아들을 소재로 이 노래를 만들었다.
실제 고모령은 형제봉 사이를 넘는 고개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알리는
비석이 제2작전사령부 안에 세워져 있다.
2012년 모명재길이 만들어지면서 고모령 일부 구간을 고모령길로 명명하게 되었다.
조선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1552~1617)의 동상.
이 역시 망우공원내에 위치해 있으며 공원 이름은 그의 호인 망우당(忘憂堂)에서 따왔다.
1585년(선조 18)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지의 내용이
왕의 뜻에 거슬린다 하여 파방(罷榜)되었다.
이 일로 과거를 포기하고 은거하다가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로 피난하자 4월 22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 창의 후 첫 전투인 5월 4일의 기강전투 승리 이후 의병의 군세는
더욱 커져 인원이 2천에 달하였고, 5월에 정암진(鼎巖津) 도하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다.
이 때 홍의(紅衣)를 입고 선두에서 많은 왜적을 무찔렀으므로 홍의장군이라고도 불렀다.
또한 1차 진주성 전투에 휘하의 병사들을 보내 김시민 장군이 승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정유재란 때에는 밀양, 영산, 창녕, 현풍 등 네 고을의 군사를 이끌고
화왕산성을 지켜 적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
글씨와 시문에도 능하였으며 저서로는 '망우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