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에 위치한 골굴사(骨窟寺).
경주에서 감포가는 길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이 절은 여느 다른 절과는 달리 입구부터가 남다른 느낌이다.
마하지관원(선무도대학 생활관).
골굴사는 선무도(禪武道)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얼핏 중국의 소림사를 떠올리게 한다.
선무도란 예로부터 밀교(密敎)로 전해져 오던 스님들의 무술로
옛 신라의 화랑들이 수련하던 무술이라고 하는데, 선종(禪宗)을 일으킨
달마대사가 전수한 수행법으로 일반적인 무술 이외에 요가와 명상을 포함한다.
선무도대학의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는 세심당.
입구에서부터 길이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불국사보다 약 200여년 먼저 조성된 골굴사는 신라시대 불교문화가 번창하던 6세기경
서역(인도)에서 온 광유 성인(光有 聖人)일행이 암반전산(岩般全山)에 마애여래불과
12처(處)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 온 국내유일의 석굴사원이다.
또한 원효대사가 열반한 혈사(穴寺)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비탈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쪽은 대적광전, 또 다른 한쪽은 마애여래좌상으로 가는 길이다.
마애여래좌상 방향을 선택하여 돌계단을 오르니 곧장 작은 동굴이 군데군데
뚫려있는 석회암 절벽이 나타나고, 움푹하게 패인 그 동굴에는 어김없이
갖가지 형태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었다.
산신굴.
암반 사이의 공간에는 관음굴, 약사굴, 나한굴, 지장굴 신중단,
칠성단 등 여러 굴법당(窟法堂)이 조성되어 있다.
또 다른 참배처 신중단(神衆壇).
신중은 여러 신을 말하는데 불법을 수호하는 위타천(韋陀天)이 중앙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며 제석천이 그 위에 배치된다.
그러나 골굴사의 신중단은 제석천으로 보이는 신중이 중앙에 위치하며,
사천왕은 양쪽 끝 아래 위에 서 있다.
신중도는 일반적으로 39위가 그려지며, 보다 많은 신을 포함할 경우104위까지 표시된다.
조금 더 올라가면 관음굴이 나온다.
마치 암벽등반을 하듯 아슬아슬한 난간을 타고 나아간다.
응회암으로 형성된 암반 정상부위에서는 보물 제581호인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을 만나볼 수 있다.
이 불상은 골굴암의 주존불로 동남쪽을 향한 암벽의 약 4m 높이에 새겨져 있다.
높다란 상투 모양의 머리와 뚜렷한 얼굴, 가는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의 독특한
이목구비와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띤 형태 등은 형식화가 진행된 9세기 신라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건장하지만 평면화된 신체, 얇게 빚은 듯 계단식으로 평행되게 한
옷 주름, 무릎에서 형식적으로 나타낸 물결모양의 옷 주름과 겨드랑이 사이에
팔과 몸의 굴곡을 표시한 V자형 무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광배(光背)는 불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기림사사적기(祇林寺事蹟記)'에는 골굴암에 열 두 굴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불상은 그 주불인 듯하며 만든 시기는 9세기경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鄭善)이 그린 '경주 골굴 석굴도'에는 목조전실(木造前室)이
묘사되어 있으나 지금은 곳곳에 가구(架構)의 흔적만 남아 있다.
▲ 겸재 정선의 교남명승첩(嶠南名勝帖) 권2 중 '골굴석굴도'
마애여래좌상 바로 아래에서 내려다본 대적광전(대웅전).
골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로 현재 불국사의 말사(末寺)로 소속되어 있다.
큰 법당인 대적광전내의 삼존불(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오륜탑.
청정법신 대일여래불(淸淨法身 大日如來佛)을 상징하는 만다라(曼茶羅)로서
모든 덕과 지혜를 갖추었음을 뜻하여 오지륜(五智輪)이라고도 한다.
이 탑에는 태국에서 모셔온 불사리(佛舍利) 3과(果)가 봉안되어 있다.
오륜탑에서 내려다본 대적광전과 마애여래좌상.
오륜탑까지 둘러보고 하산을 시작한다.
골굴사는 선무도라는 무술로 유명해서인지 그저 조용한 산사라기보다는
다소 역동적이고 강한 힘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있다는 선무도 시연은 아쉽게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접해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