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늦은가을, 햇살이 따뜻하다고 느껴지는 어느 일요일 오후,
그 볕을 즐기려 인근에 있는 자그마한 연못가로 나가서 차를 세우고 있는데
지나가던 일단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몇 명의 아이들이
바로 옆 작은 도랑위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웅성대기 시작했다.
무엇때문에 그러는가 싶어 슬그머니 차에서 내려봤더니 그 지저분한 도랑 밑에서
아주 어려 보이는 흰색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이 물에 반쯤 잠긴채로 가느다란 신음을 토해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의 가냘픈 아기의 울음소리, 그 소리가 아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 같았다.
하반신엔 출혈로 물들었고 거기다 굵은 파리떼까지 들끓는...
물론, 스스로 움직이지 못했다.
신음소리만 아니라면 영락없는 고양이의 주검 그 자체였다.
일단 고양이를 물에서 건져내어 둑위에 올려 놓기는 하였으나
이후에 어떤 행동을 해야할 지 아이들이나 나나 모두가 난감해 할 뿐이었다.
목줄이 있는걸로 보아 최근까지 누군가의 보호아래 지내왔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이 상태로 외진 이 곳에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119에 신고를 해야하지 않느냐는 둥
서로 안타까움만 토로했다. 그리고는 그 중 몇 명이 살며시 자리를 뜨더니
인근에 있는 사찰에서 뭔가를 얻어왔다.
그들의 손에 들린건 종이컵으로 밥과 물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것을 고양이 앞에 들이밀었으나 스스로 힘이 부치는지 쉽게 입을 벌리지 못했다.
여전히 가느다란 울음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언제 왔는지 먼발치서 이를 지켜보던 스님 한 분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최근 며칠간 근처에서 서성이길래 밥도 주곤 했었는데,
아마 차에 치인것 같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는...
순간 그 말에 모두가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이 조용해졌다.
어쩌면 그 한 마디가 모두의 귓속에 꽂혀든 차가운 비수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잠시동안 지켜보기만 하다가 그 스님의 말대로
결국 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슬며시 차에 오르고 말았다.
떠나는 차의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이었다.
사랑은 실천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행동이 따르지 않은 사랑이란 한낱 공염불이자
헛된 미사여구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잠시 맞닥뜨린 그 현장에서 얻은 건 자그마한 아이들이 보인
작지만 큰 사랑이었고, 그 아이들 보다도 못했다는,
못난 어른의 부끄러움 뿐이었다.
물론, 별것 아닌것을 확대해석하는 것 이라고 자위할 수 도 있겠지만...
이 거친 세상에서 작은 생명 하나에도 - 물론, 생명에는 크고 작음이 없겠지만 -
가슴 아파하는 아이들의 간절함과 순수함이 빛나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그러한 마음이
앞으로도 계속 잘 지켜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아이들이 우리 모두의 미래라는 확실한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