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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나라의 명칭인 비엣남(Việt Nam/ 越南 월남)은 194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베트남 민주공화국 이후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며,

세계에서도 13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은 

공산 시장경제체제를 가진 명목상 공산주의 국가이다.







옛 가옥의 벽면 장식.







박물관의 소장품 중 하나.







베트남 대부분의 가정에는 조상신이나 부엌신 등을 모시는 작은 제단이 있다.







가톨릭이나 불교 등 개인이 믿는 종교 이외에도

집안의 수호신이나 마을의 성황신 등을 추가적으로 숭배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베트남의 행정구역은 63개의 성(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도인 하노이를 포함하여 껀터, 다낭, 하이퐁, 호치민은 성과 같은 급의 직할시이다.







오토바이와 함께하는 베트남의 일상.







다낭의 밤거리.







베트남은 다민족 국가로서 베트남 정부가 공인하는 민족의 수가 54개에 이른다.

최대 민족은 킨족(京族) 또는 비엣족(越族)으로 보통 베트남인 이라고 할 때에는

이 킨족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노동인구의 66% 정도가 농업 등 제1차 산업에 종사하며,

쌀, 후추, 커피의 세계 3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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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육상진흥센터 주변도로에서는 

10km 경보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역주하는 건각들의 거친 숨소리가 

약간은 싸늘한 주변의 공기를 흔들어 놓고,







앞서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성취감에 빠져들었다.







대구육상진흥센터 외관.







대구육상진흥센터 내부.


전세계 생활체육인들의 축제인 

2017대구세계마스터즈실내육상경기대회가

75개국 4,703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3월 19일부터 25일까지 대구육상진흥센터와 시민생활스포츠센터 등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2년마다 개최하는 대회로, 아시아에서는

대구가 처음이라고 한다.







주경기장인 대구육상진흥센터 실내경기장에서는

트랙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참가자격은 35세 이상 남·여 누구나...







참가자들이 자비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국제육상대회로, 그만큼 주최도시의 예산 부담도 적다고...







달리기, 크로스컨트리, 하프마라톤 등 22개 종목에서 진행...


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연맹(WMA)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 의해

1975년 스웨덴에서 조직된 비영리국제기구로,

우리나라는 1977년 가입했다.







환한 표정으로 시상대 위에 선 선수들.







1~3위에게 메달을 수여하며

시상금이 없는 점도 이 대회의 또 다른 특징.













다음 대회는 2년 뒤인 2019년, 폴란드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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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삼덕동 302-5 | 대구육상진흥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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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이다.

어려운 여건일수록, 바람이 세찰수록 더 꼿꼿하게 일어나 펄럭이는 깃발이다.







바닷가에서도,







하늘에서도,







그리고 또 땅 위에서도 예외없이 살아서 펄럭이고 있다.







                               우리의 얼굴, 태극기...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그 속에는 우리라는 강한 연대감과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뜨거운 열정이 살아 숨쉬고 있다.







'나'가 아닌, '우리'이게 하는 힘,

이제껏 우리는 그 깃발 아래에서 서로 뭉치고 단합되어 오늘을 일궈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다.

                               쪼개어지고 갈라져 위태로운 나라... 그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현 주소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사사건건 분열과 대립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먼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내부가 아니라 더 큰 세계라는 것은 분명한 만큼

그 에너지를 이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써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6월 4일 바로 내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비록 지방자치를 위한 선거이기는 하지만, 이번 기회가 새로운 개혁 내지는

개조의 출발점이자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적어도 이 태극기를 앞에 두고 뭔가 가슴 뜨거움과 뭉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 지역사회를 위해, 더 나아가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점만은 확실하게 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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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날 밤, 하노이를 떠나며...






베트남 하노이 시내 중심부로부터 약 45km 떨어져 있는
노이바이(Noi Bai) 국제공항.
규모로만 보면 베트남 내 다른 2개의 국제공항보다 작은 편이라 한다.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모금함,
진지한 표정으로 작은 힘을 보태는 소녀의 손길이
아름답기만 하다.






돌아오는 날, 공항청사 안에는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국기가
나란히 박힌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과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알고보니 그들은 우리나라로 떠나는 베트남의 젊은 근로자들이었다.






                               우리나라는 1993년 외국인산업연수제도를 도입하여, 1994년 5월 말부터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10개국으로 부터 연수생의 입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연수생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내국인 근로자와 동일한 노동법이
                               적용되지만 다수가 근무지를 이탈, 불법체류를 하여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를 하거나 이로 인해 인권유린 문제가 발생하는 등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산업인력공단이 기존 산업연수생 제도의 송출비용 과다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도입하였고, 2007년에는 산업연수생 제도가 고용허가제로 통합되었다. 
                               이후 2011년 2월 말까지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 수는 베트남 등 15개국 27만 8815명에 달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2004년 베트남,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몽골,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5개국과 고용허가제 MOU를 체결한 바 있다.






환한 표정, 혹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이곳 베트남을 나선다.
훗날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줄 중간에 선 여자분과 그 앞의 오빠,
두 남매의 앞길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아마도 지금쯤이면 이들은 타국생활에 제법 적응이 되어있을 것이다.
부디 차별없는 생활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어지기를 바란다.






앞서 떠나간 그들의 뒤를 밟으며 이번 베트남 여행을 마감한다.
언젠가 또 있을지도 모를, 여행자가 되는 그 날을 조심스럽게 기대하며...

그동안 본 포스팅을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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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탈구장에서 열린 2011 아시아시리즈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결승전에서 삼성이 5-3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팀이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집 거실에는 삼성 라이온스 선수들의 사인볼이 놓여 있다.
최형우 (34/외야수), 오승환 (21/투수), 류중일 (75/감독),
양준혁(전 야구선수), 김상수 (7/유격수)... 
모두가 하나같이 자랑스러운 이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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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의 중심에 있는 바딘(Ba Dinh)광장은
1945년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이를 중심으로 국회의사당, 공산당사, 주석궁 등의 
정부 행정기관과 외국공관, 그리고 호치민 영묘를 비롯하여 
호치민 생가와 박물관 등이 위치해 있다.






바딘광장 한쪽에는 짙은 갈색의 대리석으로 된 사각형 모양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이는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이루어낸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호치민의 묘소인 영묘(靈廟)이다.

호치민은 베트남 전쟁 중인 1969년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유언에서 자신을 화장하여 재를 셋으로 나눈 후, 베트남 북 · 중 · 남부에
고루 뿌리고 어떠한 우상화 작업도 하지말라고 일렀으나 그의 추종자들이
국민적 영웅을 한 줌 재로 둘 수 없다 하여 방부처리, 이곳에 안치하고 있다.
호치민 묘소는 21.6m 높이로 3개층으로 나뉘어 있으며, 1973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75년에 완공되었다.
호치민 외에도 이렇게 방부처리한 인물로는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이 있다.






호치민(胡志明, 1890~1969)은 베트남의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정치인으로,
북베트남의 총리와 대통령을 지냈다.
1945년,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을 세웠으며, 초대 대통령으로
베트남의 식민지 해방과 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런 업적을 높이 사 기존 사이공이라는 도시명을 버리고 호치민으로 바꾸었다.
호치민이라는 이름은 '깨우치는 자'라는 뜻으로,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호 아저씨(伯胡)'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바딘광장 주도로를 중심으로 한쪽에는 호치민 영묘가,
                               그 반대쪽으로는 잔디밭으로 이루어진 넓다란 광장이 마주보고 있다.

 





호치민 영묘 맞은편으로 펼쳐진 잔디밭이다.
하나의 크기가 가로 세로 약 5m정도로 바둑판같이 모두
174개가 모여 있는데, 이는 같은 수의 무명용사를 상징한다.






                               잔디밭 건너편으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무명용사탑을 세워 두었다.






호치민 영묘 뒷편에는 호치민 생존 당시의 거소 및 사무실용 목조건물, 
그리고 호치민 박물관 등의 유적지가 있다.
이는 호치민이 1954년 12월부터 1969년 9월까지 
15년동안 거주하고 일하던 과정과 관련된 유적들이다.

위 건물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주석부(主席府)로, 
당시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총독부이자 총독의 관저로 알려져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호치민이 194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해 3개월을 이곳에서 살았으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전기 배관공이 거주하던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외국의 국빈들을 모시는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호치민이 두 번째 살았던 관저.
                               프랑스군이 침략했을 때는 전기공의 집이었으나 1954년부터
                               1958년까지는 그가 이 집을 사용했다.
                               이곳에는 호치민이 호화스럽게 먹을 수 없다고 하여 마련한
                               1식 3찬의 식탁, 그리고 평소 쓰던 책과 시계 등이 놓여있다.






                               부처나무라 부르는 붓목(BUT MOC, 부처나무).
                               나무 주위, 죽순 모양으로 솟아 오른 것은 신기하게도 이 나무의 뿌리이다.
                               그 모양이 남근 모양이었다가 점점 자라면서 스님형상을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나무 아랫부분의 하얀색은 벌레들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발라 놓은 고무나무의 수액이다.






호치민 생가를 끼고 있는 연못.
오른쪽 건물은 그가 1958년 5월부터 1969년 8월까지
살았던 나산(Nha San)이다.
그러나 이 집들은 대통령이 머물렀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소박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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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베트남 | 하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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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중국과 같은 공산 시장경제체제를 가진
                               명목상의 공산주의 국가이다.
                               북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해 있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중국해에 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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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국기는 금성홍기(金星紅旗)라고도 하며, 베트남 독립운동 당시에는
붉은색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 노란색은 베트남의 인종(황인종),
별의 오각은 각각 사농공상병(士農工商兵)의 다섯 인민을 나타낸다고 되어 있으나,
통일 이후에는 별은 베트남 공산당의 리더쉽을, 붉은색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뜻이 바뀌었다.






베트남의 공용어는 베트남어이고 프랑스어 · 영어 · 중국어 · 크메르어도 사용된다.
베트남어는 영어와 조금 다른데, 영어에는 있고 베트남어에는 없는 글자는 F, J, W, Z 이며,
영어에는 없고 베트남어에는 있는 글자는  Ă, Â , Đ, Ê, Ô, Ơ, Ư 이다.
그 외에 베트남어 발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성조의 표시로 '  ` ? ~ . 의 다섯가지가 있는데,
이 성조에 따라 단어자체의 의미가 달라진다.






베트남의 공식 이름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으로,
베트남어로 'Việt Nam', 즉 월남(越南)으로도 부르는데, 
이는 오늘날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했던 옛 베트남 왕조인 
'Nam Việt'(남월, 南越)의 명칭을 거꾸로 쓴 것이다.

베트남은 프랑스의 지배 아래에 있다가 1945년 북부에는 호치민(胡志明)이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수립하고, 1949년에 남부에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베트남 공화국이 성립되어 서로 전쟁을 벌이다가 1976년에
베트남 공화국이 패망하면서 통일이 되었다.






도로마다 많은 수의 오토바이가 떼를 지어 경주를 하듯 내달린다.
오토바이의 물결은 역동적인 도시 하노이의 또 다른 볼거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공식적인 외교관계는 1956년 월남과 수교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65년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면서 월남은 우리나라의 4대 교역상대국으로까지
비중이 높아졌고, 공산화로 대사관을 철수하기 전까지 꾸준한 교역증가가 이루어졌다.
이후 1993년 양국간에 다시 수교가 이루어졌다.

특히 베트남전 때에는 우리나라의 많은 비즈니스맨들과 노무자들이 베트남에서
삶을 꾸렸는데, 그 영향으로 아직도 이곳에는 한국인 남편과 아버지를 기다리는
'라이 따이한'이라 불리우는 2세들이 남아 있다. 






                               하노이 등 도시의 집들은 대체로 입구는 좁고 뒷쪽으로 기다란 구조를 하고 있다.
                               이는 베트남 정부에서 도로에 접한면을 가구당 4m만 허용해 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반면 길이(보통 7~10m)는 17m까지 길게 지을 수 있으며,
                               층수(보통 3~5층) 역시 제한이 없다고 한다.

                               또한 집 옆 벽면에는 창이 없고 페인트칠 역시 하지 않는데,
                               이는 그 집 옆으로 다른 집이 들어설 것을 미리 대비한 것이라 한다.
                               안개와 강우가 잦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대게 1층은 주차공간 및
                               창고와 같은 용도로 쓴다.






                               베트남 요리는 쌀과 국수가 주를 이루며 신선한 채소와 
                               허브를 깊은 맛을 내는 향신료와 함께 내어 온다.
                               특히 '퍼' 또는 '포(pho)'라고 부르는 베트남의 쌀국수는 주로 아침에
                               먹는데, 이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식 수프를 베트남식과
                               접합하는 방식으로 하노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베트남은 전국토의 약 1/5이 경작지이다.
                               따라서 베트남 총노동력의 약 3/4이 농업부문에 종사한다.
                               경작지의 대부분이 벼농사에 이용되며 많은 지역에서 2모작이 이루어진다.
                               쌀 이외에 고구마 · 땅콩 · 수수 · 옥수수 등이 주요 농작물이다.






                               베트남의 인구는 2009년의 추계로 88,577,000여명이다.
                               베트남은 다민족 국가로서 54개의 민족이 있는데, 
                               그 중 최대민족은 베트남 전체의 86.2%를 차지하는 비엣족(京族,
                               혹은 越族)으로 보통 베트남인이라고 할때 이 비엣족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사상은 유교철학의 비중이 크며, 주요 종교는 불교와 도교이다.

                               베트남의 정규교육은 초등학교 5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으로 우리나라와 유사하며, 중학교육까지는
                               정부가 무상으로 교육을 제공한다.






                               원뿔형의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모자인 '논(Nonh)'은 '농 라(non la,
                               농은 모자, 라는 나뭇잎을 의미)로도 불리는데, 비가 올 때는 우산으로,
                               햇볕이 내려 쬐일 때는 양산으로, 더울 때는 부채로도 쓰인다.
                               가잉(Ghang)은 물지게처럼 생긴 도구로 양쪽의 소쿠리에 물건을 담는다.
                               어깨에 걸치는 가잉의 폭은 약 5cm정도 된다.
                               베트남의 민속 의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여성들이 입는 '아오자이'이다. 
                               '아오'는 옷, '자이'는 길다는 뜻으로, 현재에는 명절이나 결혼 등의 행사,
                               또는 일상 의상 등으로 입는다.



                               참고/ 다음백과사전, 위키백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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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7일, 참가국 202개국의 국기를 든 기수단이 입장한 가운데 
세계인의 축제,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막이 올랐다.








특히 전광판 속,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마라톤의 영웅 고 손기정 선수의 역주하는 장면은 
예전에 TV에서 보던 느낌과는 달리 마치 그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듯
뭉클한 감동이 전해져 왔다.








경기장 동편에는 기업 홍보관이 들어섰다.
도요타관에는 하이브리드 차량이, 삼성은 자사 IT제품들을
전시하는 등 대부분 경기와 연계하여 자사의 상품을 홍보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공식 후원사는 TOYOTA(자동차) · 삼성전자(IT) · 
POSCO(철강) · SEICO(시계) · TDK(전자부품) · adidas(스포츠용품) · 
SINOPEC(에너지) · VTB(은행) 등 총 8곳이며, 대구에서 열리는 올해
대회만을 후원한 국내 후원사는 대한항공 · KT · STX · 금복주 등 4곳이다.

공식후원사는 국제육상연맹이, 국내 후원사는 각 대회 준비위측이 선정하며,
공식후원사의 경우 업체를 한번 선정하고 나면 선정업체가 자리를 
내어놓기 전까지는 동종업체가 추가로 선정될 수 없다고 한다.








홍보관 벽면은 응원문구가 들어간 스티커로 가득 채워졌고...

이미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의 기록 갱신을 위해 트랙을
몬도트랙으로 교체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저조했다.
물론 단거리의 경우 강화된 부정출발의 규정과 경쟁자들의 불참으로 
경쟁구도가 형성되지 않았고, 장거리 선수들에게는 늦더위가 변수로 
작용했다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아쉬움이 너무나 컸다.

결국 세계신기록이 없는 역대 4번째 대회로 기록될 것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마지막날, 그것도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세계신기록이 작성되어 
겨우 그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역대 3번째 노메달 개최국이라는 사실만은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 대구스타디움을 찾았다.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서
가히 세계인의 축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만큼은 냉정할 정도로 치열했다.
국기로 온몸을 감싼 이들의 모습에서 자국의 선전을 염원하는
마음이 온몸에서 우러난다.








스타디움 한켠에서는 또 다른 외국인이 뭔가에 몰두해 있다.
영국에서 오셨다는 이 분은 조그마한 스케치북에다 워터칼라펜으로 
대구스타디움의 모습을 열심히 옮기고 있는 중이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친절하게도 스케치북을 한장한장 들춰보여 주었다.
그 속에는 서울의 고궁을 비롯하여 수원의 화성 등 그가 방문했던 
지역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겨져 있었다.
물론, 아름다운 꽃들과 영국의 고건축물 등도 찾아 볼 수 있었다.








경기장에 들어가봐야 한다며 서둘러 마무리한 작품이다. 
세밀하지는 않지만, 들어가야 할 특징은 그대로 다 들어가 있다.
그러면서도 이 그림속에는 사진과는 또 다른 
따뜻한 시선과 체취가 함께 묻어난다.
분명, 이 스케치북은 훗날 이 자리를 새롭게
추억하게 될 소중한 마음의 재산으로 남을 것이다. 








스타들의 잇단 부진으로 이변이 많았고, 세계기록 또한
흉작을 면치 못했던 이번 대회...
그러나 비인기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역대 최다를
기록할 정도로 많이 찾아와 관심을 보여주었다.
초 · 중학생을 동원했다는 일부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202개국 1,945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규모와 관중 수에
있어서는 역대 최대, 최다를 기록한 것이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모양새다.








여자 높이뛰기 경기의 시상식 장면.

이번 대회는 미국이 금메달 12개, 은메달 8개, 동메달 5개로
5회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전체 47개의 금메달 중 전체의 반이 넘는 28개를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케냐가 나누어 가진 것이다.
이는 경기력이 특정국가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당초 우리나라는 '10-10(10명의 선수가 10위권 내 입상) 프로젝트를
내세웠으나, 유일하게 멀리뛰기 종목의 김덕현만이 결선에 진출,
오히려 세계의 높은 벽을 확인하기만 헀다.
한국기록을 세워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라니
우리나라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안방에서 남의 잔치를
해 준 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죽했으면 메스컴에서 '참담', '처참'이라는 표현을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위안을 삼자면 그나마 한국 신기록 4개를
기록한 것이라 해야할까.
우리 육상인들에 대한 관심과 제도의 밑받침이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반면 같은 아시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메달로써 체면치례는 했다.








어찌되었건 이제 9일간의 열전은 막을 내렸다.
다음 제14회 대회는 2년 뒤인 2013년 모스크바에서 열리게 된다.

대회를 마친 후 대체적인 평가는 조직위원회의 경기운영의 경우 미숙했다는
측과 그런 미숙함은 다른 어느 대회에도 있었다는 측으로 의견이 갈라진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의 열정과 시민의식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일치한다.
물론, 불편한 교통과 지름길을 두고 우회하는 택시의 바가지 요금, 그리고 
선수촌의 음식 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없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성공적인 대회로 요약되는 분위기다.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8년 동계올림픽 등 큰 대회를 앞두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들 대회 관계자들은 대구선수권대회를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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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고산1동 | 대구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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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속의 사진 나부랭이 /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저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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