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남겨진 건축물들이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하나같이 윗쪽으로 길쭉한 모습이다.
하롱베이와 하롱시티의 중심부 홍가이(Hon Gai)를
연결하는 바이짜이(Bai Chay)대교.
길이가 903m로 현수교인 이 다리는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로 건설되어
2006년 12월 개통되었다.
이 다리를 건너 서너시간을 가면 중국 땅이라고 하는데,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관계로 쾌속선으로는 오히려 1시간 반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른 아침, 하롱베이의 바닷가.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허리를 구부려 바닥을 파기 시작한다.
뭔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담을 것에는 이름모를 생물들이 들어가 있었다.
얼핏보니 개불 종류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막 시작해서 이 정도인데 조금 더 지켜보면
다른 종류들도 많이 나올 것 같다.
그러나 헤집어 놓은 바닥 색깔은 온통 검은색이다.
바닷가 광장에서는 이름모를 행사들도 열리고 있고...
거리 곳곳에는 생고기를 파는 난전도 볼 수 있었다.
고온 다습한 관계로 부패가 잘 안된다고는 하지만,
보통 1~2시간 정도면 다 팔려 나가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도로가 곳곳에는 간이 접이식 책상을 내어놓고 앉아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는 복권을 파는 이동식 가게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길거리에 의자 하나만 있으면 곧바로
이발소로 변하기도 한다.
뒷골목에서 만난 개구쟁이들...
서로 어울려 뛰어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뒤의 건물은 녀석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하는데
글자만으로는 쉽게 짐작이 되지 않는다.
밤이 되면 이곳 바닷가에는
환하게 불을 밝히고 야시장이 들어선다.
지역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 기념품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물건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아기자기한 소품을 비롯하여 갖가지 공예품들도 즐비하다.
인근 도로 위에는 문양이 그려진 커다란 종이가 펼쳐져 있다.
타투의 샘플이다.
물론, 그 중에는 한글도 끼여있다.
전문대가(첸먼 거리, 前門大街)의 시작을 알리는 패루(牌樓).
베이징에서 가장 큰 길거리 패루라고 하며, 역사적 문헌과
사진을 근거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패루란 경축의 의미로 큰 거리를 가로질러 세운 시설물을 말한다.
약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거리는 전문 앞에 전루(箭樓)를
시작으로 남북으로 845m가량 길게 뻗어있는 모습이다.
전문대가는 자금성 남쪽 성문인 전문(前門) 앞에 위치한 번화가로,
이곳 북쪽에는 성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정양문(正陽門, 오늘날의 전문)이
세워져 있어 명대부터 민국시기까지는 정양문대가(正陽門大街)로 불렸다.
그러나 1965년부터는 정식명칭이 전문대가로 명명됐다.
전문대가는 명대(明代)에 전국 각지에서 과거시험 준비생들이
몰려들면서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전문 안으로는 각종 관가가 있었는데, 전문을 나서면 대로 주변으로
황실에 물건을 납품하고 자금성을 찾는 사신을 따르는 교역 상인들을
볼 수 있었으며, 교역품을 거래하는 각종 공방과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서구가 세계의 주도권을 잡게되는 18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전문대가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특히 청나라 때는 자금성의 안전을 위해 외지에서 상경한 사람은
오직 전문 밖에서만 생활할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주변에
상업지구가 발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청나라 초기에는 성내에 유흥업소를 금지시켜 성 밖인 이곳에
극장, 찻집, 기방 등이 생겨나면서 더욱 번화하게 된다.
1920년대에는 베이징의 가장 번성한 상업거리 중의 하나였으며,
1950년대에는 이곳에 약 800여개의 크고 작은 상점들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환경정비 사업으로 인해 전문대가 주변의
후통(胡同, 베이징의 옛 골목)들과 서민들의 터전은 2006년부터 철거가
시작되었고, 도로를 비롯한 도로변의 건물들은 200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올림픽 개막식 하루 전인 2008년 8월 7일 공식적으로 개통되었다.
쭉 뻗은 길 좌우로 깨끗하게 단장된 상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중앙 통로는 넓고 시원하며 회색조의 건물들로 인해 차분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전문대가의 뒷골목은 다소 다른 풍경이다.
크고 작은 간판들로 현란한 모습이다.
특히 음식점 앞을 지날 때에는 중국음식 특유의 향취가 코를 찔러댄다.
골목마다 호텔, 음식점, 기념품가게 등
다양한 업종들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대가의 중앙 통로에 웬 레일인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먼발치에서 전차가 다가왔다.
이곳 양 극단 중심을 오가는 궤도전차로 당당차(當當車)라고 부른다고 한다.
당당차는 과거에 전문대가를 시발점으로 운행했던 1920년대 베이징의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보행자들에게 주의를 주기위해 발판을 밟으면
당당하는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다시 시작지점으로 되돌아 왔다.
패루(牌樓) 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정양문의 전루(箭樓)로 성루의 남쪽
정면에 위치하며, 과거에는 화살 및 총포를 발사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한다.
원래는 성루와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도로를 직선으로 정비하면서
성벽을 허물어 지금은 망루만 남아있다.
저 뒤로 천안문광장과 자금성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가 볼 참이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2008년 8월 1일,
중국 1호점으로 개관한 우리나라의 롯데백화점.
왕푸징(왕부정)은 약 1km거리 양편으로 약 180여개의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베이징 최대의 번화가이자 상점가로,
한국의 명동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700여년전 원대 왕조의 여러 기관과 왕족들의 저택인
왕부가 몰려 있었으며, 명대 때부터 이미 상업활동이 활발했었다고 한다.
당시 황실의 우물이 있었기에 그 이름을 따서 왕푸징이라 부른다.
1955년 중국 정부의 투자로 세워진 국영백화점이자
베이징 제1호 백화점인 베이징백화점.
시계탑은 왕푸징의 상징이 되고 있다.
사실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대형 백화점에서부터 소규모의 상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서 찾지 못할 아이템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동양 최대의 쇼핑몰인 동방신천지를 비롯하여 동방광장, 신동안시장,
그리고 왕푸징의 역사와 함께 한 동안시장, 백화대루 등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오른쪽 건물은 북경에서 1,2위를 다툰다는 대형서점인 왕푸징서점이다.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합작품이라는 왕푸징 교당(敎堂).
북경 4대 천주교 성당 가운데 하나로, 명나라 말기에
2명의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이 곳에서는 중국의 특이하고도 다양한 먹거리들과도 만날 수가 있는데,
간식으로 유명한 샤이오츠지에(먹자거리)와 꼬치로 유명한 꼬치거리까지
가까이 포진하고 있어 입까지 즐겁게 한다.
길 건너로는 왕푸징의 명물인 꼬치거리로, 꼬치를 파는 포장마차가
도로를 따라 약 100m에 걸쳐 줄지어 서 있다.
하늘의 비행기, 땅 위의 책상, 그리고 바다의 잠수함을 빼고는 모두 다
먹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바로 이들 중국인들을 두고 한 말일터...
전갈, 불가사리, 해마, 지네 등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하고도
이색적인 음식들을 맛볼 수가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