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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왕(興德王, 777년 ~ 836년, 재위 : 826년 ~ 836년)은 신라의 제42대 왕이며

아버지는 원성왕의 태자 김인겸(金仁謙), 어머니는 각간 김신술(金神述)의 딸 숙정부인(淑貞夫人),

그리고 왕비는 소성왕의 딸 장화부인(章和夫人)이다.

당나라에 조공을 계속하여 문물의 초래에 노력하였고, 당으로부터 가져온 차(茶) 종자를

지리산에 심어 재배하도록 하였으며, 장보고로 하여금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였다.

또한 귀족들의 사치를 방지하기 위하여 사치금지법을 반포했던 왕으로도 알려져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에 위치한 흥덕왕릉(興德王陵)을 찾아 나섰다.

신라의 왕릉임에도 불구하고 시내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곳에 자리하고 있어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하기만 한 곳이다.







아름다운 솔숲을 들어서니 이내 왕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의 왕릉 가운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데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신라 하대 선종 승려들이 중국으로부터 도입해왔던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무덤 앞으로는 무인석과 문인석 각 한 쌍을 배치하였고, 무덤 주변으로 

네 마리의 석사자를 배치하였다.







흥덕왕이 826년 10월에 즉위한 후 12월에는 왕비 장화부인이 죽자

군신은 후비(后妃)를 넣는 것을 진언했지만 왕은 "외짝 새도 제 짝을 잃은 슬픔을 가지거늘, 

하물며 훌륭한 배필을 잃었는데 어떻게 금방 다시 장가를 든다는 말인가?"라면서 

후비를 맞이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왕의 좌우에는 내시만이 있었다고 한다.

836년 12월에 사망하여 유언에 따라서 장화부인의 능에 합장되었다.

그래서인지 능의 규모가 꽤나 크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0.8m, 높이 6m이다.







봉분 주변으로 배치된 네 마리의 석사자는 이곳과 원성왕릉(괘릉) 두 군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전체적인 배치와 장식물의 양식으로 볼 때 성덕왕릉과 원성왕릉의 형식을 많이 본따고 있다. 

봉분은 호석(護石)으로 둘렀으며 그 사이사이에 십이지(十二支)의 신상을 새겨 넣었다.







                               호석 사이마다 십이지신상을 두르는 사례는 이곳 흥덕왕릉은 물론, 김유신 장군묘와 

                               진덕여왕릉, 성덕왕릉, 그리고 원성왕릉에서도 잘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봉분쪽에서 바라본 석물.







왼쪽으로부터 석사자, 문인석, 무인석.


무인상은 코가 뭉툭하고 눈망울이 부리부리한 것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서역인(西域人)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문인석도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의 위구르인의 얼굴 모습으로 보고 있다.







                               흥덕왕릉은 능의 주변에서 '흥덕(興德)'이라 새겨진 비석의 파편이 발견되었고, 

                               삼국사기에 남겨진 기록과도 일치하여 왕릉의 주인이 

                               확실하게 밝혀진 곳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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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삼릉
(三陵)은 이름 그대로 능이 3개 있다는 뜻이다.
                               선릉, 선정릉, 선릉공원 등으로도 불리우는 이곳에는 조선 제9대 성종(成宗)과 
                               계비(繼妃)인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를 모신 선릉(宣陵)과 
                               제11대 중종(中宗)을 모신 정릉(靖陵)이 있다.
                               선릉은 조선 성종의 능과 선릉 뒤편에 위치한 정현왕후 윤씨의 능을 합친 이름이다.
                               조선왕릉인 선릉, 정릉은 사적 제199호이면서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왕과 왕비의 능 40기에 이른다.  

                               선릉과 조금 비켜서 있는 정자각 앞으로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丁字閣)까지 이어지는 길을 참도(參道)라 하는데, 
                               길 한쪽은 다른쪽보다 조금 낮다.
                               왼편 높은 길은 신도(神道)라 해서 혼령이 다니는 신성한 길이고, 
                               다른 길은 어도(御道)라 하여 왕이 다니는 길이라 한다.  

                               중앙의 정자각 오른편으로 비각과 수복방(守僕房)이 보인다.
                               수복방은 제사 그릇을 보관하고 능을 지키는 관리인 수릉관(守陵官) 
                               또는 청소일을 하던 관노비인 수복(守僕)이 지내던 집이다. 








정자각 오른편에 위치해 있는 비각으로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비각 안의 선릉비 전면에는 '朝鮮國 成宗大王 宣陵
                               貞顯王后 祔左岡 [조선국 성종대왕 선릉
                               정현왕후 부좌강(좌측 언덕에 모심)]이라 적혀있다







선릉. 봄을 맞아 잔디를 손질하고 있다.

조선 9대 왕인 성종은 세조(世祖)의 손자이자 덕종(德宗, 추존)의 둘째아들로, 
세조 2년(1457)에 태어나 13세(1469)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 25년간 학문을 장려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으며,
16남, 12녀를 두고 1494년 창덕궁에서 38세(1494)로 돌아가셨다. 
 





성종은 경국대전을 반포하여 조선의 법전체제를 완성하였으며, 
조세제도로는 관수 관급제(官收 官給制)를 실시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줄였다.
홍문관을 설치하고 동국여지승람, 삼국사절요, 동국통감, 악학궤범,
동문선 등 많은 서적을 편찬하기도 했다.
또한 국조오례의를 만들어 유교예법을 확립하였고
창경궁을 창건하였으며 만주족을 정벌하기도 했다. 


 




선릉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빌딩 숲 속, 도심과 격리된 또 다른 세상을 확인할 수 있다. 






병풍석과 상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는 정현왕후릉.  
봉분 좌우에 세우는 기둥인 망주석(望柱石) 뒤쪽으로 석양(石羊)과 석호(石虎)가 서 있다. 
석양은 죽은 이의 명복을 빌며 땅 속의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석호는 석양과 함께 능의 주인이 쉬는 곳인 능침(陵寢)을 수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정현왕후는 우의정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딸로
성종 11년(1480)에 왕비가 되었고, 중종 25년(1530)에 69세로 돌아가셨다. 
정현왕후가 낳은 진성대군은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이다. 






능묘를 수호하는 능묘조각의 하나인 문석인(文石人)과 무석인(武石人)
각 한쌍이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 그 뒤로 석마(石馬)가 지키고 서 있다.
그 외에 혼유석, 상석, 향로석 등 기타 석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봄날, 이곳 공원 안에는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수목이 울창해 시민들의 산책 및 휴식코스로 
                               사랑받고 있기도 하다. 






                               산책길을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정릉(靖陵).
                               능 앞으로는 왕과 왕비의 신좌(神坐)를 모시고 각종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丁字閣)과 홍살문이 호위하듯 서 있다.

                               중종은 성종의 둘째 아들로 성종 19년(1488)에 태어나 1506년에 
                               왕위에 올랐고, 재위 39년(1544) 57세로 돌아가셨다.   
                               재위기간 중에는 현량과를 설치하였고 향약을 실시하여 향촌자치를
                               시도하였으며, 서원이 설립되기 시작하여 사림의 기틀이 되었다.
                               또한 주자도감을 두어 신증동국여지승람, 소학, 삼강행실, 이륜행실,
                               속동문선을 편찬하는 등 활자를 개량하여 많은 책을 펴냈으며 
                               비변사를 설치하여 국방체제를 정비하기도 했다.  






높이 위치해 있는 관계로 가까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멀리서 당겨본 정릉의 모습.

중종에게는 세 명의 정식 부인이 있었다.






제관들이 제사를 준비하고 왕의 휴식을 위해 마련된 재실(齋室).
능을 관리하는 능참봉(陵參奉)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원래는 성종대왕능과 중종대왕능에 각각의 재실이 있었으나
대한제국 시절에 2개소의 재실이 현재의 재실로 합쳐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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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로 포근하게 둘러 쌓인 배리 삼릉(拜里 三陵),
사적 제219호이다.




반드시 가보리라 했지만 꽤 오랜 기간동안 미루기만 했던 곳,
곳곳에 불상이 산재해 있어 노천박물관으로도 불린다는 그곳, 
경주 남산에 다녀왔다.
경주 남산은 1968년 지리산에 이어 두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다른 곳과는 달리 유일한 사적형 국립공원이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만큼 남산을 오르는 여러 코스 중 가장 볼 것이 많다는
서남산 제1코스를 찾았다.

삼릉에서 출발, 상선암, 바둑바위를 거쳐 금오봉 정상에 
올랐다가 용장사지를 지나 용장골로 하산하는 코스다.







                               산행의 출발점에 위치한 삼릉 주변으로는 소나무가 빼꼭하게
                               들어차 있어 많은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이곳 남산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절터는 112곳, 탑은 61기이고,
                               불상은 80체를 헤아린다.
                               불상 중에는 입체로 된 것이 29체이고 바위면에 새긴 마애불상은 51체이다.
                               그러니 노천박물관이라 불리워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삼릉 바로 우측편에 위치한 사적 제222호인 경애왕릉(景哀王陵).
 






삼릉을 지나면서 바로 산행이 시작된다.
산책을 하듯 쉬엄쉬엄 오르니 이내 여래상 하나가 나타난다.
바로 삼릉계 석조여래좌상(三陵溪 石造如來坐像)이다.







                               석조여래좌상 바로 왼쪽길로 접어드니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磨崖觀音菩薩像)이 반겨주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이다.
 






갔던 길을 되돌아와 원래 오르던 길로 계속 진행한다.
얼마못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인 
삼릉계곡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과 만나게 된다.
 
이 불상은 남산에서는 보기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法堂)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바위 위쪽으로는 또 다른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밟고 지나간다.
보고 있으려니 웬지 마음이 불편해진다.






                               앞쪽 바위면 가운데에는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 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릎을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꽃 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슬 2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미타삼존이라고 한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에는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 대좌(臺座)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頭光)만 새기고 몸 둘레의 신광(身光)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은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 분이 서 있다.
보통 이 세 분을 석가삼존이라 부른다.






                               누군가의 소망은 향불이 되어 피어 오르고...






                                산길을 밟아 오르면서 신라시대의 불교유적지를 찾아 
                                하나하나 대면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에는 보물 제666호인 삼릉계석불좌상(石佛坐像)이다.
  



                                참고/ 현장 안내판, Daum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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