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1985년 5월, 대구지역의 어느 대학교 정문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정문 안쪽에는 학생들이,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페퍼포그차를 동원한 전투경찰이 길을 막고 있었다.







한동안의 팽팽한 대치 끝에 전경들은 교문 앞까지 밀고 들어오고,







학생들은 이에 맞서 장애물로 방어벽을 쳤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투석전이 전개되기에 이르고...







이에 또다시 전투경찰들은 최루탄으로 맞대응을 하는 상황이 

반복되곤 하던 그 때...



관련 / 2014/07/02 - [History] - 80년대 학원민주화운동







                               1984년 12월의 또 다른 시위.

                               아마 한시택시의 시한 연장을 요구하는 시위로 보인다.

                               한시(限時)택시 제도는 1979년 정부가 택시 직영화 특별보완조치를

                               시행하면서 모든 지입 차주에게 노후차 대체 1회(5년)에 한해 한시택시

                               면허를 주면서 생겨났다.

                               그러나 변칙적인 경영방식과 영세성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가 야기됨에 따라

                               한시택시는 1987년 없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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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 지난 몇 십년 동안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던 기록사진 몇 장을

  들추어 깨워본다. (사진 속 배경은 지방의 모 대학)







1980년대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풍경...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전투경찰의 모습이다.

전투경찰은 1971년 대간첩작전과 치안 유지를 위해 창설되었으며

지난 2013년 9월 25일, 42년만에 폐지되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대표적인 것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1980년)과

6월 민주항쟁(1987년)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의 전국 계엄 확대에 반발하여 

광주에서 시민군이 조직되어 저항한 것이고 6월 민주항쟁은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부천경찰서 성 고문 사건, 4·13 호헌 조치 등에 반발하여 일어난 것으로 

6·29 민주화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게 된다.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질 소위 '자유의 벽' 설치에 따른 고사.


1983년 12월 단행된 학원자율화조치(學園自律化措置)로 학원내 경찰병력이 철수하고 

제적생이 복학을 하게 됨으로 학생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총학생회 공식인정, 학도호국단 해체, 언론기본법 폐지, 해직근로자 복직, 집시법 폐지 등과 함께

전두환 정권 타도 및 학내민주화와 사회민주화를 내걸고 활발한 투쟁을 전개했다.  







총학생회 부활에 대한 복학생들의 견해를 담은 대자보(大字報).


역사가 오래된 총학생회는 보통 4·19를 전후로 결성되었다.

유신이후 학도호국단이 등장하면서 학생회는 해체되고 

학교측이 임명한 호국단 간부가 자치기구의 활동을 대행했다.

반공교육과 함께 교련을 실시하던 학도호국단이 오랜 세월동안 총학을 대체한 것이다.







전투경찰과 대치중인 시위대.


이후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총학생회가 부활이 되었지만 1979년 10·26사태 이후 

1980년 5·17 이전까지 이른바 '서울의 봄'과 함께 명맥이 끊겼다.

하지만 1984년 고려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서 교육부와 대학측의 

불허방침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가 부활되었다.

80년대가 되어서야 총학이 학생자치기구로 다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사물놀이패를 앞세우고 학내를 돌며 시위하는 모습.







그 속에는 문익환 목사도 있었다.


문익환(1918~1994)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이며 통일·사회운동가이며 참여시인이었다.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호는 '늦봄'이다.

1985년 서울대 · 계명대 등에서 한 강의에 선동죄로 지명수배되어 자진출두,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재판을 거부, 1심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네번째 옥중생활을 하는 등 1993년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총 6회에 걸쳐 투옥되었다. 







이러한 시위 뒤에는 으레 뒷풀이로 경찰과의 투석전이 전개되기도 했다.







시위대에게 돌맹이와 화염병 등이 있었다면, 시위 진압을 하는 전투경찰에게는

시위 진압을 위한 최루탄 발사용 장갑승합차인 페퍼포그차가 있었다. 

일명 '까스차'로 불린 것이 바로 그것이다.

차량 앞부분 그릴 부위에는 연무로 분사하는 최루분사기가 있으며,

지붕 부위에서는 최루액을 뿜어내는 소위 '지랄탄'을 쏘게 되어있다.


1987년 당시에는 시위진압용 가스차(페퍼포그차)를 통해 발사하는 일명 지랄탄 외에도 

총으로 쏘는 직격탄, 수류탄처럼 던져서 살포하는 일명 사과탄도 있었다.







최루탄이 터지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하게 달아나고 있다.


최루탄(催淚彈)은 말 그대로 눈물과 함께 기침과 호흡곤란, 그리고 피부에 대해 자극을 주며, 

시위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다가 1998년 5월 1일 최루탄 사용금지를 밝히면서 

시위진압 현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참고/ 위키백과 등





|작성자 빤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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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
  • 2014.07.03 09:3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spk 2014.07.03 16:55 신고  

      동시대,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시는 ***님이 모르실리가 있나요.
      예, 바로 그곳입니다.
      저 역시 성서와 두 살림을 하던 때였지요.^^;;

      현실사회를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도 하고, 참 기가차지도 않네요.
      그저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게 부끄럽기만 합니다.
      생각같아서는 그냥 싸그리...;;;

  • BlogIcon 드래곤포토 2014.07.03 12:21 신고    

    80년대 데모는 주로 대학생들의 데모로
    전두환정권에 대한 투쟁이었지요.
    지금은 대학생들의 순수한 목적의 데모는 업어지고
    진보, 보수로 나뉜 꾼들의 데모들이 많아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BlogIcon spk 2014.07.03 17:04 신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은 좌우로 나눠 패싸움을 하는 꼴과
      다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동네 패싸움같이 유치하게 말이죠.
      대의적인 시각으로 보면 별 것 아닌데도 사사건건 대립만 거듭하다보니
      그걸 바라보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저 답답할 밖에요.
      진정 의식개조가 절실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 BlogIcon 복돌이^^ 2014.07.04 10:39 신고    

    그러고 보니 저도 대학다닐때 참 많이도 데모하고
    학교에는 늘 뻘건 플랭카드가 펄럭이던 기억이 나네요..
    비장한 각오로 시위에 참여하던 동기들도 생각나구요^^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지네요
    다녀갑니다.행복한 하루 되세요

    • BlogIcon spk 2014.07.04 15:49 신고  

      다 나름의 명분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겠지만 집단적인 행동은 자제를 해야겠지요.^^;;
      그 때에 비하면 요즘은 지나칠 정도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각종 SNS등이 출현함으로써 의사표현의 방법도 많이 다양해지기도 했지요.
      어쨌거나 하루빨리 갈등이 없는 세상이 와야할텐데 말이죠.;;

  • BlogIcon 라오니스 2014.07.11 12:44 신고    

    저는 이런 민주화운동에 직접 참여한 세대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열매를 따먹기 시작한 세대라고 할 수 있지요 ..
    우리가 이런 민주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이 때 앞장서서 나아간 선배들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배우고 느끼게 됩니다..

    • BlogIcon spk 2014.07.11 15:02 신고  

      물론, 민주화 세대는 아니시지요...ㅎㅎ
      바라건데 그 열매가 독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화든 자유든.. 당시에 비해 지금은 더 이상 누릴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신장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런 자유 뒤에는 책임감이 동반한다는 사실도 늘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종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자유는 공기같은 것...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누려야겠습니다.^^

Landscape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맑고 청정한 자연을 뒤로한 채,
굳이 흐리고 혼탁한 도시를 찾아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보다 편리한 삶과 환경, 그리고 넓은 활동무대를 꿈꾸며 

그들이 만든 감옥과도 같은 빌딩숲에 갇혀 스스로  

애써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 
가끔씩은 탈출을 꿈꿔 보기도 하지만, 







이내 복잡한 갈등과 분쟁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이란 삐에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스스로 펼쳐 나갈 능력을 갖춘 동물이기에

이 세상은 복잡하고도 다양해질 수 밖에 없을 터...







그리고 각기 다른 그 성취를 목표삼아 끊임없이 달려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동물이기에 어쩌면 화합보다는 갈등이 더 많은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100% 만족이란 있을 수 있을까.

행복을 위한 삶의 조건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시시각각 일어나는 마음이 다 다르듯 그 조건 또한 다 다를 것이다.

삶의 조건이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일 뿐, 그 상황을 수준과 정도의 

차이로만 본다면 지나친 낙관일까. 







어찌되었든 공존이란 바로 이 세상이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일 것이기에 사회 구성원에 대한 관심은 물론, 

기본적인 삶의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는 

반드시 마련되고 이행되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설사 살아가려는 그 모든 노력들이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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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드래곤포토 2013.02.06 23:04 신고    

    멋진 사진과 의미있는 글 즐감하고 갑니다. ^^

    • BlogIcon spk 2013.02.07 17:07 신고  

      감사합니다. 행복한 설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 2013.02.07 09:08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spk 2013.02.07 17:27 신고  

      직접 그런 상황이 되어보지 않으면 그 심정을 헤아리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사람을 떠나 보낸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인연의 끈이 어떻게 얽혀있는가에 따라서
      감정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기에, 무조건 슬프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분명, 언젠가는 한 번은 꼭 있어야 될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타깝게 생각되는 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시간의 아쉬움이 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슬픔도 시간이 해결해 주기는 할겁니다만...

      감사합니다. 행복함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즐거운 설 명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2013.02.11 10:15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spk 2013.02.21 20:46 신고  

      인간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수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가지만 특히 어릴적 친구는
      유난히 더 살갑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냥 생각해 보기로는 특별히 서로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오랜 시간동안 볼 수 없었던 친구였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추억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BlogIcon 복돌이 2013.02.20 12:47    

    아...슬픔이 있으셨을듯 하네요....
    이번글의 고민이 왜 였을까 하며 읽었는데....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 BlogIcon spk 2013.02.21 20:52 신고  

      감사합니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사람으로서, 그것도 오랜 친구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커다란 아픔이자 안타까움이었습니다.
      특히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떠나보냈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더 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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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속의 사진 나부랭이 /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저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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