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관문인 거용관 장성이다. 팔달령 만리장성과 더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북경에서 북서쪽으로 약 6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왼쪽 건물은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關)'이라는 문루이며, 그 우측에는
화포로 중무장할 수 있는 이층 벽돌건물의 돈대가 세워져 있다.
생각보다는 꽤 큰 규모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이자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우기도 하는
만리장성은 그 시원을 보통 진나라 시황제 때로 잡지만, 그보다 훨씬전인
춘추시대(BC770~BC443)때 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들어서면서 북쪽 흉노족의 침입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들 성벽을 연결, 증축한 것이다.
이후 당, 송, 원나라를 거치며 보수를 계속하였으며, 명나라때 대대적인
개축이 있었다 한다.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장성을 오르면서 내려다 본 문루와 망루.
북경으로 들어가는 천하의 요새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 거용관이 처음 축조된 것은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때였다.
당시에는 거용새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그후 1368년 명나라 시조인 주원장이 원나라가 침입할 것을 대비해 보수 및 증축을 했다.
명대 이전 베이징의 최종 방어선이었기 때문에 이 부근의 장성은
몇 겹의 복잡한 축조가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서 거용관은 가장 안쪽에 위치한다.
두 번째 돈대까지는 넓은 길이지만, 그 위로 부터는 비좁은 계단길이라
정체가 빚어진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장성의 길이는 2,700km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길이가 약 6,400km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의 만리장성은 중국 동쪽 보하이만의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시작하여
서쪽 타클라마칸사막의 자위관(嘉峪關)에서 끝이난다.
발 아래로 성벽이 길게 뻗어있다.
저 아래쪽 강물을 가로질러 돈대가 세워지고, 맞은편 산을 타고 계속 이어진다 .
만리장성은 모두가 똑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쪽 보다는 동쪽이 더 견고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성벽은 평균높이 7.8m, 평균폭은 윗부분이 5.8m, 밑부분이 6.5m로,
이는 성벽 위로 말 5~6마리, 또는 병사 10여명이 나란히 갈 수 있는 너비이다.
그 위에 100여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아래쪽 건물은 황제가 이곳으로 행차했을 때 거처할
행궁과 사당, 그리고 주둔군을 위한 시설들로 보인다.
사랑의 자물쇠... 이곳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켠에는 옛 병기들을 복원하여 전시해 두기도 했다.
길게 늘어선 깃발은 바람에 휘날리고...
2009년 4월,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을 산해관장성에서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후산(虎山)장성'으로 수정하여 발표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의 총 길이는 8851.8km라고 주장했다.
2008년까지는 베이징 인근의 산해관이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여겨졌지만,
2008년 12월 국가 조사팀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던 후산장성을
발견하면서부터 동단을 이곳으로 수정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고학계는 후산장성이 고구려인들이 쌓은 고구려성으로
판단하고 있어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30만명의 군사를 비롯하여 수 백만 명의 백성과 죄수를 동원해 건설되었고,
그 중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인원이 희생되기도 하여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혹평까지 듣기도 하는 만리장성...
그 곳과 관련하여 생겨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 뒤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숨어있다고 한다.
옛날 진시황이 만리장성의 대역사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신혼생활에 빠져있던 어느 남녀가 한달여만에 남편이 부역장에 징용을 당하고 만다.
일단 징용이 되면 그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그 젊은 부부는 생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름다운 부인은 아이도 없는 터...
어느날, 혼자 살고 있는 그 외딴집에 나그네가 찾아들었다.
남편의 나이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한 명이 날도 저물고 갈길도 멀어 하룻밤 재워 주기를 간청한다.
끈질긴 요청에 결국 거절 할 수가 없어 방 한칸을 내어주게 되고, 혼자사는 연유를 물어오자
남편이 만리장성으로 부역을 가게 된 사정을 이야기 한다.
밤이 깊어지자 아니나 다를까 나그네는 남편도 돌아오지 못하는데 이렇게 혼자 살다 죽으면
너무 허무하지 않겠느냐고 추근대기 시작하고...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에 여인은 꾀를 내어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 들이겠다고 하고
그대신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남편과는 결혼식을 올렸고 잠시라도 함께 산 부부간의 의리가 있으니, 단지 부역장에 가서
언제 올지도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신을 그냥 따라나설 수는 없는 법,
그러니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벌 싸 드릴테니 날이 밝는대로 제 남편을 찾아가서
갈아 입을 수 있도록 전해 주시고, 그 증표로 글 한 장만 받아주십시오.
어차피 살아서 만나기 힘든 남편에게 수의라도 마련해 주는 기분으로 옷이라도 한벌
지어 입히고 나면 당신을 따라 나선다 해도 마음이 무겁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사내놈... 그거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지라, 흔쾌히 그렇게 하겠노라 하고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사내는 여인이 준 옷 한벌이 든 보자기를 가지고 길을 떠났고,
부역장에 도착하여 감독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면회를 신청했다.
그러나 옷을 갈아 입으려면 공사장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한 사람이 작업장을 나오면
그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꾸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잠시 교대를 하기로 했다.
보따리를 전해 받은 남편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보자기를 펼쳤는데 그 속에서 편지가 떨어졌다.
'당신의 아내 해옥입니다. 당신을 공사장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한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간 남자와의 일을 두고 평생 허물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시면
이 옷을 갈아입는 즉시 제가 있는 집으로 돌아 오시고, 혹시라도 그렇지 아니하다 하시면
그 남자와 교대해서 공사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십시오'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남편은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갔고, 이후 아들 딸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글쎄말입니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아무런 희생없이 이런 결과물이 생겼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 그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었던 '인해전술'이라는 것이 생각나는군요.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로서는 여전히 경계해야 될 대상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