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 그리 험하지도 않고 아기자기한게 아주 포근하게 느껴졌네요.
그래서인지 나무와 잡풀까지도 다른 산과 달라 보이더군요.
저는 사정상 범어사와 북문을 통해 고당봉에 이르는 비교적 간단한 코스를 택했지만,
동문을 거쳐 남문, 서문까지 걸어보는 것도 아주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언제나 산을 한쪽 가슴에 품고 다니시는 ***님,
부디 훗날 좋은 산 아래, 사진 갤러리가 있는 멋진 카페의 꿈을 이루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범어사만으로도 충분히 갈만한 곳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조금 섭섭한 느낌도 없지는 않지요.^^
신발 때문에 다소 불편은 하셨겠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더 기억에 남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뒤죽박죽 여행이 추억으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은 좌우로 나눠 패싸움을 하는 꼴과
다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동네 패싸움같이 유치하게 말이죠.
대의적인 시각으로 보면 별 것 아닌데도 사사건건 대립만 거듭하다보니
그걸 바라보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저 답답할 밖에요.
진정 의식개조가 절실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다 나름의 명분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겠지만 집단적인 행동은 자제를 해야겠지요.^^;;
그 때에 비하면 요즘은 지나칠 정도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각종 SNS등이 출현함으로써 의사표현의 방법도 많이 다양해지기도 했지요.
어쨌거나 하루빨리 갈등이 없는 세상이 와야할텐데 말이죠.;;
저는 이런 민주화운동에 직접 참여한 세대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열매를 따먹기 시작한 세대라고 할 수 있지요 ..
우리가 이런 민주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이 때 앞장서서 나아간 선배들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배우고 느끼게 됩니다..
물론, 민주화 세대는 아니시지요...ㅎㅎ
바라건데 그 열매가 독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화든 자유든.. 당시에 비해 지금은 더 이상 누릴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신장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런 자유 뒤에는 책임감이 동반한다는 사실도 늘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종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자유는 공기같은 것...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누려야겠습니다.^^
잘하셨습니다.^^
특히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보니 민주주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가치가 돈으로 매겨지는 세상이 되다보니 참으로 부작용이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집을 짓는 경우만 하더라도 돈을 아끼느라 투자를 적게하면 부실공사로 되돌아 오듯
모든 면에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 그것은 또 양극화 현상을 불러오게 되고...
참으로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욕심없이 재물에 초연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게 참...;;
첫번째 사진은 무속인들이 태극기를 사용하는 것 같고
다섯번째 사진은 황매산에 있는 태극기로 보이네요.
태극기앞에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위에서 지적한대로
각자 서로 다른 태극기를 내세우며 분열하고 있어 아쉬움이 큽니다.
소중한 한표를 하는 날이지만 분열을 보여주는 날이기도 합니다.
농악은 정말 흥겹습니다..
제가 사는 곳도 농악이 워낙 유명한지라 ..
종종 공연을 보게 되는데요 .. 볼수록 신나요 ..
단순히 옛날 음악이라는 한계가 아닌 ..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큰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청도 차산농악이 영원히 이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자주 접할 수 없는 장르이기에 낯설어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런 농악과 기본 DNA가 같은 우리들이기에 막상 접하게 되면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함께 몰입할 수 있는 그런 장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다소 어색한 분위기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동적인 한마당으로 변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더군요.^^
말씀대로 유형, 무형의 우리 전통 문화는 영원토록 계승되고 발전되어 나가야 겠습니다.
우리것은 소중한 것이니까 말이죠.ㅎㅎ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의 농업은 우리네 삶의 뿌리와 마찬가지였으며
어쩌면 이는 필연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농부들은 고된 시름을 잊기위해 농요를 만들어 불러가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힘을 얻기도 했을테고,
농악은 농사의 단순함과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궁여지책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더불어 수확 뒤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한 하나의 축제의식으로 봐도 될 것 같네요.
모르기는 해도 이 모든 행위는 오롯이 우리네 삶과 직결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공동체적 상징물 아래 모두가 똘똘 뭉치던 그 시절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아쉽기까지 하네요.;;
어린 시절에는 이런 풍물패가 마을을 돌며 한바탕 신명을 떨치던 그런 때가 있었는데 말이죠.^^
우리의 전통은 언제봐도 멋있습니다...
덕수궁의 수문장 교대의식에도 눈길이 더욱 가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와 .. 우리의 전통을 보고 감동하는 것 같습니다..
교대의식은 저도 보고 싶은대.. 이게 또 쉽지가 않네요 .. ㅋㅋ
솟대와 장승은 종종 만나지만 ..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찾지 못했습니다..
솟대가 더욱 인상적이군요 ..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듯
외국인의 눈에는 이색적으로 비춰졌던 모양입니다.^^
라오니스님처럼 우리의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구요,
교대의식은 특정한 시간에 맞춰서 하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보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시선을 좀 더 가까운 지역으로 당겨 보았다.
바다 위로는 크고 작은 배들이 떠 있고 그 뒤로는
작은 섬들이 중첩되어 이색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저 비밀스럽기만 한 하롱베이의 속살을 살며시
들여다 보는 기분이다.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 동북쪽으로 3~4시간여의 거리에 있는
수 많은 섬들과 바다가 빚어내는 절경이 있는 곳이다.
하롱베이.. 그곳에 한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선착장에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이 배들은 화장실과 주방이 갖추어져 있으며, 대게 1층은
테이블이 마련된 객실로 사용되고 2층은 테라스 공간으로
탁트인 전망을 볼 수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파도가 없는 곳이라 장시간 머물러도 무리가 없다.
수 많은 배들 중 하나에 올라 이곳 하롱베이의 탐승(探勝)에 나섰다.
베트남 최고의 경승지로 불리는 하롱만은 120km에 이르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면적은 약 1,553㎢에 이르고
1969개의 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배가 움직이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조그만 동력선이 하나 따라 붙는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열대 과일을 싣고 다니며
손님을 찾아 다니는 배로, 옷가지가 널려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선상에서 생활을 하는 것 같다.
배가 다가오더니 꼬마가 과일을 손에 들고 창 안으로 고개를 내민다.
이들은 때로는 어린아이를 앞세워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 과일이 놓여지고, 시선은 천천히 바다위를 향한다.
위/ Mang cut(망꿋)이라 부르는 망고스틴(Mangosteen).
아래/ 촘촘히 털이난 듯한 과일은 쫌쫌(Chom Chom)이라
부르는 람푸탄(Rambutan).
그리고 동글동글한 과일은 콰 냔(Qua nhan)이라 부르는
용안(龍眼, Longyan)으로, 껍질을 까면 씨가 마치 용의 눈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육은 포도같이 반투명하고 즙이 많고 단맛이 강하다.
하롱베이는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품 중 하나로
가히 베트남 최고의 절경일 뿐만 아니라 세계 8대
비경에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 인도차이나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바다의 계림,
혹은 세계 3대 절경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도 한다.
온갖 모양의 섬들이 바다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다.
하롱은 하룡(下龍)의 베트남식 발음으로, '용이 내려온 자리'라는 뜻이다.
이곳 사람들이 외적의 침입을 받아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용이 내려와 여의주를 내뱉어 외적을 물리쳤다는데
마음 같아서는 걸림없이 어딘가로 훌훌 떠나고 싶지만 삶의 비애라 할까요,
당장 눈 앞에 놓인 무시못할 현실 때문에 자꾸 주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님의 경우에는 일주일 중 짧은 하루의 시간을 이용해서
일주일분의 활력소를 듬뿍 충전해 오시기 때문에 그다지 크게 아쉬우실 것은 없을 것 같은데요.ㅎㅎ
따지고 보면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세월이 남긴 흔적이 아닌가 합니다.
심지어 인공적이기는 하지만, 금방 세워진 건물 조차도 하나의 세월의 탄생으로 볼 수도 있을테고 말이죠.^^;;;
그러나 이는 노후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짧은 유한성을 지닌 반면,
아마도 자연은 오랜 시간동안 켜켜이 역사를 기록해가며 숙성하듯 서서히 변화해 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 가치있고 더 소중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우선.. 달달한 과일이 땡기는군요... ㅎㅎ
그리고 파도가 없다는 것도 좋구요.. 제가 배멀미를 좀 합니다... ^^
본격적으로 다음번 포스팅에서 보여주시겠지만서도..
이렇게.. 하롱베이를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ㅋㅋ
용의 여의주가 어떻게 변신했는지.. 기대가 되는대요.. ^^
그러실줄 알았습니다.^^ 이제껏 라오니스님의 포스팅을 접해 오면서
미식가이시다는 것은 물론, 간간히 연약함도 내비친 적이 있으셔서
멀미에도 약하시리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요.ㅎㅎ
그렇지만 만약 이곳에 가시게 된다면 그런 우려는 전혀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수 많은 여의주 모두를 보여드리고 싶지만 저 역시도...^^;;;
북경의 관문인 거용관 장성이다. 팔달령 만리장성과 더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북경에서 북서쪽으로 약 6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왼쪽 건물은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關)'이라는 문루이며, 그 우측에는
화포로 중무장할 수 있는 이층 벽돌건물의 돈대가 세워져 있다.
생각보다는 꽤 큰 규모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이자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우기도 하는
만리장성은 그 시원을 보통 진나라 시황제 때로 잡지만, 그보다 훨씬전인
춘추시대(BC770~BC443)때 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들어서면서 북쪽 흉노족의 침입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들 성벽을 연결, 증축한 것이다.
이후 당, 송, 원나라를 거치며 보수를 계속하였으며, 명나라때 대대적인
개축이 있었다 한다.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장성을 오르면서 내려다 본 문루와 망루.
북경으로 들어가는 천하의 요새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 거용관이 처음 축조된 것은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때였다.
당시에는 거용새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그후 1368년 명나라 시조인 주원장이 원나라가 침입할 것을 대비해 보수 및 증축을 했다.
명대 이전 베이징의 최종 방어선이었기 때문에 이 부근의 장성은
몇 겹의 복잡한 축조가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서 거용관은 가장 안쪽에 위치한다.
두 번째 돈대까지는 넓은 길이지만, 그 위로 부터는 비좁은 계단길이라
정체가 빚어진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장성의 길이는 2,700km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길이가 약 6,400km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의 만리장성은 중국 동쪽 보하이만의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시작하여
서쪽 타클라마칸사막의 자위관(嘉峪關)에서 끝이난다.
발 아래로 성벽이 길게 뻗어있다.
저 아래쪽 강물을 가로질러 돈대가 세워지고, 맞은편 산을 타고 계속 이어진다 .
만리장성은 모두가 똑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쪽 보다는 동쪽이 더 견고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성벽은 평균높이 7.8m, 평균폭은 윗부분이 5.8m, 밑부분이 6.5m로,
이는 성벽 위로 말 5~6마리, 또는 병사 10여명이 나란히 갈 수 있는 너비이다.
그 위에 100여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아래쪽 건물은 황제가 이곳으로 행차했을 때 거처할
행궁과 사당, 그리고 주둔군을 위한 시설들로 보인다.
사랑의 자물쇠... 이곳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켠에는 옛 병기들을 복원하여 전시해 두기도 했다.
길게 늘어선 깃발은 바람에 휘날리고...
2009년 4월,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을 산해관장성에서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후산(虎山)장성'으로 수정하여 발표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의 총 길이는 8851.8km라고 주장했다.
2008년까지는 베이징 인근의 산해관이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여겨졌지만,
2008년 12월 국가 조사팀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던 후산장성을
발견하면서부터 동단을 이곳으로 수정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고학계는 후산장성이 고구려인들이 쌓은 고구려성으로
판단하고 있어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30만명의 군사를 비롯하여 수 백만 명의 백성과 죄수를 동원해 건설되었고,
그 중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인원이 희생되기도 하여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혹평까지 듣기도 하는 만리장성...
그 곳과 관련하여 생겨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 뒤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숨어있다고 한다.
옛날 진시황이 만리장성의 대역사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신혼생활에 빠져있던 어느 남녀가 한달여만에 남편이 부역장에 징용을 당하고 만다.
일단 징용이 되면 그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그 젊은 부부는 생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름다운 부인은 아이도 없는 터...
어느날, 혼자 살고 있는 그 외딴집에 나그네가 찾아들었다.
남편의 나이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한 명이 날도 저물고 갈길도 멀어 하룻밤 재워 주기를 간청한다.
끈질긴 요청에 결국 거절 할 수가 없어 방 한칸을 내어주게 되고, 혼자사는 연유를 물어오자
남편이 만리장성으로 부역을 가게 된 사정을 이야기 한다.
밤이 깊어지자 아니나 다를까 나그네는 남편도 돌아오지 못하는데 이렇게 혼자 살다 죽으면
너무 허무하지 않겠느냐고 추근대기 시작하고...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에 여인은 꾀를 내어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 들이겠다고 하고
그대신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남편과는 결혼식을 올렸고 잠시라도 함께 산 부부간의 의리가 있으니, 단지 부역장에 가서
언제 올지도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신을 그냥 따라나설 수는 없는 법,
그러니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벌 싸 드릴테니 날이 밝는대로 제 남편을 찾아가서
갈아 입을 수 있도록 전해 주시고, 그 증표로 글 한 장만 받아주십시오.
어차피 살아서 만나기 힘든 남편에게 수의라도 마련해 주는 기분으로 옷이라도 한벌
지어 입히고 나면 당신을 따라 나선다 해도 마음이 무겁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사내놈... 그거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지라, 흔쾌히 그렇게 하겠노라 하고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사내는 여인이 준 옷 한벌이 든 보자기를 가지고 길을 떠났고,
부역장에 도착하여 감독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면회를 신청했다.
그러나 옷을 갈아 입으려면 공사장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한 사람이 작업장을 나오면
그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꾸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잠시 교대를 하기로 했다.
보따리를 전해 받은 남편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보자기를 펼쳤는데 그 속에서 편지가 떨어졌다.
'당신의 아내 해옥입니다. 당신을 공사장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한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간 남자와의 일을 두고 평생 허물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시면
이 옷을 갈아입는 즉시 제가 있는 집으로 돌아 오시고, 혹시라도 그렇지 아니하다 하시면
그 남자와 교대해서 공사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십시오'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남편은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갔고, 이후 아들 딸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글쎄말입니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아무런 희생없이 이런 결과물이 생겼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 그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었던 '인해전술'이라는 것이 생각나는군요.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로서는 여전히 경계해야 될 대상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가? 당신에겐 저 드높은 함성이 들리지 않는가? 그리고 그 한가운데 당신이 서 있다는 걸 스스로 발견하고 있지는 않은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깃발은 선동적이며 인간을 흥분시킨다 . 삶이라는 깃발아래, 그 경기장에서 치열하게 몸으로 부딪히는... 이기는 자는 과정을 중시하고 지는 자는 결과를 중요시 한다고 했던가? 당신은 몇등인가? 아니, 달릴때 당신은 어떠했는가. 혹 그 깃발아래 흥분과 희열을 느끼며 승부에만 너무 집착하지는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