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워낙 지식이 박해서... 그래서 잠시 검색해 봤는데요,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노장사상 자체가 종교로서의 도교가 아닌
철학적 의미에서의 '도가 사상'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도교와 (유가와 함께 중국 철학의 두 주류를 이루었던) 도가사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도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이므로 근본적으로는
도가사상과 뚜렷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그리고 도가사상은 도교가 흡수, 조절한 주요한 사상의 하나이지,
본래부터 도교가 곧 도가사상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뭐 이런 얘기를 하네요.
종합해 보면 도교는 사상,철학이 아니라 그냥 종교일뿐... 이렇게 되나요.;;
어쨌든 일부 사전에 기술되어 있듯 도교는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거기에
노장사상과 유교, 불교 그리고 통속적인 여러 신앙들을 받아들여 형성된
중국 토착의 민족종교이자 철학사상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그래서 받드는 신들도 아주 다양했나 보죠.^^;;
홍콩 영화들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그냥 사원이라고 하면
홍콩과는 많이 동떨어진 소림사만 떠오르네요.ㅎㅎ
어쨌든 저는 액션영화 중에서도 무협, 무술영화가 더 많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 절에도 이런 정원들이 많았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그냥 수련하는 공간에 무게를 두어서인지...^^;;
사실 홍콩하면 ..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마천루만 생각했는데 ..
도심속의 이런 사원이 있다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도교사원이라는 것이 낯설면서 궁금해지는군요 .. ㅎㅎ
저도 하나의 신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ㅋㅋ
하느님, 부처님 등등 .. 힘든일 생기면 모든 신에게 기도를 한다는 ..
사람마음은 다 같지 않을까요? 아닌가요? ^^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 비싼 땅에다가 사원을 짓다니 말입니다.ㅎㅎ
물론 상대적으로 종교 자체가 대중적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도 그리 오래전이지도 않은 우리네 옛날시절에
조상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아기를 낳고 보호하는 삼신, 부엌의 조왕신 등을 믿던
그 민간신앙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기도를 하는 마음은 다 똑같겠지만 하느님, 부처님을 찾는 것 보다는
조상을 찾고 삼신할매를 찾던 그 시절이 어쩌면 더 순수하고 간절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자금성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추선상에는 남쪽으로 부터 태화문(太和門),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 건청문(乾淸門),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곤영궁(坤寧宮), 곤영문(坤寧門),
천일문(天一門), 흠안전(欽安殿), 승광전(承光殿), 순정문(順貞門),
신무문(神武門) 등 주요한 궁전과 궁문이 나란히 세워지고,
그 가운데 오문과 신무문은 자금성의 남북 성문을 이루고 있다.
또한 자금성의 동서 양측에도 동화문(東華門), 서화문(西華門)이 있다.
자금성(쯔진청, 紫禁城)의 정문은 천안문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정문은 높이 38m, 벽의 두께가 무려 36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문이라는 오문(午門)이다.
중국에서는 옛날에 북(北)을 자(子), 남(南)을 오(午)라고 했는데,
오문은 자금성의 중심축 남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금성은...
1406년 명나라가 중경에서 천도하여 건설하기 시작하여 14년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남북 990m, 동서 760m의 사각형이며 넓이는 72만㎡ 로 명나라 3대 황제때 부터
거처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총 9,999개의 방이 있는데, 옥황상제가 1만칸의 방을 사용하기 때문에
황제는 바로 그 아래 숫자만큼의 방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매일 한 방씩 사용했을 경우 29년이 넘어야 모든 방에서 자 볼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국 고대의 건축은 4개 기둥사이의 면적을 1칸으로 보기 때문에
자금성의 가장 큰 건물인 태화전의 경우만 하더라도 무려 55칸이나 되는 셈이다.
(동서로 12개, 남북으로 6개의 기둥이 있으니 11×5)
우리의 기준으로 치면 현재 실제로 남아있는 방의 개수는 980개 라고 한다.
태화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중국 최대의 목조문인 태화문.
문 앞 계단 동, 서쪽으로는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청동사자상이 자리잡고 있다.
오문과 태화문을 거치면 나타나는 넓다란 광장... 그리고 태화전이다.
태화전은 남북 33m, 동서 60m의 건물로서 중국 최대의 목조건물이며,
황제의 즉위식, 새해의 제사, 황태자의 탄생 축하 등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지금의 건물은 1695년 청나라 강희제 때 세번째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태화전의 지붕은 금색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기 때문이라 한다.
자금성은 명나라 영락제부터 청나라 푸이(溥儀, 선통제)가 자금성에서 쫒겨날 때까지
500여년간(1421~1924) 명, 청대의 황제 24명이 거쳐간 궁궐이다.
고궁 성내는 정치구역인 외조(外朝)와 생활구역인 내정(內廷)의
두 구역으로 크게 나누어 진다.
외전의 태화전은 자금성의 정전(正殿)이며, 중요한 의식장으로 사용되었다.
태화전, 중화전(회의실), 보화전(과거시험을 보는 장소)을 중심으로
양측에 있는 문화전과 무영전을 외조(外朝)라 한다.
건청문을 들어서면 내정부분으로, 황제가 거처하는 건청궁, 황후가 거처하는 교태전,
곤녕궁, 어화원, 동육궁, 서육궁, 자녕궁, 영수궁 등을 포함하여 황제가 일상의
정무를 행하는 곳과 거주하는 곳, 그리고 황후, 비, 어린황자(皇子)와
황녀들이 생활하는 곳을 말한다.
보화전 뒷편에서 바라본 내정의 정문인 건청문.
건청문은 자금성 내에서 가장 화려하며 위엄이 있어 황실의 신성함과
권력을 나타내는 전문이다.
이곳을 경계로 황제와 황후의 생활공간인 내정과 외조가 구분된다.
보화전의 이 운용석조(雲龍石雕)는 자금성에서 가장 큰 돌이라 한다.
황제를 상징하는 9마리의 용과 장수의 복을 의미하는 산과 절벽, 바다
그리고 운해가 조각되어 있다.
보화전을 뒤에서 되돌아 봤다.
보화전은 주로 조정의 각종 의식을 여는 곳이다.
황제의 침실 겸 집무실이었던 건청궁의 내부.
정대광명이라 쓰여진 편액 아래 황제의 보좌가 놓여있다.
황제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수목이 전혀 없는 자금성 내부에
유일하게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가꾸어 놓은 어화원 내의 정자.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을 나오면 저 멀리 자금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경산공원이 마주보고 있다.
경산공원은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목을 매 자살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곳은 이화원의 만수산처럼 인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금성을 빙 둘러 너비 52m, 깊이 6m, 그리고 3.8km에 이르는 길이로
해자를 만들면서 그곳에서 파낸 흙과, 땅 밑을 뚫고 들어올지도 모를
침입자를 막기위해 40여장의 벽돌을 바닥에 깔면서 자금성 바닥을 7m까지
파내기도 했다는데, 그때 나온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저 경산공원이라고 한다.
풍수지리학상 궁궐 뒤에는 산이 있어야 좋다고 해서 그렇게 만들었다니,
역시 스케일 만큼은 정말 대단한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
해자로 둘러쌓여 있는데, 해자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성을 보호하며
방화기능도 겸했다고 한다.
자금성은 현재는 고궁박물원으로 전용되어 고궁 안의 여러 전(殿),
당(堂), 궁(宮) 등은 진열실로 이용되고 있으며, 중국 역대의 채도(彩陶),
청동기, 칠기, 직물, 조각, 회화 등 여러 예술품을 진열하고 있다.
권위가 무조건 좋은 것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성 안에는 나무를 심지 않아 자객에 대비했구요,
땅 속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바닥벽돌을 몇 겹으로 시공하기도 했다니 말이죠.
그리고 저 정도 규모라면 백성들의 원성 또한 만만치 않았을텐데...
제 생각에는 마음은 그다지 편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ㅎㅎ
역시.. 중국 사람들 큼직큼직 하니 화끈합니다...
자금성은 소인국월드에서만 봤었지요..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대단합니다.. ^^
이렇게 크고 화려한 건축물도 멋있긴 합니다만..
보다 정교하고.. 단아한.. 우리의 건축물들이 더 고와보이기도 합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