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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로각국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장춘사(長春祠)를 찾았다.

좌측으로 보이는 장춘교를 지나 우측의 장춘사까지 산책하듯 걸어본다.







장춘사는 동서횡단공로를 건설하다가 희생한 226인의 영령을 달래기 

위한 사당으로, 1958년에 처음 지어졌고 1979년에 태풍으로 피해를 입어 

1980년에 다시 건립, 1987년 자연재해로 무너지고 1989년에 다시 

지어지면서 현재의 장소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암벽위에 '장춘청도(長春聽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장춘에서 부서져 내리는 폭포수 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들린다'는 뜻이라고...







다리를 지나 동굴이 시작되는 지점에 마련된 불상.

동서횡관공로 공사때 희생된 분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있다.







장춘사와 그 가운데를 흐르는 폭포가 한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온다.







아찔한 절벽 위에 세워진 또 다른 사찰, 선광사(禪光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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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롄의 750m 고산지대에 살던 아미(阿美, 우라이)족의 민속공연.

대리석과 옥으로 유명한 화롄에서 볼 수 있다.

아미, 즉 우라이는 원주민인 타이야르족의 말로 '온천'이라는 뜻이라고...







아미족은 남방계답게 춤동작이 경쾌하다.

특히 박자에 맞춰 대나무 사이를 넘나드는 춤은 이곳 민속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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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롄(花蓮)역 앞의 조그마한 공원에 세워진 중국 혁명의 선도자이자

국부(國父)로 받들어지는 쑨원(孫文)의 동상.







화롄으로 갈 때는 우리나라의 기업인 현대가 만든 오래되고 낡은 기차를 이용했지만,  

타이페이로 되돌아 오는 길에는 깨끗하고 쾌적한 최신식의 일본제 기차를 탔다.

역시 낡기는 했지만 대우의 마크를 단 기차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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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에 위치한 활엽수림인 계정(桂亭).

수령 10~250여년 된 이팝나무 외 538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고 있으며 

1997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능묘 입구에는 자인에서 관직을 지낸 사람들의 공덕비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한(韓)장군 묘.


이곳은 신라 혹은 고려 때 도천산에 왜구가 출몰하여 주민을 괴롭히자

한장군이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여원무(女圓舞)를 추어 도천산 아래 

버들못(柳堤池)으로 왜구를 유인, 칡그물로 가두어 검흔석(劍痕石)에 올려놓고

참수시켰다는 한장군의 묘이다.

1968년 8월 자인중고등학교 본관 건물 신축을 위해 공사중 석실묘가 발견되어

발굴조사를 한 결과, 두개골이 포함된 유골과 은으로 장식한 갑옷 투구,

녹슨 철제창, 그리고 많은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묘를 한장군의 실묘(失墓)라고 확정하고 출토된 부장품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옮겼으며, 유해는 1969년 5월 10일 이곳에 옮겨 한장군 묘를 만들어 매년 단오절에

한장군 제를 올리고 있다.  

지금은 그 부장품이 2011년 12월 29일 대구박물관으로 이거(移去)되어 보관, 소장하고 있다.







진충묘(盡忠廟).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경산자인단오제 여원무의 주인공인 한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며, 일제 때 일본인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으나 해방 후

북사리의 한당(韓堂)을 계정숲에 이건(移建)하여 현재의 진충묘가 되었다.

정면3칸 측면1칸 맞배지붕의 사당이다.







자인현청의 본관이었던 시중당(使衆堂).

1637년(인조15)에 자인현감 임선백(任善伯)이 건립한 자인현(慈仁縣)의 정청(政廳)으로 

일명 무금헌(撫琴軒)이라고도 하는데, 여러차례 이건하였다가 1980년에 

현재의 위치인 계정숲으로 이건하였다.


이 숲은 한장군을 모시는 성지로서 그리고 자인 단오굿의 굿판으로서 향토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그 외에도 생물학적, 역사적, 민속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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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정기룡 장군의 사당인 경충사(景忠祠) 및 유허지.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소재해 있으며

정기룡 장군의 유품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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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에 위치한 성황사(城隍祠).

이 고장의 수호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으며 고려후기 명신인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垈) 선생을

수호신, 일명 성황신으로 모시고 공의 위업과 영력으로 고을민의 안녕과

부귀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왔다.

김지대 선생은 젊은 시절 거란과의 전쟁시 國患臣之患, 親憂子所愚,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라는 시를 지어 주목을 받고 조정에 발탁되었다.

이는 '나라의 근심은 신하의 근심, 어버이 근심은 자식의 근심이라,

어버이 대신 나라의 은혜를 갚는다면 충성과 효도를 함께 닦는 것이리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후 전라도, 경상도 안찰사를 역임하면서 청렴과 공정성으로 이름이 높았고

청도를 관적(貫籍)으로 하사받아 청도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후대에 이르러 목조신상은 망실되었고, 사당은 1960년경 풍우에 완전 소실된

것을 1997년에 복원하고, 수호신상은 2009년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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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보이는 무변루(無邊樓)와 양쪽의 동·서재.

옥산서원(玉山書院)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인 구인당(求仁堂)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배향(配享)하고 있는 옥산서원은 경주시 안강읍에 위치하고 있다.







옥산서원 현판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글씨이며 바로 그 뒤에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쓴 또 다른 현판도 걸려 있다.

그리고 안쪽의 구인당(求仁堂) 현판과 무변루의 현판은 한호(韓濩), 

즉 한석봉(韓石峯)의 글씨라고 한다.



▶ 관련/ 옥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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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獨樂堂)의 대표적 공간인 계정(溪亭). 

계곡을 따라 지어진 정자가 시원하다.

옥산서원 인근에 위치한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지은 집이다.



▶ 관련/ 독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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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42호인 관가정(觀稼亭).

'농사짓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정자'라는 뜻으로, 실제로 

이곳에서는 양동마을 입구 반대편의 넓은 평야가 한 눈에 조망된다.

관가정은 조선 전기의 관리로서 중종 때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이 분가하여 지은 집이다.


경주시 강동면에 위치한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마을이자 성리학의 정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회재 이언적 선생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이전에 다녀올 때와는 달리 이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어서인지 주차장도 넓게 만들어져 있고 문화관도 

반듯하게 지어져 있었다.







여강 이씨의 대종가인 무첨당(無忝堂).

조선 중기에 세워졌으며 보물 제411호이다.

무첨당이란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라는 뜻이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건물로 종가집 본채의 

사랑채와는 별개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독서 등을 

할 수 있는 정자와 비슷한 성격의 사랑채이다.







무첨당 편액 오른편에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집권 전 이곳에 

들러 죽필(竹筆)로 썼다는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3호인 서백당(書百堂).


조선 전기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경주 손씨의 큰 종가로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서백당은 '참을 인(忍) 자를 1백번 쓰며 인내를 기른다'는 뜻이다.







사랑채 안마당에는 500여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향나무가 서 있고, 그 뒤로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위쪽의 기왓집은 보물 제412호로 지정된 향단(香壇)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모친 병환을 위하여 돌아왔을 때 중종이 지어준 

건물로 원래는 99칸이었는데 지금은 56칸이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 관련/ 양동마을



독락당은 물론, 양동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라 접근이 쉽지 않았다.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접근을 원천 봉쇄한 집도 적지 않았다.

수 많은 관광객들에 의해 사생활이 침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풀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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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속의 사진 나부랭이 /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저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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