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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 가는 길.







1965년 개관된 이후로 5번의 확장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유물만 약 70만여점에 이른다고 한다.

보통 그 중에 6천여 점의 유물만 전시된다고...







송, 원, 명, 청 대의 국보급 유물들로 중국 본토보다

더 알찬 유물들로 채워진 고궁박물원.

중국의 웬만한 보물은 여기에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의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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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中正)기념관에서 바라본 자유광장(自由廣場) 방향.

양 옆으로는 국립희극원과 국립음악청이 있다.

중정은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본명...







대리석으로 지어진 중정기념관의 외관.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이었던 장제스를 기념해 1976년에 기공,

1980년에 완공되었다.

2층으로 구성되었지만 높이는 70m나 된다.

계단은 장제스 총통의 나이와 같은 84계단... 







재현해 놓은 장제스 총통의 집무실.







전시실에는 그의 유품과 업적을 사진과 기념품 등으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물 중에는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수여한 대한민국 1등 

건국공로훈장도 포함되어 있다.







기념관 내의 장개석 총통 동상. 

높이 6.3m에 무게는 25t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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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5일 문을 연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칠곡보 생태공원 뒤편 232,020㎡ 부지에 연면적 9,483㎡,

지하 2층, 지상 4층의 규모로 지어졌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의 로비.


                               전체적인 구성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방어선

                               전투를 재조명한 호국전시관과 전투체험관, 어린이평화체험관, 4D입체영화관,

                               다목적용 컨벤션센터와 전망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국의 다리' 모형.


한국전쟁 당시 왜관이 적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면 대구와 부산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1950년 8월 1일,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교두보 전선을 구축하고

격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적의 도하를 방지하기 위해 8월 4일 새벽, 낙동강 방어선의

교량들은 유엔군에 의해 왜관 인도교와 함께 폭파되었다.

이후, 1993년 다리가 복구되면서 '호국의 다리'로 불리고 있다.







기념관 곳곳에 체험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다부동지구 전투일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1차~3차 결의문(전쟁기념관 소장품 복제).


제1차 결의문 : 유엔은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의 무력침공이 평화를

파괴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즉각 38도선 이북으로 북한군을

철수시킬 것을 권고하였다.


제2차 결의문 : 대한민국을 지원하고 북한의 무력침공을 격퇴하여

국제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유엔 회원국들이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


제3차 결의문 : 유엔군사령부의 설치에 대한 문서로서 유엔 회원국의

지원 병력과 기타 지원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유엔군사령부가 이용할 수 있도록 결의하였다.







M1칼빈 소총과 수류탄, 실탄 등 당시에 사용되었던 각종 무기류들도 

전시되어 있다.







                               학생의 신분으로서 계급도 군번도 없이 참전, 조국수호에 앞장섰던 

                               학도의용군의 복장.







                               철모(석적읍 유학산 출토)와 인식표.







                               전장의 이미지를 형상화 한 설치물.




 



4층 전망대에서는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을 굽어볼 수 있다.

왼쪽으로는 칠곡보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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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구지(舊址).

                               늦은 밤인데다가 내부 수리중이라 외관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상하이는 교통이 편리하고 쑨원이 이끄는 광동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또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의 조계(租界)가 있어서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도 갖추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독립지사들은 상하이로 몰려 들었고, 가장 우호적인 프랑스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 조계에 살면서 활동한 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수립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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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훙커우 공원(虹口公园)으로 불렸던 루쉰공원(鲁迅公园)의 입구. 







우리에게는 역사적인 현장이지만, 이곳 현지인들에게는  

휴식과 재충전의 장소에 다름 아니었다.


루쉰공원은 청조 1896년에 상하이 공동조계 관청이 있었고,  

조계의 밖에 있던 농지를 취득하여 조성되었다.

당초에 훙커우 오락장이라 불렸고, 영국 원예가에 의해

설계되었기 때문에 서양식 정원 양식을 가지고 있다.

1922년에 훙커우 공원으로 개칭되었으며, 1937년에는 중일전쟁으로 

일본군에 의해 공원 내의 건물들은 파괴되었으며, 1942년에는

일본군의 군사용지로 사용되었다.

일본이 패망하고 철수한 1945년에는 장제스에 의해 중정공원으로

개칭되었지만, 1950년 다시 옛 이름을 찾아 훙커우공원이라 불렸다.

이후 루쉰 선생의 75주년을 기념하면서 1956년 루쉰의 묘를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1988년에 루쉰공원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 루쉰(1881~1936)은 중국 저장성 출신으로 소설가였으며 인민

사상가로도 유명한데, 루쉰은 필명으로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이다.

대표작으로는 아큐정전(阿Q正傳)과 광인일기(狂人日記) 등이 있다.







윤봉길 의거의 현장 표식.

그러나 실제로는 이곳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이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國務領, 총리)인 김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훙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天長節)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 행사를 폭탄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고,

협의 끝에 윤봉길이 도시락과 물병으로 꾸며진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를 수행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윤봉길의사의 기념관인 매정(梅亭).

윤봉길 의사의 호인 매헌(梅軒)과 정자의 정을 딴 이름으로.

약 20여 평의 정자형태 2층 목조건축물이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방중을 맞이하여 루쉰공원 내에 정자 매정을 건립,

2003년 12월에 매헌기념관을 개관하였으나 루쉰공원 전체 개보수 공사에 따라

2013년 9월부터 휴관, 제83주년 윤봉길의사 의거일에 맞춰 

2015년 재개관을 하게 되었다.







윤봉길 의사의 전언과 출생 및 국내활동, 그리고 조국 광복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 옥외 전시장.







기념관 1층.

추모 흉상을 비롯해 의거의 성과 및 영향, 조국의 광복 등에 대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2층은 영상물 상영 및 교육장소로 활용되어지고 있다.







윤의사가 의거에 사용한 물통형 폭탄(복제품).


이 사건은 장제스 총통이 '우리 중국 사람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한 명의

조선 청년이 했다'고 감탄할 만큼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사건이 되었지만, 이로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 인근으로 피신을 하게 되었으며, 1945년 조선이 해방될 때까지

중국 남부지역을 떠도는 계기가 되었다.







의거 당일 아침 한인애국단장 김구의 시계와 맞바꾼 윤의사의 시계(복제품).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위해 출발하기 전 김구 선생에게 "저는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라며 김구 선생의 시계와 맞바꾸었다고 한다.


의거로 인해 총사령관 사라카와와 상하이 일본 거주민 대표였던 

가와바타 등이 죽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중국 주재 일본 영사 시게미쓰 마모루 등이 중상을 입었다.







                               윤의사가 일본 가나자와에서 순국할 때 묶였던 형틀(복제품).







                               공원 내에서 병에 채운 물을 먹물삼아 땅바닥에 글을 써내려가는 어르신.

                               방문객이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쓴 글이다.







                               참조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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