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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大漢門). 덕수궁미술관을 중심으로 보면 남문이나,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을 중심으로 보면 동문이다.
대한문은 대한제국 출범직후 환구단이 건설되고 궁궐의 동측이
새로운 중심이 되면서 원활한 기능 수행을 위해서 정문이 되었다고 한다.
창경궁도 정문이 동문이며 덕수궁의 원래 정문은 '인화문'이었다. 






덕수궁 터에는 월산대군(1454~1488)의 후손을 비롯한
왕족들과 고관들의 저택이 있었다.







함녕전(咸寧殿)은 고종이 거처하던 침전이자 승하하신 곳이기도 하다. 
1904년 이곳에서 시작된 불로 경운궁의 거의 모든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덕홍전(德弘殿)은 경운궁의 편전으로 고위관료와 외교사절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전통양식의 건축물이지만 천장에 샹들리에를 설치하여 서양풍으로 장식했다. 
현존 건물은 1911년에 건립되었다.






궁궐 후원의 언덕 위에 세워진 휴식용 건물인 정관헌(靜觀軒). 
조용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공관이라는 뜻으로 후원의 정자기능을 했다.
한국과 서양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1900년경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A. I. Sabatin)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인조석 기둥을 줄지어서 내부 공간을 감쌌고,
동남서 세 방향에 베란다를 마련했다.
베란다의 기둥은 목조이며 기둥 상부에 청룡, 황룡, 박쥐, 꽃병 등
한국의 전통문양을 새겼다.
고종황제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교사절들과 연회를 즐겼다고 한다.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중화문(中和門).
1904년 화재 때 소실되었다가 1906년 중화문과 함께 중건되었다.






덕수궁의 정전이자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사신들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이 치뤄지던 중화전(中和殿).

1902년에 임시 정전으로 쓰던 즉조당(卽阼堂) 남쪽에 행각을 두르고
중화전을 건축해 궁궐의 중심 영역으로 삼았다.
천장의 용 문양이나 기단부 계단 중앙의 답도에 새긴 용 문양,
그리고 황색으로 칠한 창호 등에서 대한제국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원래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의 대화재로  이 일대가 모두 불타 버린 후
1906년에 단층으로 규모를 줄여 재건하였다.
중화문과 행각도 함께 다시 세웠는데 현재 행각은 동남쪽 모퉁이 일부만 남아 있다.
경복궁의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 경희궁의 홍화문처럼 모든 궁궐은
정문이 남쪽에, 그리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로 '화'자를 이름에 넣었다. 






                               궁궐 정전의 어계(御階) 답도 가운데 용이 새겨진 곳은 이곳 중화전 뿐이라고 한다.
                               다른 곳은 봉황이 새겨져 있다.
                               어좌 위에는 닫집이라고 부르는 보개(寶蓋)를 달았으며, 용상 뒤에는
                               일월오악병(日月五嶽屛)을 세웠다.
                               천장 중앙에는 감입(嵌入)으로 보개천장을 만들어 황룡 두 마리를 새겨 놓았다. 
                               창덕궁의 인정전과 창경궁의 명정전이 봉황인데 비해 이곳 중화전은 용인 것이다.
                               또한 경복궁 근정전의 용은 칠조룡(七爪龍)인데 비해 중화전은 오조룡이다.






석어당(昔御堂) 한쪽에는 살구나무가... 

석어당(昔御堂)은 중화전의 동북쪽에 있는 건물로, 몽진에서 돌아온 선조가
16년간 거처하다 승하한 유서깊은 건물로 인목대비를 유폐시킨 건물이기도 하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쫒겨나면서 석어당 앞에 무릎을 꿇고있는 가운데 
인목대비가 광해군의 잘못을 36가지나 열거하면서 폐위시키고
인조에게 옥새를 전했다고 한다.
이 건물도 1904년 불에 탄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덕수궁 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2층 목조 건물로 1층은 방과 대청,
2층은 마루를 깐 공간으로 되어 있다.
단청을 하지 않았으며 취두, 용두, 잡상은 없다.






준명당(浚明堂)은 경운궁의 편전 성격을 띤 내전으로 고종이 정사를 살피던 곳이다.
1904년 화재 이후 다시 지어졌으며 함녕전으로 침소를 옮기기 전까지 
고종의 침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오른쪽은 즉조당으로 준명당과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침 공사중인지 가림막이 쳐져 있어 돌아볼 수가 없었다.

즉조당 일대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거처했던 전각들을 보존한 곳으로
광해군과 인조가 왕위에 오른 곳이기도 하다.
1623년에 대부분의 전각과 땅을 원 주인에게 돌려 주었으나, 석어당과
함께 이 두 건물만은 보존하여 경운궁의 상징으로 삼았다.
현재의 석어당, 준명단, 즉조당 건물은 1904년에 불에 탄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지은 것이다.  






원래 함녕전의 남쪽 대문이었던 광명문(光明門).

1938년에 석조전 서관을 증축하여 미술관으로 개관하면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
내부에는 자동 시보장치가 있는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 국보 제229호)와
1462년에 제작된 흥천사의 동종(興天寺銅鐘, 보물 제1460호), 그리고 
화약을 이용하여 100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인
신기전기화차(神機箭機火車) 등을 전시하고 있다.  
다소 어색하고도 뜬금없는 장면이기도 하다. 






석조전(石造殿)은 고종이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서양식 석조건물로
영국인 건축가 하딩(G, R. Harding)이 설계하여 1910년에 완공하였다.
기단 위에 이오니아식 기둥을 줄지어 세우고 중앙에 삼각형의 박공지붕을
얹은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었다.
건물의 전면과 동서 양면에 베란다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후에 미술관으로 사용했고, 1938년에 서관(西館)을 증축하면서 
그 앞에 서양식 분수정원도 조성했다.
서관은 의석조(疑石造)로 지은 몸체 중앙에 코린트식 기둥의 현관을 덧붙인 모습이다. 






덕수궁 돌담길.
이 길을 걷다보면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극장, 정동교회를 비롯하여
아관파천의 현장인 러시아공사관, 이화학당, 배재학당 등
역사와 문화의 현장과 마주하게 된다.
 
지난 2004년부터 덕수궁 원형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덕수궁 내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도 자리를 옮겼으며, 
그 자리에는 전각을 복원해 대한제국 시절 정궁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예정이라 한다.


- 이번 덕수궁을 끝으로 서울의 5대 궁궐을 모두 둘러보게 되었다.
  관련/ 2011/04/08 - [Travel] - 경복궁(景福宮)
            2011/04/01 - [Travel] - 창덕궁(昌德宮)
            2011/03/29 - [Travel] - 창경궁(昌慶宮) 
            2012/05/09 - [Travel] - 작지만 큰 궁궐.. 서울 경희궁(慶熙宮)




참고/ 현장 안내판 등




Natural




담장에 의지하여 줄기를 뻗어 올렸다.
그 줄기에는 깨물면 단물이 줄줄 흘러내릴 것만 같은
작은 열매들이 방울방울 매달렸다.






층층이 쌓아올린 담장에는
세월이 내려앉았고,





                               시간이 멈춘 듯 지붕위의 잡초는
                               그 자리에 말이 없다.






지붕 위에는 탐스러운 감 하나가
피곤한 듯 몸을 누이고,






또 다른 감들은 알몸으로 처마밑에 매달려 
때아닌 일광욕을 하고 있다.






담 모퉁이를 돌아드니 향기로운 냄새가 콧 속을 찌른다.
고개를 들어보니 노랗게 익은 모과가 향기를 뿜으며
내려다 보고 있다.






                               터질 듯 한껏 농익은 열매들은 담장을 감싸고,
                               바라보는 이의 가슴은 덩달아 뜨거워지기만 한다.






                               돌담 골목 보이지 않는 저쪽에서는 금방이라도
                               두런두런 사람들의 정겨운 대화소리가 흘러 나올 것만 같고...






아직은 가을의 정취가 남아있던 
돌담길이 정겨운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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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훈훈하게 불어주던 바람도, 따뜻하게 몸을 덥혀주던 연못의 물도,
이제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음이 온 몸으로 감지된다.








몸은 웅크려지고, 생기 또한 점차 사그라진다.








살랑살랑 불어오던 바람도 어제의 그 바람이 아니다.
바람과 햇빛, 그리고 땅의 기운으로 부터 
이제는 새로운,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해야 함을 스스로 알게 한다.








                              누구는 계속될 삶을 위해서 달고 있던 잎을 하나 둘 떨어뜨리고,
                              또 누구는 곧 짧은 생을 마감하고 이 세상과 작별해야 한다.
                              그래서 이 가을을 두고 이별의 계절이라 하는가 보다.








아쉽지만... 보내야 할 것은 미련없이 떨구어 보낸다.
그리고 동시에, 또 다시 돌아올 새 삶을 위해 차분한 준비에 들어간다.








따뜻한 햇살이 살아 숨쉬는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려는 듯  
가지에 매달린 채 안간힘을 써 본다.
그래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도 물론 알고는 있지만,
삶이란 분명 즐거운 것이 아니었던가.








비록 구석진 곳이었지만, 척박한 담벽에 의지하며 힘겹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나고 자란 그 자리에서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것 처럼, 조용히 순응하며 그대로 시들어 간다. 
그런 이유로,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 계절이 결코 아쉽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언젠가는 떨어져 내릴 것이지만, 그래도 한 줌 미련이 남아서일까.
추위를 이겨내려는 듯 스스로 온 몸을 붉게 달구어 본다.
그러나 여전히 가늘게 떨려오는 몸...

이들의 간절한 몸짓을 보고서야 가을이 온 것을 알았고,
또 가을이 가고 있는 것도 알았다.
물론, 당연하게도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이들의 삶은 또 다시 계속되어지리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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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회재 이언적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의
뒤편에 위치해 있는 독락당의 솟을대문.

보물 제413호인 독락당(獨樂堂)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이
1532년 벼슬에서 물러난 후 만든 서재로, 이곳에서 6년간 학문에 전념했다.
조선 중종27년에 세워졌으며, 일명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도 불리운다.
경내에는 사묘(祠廟), 어서각(御書閣), 양진암(養眞菴) 등이 있으며
계정(溪亭)은 그가 기거하던 사저(私邸)이다.

독락당은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옆면에서 볼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八作)지붕으로 되어 있다. 
집을 향해 오른쪽 3칸은 넓은 마루인데 앞을 모두 터 놓았으며,
왼쪽 1칸만 칸을 막아 온돌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기둥은 둥근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행랑채인 경청재(敬淸齋).
이 고택은 1601년 (선조34년) 3월 12일, 회재 이언적 선생의 손자 휘(諱), 

준(浚)과 순(淳) 두 형제가 옥산별업(玉山別業)을 봉수(奉守)하기 위해 

화의문(和議文)을 작성하면서 세운 집이다.
선생은 1538년(중종33년) 3월에 청백리(淸白吏)에 가자(加資)되었다.
청백은 공경지심(恭敬之心)에서 나온다 하여, 후손들이 본 집을 

경청재(敬淸齋)라 이름하였다.







                              화의문약설(和議文略說)
                              계정과 독락당은 우리 선조고(先祖考) 문원공(文元公) 회재선생의 별서이고,
                              이 외 유택(遺澤)에는 우리 부모(휘:전인, 호:잠계)의 혈성이 가득하다.
                              당우와 담장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 형제가 약간의 토지(土地)를 출헌하였다.
                              후손들 가운데 혹 궁벽하여 토지에 대해 다투는 일이 있으면 불효로써 논단할 것이다.







                              독락당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길, 계류로 연결되어 있다.
                              사방이 높은 담으로 가로막혀 있어 안쪽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인데,
                              외부와 담을 쌓았다는 표현 그대로, 폐쇄적이고 은둔적인 느낌이다.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이 보인다. 
이는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으로,
이 곳을 통해 대청에서도 앞 계곡의 냇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정작 담장 안쪽으로는 그의 후손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어서인지
이 곳의 핵심인 독락당은 개방이 되어있지 않았다..
좌측 담장안으로 보이는 집이 바로 그 독락당으로,
그저 밖에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별당으로 지어진 계정(溪亭), 대문외에 유일하게 밖으로 난 공간이다.
세상에게는 폐쇄적이지만, 자연과는 융화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이언적 선생은 이곳 계곡 몇 군데에도 이름을 붙였는데, 
                              계정을 받치고 있는 반석인 관어대(觀魚臺)를 비롯하여, 
                              탁영대(濯纓臺, 갓끈을 풀고 땀을 식힌다는 의미), 
                              영귀대(詠歸臺, 목욕하고 노래를 부른다는 의미), 
                              징심대(澄心臺, 마음을 평정한다는 의미), 
                              세심대(洗心臺, 잡념을 버린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계류, 서원쪽으로 석축을 다시 쌓기 이전인 지난 어느날,
겨울의 끝자락에서 이제 막 오기 시작한 봄과의 갈림길에 서 있는 계정의 모습이다.

이언적의 생가는 양동이지만, 현재 그의 종가는 처가가 있던 옥산의 독락당에 있다.
그의 부친은 양동의 월성손씨에게 장가들면서 고향인 영일을 떠나 양동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그의 아들 이언적이 장가를 들며 양동에서 다시 옥산으로 옮겨 온 것이다.

이 서재는 회재 선생의 나이 42세 때, 당시의 권세가인 '김안로'의 재등용을 반대하여
그 여파로 파직을 당하고 난 후 지어졌다는 것과, 독락당이라는 당호,
그리고 폐쇄적인 건축구조 등은 당시의 그의 심정이 드러나 보이는 단초가 되는 듯 하다.


■ 회재의 시 '독락(獨樂)'

이군수여공음단(離群誰與共吟壇)
암조계어관아안(巖鳥溪魚慣我顔)
욕식개중기절처(欲識箇中奇絶處)
자규성리월규산(子規聲裏月窺山)

무리를 떠나 누구와 더불어 여기서 노래할까
바위에 앉은 새 물 속의 고기들 내 얼굴을 보는 일이 익숙해졌네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 어디인지 알고 싶은지
두견새 소리 들릴 때 달이 산을 빼꼼히 들여다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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