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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위치한 청도읍성.

1995년 1월 14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자세한 기록이 있어 발굴조사와

고문헌의 고증을 거쳐 북문(공북루)을 중심으로 성벽과 옹성 등

성곽을 복원해 나가고 있다.

특히 청도 사람들은 형장이 있고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위한 

재단이 북문 밖에 있었기 때문에 이곳 북문인 '공북루(拱北樓)'를 

통해 다니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진은 복원중인 2015년 3월의 모습이다.







청도읍성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지은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복원 공사중인 2013년 5월의 모습.







복원 공사 후인 2015년 3월의 모습.


'읍지'의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1570보(1880m)이고

높이는 5자 5촌(약 1.65m)이었다고 하나, 일제시대 때 읍성 철거정책에 따라

대부분 헐리었고 지금은 성벽의 바닥과 일부만이 남아있다.

성의 평면형은 사각형에 가까우며 동·서·북쪽에 문터가 남아있다.







임진왜란과 여러 번의 화재로 소실되기도 하였지만 수 차례 개축하여

읍성을 유지하여 왔고, 고종 7년(1870)에 남문을 건립하여 

4문을 갖추게 되었다.







죄인을 구금하는 시설인 형옥(刑獄).

문헌기록인 '재성외서북우(在城外西北隅)'를 기준으로 지금의 자리에

전문가의 고증하에 2013년 복원하였다.

원형의 담장 안에 남녀를 분리한 옥사 1동과 관리사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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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북루에서 동북쪽 모서리에 이르는 구간에는 세 개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본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해자였다.


2015년 6월의 모습.







청도읍성은 고려 때부터 있었으며 당시에는 돌과 흙을

섞어 쌓은 것이었는데, 조선 선조 23년(1590)에 돌로 고쳐쌓아 

선조 25년(1592)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2017년 5월의 청도읍성.








참고/ 위키백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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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 45-2 | 청도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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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청도읍성(淸道邑城)이 자리하고 있다. 
읍성은 왜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동래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도로변에 축성한
성 중, 지방관아가 소재한 고을의 방어를 목적으로 축성된 성곽을 말한다.
청도읍성의 정확한 축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석축(石築)과 토축을 혼합한 형태였으나, 청도군수 이은휘(李殷輝)가
선조 23년(1590년)부터 2년에 걸쳐 완공하면서 지금과 같은 석성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 북문(공북루) 및 옹성. 



청도읍성은 둘레가 1,570보(약 1.88km), 높이는 5자 5촌(약 1.65m)의 규모로
동문 · 서문 · 북문이 있었다.
임진왜란과 여러 번의 화재로 소실되기도 하였지만 수 차례 개축하여 읍성을
유지하여 왔고, 고종 7년(1870년)에 남문을 건립하여 4문을 갖추게 되었다.




                                                            ▲ '해동지도'에 나타난 청도읍성.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시화와 도로 개설로 문루는 철거되고
                                                          성벽 일부는 훼손되었으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경상북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청도읍성은 성의 기저부가 전역에 남아 있고,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자세한 기록이 있어 발굴조사와 고문헌 고증을 거쳐 북문(공북루)을
                                                          중심으로 성벽과 옹성 등 성곽을 복원해 나가고 있다.








현재 청도읍성은 일부만 복원이 된 상태로, 북쪽의 성벽을 따라
자그마한 연못과 정자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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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의 동쪽 성벽 아래에는 그동안 선정을 베푼 벼슬아치(官吏)들을
표창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청도의 선정비군(善政碑群)이 늘어서 있다.
1675년부터 1904년까지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모두 30기(관찰사 2기,
군수 25기, 찰방 3기)이다.








이 선정비들은 읍성 외곽 서상리, 동천리, 남성현 등 주요 도로변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비석이 있던 주변 도로가 확장되면서
발견된 비석들을 도주관(객사)으로 옮겨 보관해 오다 2008년
청도읍성 동문지 주변으로 이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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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바로 동쪽에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석빙고가 자리하고 있다.
석빙고의 입구 왼쪽에는 석비(石碑)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 · 쓰인 재료 · 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날짜와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그 중에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빙고는 화강석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4.4m,
길이 14.75m, 폭이 5m의 장방형 구조로, 다듬은 돌로 윗부분을
반원형인 홍예(虹霓)로 들어 올리고 잡석으로 벽을 쌓았다.  
현재는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가 4군데
남아 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내부는 계단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경사가 져 있고
                               중앙에는 배수구가 있어 경사를 따라 물이 외부로 배출되도록 하였다.








천정에는 환기구멍이 있었으리라 짐작이 되지만 무너져내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지금까지 전하는 6기(
청도, 경주, 영산, 창녕, 현풍, 안동)의 석빙고 중 청도 석빙고는
경주 석빙고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황해도 해주까지 합하면 총 7개의 석빙고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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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관(道州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석빙고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도주(道州)는 청도의 옛 이름으로 이 건물은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客舍)로 쓰이던 곳이다.
객사는 중앙에 정청(政廳)을 두고 좌우에 동헌, 서헌을 둔 구조로 정청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어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를 하였다.
동 · 서헌은 접객시설로 외국 사신들이나 중앙관리들의 이동시 접대 및 유숙하던 곳이었다.








도주관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으나 노후하여 중종 38년(1543년) 관찰사 임백령이
중창하였고, 주세붕이 쓴 '도주관 중수기문'에 중창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후 정청과 우객사만이 남아 있었으나 2006년 좌객사를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익공(翼工)집이며, 동 · 서헌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정청의 외관은 기둥을 건물 폭에 비하여 높게 세워 좌우 건물보다 높고 험준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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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주관 입구에는 고종 8년(1871년) 병인 · 신미양요를 치른 뒤
                               쇄국의 결의를 다지고 국민들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斥和碑)가 옮겨져 있다. 




                               참고/ 현장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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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 청도석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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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어디선가 날아들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가슴 따뜻한 편지를 갈망하듯 벌어진 큰 입은 다물어질 줄 모른다.








                               하늘을 나는 건 비행기만이 아니다.
                               연 줄을 쥐고 있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올라간다.








모두가 한 가닥의 줄에 매달린 채 바람에 저항한다.
요동치는 몸부림으로...
어쩔 수 없이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자유를 찾아 저 멀리 어디론가 날아 가고 있으리라.








                               언제나 푸르른 젊음일수 만은 없는,
                               그렇게 생기를 잃어가고...
                               또 때가 되면 여기 저기서 불쑥 불쑥
                               땅을 딛고 일어서고...








한때는 농부들의 분주한 손놀림과
가쁜 숨소리가 흘렀을 이 곳,
지금은 무거운 정적만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지탱하고 있는 담장이 힘이 부칠만큼 잘 자랐다.
인간이 아닌 자연이 베풀어 주는
무한한 사랑에 다름 아니다.








그 무게 만큼이나 넉넉한 것이
바로 자연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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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속의 사진 나부랭이 /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저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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