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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문국의 도읍지인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위치한 산운생태공원,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산운마을로 들어가 본다.
산운(山雲)이라는 이름은 금성산 수정계곡 아래에 구름이 감도는 것을 보고
붙여졌다고 한다.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40여 채의 고택이 마을 안에 오밀조밀 모여있다.
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마을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산운마을은 의성에서 대감마을로 불리는 전통반촌으로, 영천이씨 집성촌이다.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잡은 마을 뒤쪽으로는 수 많은 전설을 간직한
금성산(金城山)과 바로 그 옆에 비봉산(飛鳳山)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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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2호인 학록정사는 영천 이씨(李氏) 산운리 입향조(入鄕祖)인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 1531~1609) 선생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영조 26년(1750)경에 건립하였다.
선생은 명종 17년(1562)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강릉부사, 형조참의를 거쳐 강원도
관찰사에 이르렀으며, 임진왜란 때는 강릉부사로서 전공을 세워 당상관에 특진되었다.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으로 팔작지붕과 문틀 등은 당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학록정사 현판은 표암 강세황의 필적이다.
학록정사 강당과 좌측의 관선헌(觀善軒).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인데 중앙 3칸에 대청을 두고 대청 좌우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자연석 막돌쌓기한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대청 전 후면에만 원주가 사용되었다.
대청 후면에는 각 칸마다 벽을 치고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았다.
광덕사(光德祠).
강당 좌후측 광덕사(光德祠)에는 삼부자(학동 광준, 경정 민성, 자암 민환)의
불천위(不遷位)를 합사하고 있으며, 정면 우측에는 관리사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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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제237호인 소우당(素宇堂).
이 건물은 소우(素宇) 이가발(李家發)이 19세기 초에 건립하였고,
안채는 1880년대에 고쳐지었다고 전한다.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마을은 조선 명종년간에
영천이씨(永川李氏)가 처음으로 고향에 들어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가옥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튼ㅁ'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남측 전면에는 'ㅡ'자형 문간채가 있고 문간채의 서쪽에는 외측간이,
안채의 북서쪽에는 내측간이 있다.
안채, 사랑채 일곽(一郭)의 서쪽으로는 별도의 담장을 돌려 공간을
형성하고 원림(園林)을 조성하였다.
원림 중앙부에는 안사랑채 또는 별당으로 불리는 건물을 배치하고,
그 남쪽으로는 연못과 수림(樹林) 및 보도(步道)를 조성하여 정원으로 꾸몄다.
19세기 상류가옥의 멋과 함께 별서(別墅)건축의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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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당(雲谷堂).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74호이다.
이 건물은 현 소유주 이목의 5대조인 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 1768~1859)이
영월부사로 재직하던 1800년대 초기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집이다.
북쪽에 솟은 금성산을 뒤로 하고 남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안채에 사랑방 고방 등이 한 동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평면 구성은
'ㅁ'자형인데 앞채의 좌우에 전면으로 나와 있어 날개집의 한 유형에 속한다.
안채의 왼쪽 뒤쪽에는 사당이 있고 문간채는 한말에 소실되었다.
평면 형태는 'ㄷ'자 형태의 안채와 그 앞 좌측에 'ㄱ'자형의 사랑채,
우측의 'ㄱ'자형의 고방채는 중문간을 통해 연접되어 'ㄷ'자형을 이루어
안채와는 상하 병렬로 연결되어 있다.
1920년대에 일부 개축되었으나 이 마을의 고가옥 중 대표적인 건물이라
볼 수 있다.
운곡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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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75호인 점우당(漸于堂).
이 건물은 현 소유주 이병직의 증조부인 죽파(竹坡) 이장섭(李章燮)이
1900년경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가옥이다.
영천 이씨들이 모여사는 마을 입구 평지에서 남서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운곡당과 담장을 공유하고 있다.
안채는 사랑채와 연결이 되어 'ㄷ'자형의 평면을 이루었고,
맞은편에 'ㅡ'자형의 헛간채가 있어 '튼ㅁ'자형의 평면 배치를 하고
남동쪽으로는 대문채가 자리하고 있다.
평면 구성이나 목구조 기법에서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으나, 부근에
운곡당, 소우당 등이 인접하고 있어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살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예가 되고 있다.
참조/ 현장 안내판.
가은오픈세트장은 제1, 제2, 제3촬영장 등 세 개의 촬영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3촬영장부터 역순으로 돌아보기로 한다.
그 입구이자 출구이기도 한 성곽의 모습으로 안내 팸플릿에는
요동성이라 표기된 곳이다.
제3촬영장은 요동성과 성내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성 위에 올라보니 초가집과 관아, 그리고 약초와 술을 파는 시장이 있는
성내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조그마한 미니마을이라 할 수 있겠다.
가은오픈세트장은 부지면적 43,999㎡에 건축면적 3,189㎡의 규모로
실제 현존하는 고구려성의 답사와 수개월간의 자료조사를 거쳐
충분한 고증을 바탕으로 고건축 복원공법을 통해 재현한 세트장으로
2006년 6월에 완공되었다.
SBS의 '연개소문'을 시작으로 '세종대왕', '왕녀 자명고', '천추태후', '선덕여왕',
'계백', '근초고왕', '광개토대왕', '뿌리깊은 나무', '대왕의 꿈', 영화 '군도',
'정도전' 등이 이곳 가은오픈세트장에서 촬영되었다.
인접한 제2촬영장.
제2촬영장은 안시성과 성내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로 구성된 성내마을.
제2촬영장의 안시성을 나와 제1촬영장으로 향한다.
맞은 편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은 제3촬영장의 시설물들이다.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산길을 굽이돌아 오르니 제1촬영장의 평양성이 맞아준다.
제1촬영장은 평양성, 고구려궁, 고구려마을, 신라마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2, 제3촬영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주막과 대장간 등이 있는 고구려 마을.
고을의 양반들이 살았음직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신라궁, 그런데 효율적이게도 다른 한 쪽은 고구려궁으로
한 건물에 두 개의 궁궐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고구려궁 뒤쪽으로는 김유신, 김춘추, 연태조의 집을 비롯하여 민가,
대장간 등이 세워져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오픈 세트장은 총 35여 곳이라 한다.
대부분의 세트장이 수익을 창출하는 곳은 전무한 실정에서
이곳 문경의 문경새재오픈세트장과 가은오픈세트장은 유료관객
66만명 이상으로 상대적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 케이스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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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교내에는 민속촌이 자리해 있다.
1975년, 교내부지 2만여 평 위에 조성된 이 민속촌에는 안동수몰지역과
경주, 칠곡에서 옮겨온 옛집들, 그리고 경주 인왕동 고분군 복원지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조선시대 여러 계층의 주거문화를 골고루 접해볼 수 있다.
쌍송정(雙松亭).
원래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에 위치해 있던 것을 봉화 금씨
금혜 선생 후손들의 소개로 1975년 7월 이곳으로 옮겼다.
쌍송정은 금혜(1399년~1484년) 선생이 북지리의 본가 옆에 서재로 지은
별당이다.
선생은 호를 쌍송정이라 하고 이 건물 앞에 용트림하는 소나무 두 그루를
심어 즐겼는데, 쌍송정이라는 건물 이름 역시 이로부터 유래되었다.
현재의 이 건물은 약 300년 전에 다시 세운 것으로 순조(1821년) 때
허물어진 곳을 크게 한번 손질한 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하였다.
일휴당(日休堂).
일휴당 금응협(琴應夾) 선생이 제자를 교육하기 위하여 지은 별당으로,
원래 경북 안동시 예안면 오천동에 위치하였으나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금응협 선생(1526년~1586년)은 쌍송정 금혜 선생의 후손이며 벼슬은
익찬(翊贊)을 지냈고, 퇴계 이황의 문인(文人)으로 오천(烏川) 7군자(君子) 중의 한 사람이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조 정조 11년(1787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건물 앞면은 툇마루이며 그 뒷편에 대청을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방을 두었으며
팔작지붕을 얹었다.
화산서당(花山書堂).
원래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리에 소재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0호이다.
화산서당은 조선 효종 2년(1651)에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석적면 성곡리 화산(花山) 아래에 건립한 서당이다.
그 후 사림(士林)의 공의(公議)에 따라 헌종 6년(1840)에 석적면 중리로 이건되었으며,
철종 4년(1853)에는 묘우(廟宇) 낙성과 더불어 화산서원으로 승원(陞院)되어
만회당의 봉향지소(奉享之所)가 되었다.
그러나 고종 8년(1871)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묘우는 훼철(毁撤)되고
강당만 남게 되면서 화산서원은 다시 화산서당으로 되었다.
1989년 화산서당의 강당과 대문채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0호로 지정되면서
1990년 한차례 보수하였으나 주변의 개발로 인하여 건물이 점차 쇠락되어 가는 것을 보고
영남대학교가 2009년에 민속촌으로 이 건물들을 이건 복원하여 보존하고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서당으로서는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인데,
평면은 6칸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꾸민 형태이다.
5량가(五樑架)의 팔작 기와집이며,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경주 맞배집.
원래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에 있던 집으로 황룡사지 발굴과 함께
1976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이 집은 一자형 모양을 하고 있는데 왼쪽으로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너방 순으로 되어 있다.
맞배집의 특징 중 하나는 형식적인 공간나눔을 철저히 줄이고, 작은 공간에서도
여러 가지 기능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데 있다.
평민들의 가옥이라 할 수 있는 3칸 초가와 그 기본 모양과 기능이 같다고 할 수 있다.
놀이마당에는 기다란 그네가 설치되어 방문객들을 즐겁게 한다.
의인정사 담장 밖으로는 벚꽃이 만개해 있고...
의인정사(宜仁精舍).
조선조 성리학의 큰 스승인 퇴계 이황 선생의 후손으로 진보현감을 지낸
이중철(李中喆)이 1887년에 지은 집으로, 원래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의인마을에 위치했었다.
이 집의 택호(宅號)는 진보댁(眞寶宅)이었으나 1976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면서
이 집에 있었던 의인마을의 이름을 따서 의인정사라 하였다.
이 집은 모두 56칸으로 전형적인 안동 양반집의 하나이다.
안채, 사랑채, 아래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랑채는 바깥에 개방하여 남성공간의
중심으로 삼고, 안채는 중문으로 막아 여성공간의 중심으로 삼았다.
집 입구 대문 옆에는 행랑채를 세우고, 안채 부엌 뒷편 외진 곳에는
찬모방(饌母房)과 디딜방아간을 두었다.
구계서원(龜溪書院).
원래 경북 안동시 월곡면 미질동에 위치해 있었으나 안동댐이 들어서면서
1975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구계서원은 고려말 유학의 큰 스승인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을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
숙종 22년(1696)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으며, 숙종 39년(1713)에
이건하여 구계서원이라 개칭하였다.
고종 8년에 훼철되어 건양 1년(1896)에 복원되었다.
구계서원의 부속 건물인 모현사(慕賢祠).
서원을 옮겨올 당시에는 독역재(讀易齋) 건물밖에 없었으나 2000년 11월 27일 묘우(廟宇)인
모현사(慕賢祠), 모현사의 삼문(三門)인 내삼문(內三門), 동, 서재인 일신재(日新齋)와
시습재(時習齋), 그리고 서원의 대문인 진덕문(進德門)을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참고 / 현장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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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이지만 이질적이지 않으며,
배척하기 보다는 서로 어울리며 끌어안는 삶.
그것은 바로 공생이며 자연의 모습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람들은 이를 자연이라 부른다.
정적, 고요, 나른함이 느껴지는...
삶의 재충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휴식.
자연 속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자연이 된다.
자연이란 마음속에 잠재된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평온과 안식을 원한다.
생활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자연,
원래의 그 자리는 아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공물도 자연으로 변화되어 간다.
자연이란 나약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로써의 자연은 원래 있는 그대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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