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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공간인

자유의 광장 / 서버드샤그 광장 (Liberty Square / Szabadság tér).

 

 

 

 

 

 

 

 

 

헝가리를 상징하는 이슈트반의 왕관을 든 여신,

그리고 나치 독일을 상징하는 발톱을 드러낸 독수리..

자유의 광장에는 홀로코스트 60주년을 맞아 2014년에 설치된

나치 독일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점령 때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던

20만 유대인의 3분의 1 정도가 학살 당했다고 한다.

 

 

 

 

 

 

 

 

 

MAC (헝가리 운동클럽) 기념비 혹은 헝가리 육상 기념비.

1875년 5월 6일, 헝가리 체육클럽은 이곳에서 유럽 대륙 최초의 공개 야외 육상 경기를 열었다. 

대회 125주년 기념비.

 

 

 

 

 

 

 

 

 

나치 정권하에서 헝가리를 해방시켜준 소련군의 헝가리 해방 기념비.

 

 

 

 

 

 

 

 

 

국회의사당 주변..

 

 

 

 

 

 

 

 

 

헝가리 국회의사당 (Országház).

런던의 국회의사당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회의사당으로

다뉴브 강 (도나우 강) 가에 자리하고 있다.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1885년에 착공을 시작해서 1902년에 완공...

엄청난 크기와 섬세한 건축양식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History



남평문씨 본리(인흥) 세거지(世居地).


고려말의 충신이며 원나라로 부터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나라 의복문화의 혁신을 가져온

충선공 문익점의 18세손인 인산재 문경호(文敬鎬)가 1840년을 전후하여 터를 잡은 곳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소재.










낙동서원.


1708년(숙종 34)에 단양우씨의 현조인 우현보(禹玄寶)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우배선(禹拜善)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으로, 처음에는 덕동서원(德洞書院)이라 하였으며,

대원군 때에 철폐되었다가 1965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위치.










까치구멍집.


경북 북부지역 산간촌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집이다.

까치구멍집은 지붕 용마루의 양쪽에 공기의 유통을 위하여 구멍을 낸 모양이

까치 둥지와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영양 남씨들이 모여 살았던 안동시 월곡면 도목동에서 1975년 영남대 민속촌으로 옮겨 왔다.










청도 석빙고.


경상북도 청도군에 위치한 1713년 (숙종39)에 축조된 얼음 저장 창고로,

남한지역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석빙고이다.

보물 제323호.










영천지구 전적비


1950년 9월 4일 파죽지세로 남침한 북괴군 제2군단은 일거에 부산을 석권할 기도아래 

전력의 요충인 이곳 영천을 점령하고자 최후의 공세를 폈다. 

만약 영천이 떨어지면 유엔군은 울산-밀양을 잇는 이른바 데이비드손 방어선으로 

철수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때 한국군 제2군단 장병들은 국가의 운명이 이 싸움에 승패에 달려 있음을 알자 분연히 일어섰다. 

그러나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인해 어찌할 바 없이 한때는 고읍 영천을 내어놓기도 하였었다. 

분노한 우리 군민들은 너도나도 총을 잡고 전장에 나섰다. 

이윽고 전열이 정비되자 유재흥 군단장은 이달 9일 총 반격을 감행하여 금호강변에서 

적을 포위 섬멸하고 백척간두에 섰던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였다. 

그리고 북진의 기틀을 만들었다. 

1980년 10월 7일 준공.










영천지구 전승비


1950년 9월5일부터 12일간 치열하게 벌어졌던 국군 8사단과 

북한군 15사단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1958년 육군 제1205건설공병단이 건립했다.










울기등대 (구) 등탑.


울산광역시 소재 대왕암 공원에 위치한 등대로, 등록문화재 10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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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싱가포르 공화국은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의 끝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항구 도시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1963년에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1965년에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와의 다툼 끝에 연방을 탈퇴하여 독립국가가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 중 하나...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모던아트 갤러리인

네셔널갤러리 (National Gallery Singapore).

이전 싱가포르 대법원과 시청을 이어 만든 건물로, 약 10년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2015년 11월 갤러리로 오픈했다.







마리나 베이 샌즈 전망대에서 바라본 네셔널갤러리 (National Gallery) 싱가포르.

이름은 갤러리이지만 복합문화공간인 내셔널 컬쳐 그라운드이기도 하다.







빅토리아 씨어터 (Victoria Theatre).


의회룸이 황폐화되어가던 1854년, 아마추어 공연하던 장소에

임시극장이 세워졌는데 같은 자리에 존버넷이 디자인한 타운홀을 1861년에 건설하였다.

1905년에는 빅토리아 여왕 서거 후 통치를 기념하기 위해

팔라디안 건축 양식의 메모리얼 홀과 양 건물 중간에 시계탑을 지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다.

1980년에 빅토리아 씨어터와 콘서트홀로 이름이 바뀌면서 오늘날에 이른다.







전망(戰亡)기념비 (The Cenotaph).

1차 세계대전때 전물한 싱가포르 출신 영국 군인들을 위해 세운 기념비.

이후에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당한 이들을 함께 새김.







높은 녹지율 덕분에 쾌적해 보이는 나라...







엄격한 법치주의로 인해 치안이 안전한 국가로 손꼽히며,

'벌금의 나라'라고도 불리우는...







보트퀘이 (Boat Quay) 인근 싱가포르강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

앞쪽으로 빅토리아 씨어터 건물의 시계탑이 보인다.







검은 깃털과 연노랑색의 부리를 가진 자바 구관조 (Javan Myna).

집까마귀와 함께 싱가포르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조류이다.







역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조류 중 하나인 집까마귀 (House Crow).







빅토리아 씨어터 (Victoria Theatre)의 야경.

마침 'Light to Night Festival' 행사 기간이라 외벽에 조명을 비추는 일종의 미디어 파사드 빛 축제가 진행중이었다.

모두 7개의 상징적인 건물의 정면에 이미지를 그려내는데,

이 건물에서는 '성장과 감퇴'라는 주제로 갱신과 분해가 공존하는 환경에서

탐험가는 태양의 힘과 발산 에너지가 어떻게 성장과 부패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발견한다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싱가포르강 건너 보트 퀘이 (Boat Quay).







클라크 퀘이 (Clarke Quay)

부두라는 뜻의 Quay와 싱가포르 두 번째 총독의 이름을 따서 클라크 퀘이...

각종 레스토랑, 펍, 클럽 등이 모여 있는 곳.







음력설인 차이니즈 뉴 이어를 맞아 열리는 리버 홍바오 (River Hongbao) 축제 행사장의

메인 입구 아치 조형물.

올해는 싱가포르가 영국의 스템포드 래플스 경 (Sir Stamford Raffles)에 의해

발견된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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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도로에서 내려다 본 영도등대.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위치해 있다.







                               태종대 신선바위.







                               자연사전시관 아래로는 기암 절벽이다.







태종대 입구에 위치한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UN의 결의와 적십자 정신에 의거, 야전병원과 

병원선 등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스웨덴, 노르웨이, 인도, 덴마크, 

이탈리아 등 5개국의 숭고한 업적을 찬양하고 기념하기 위해

1976년에 세웠다.

부지 면적 2,963㎡에 높이 20m, 폭 2m의 규모이다.







태종대 전적지에 세워진 무명용사비.

계급과 보수도 없이 특수전을 전개하며 수많은 전과를 올린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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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동용궁사.

입구에는 12지상이 도열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관음성지로 들어가는 관문, 용문석굴.







이곳 가장 높은 자리에는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 준다는

해수관음대불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해동용궁사는 1376년에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나옹대사(懶翁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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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와 경상남도 마산을 잇는 구마고속도로 건설 기념탑.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 현풍휴게소에 위치해 있다.


                               '번영의 조국이여 조상이 남기신 문화유산을 기틀삼아 새시대의 예지와

                               맘으로 약진을 거듭하니 역사의 시련기에 겨레의 웅지와 충성을 다하는 

                               민족총력의 업적들을 다시 후세에 물려 길이 평화와 복락을 누리도록 하려 함이다.

                               아름다운 조국강토의 영원한 혈맥이 될 고속도로에 위의 축원을 담아 한탑을 세우다.

                               1977년 12월 17일'

                               앞면 글씨 : 대통령 박정희     건립 : 건설부     조각 : 김세중







                               1976년 6월 착공, 1977년 12월 2차로로 준공.

                               2008년 구마고속도로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으로 명칭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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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기념비.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 조각동산의 200평 부지에 건립된 이 기념탑은

높이 6m, 직경 90cm의 청동 기념탑 3개로 세워졌다.


대구사범학교 8,9,10기생들을 주축으로 문예부, 연구회, 다혁당 등의 활동을 통하여

조국독립의 길을 모색하던 중 1941년 일경에 발각되어 300여명의 대구사범출신들이

검거되었다.

이 중 35명이 구속되어 가혹한 고문과 수형생활로 5명이 옥중에서 순국하였고,

조국광복과 더불어 출옥한 후에도 12명이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 기념탑은 대구사범동창생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98년 3월 1일 건립하였다.







                               대둔산 승전탑.

                               1950년 10월 3일부터 1955년 1월 2일까지 5년간에 걸쳐 대둔산 일대에서

                               활동중인 빨치산 및 영호남지역에서 패주 북상하던 북괴군 3,412명을 섬멸하면서

                               경찰, 국군, 애국청년단원 등 전사자 1,376명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1986년 6월에 준공되었다.


                               당시 대둔산을 거점으로 활동한 공비들은 현재의 논산시, 완주군 일대와 멀리 공주,

                               대전까지 원정하여 410여회에 걸쳐 경찰관서를 습격하고 양민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고,

                               이에 충남경찰국은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강경경찰서에 대둔산지구 전투경찰대를

                               창설하여 대대적인 공비 토벌작전을 전개함으로서 대둔산 일대의 공비를 소탕하였다.







                               대둔산 동학군 최후 항전지.

                               동학전쟁 때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은 대둔산에서 일본군에

                               마지막 항전을 벌이다 모두 대둔산의 바위벼랑에서 몸을 던져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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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 내장사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서보단기념비(誓報檀記念碑)와 사적비(事績碑).


사적비 뒷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서기 1895년 을미 8월 명성왕후가 폭악무도한 왜적들에 의하여 시해되니 2천만 국민의 슬픔과

울분은 하늘에 사무치고 일본에 대한 복수의 소리가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터져 나왔다.(중략)

1903년 7월 15일 이곳 내장산에서 추모대회가 열렸는데 26개군에서 54명이 참가해 서보단을 쌓고 

북쪽을 향하여 통곡하는 가운데 복수를 맹서하고 매년 8월 20일 추모제를 거행키로 했다.'

1991년, 서보단기념사업추진회가 추모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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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 망우당공원 내에 위치한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1991년에 세워졌다.


                               '비 내리는 고모령'은 1948년 현인이 부른 노래로 현인과 함께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사가 유호와 작곡가 박시춘의 작품이다.

                               현인의 음반 작업을 맡은 유호는 가사 독촉에 시달리고 있던 중

                               우연히 지도책을 꺼내 보다가 대구에 있는 고모라는 지명을 발견하고 

                               어머니와 이별하는 아들을 소재로 이 노래를 만들었다.

                               실제 고모령은 형제봉 사이를 넘는 고개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알리는

                               비석이 제2작전사령부 안에 세워져 있다. 

                               2012년 모명재길이 만들어지면서 고모령 일부 구간을 고모령길로 명명하게 되었다.







                               조선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1552~1617)의 동상. 

                               이 역시 망우공원내에 위치해 있으며 공원 이름은 그의 호인 망우당(忘憂堂)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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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타디움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출발, 송전탑을 지나 전망없는 사면길을 재촉해 오른다.

잠시 소나무가 있는 완만한 능선이 나타나고 이내 오름길은 계속된다.

그러다 어느새 주위가 밝아지면서 조망도 트여온다.


사진 맨 아랫쪽으로는 대구미술관과 대구육상진흥센터가 나란히 자리를 잡았고,

우측 연호지 옆으로는 대구야구장 건설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산 위 능선길은 잡목으로 우거져 내내 주위의 조망을 가려버린다.







복명초등학교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도달해서야 비로서 시야가 트여지면서

지산, 범물지구와 수성유원지가 한 눈에 조망된다.  

지난 6월 15일 개통된 앞산터널로가 범안로를 잇고 있는 모습도 함께 눈에 들어온다. 







이월드의 83타워와 수성대우트럼프월드아파트, 수성SK리더스뷰아파트가  

불쑥 솟아 올라있고, 그 앞으로는 내년에 개통 예정인 대구도시철도 3호선 

모노레일이 가로지르고 있다.







도심지 방향으로도 크고 작은 건물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형국이다.







지산, 범물지구에서 동촌방향으로의 파노라마.







                               예전에는 정상석의 역할을 했다는 방공포병학교의 기념비.

                               정상 바로 전, 헬기장 한켠에 세워져 있다.







대덕봉(해발 599.5m)의 정상에는 두 개의 정상석과 통나무 의자가 놓여있다.  

그러나 주위의 조망은 좋지않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도중 대구스타디움이 조망되는 자리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해본다.

                               저 멀리 신서혁신도시에는 건설공사로 분주한 모습이다.







시지를 지나 하양 방면으로의 조망.







한결 높아 보이는 가을 하늘... 

그 아래로 구름은 무리를 지어 둥둥 떠다니며 땅 위로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스쳐 지나간다. 

여유롭고도 평화로운 모습이다.

물론 머지않아 이곳도 빨간 단풍으로 물들게 될 것이고...

다소 쌀쌀해진 가을날, 맑은 공기를 찾아나선 간단한 동네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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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홀의 중심지인 타그빌라란에서 6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클레온.
그곳에는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교회건물인 
바클레온 성당(Baclayon Church)이 있다.
마치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들게하는 외양이다.









                               현재의 건물은 1727년에 완성되었으며, 종탑에 있는 종은
                               1835년에 매달았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에는 로만가톨릭의 규칙을 위반한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지하감옥도 있다고 한다.








                               이 성당은 200여명의 원주민을 강제로 동원해 지었으며, 
                               대나무를 이용, 바닷속 산호를 운반해 벽돌모양으로 자르고 
                               수 많은 계란을 시멘트처럼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성당 내부. 천정의 벽화와 함께 전면 제단의 조각상 불빛이
                               아주 화려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건하고 장엄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이곳은 성모마리아를 모시는 교구이기도 하다.
                               오래된 만큼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나온다.








                                어둠 속... 창문의 색유리를 뚫고 들어온 빛이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가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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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식민역사가 시작된 뼈 아픈 곳에 세워진 
혈맹기념비(Blood Compact marker).








국왕 대신의 자격으로 온 스페인 초대 총독인 미구엘 로페즈 드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ipi) 장군과 시카투나(Datu Sikatuna) 
보홀 족장이 1565년 평화우호협정을 맺게 된다.
이 협정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 이루어진 최초의 국제조약으로, 
필리핀의 전통에 따라 와인에 자신의 피를 섞어 마셨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이 혈맹기념비이다.

레가스피 장군은 지금의 멕시코인 누에바에스파냐에서 지방 정부의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필리핀에 대한 스페인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5척의 선박을 이끌고 멕시코의 아카풀코를 출발해 필리핀 남부의
세부에 도착한 후, 1566년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를 건설한 인물이다.
죽을 때까지 필리핀의 초대 총독직에 있었으며, 지금의 마닐라를
건설한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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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에 들어서게 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충성분수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이 안장되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은 한강과 과천 사이 넓은 벌판에 우뚝 솟은
                               관악산 공작봉의 기슭에 위치해 있다.
                              ------------------------------------------------------------------------------------------------------
                               1955년/ 국군묘지로 창설, 전사 또는 순직군인과 군무원 및 종군자의 영현을 안장.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 국가원수, 애국지사, 순국선열을 비롯하여 국가유공자,
                                              경찰관, 전투에 참가한 향토예비군 등이 추가.
                               1996년/ '국립묘지관리소'라는 명칭을 '국립현충원'으로 변경,
                               2006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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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된 안장으로 이곳이 만장되자 1979년 국립대전현충원을
                               창설하여 그곳에 안장하고 있다.








그 뒤로 꽃시계와 현충문, 그리고 현충탑.

국립서울현충원은 전체면적이 143만㎡에 이르며
경내에는 현충관을 비롯하여 무용용사탑, 전쟁기념관, 충렬대 등이 있다.








이곳은 국가원수묘역, 애국지사 묘역, 국가유공자 묘역,
군인·군무원 묘역, 경찰관 묘역, 일반 묘역, 외국인 묘역 등으로
구분, 조성되어 있다.








                               봄은 가까이 왔건만, 수 많은 영혼들은 차가운 이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누구에게는 귀한 아들, 또 그 누구에게는 든든한 남편이자 어버이였을 이들...  
                               오로지 이 나라 하나만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진 그들의 숭고한 정신에
                               자못 숙연해진다.








                                여러개의 상징탑 중의 하나... 경찰충혼탑.








이승만 초대 대통령 기념비.

잠시 국가원수묘역을 돌아본다.
이곳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5년 7월 19일 하와이에서 서거, 7월 27일
가족장으로 이곳에 안장되었다.
영부인 프렌체스카 여사는 1992년 3월 19일 서거하여 3월 23일
가족장으로 이곳에 합장되었다.








묘역 한 쪽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시에 사용되었던 영구차가 보존되어 있다.
당시 외부에 장식했던 국화는 제거하고 대신 그 자리에는 
장기보존할 수 있도록 유화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총탄에 서거하여 11월 3일
국장으로 이곳에 안장되었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1974년 8.15 광복절 기념행사 도중
흉탄에 서거하여 8월 19일 국민장으로 안장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 8월 18일 서거하여 8월 23일
국장으로 이곳에 안장되었다.


잠시, 큰 족적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간 이 나라의 큰 어른들만을
뵙고 나오기는 하였지만, 사실 이곳의 주인은 이분들 만은 아닐 것이다.
어찌보면 이분들 뒤에는 특별한 댓가와 명예도 없이, 오직 이 나라의 
밝은 미래만을 염원하며 한 줌 흙으로 사라져간 이름모를 병사들도 있지 않은가.
그들을 비롯하여, 가치있는 삶을 살다 간 이곳 모든 분들의 값진 희생에
고개를 숙이는 바이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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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사 앞마당에 세워진 초대 주지사의 동상.
                               주지사는 괌 주민들 가운데서 선출되며, 괌 주민들은 미국의 준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권은 없다.

                               이곳은 괌 주지사의 관저 및 괌 정부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곳으로
                               아델럽 콤플렉스(Adelupe Complex) 또는 아델럽 포인트(Adelupe Point)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전통 차모로족의 건축 양식과 스페인 양식이 혼합된 괌 정부종합청사 건물은 
                               1952년에 건축을 시작해 2년 후에야 완공되었으며 
                               태풍 '파멜라'로 일부가 파손된 이후 개축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통풍이 잘 되도록 지어져서
                               복도에 서 있기만 해도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청사 뒤편 언덕위에는 스페인 통치 이전과 이후 시대, 그리고 
                               19세기 괌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된 괌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아가나 만을 비롯해 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이곳 아가나의 서쪽 끝에 위치한 아델럽 포인트는 
                               현재 괌의 정부 기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일본이 통치했던 시기에 바위 절벽 속에 요새를 만들어 
                               각종 무기로 중무장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차모로족 전통 가옥의 하부에 사용되었다는 산호석인 
                               라테스톤(Latte Stone)의 형상을 박물관 외관에 접목시켜 놓았다.
                               이 돌은 기둥 모양으로 지주 역할을 하는 '할라기'와 그 위에 
                               받쳐져 있는 '타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원전 약500년경 
                               고대 차모로족은 라테석으로 알려져 있는 이러한 모양의 
                               돌 기둥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전한다. 








망망대해...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라테스톤 한 기가 우뚝 서 있다.
마치 망부석 마냥 쓸쓸해 보인다.








박물관 우측편에서 조망해 본 바다.
괌의 해변은 산호로 둘러쌓여 있어서 파도도 일치감치 저 멀리로 물러나 있다.
패러세일링을 즐기는 모습이 여유롭다.








                               어떠한 연유로 세워진지는 모르겠지만, 군부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휘장이 들어간 기념비 하나가 한켠에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또 그 아랫쪽으로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대포 2문이 바닷쪽을 향해 놓여있다.








                               괌 정부종합청사는 관공서이긴 하지만 청사 주변에 푸른바다, 코코넛 나무, 
                               해변 등이 어우러져 있어 마치 공원과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청사 뒷편 괌박물관 건물에는 하얀색의 벽과 계단이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CF(오란씨)를 찍었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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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山房山)은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구성된 높이 395m의
거대한 종모양의 종상(鐘狀) 화산체로서, 둘레는 3,780m, 면적은 988,332㎡이다.

산방은 산 속의 굴을 뜻하며 산방산 남쪽 측면에 해식동인 굴이 있어
산방산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한 사냥꾼이 한라산으로 사슴사냥을 나갔는데, 그날따라 사슴이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아 결국 정상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리저리 찾아 헤맨 끝에 드디어 사슴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급히 활을 치켜들었는데
그만 잘못하여 활끝으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들고 말았다.
이에 화가 난 옥황상제는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서쪽으로 내던져 버렸는데
그것이 날아와 박힌 곳이 이곳 산방산이고, 그 패인 자리는 백록담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실제로 산방산은
백록담에 쏙 들어 앉을 만한 크기와 형세를 하고 있다 한다.








산방산 아래에 위치한 용머리는 이곳의 지형이 마치 용이 머리를 쳐들고
바다로 뛰어 들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여기에도 전설이 있다.

중국 진나라 시황제는 중국을 통일한 후 자신에게 맞설
누군가가 나타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던 중 탐라섬에 제왕이 태어날 기세를 지닌 터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자,
풍수에 능한 호종단에게 그 곳에 가 혈맥을 끊어버릴 것을 명했다.
이에 호종단이 이곳 산방산에 도착하여 태평양으로 나가려고 용머리가
꿈틀대는 형세를 목격하고는 용의 꼬리와 잔등을 끊어버렸다.
그러자 시뻘건 피가 솟아오르며 주변을 물들였고
산방산은 괴로운 울음을 며칠 동안이나 토해냈다고 한다.








'하멜표류기'로 우리나라를 유럽에 처음으로 알린 하멜이
표류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네덜란드인 하멜은 1653년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이곳 제주도에 도착했다.
용머리 해안 부근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하멜기념비와 하멜전시관이 세워져 있다.

산방산을 배경으로 바닷가 쪽에서 바라 본 하멜상선의 모습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648년에 건조된 전장 36.6m, 폭 7.8m,
갑판높이 11m, 돛대높이 32m의 범선인 바타비아호를 모델로 재현했다.








                               산방산 앞바다에 위치한 용머리해안은 기암괴석 등으로 이루어져 경관이 빼어나다.
                               산방산 쪽에서 내려다 보면 그저 평범한 모습에 지나지 않지만, 
                               바닷가로 내려서면 전혀 다른 풍경과 마주치게 된다.
                               수천만 년 동안 층층이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 암벽이 바로 그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해안절벽이 서로 부딪히면서 만들어놓은 작품이다.
                               이러한 지층이 해안선을 따라 쭉 이어진다.








하멜기념비. 한, 네덜란드간의 우호 증진과 하멜의 공덕의 증표로,  
한국국제문화협회와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에 의해서 1980년 4월에 세워졌다.








산방산 보문사.
대한불교원효종 제주교구 본사(本寺)로 산방산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대한불교원효종은 1963년 경담(慶潭)이 창종한 불교종단으로,
고승 원효(元曉)를 종조로 삼고 있으며 대승불교, 생활불교를 구현한다.
이곳 옆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따라 산방산을 올라가면 산방굴사가 나온다.








                               산방산의 해발 150m 쯤에는 길이 약 10m, 너비와 높이가 약 5m 정도인  
                               산방굴이라는 해식동굴이 바다를 향해 특색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 
                               영주십경의 하나로, 그 안에 불상을 안치하였기 때문에 산방굴사(山房窟寺)라고도 한다.
                               굴 내부 천장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산방산의 암벽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山房德)'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참고/ 네이버테마백과사전.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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