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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시판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예쁜 호수를 가진 사파.

베트남 사파(Sapa)는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350km 떨어진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작은 도시이다.







대략적인 사파 인근의 개념도.







사파는 20세기 초 프랑스에 의해 개발되었다.

남쪽에는 달랏, 북쪽에는 사파를 휴양지로 지정하여 개발한 것이 그 유래이다.

당시에는 Chapa라는 프랑스어로 불리웠지만 이후에는 베트남식으로 SaPa로 명명되었다.

한자 표기로는 沙垻.


계곡을 가로지르며 판시판 산(Phan Xi Păng, Fansipan)으로 오르는 케이블카가 저 멀리 보인다.

해발 1,650m 고산지역이라 한 여름에도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서늘하다.







사파에는 블랙 흐멍, 플라워 흐멍, 레드 자오 족을 비롯한

12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은 대표적으로 라오짜이, 따반, 깟깟 마을이 있다.







사파 노트르담 대성당과 사파역이 모여있는 사파의 중심광장.

운동장으로도, 공연장으로도 특히 주말에는 야시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사파는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고있는 소수민족들이 수제 직물이나

농산물, 임산물 등을 거래하는 곳이며, 소수민족 마을로의 트레킹이나

판시판 산으로 가는 허브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파의 밤.







벽에 걸린 그림이 돋보이는 사파의 어느 음식점.







1930년대 프랑스 식민 시절에 프랑스 풍으로 건축된 사파 노트르담 대성당.







성당 안에서는 의식이 진행중이다.







아직 완전하게 갖춰지지 않은 듯 보이는 쇼핑몰과

판시판 케이블카로 향하는 모노레일을 탈 수 있는 사파역이 함께 입주한 사파 선플라자.







베트남이 1945년 프랑스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호치민이 세웠다는 독립기념탑.







밤이 찾아온 사파 호수.








History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만장(輓章)이 휘날리고 있다.

만장은 고인과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지은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깃발처럼 만든 것이다.







지난 11월, 영남대학교 민속촌에서는 대구시 달성군 설화리의

한국 전통 상여행렬 시연이 있었다.

이날 행사는 경산시가 '순간과 영원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제1회 한국 전통 상례문화 전승 및 세계화를 위한 국제 학술 세미나'의

특별행사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것이다.







                               고인이 살았던 곳을 떠나며 생전에 살던 집과 가족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발인제를 지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상여는 민속예술이자 우리 조상들의 삶이 오롯이 담긴 전통문화이다.







                               장고나 북의 장단에 맞춰 만가(輓歌)를 부르면서 상여는 고인이 안장될 장소를 향해 출발한다.

                               상여소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어주는 소리이자 상두꾼들이 발을 맞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상여소리의 화자는 망자, 유족, 친구도 되고 상여꾼도 된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별의 슬픔과 회한,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당부 등을

                               엮어가는데 그 사설과 선율이 구슬퍼서 비장함을 자아낸다.


                               설화리 상여소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난 120년간 4대에 걸쳐

                               잡소리가 전혀 섞이지 않고 그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상여는 극락정토로 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 즉, 대웅보전이다.

                               반야용선은 부처나 왕만이 탈 수 있는데 이승의 평생 소원인 반야용선을

                               저승길로 가면서 타게되는 것이다.

                               또한 상복은 삼베로 만든 정승복장이다.

                               아마도 정승이 된 자식을 보고 한을 풀고 가라는 의미일 터...







                               설화리 상여소리는 지난 2014년 10월에 열린 제55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대구광역시 대표로 출전해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지를 향해 가는 도중, 상주들이 고인에게 예를 갖춘다.


설화리 상여소리는 전과정이 노전제 지내는 소리, 오르막 올라가는 소리, 

내리막 내려가는 소리, 강다리를 건너는 소리, 오솔길 가는 소리,

장지에 도착해 하관하고 묘를 밟으며 땅을 다지는 소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상여는 원래 소나 말, 또는 사람이 끄는 수레의 형태였으나

주자가례(朱者家禮)를 수용하면서 사람이 어깨에 메는 것으로 바뀌었다.

상여는 가마와 비슷하나 몸체 좌우에 멜채(장강, 長杠)가 있어서

형편에 따라 12인 또는 24인까지 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산소 봉분을 밟으며 땅을 다지는 소리로 대미를 장식한다.

이때 상주를 비롯한 백관, 친지들은 장대에 고인의 노잣돈을 걸어주며

슬픔을 달랜다.







                               혼백을 모시는 요여(腰輿). 

                               영여(靈輿)라고도 하며 상여 앞에 선다.


                               상여에 실린 육체는 장지에 매장되어 집으로 되돌아오지 않지만,

                               영여에 실린 혼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살아있는 가족들과 관계를 유지한다.

                               다시 말해서 죽은 사람은 죽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죽었지만 살아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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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여 소리가 끝난 후 서울대 명예교수인 이애주 선생의

                               넋 살풀이 공연이 이어졌다.







                               춤꾼인 이애주 교수는 1987년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승화시킨 바람맞이춤으로 

                               한국 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후 '민중춤꾼'이라는 별명으로 민중의 넋을 달래는 자리에 

                               함께 해오고 있다.







                               장구와 꽹과리의 장단에 맞춰 공간을 가로지르며

                               역동적으로 휘몰아치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하며, 또 때로는

                               땅 위로 쓰러졌다 일어나기도 하면서 춤사위를 이어나갔다.

                               단순해 보이는 몸짓 하나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것 같은,

                               뭔가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자리였다.







그녀는 한국 민속무용 중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예능보유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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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돌고돌아 또다시 한 해와의 작별을 앞둔 시점으로 왔습니다.

연말을 맞아 이웃님들에게 안부 인사드립니다.

혹시나 지난 시간동안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면 그것이 상처로 남지 않았기를,

못다 이룬 소망이 있었다면 새해에는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보다 더 활기차고 건강해지시기를 바랍니다.


Happy New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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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대학교 내 민속촌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길 오른편으로는 구계서원이, 저 멀리로는 의인정사가 눈에 들어온다. 




                               ▶ 관련 / 2014/04/09 - [History] - 영남대학교 민속촌







까치구멍집.


이 집은 영양 남씨들이 모여 살았던 경북 안동시 도목리에서

1975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경북 북부지역 산간촌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을 한 집으로,

소 마굿간을 비롯한 모든 편의시설을 집안으로 끌어 들이고 있는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공간이 닫혀있음으로 해서 비롯되는 오염된 공기는 지붕 양쪽에

공기 배출구를 만들어 뽑아 내었는데, 이 공기 배출구 모양이

까치집처럼 생겼다고 하여 이 집을 까치구멍집이라고 부른다.







                               우거진 송림 속에 위치한 쌍송정.







이곳을 방문한 지난 2014년 11월, 때마침 제례를 올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영남대 민속촌 내 화산서원에서 봉행된 인동(仁同) 출신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1581~1656)선생의 석채례(釋菜禮) 의식이었다.

석채례란 새로 나는 나물과 생 채소로 스승을 기리는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화산서당은 만회당 장경우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효종 2년(1651)에 세운 건물이다.







예복을 갖춰입고 제례에 임하는 참석자들.







머리에 갓과 유건(儒巾)을 쓴 어르신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화산서당은 원래 칠곡군 석적면에 위치했었으나 이곳으로 이건 ·

복원을 완료하고 2009년 11월 4일 준공을 했다.









History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재현되고 있는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

조선시대 왕궁에는 궁궐의 경비를 관장하고 대전(大殿)을 

호위하는 군대인 금군(禁軍)아래 수문군(守門軍)이라는 군대가 있어 

궁궐문을 개폐 · 경비 · 순찰하는 업무 등을 수행하였다. 







교대의식은 정해진 절차와 신호에 따라 이뤄지며 
부대간 교대시 상호 예의를 갖추어 군례(軍禮)를 행한다.

궁성문을 경비하는 부대와 궁성의 외곽을 경비하는 부대간 교대로,
외곽을 경비하는 부대가 도착하면서 교대식이 시작된다. 

교대식의 신호는 구령 · 깃발 · 악기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며 

크게 세부분으로 나눠지는 단계는 북으로 신호한다.







▶ 군호응대(軍號應對) : 교대군이 도착하면 수문군의 참하(參下)와 

교대군의 참하가 암호를 통한 신분확인 절차를 거친다.

▶ 초엄(初嚴) : 첫 번째 북신호로 북이 여섯 번 울리면 수문군의 

참하가 교대군의 참하에게 열쇠함을 인계한다. 

이때 승정원(承政院)의 주서(主書)와 액정서(掖庭署)의 사약(司鑰)은 

열쇠함 인계를 감독한다.

▶ 중엄(中嚴) : 두 번째 북신호로 북이 세 번 울리면 수문군의 수문장과 

교대군의 수문장이 교대 명령의 진위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다음 

순장패(巡將牌)를 인수 · 인계한다.

▶ 삼엄(三嚴) : 세 번째 북신호로 북이 두 번 울리면 수문군과 교대군이 

마주선 상태로 정렬하며 군례를 행하고 서로의 임무를 교대한다.

▶ 행순(行巡) : 교대한 부대는 궁궐의 외곽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행렬을 실시한다.







경복궁에서 열린 수문장 교대의식. 






                               종사관(從事官)이란 조선시대 각 군영과 
                               포도청에 소속된 종육품의 벼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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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함은 물론,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며 

수호신의 역할도 겸하는 솟대.

나무나 돌 등으로 새의 모양을 만들어 나무 장대나 돌기둥 위에 얹힌 

기원의 대상물로서 마을 입구 등에 세운다.

솟대 위의 새들은 천상계의 신들과 마을의 주민을 연결해 주는 일종의 

전령조(傳令鳥)로 긴 나무와 돌은 그 둘 사이를 연결한다는 의미이다. 







솟대의 끝에는 오리나 기러기 등이 올려지는데 

한 마리의 꿩은 장원급제 혹은 출세를, 학은 문과급제를 의미하며

두 마리의 기러기는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길조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세 마리의 오리는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며 

일부에서는 화재예방의 의미도 포함한다.

그 외 까마귀나 까치는 나쁜 기운의 예방차원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서낭당 · 산신당 · 솟대와 동등한 것으로 취급되어 온 장승. 
                               마을 또는 절 입구에 남녀가 쌍을 이루게 하여 세웠으며, 
                               10리나 5리 간격으로 세워 이정표 구실을 하거나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도록 했다.
                               대게 한 기둥에는 천하대장군, 또 한 기둥에는 지하여장군이라고 새긴다.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다.




                               참고/ 위키백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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