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행, 두려움
그리고 고통은 모두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도 나에게 달려 있다.
번뇌와 죄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는 길
하나 뿐이다.
이생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는
세상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큰 사랑과,
하늘이 무너져도 꺾이지 않을 용기와,
땅이 꺼져도 흔들리지 않을 양심이 있어야 한다.
'소원(所願)'과 '서원(誓願)'은 다르다.
소원은 원하는 바요, 되었으면 하는 기대심이다.
서원은 맹세하는 다짐이요, 자기 스스로 구체적으로 이루겠다는
적극적 발심(發心)이다.
삶의 재충전이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비우지 않고서는 채울 수도 없다.
이는 남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호랑이에 쫒기듯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꿈은
몸부림을 통해서만 깨어날 수 있다.
이 절박한 몸부림이 바로 수행이요, 정진이요, 공부이다.
머리로 책을 많이 읽고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수행으로 관념을 닦아서 몸이 즉, 마음이 알게 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머리의 생각으로만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몸과 마음에서 실천되고 실현된다.
즉, 수행은 온 몸과 마음으로 체험해서 얻어지는 지혜와 실천력이다.
모든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온다.
모든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에서 온다.
분리된다는 것은 서로가 헤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자가 며칠째 잠을 못 자 눈이 퀭하게 들어갔다.
걱정된 스승이 제자에게 왜 그리 얼굴이 상했느냐고 물었다.
“요사이 며칠째 통 잠을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잠을 못 이루는 것이더냐?”
“실은 친구가 제가 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험담을 하며
나쁜 아이라고 저를 욕하고 다닌다 합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화를 낼 일이 전혀 아니로다.
먼저 너 자신을 잘 살펴보거라.
친구의 소문이 사실이면 사실을 말한 것이니 화낼 일이 아니고,
사실이 아니라면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니, 그 또한 속상해 할 일이 아니지 않느냐.”
부용대에 올라서서 바라 본 하회마을의 전경.
하회마을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위치해 있다.
이 마을은 풍산류씨(豊山柳氏)가 대대로 살아오던 전형적인 동성(同姓)마을로서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사대부집으로 부터 가랍집(서민 집) 등
고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특히 이 곳은 조선시대의 대유학자인 겸암(兼菴) 류운룡(柳雲龍, 1539~1601)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회는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太極形),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다리미형 등의
길지로 알려져 있으며, 낙동강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자형을 이루면서
마을을 감싸 돌고 있어서 지명도 하회(河回)가 되었다.
그리고 동쪽으로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花山)이 있고,
그 줄기의 끝이 강에 싸인 마을까지 뻗어서 아주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하회의 집들은 이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곳을 향하여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집의 좌향(坐向)이 일정하지 않고 동서남북을 향한 각 방향의 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집들의 배치는 마을 중심부에 큰 기와집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가랍집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배치되어 있다.
마을에는 하회별신굿탈놀이, 줄불놀이 등이 전승되며,
이 때 사용되던 하회탈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대종택(大宗宅)인 양진당(養眞堂)과 함께 서애종택(西厓宗宅)인 충효당(忠孝堂)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중요민속자료 10여점이 보존되고 있다.
양진당(養眞堂), 보물 제306호이다.
이 건물은 150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겸암(兼菴) 류운룡(柳雲龍)이 살던 집으로
풍산류씨 대종가이다.
하회 북촌(北村)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안채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그 후에 다시 지었다 한다.
이 건물은 'ㅁ'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와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높은 축대위에 건물을 세우고
주위에 난간을 둘러 마치 누각(樓閣)과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다.
사랑채의 앞에는 넓은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행랑채가 있는데, 출입문의 역할을 한다.
안채에는 큰 안방과 안대청이 있으며 사랑채와는 마루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채 뒤에는 두 개의 사당이 있다.
충효당(忠孝堂), 보물 제414호이다.
이 건물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후손과 문하생들이 그의 덕을 기리는 뜻에서
1600년대에 지은 가옥이다.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 1598~1674)가 처음 건립하였고,
그 후 그의 증손 익찬(翊贊) 류의하(柳宜河)가 전체 52칸의 규모로 확장한 목조건물이다.
집 앞에 행랑채가 길게 가로 놓여 있고 그 뒷편에 'ㅁ'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사랑채 뒤쪽에는 따로 사당이 마련되어 있고, 그 오른편에는 서애의 유물 등을 보관, 전시하고 있는
영모각(永慕閣)이 있다.
충효당의 현판글씨는 전서체(篆書體)로, 미수(眉搜) 허목(許穆)이 썼다고 한다.
허목은 전서체의 대두라 불릴만 하여 그의 글은 중국에서도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골목길에서 만난, 웬지 위압감이 느껴지는 고택 하나...
빈연정사(賓淵精舍), 중요민속자료 제86호이다.
이 건물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맏형으로 청백리(淸白吏)로 이름난
겸암(兼菴) 류운룡(柳雲龍, 1539~1601)이 조선 선조(宣祖) 16년(1583)에 지어서
서재로 사용하던 정사이다.
당호(堂號)는 부용대(芙蓉臺) 절벽 아래의 깊은 물을 빈연(賓淵)이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왼쪽 1칸에는 앞뒤로 온돌방을 두고
오른쪽의 2칸은 모두 대청으로 꾸몄다.
온돌방 앞쪽 기단(基壇)에 아궁이를 설치하고 뒤쪽 기단에 굴뚝을 내었으며,
대청의 앞면은 개방하고 오른쪽과 뒷면은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정사 안에는 완송문(玩松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하회 북촌댁(北村宅) 화경당(和敬堂), 중요민속자료 제84호이다.
조선 중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류사춘(柳師春)이
정조21년(1797)에 작은 사랑과 좌우익량을 건립한 것이 이 집의 시초이다.
그 후 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를 지낸 그의 증손인 석호(石湖) 류도성(柳道性)이
철종13년(1862)에 안채, 큰사랑, 대문간, 사당을 건립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전형적인 사대부 주택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집의 대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으로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었으며,
몸채의 대문간축과는 축을 달리하고 있다.
안채에는 높은 기둥을 사용하여 겹으로 구성한 안방과 안대청이 있다.
안방은 독특한 田자형의 4칸 방으로 앞의 2개방은 평소 거처하는 곳이고,
뒤의 2개방은 수장공간으로 활용하는 곳이다.
안방 왼쪽에 3칸이 넘는 큰 규모의 부엌이 있다.
큰사랑인 북촌유거는 은퇴한 바깥주인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것으로,
누마루에 앉으면 하회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집이다.
하회마을 낙동강변의 나룻배.
강 건너편 절벽 위쪽이 이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부용대이다.
하회마을하고.. 이상하게시리 인연이 없네요... ^^;;
요근래.. spk 님에게 자극 받아서.. 가야 할 곳들이 늘어나고 있네요.. ^^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을 보면.. 온갖 시름이 날아갈것만 같습니다.. ㅎㅎ
말을 이곳저곳을 가볍게 걸어보고 싶어집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길 기원합니다.. ^^
아니.. 정말이신가요.
비바리님이 안가보신 데가 있으시다니요. 그것도 저 멀리 계시는
엘리자베스 여왕님도 다녀가신 그 안동을 말이죠.ㅎㅎ
제가 보기엔 이곳에도 새가 있고, 맛있는 먹거리도 있고 철마다 피는 이쁜 꽃들도 보이던데...
제 사진실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보여 드리지 못한점이 아쉬울 뿐이니,
올해는 꼬옥 가셔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어느 곳이던지 원형의 보존이라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세월을 그대로 견뎌내기에는 힘에 부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보수는 분명히 필요하겠지만,
이질적인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 것에는 당연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곳은 아니지만 고가를 사진으로 담을 때 전신주가 신경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출근하셨는가 보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말씀대로, 안동을 동경한 나머지 꿈에서라도 훌쩍 다녀가셨는가 봅니다.ㅎㅎㅎ
흔히 알려진 여러 고가들 외에도 안동간고등어, 안동소주, 안동헛제사밥 등
자랑할 수 있는 것들이 여럿 되다보니 안동이라는 지명에 친숙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설마... 안동을 다녀가시긴 했으되 특별히 인상적인 것이 없어서
기억속에서 지워져 버린 것은 아니겠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