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족의 생활상을 살짝 엿보고 난 후, 그들의 배웅속에 되돌아 나온다.
함께했던 그 꼬마도 쫒아 나왔다.
녀석의 똘망한 눈동자가 강한 인상으로 각인된다.
이제껏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땅,
그 위의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길을 재촉한다.
로복강에서 20분 거리인 안경원숭이 보호센터에 가면 이곳 보홀섬에서만
볼 수 있다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영장류인 안경원숭이를 볼 수 있다.
학명은 '타르시어(tarsier)'로, 영화 그렘린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이 녀석들은 몸 길이가 불과 8 ~16cm에 불과한데다, 안경을 쓴 듯 눈이 커서
앙증맞은 생김새를 자랑한다.
야행성이라 낮에는 죽은듯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으며, 인위적으로 서식지를
옮기면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하는 탓에 이곳 보홀섬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야생 타르시어 원숭이는 실제로 보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멸종 위기종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탓에 필리핀 정부가 관광객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이 지역에서만
전시를 허용하고 있으며. 현재 1000여 마리 정도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안경원숭이는 눈은 부엉이 눈, 꼬리는 쥐꼬리, 발가락은 개구리 발가락과 흡사하다.
야간에 메뚜기, 귀뚜라미 등의 곤충을 잡아 먹으며, 눈동자가 고정되어 있어
고개를 돌려야 다른 쪽 사물을 볼 수 있다.
대신 좌우 180도, 모든 방향으로 목을 돌릴 수 있다.
번식력이 낮아 1년에 1마리 정도의 새끼만을 번식하며, 평균 수명은
야생일 경우 24년이지만 포획 타르시어는 절반인 12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오락가락하는 비.. 궂은 날씨 속, 그것도 실내이다 보니 사진 상태가 좋지 않다.
원칙적으로 카메라 플레쉬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탓도 있겠지만,
쉽게 볼 수 없는 녀석들이기에 딱 한번 모른척 플래쉬를 터뜨려
제대로 담아보고자 하는 욕심이 앞섰으나 그러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녀석의 커다란 눈망울 때문으로 플래쉬 불빛으로 놀라게 될 것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큰 스트레스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행성인데다가 환경에 예민하며, 눈동자까지 고정되어 있다니
더더욱 그럴수는 없었다.
한동안 열심히 달려가다가 갑자기 도로 양 옆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나타나면서
마치 터널을 지나는 듯 시야가 어두워진다.
Man made Forest 라고 불리우는 마호가니 인공숲으로,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길이 약 2km정도에 걸쳐 펼쳐진다.
숲을 지나 얼마간 달리니 들판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제껏 보아왔던 풍경과는 뭔가 다르다.
계속되는 주위의 지형이 마치 평지에 거대한 봉분이 놓여있는 듯한
특이한 형상을 보인다.
아마도 목적지에 가까이 왔다는 신호인 것 같다.
그런데 잔뜩 찌프려 있던 하늘에서 또 다시 비가 쏟아진다.
로복강에서 1시간여를 달리면 얼마전 선정한 신 7대 세계 불가사의의
후보 중 하나였다는 초콜릿힐(Chocolate Hills)이 나온다.
그곳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탁빌라란시에서 약 55km 떨어진 보홀섬 중앙의 대평원에는 짧은 풀로 뒤덮힌
우리나라의 고분군을 연상케 하는 언덕 1,268개가 솟아있다.
이 언덕은 모양이 일정하고 높이가 대부분 30~50m 정도로,
그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해발 550m 언덕위에 전망대를 마련해 두었다.
사진 아래쪽으로 보이는 214개의 계단을 오르면 주위를 조망할 수 있다.
원래는 212개 였는데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발렌타인데이에 맞춰
2개의 계단을 더 놓았다고 한다.
이 언덕은 먼 옛날 바닷속에 있던 섬이 위로 천천히 솟아 오르면서
두껍게 쌓여있던 산호 퇴적층이 공기를 머금어 마치 이스트(yeast) 작용처럼
부풀어 올라 만들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딱딱한 산호 퇴적층 때문에 뿌리가 깊은 나무는 자랄 수 없고
토양에 염분과 칼슘 성분이 많아 풀만 자라 덮히게 되는데, 건기가 되면
풀들이 말라서 초콜릿색인 갈색을 띄어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비가 그치고 잠시 희미하게나마 햇볕이 비치는가 싶더니
또다시 종적을 감추고 만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약혼자가 있는 처녀를 짝사랑한 아로고라는
거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연모(戀慕)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녀를 들쳐 안고 줄행랑을 치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너무 꽉 껴안는 바람에 처녀가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날 이후, 슬픔에 잠긴 아로고가 며칠 밤을 울면서 흘린 눈물이 쌓여
바로 이 언덕이 되었다고 한다.
전망대 위에는 종이 하나 있다. 종 아래 쪽으로 동전을 던져 넣고 울리게 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2008년 8월 1일,
중국 1호점으로 개관한 우리나라의 롯데백화점.
왕푸징(왕부정)은 약 1km거리 양편으로 약 180여개의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베이징 최대의 번화가이자 상점가로,
한국의 명동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700여년전 원대 왕조의 여러 기관과 왕족들의 저택인
왕부가 몰려 있었으며, 명대 때부터 이미 상업활동이 활발했었다고 한다.
당시 황실의 우물이 있었기에 그 이름을 따서 왕푸징이라 부른다.
1955년 중국 정부의 투자로 세워진 국영백화점이자
베이징 제1호 백화점인 베이징백화점.
시계탑은 왕푸징의 상징이 되고 있다.
사실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대형 백화점에서부터 소규모의 상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서 찾지 못할 아이템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동양 최대의 쇼핑몰인 동방신천지를 비롯하여 동방광장, 신동안시장,
그리고 왕푸징의 역사와 함께 한 동안시장, 백화대루 등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오른쪽 건물은 북경에서 1,2위를 다툰다는 대형서점인 왕푸징서점이다.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합작품이라는 왕푸징 교당(敎堂).
북경 4대 천주교 성당 가운데 하나로, 명나라 말기에
2명의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이 곳에서는 중국의 특이하고도 다양한 먹거리들과도 만날 수가 있는데,
간식으로 유명한 샤이오츠지에(먹자거리)와 꼬치로 유명한 꼬치거리까지
가까이 포진하고 있어 입까지 즐겁게 한다.
길 건너로는 왕푸징의 명물인 꼬치거리로, 꼬치를 파는 포장마차가
도로를 따라 약 100m에 걸쳐 줄지어 서 있다.
하늘의 비행기, 땅 위의 책상, 그리고 바다의 잠수함을 빼고는 모두 다
먹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바로 이들 중국인들을 두고 한 말일터...
전갈, 불가사리, 해마, 지네 등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하고도
이색적인 음식들을 맛볼 수가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가을엔 붉은 잎만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은행나무도 가을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고 한다.
밝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로등이라도 밝혀 놓은 듯,
거리는 온통 노란색의 물결들로 일렁거린다.
보이지는 않아도, 풍경 속 사람들 조차 덩달아 환한 표정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곧 다가올 이별의 순간을 의식이라도 하듯,
강렬한 기세로 애써 시위라도 하는 듯 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그래서 절정은 오히려 더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안타까움...
멀어져 가는 가을이 그저 아쉽기만 할 뿐이다.
최근 가까운 친척 한 분이 산행을 함께 하자고 했다.
가뜩이나 엉덩이가 무거운 성격이라 망설이고 있자니, 산행지가 영남알프스란다.
순간, 바로 일전에 봤던 유레카님의 산행사진이 떠올랐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간밤에 내리던 비는 그치고 흐린 하늘 한켠으로는 파란 하늘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점차 맑아질 것 같은 상쾌한 기분으로, 영남알프스라 불리우는
간월산과 신불산이 위치한 울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목적지에 가까와질수록 점점 더 흐려지더니 급기야 비가...
점차 개일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기다려봐도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결국 서둘러 우의를 구입해 산행을 시작했다.
출발지는 등억온천지구 간월산장, 산길을 한참이나 오르고 나니
포장된 임도가 나타났다. 간월재로 오르는 길이었다.
구절양장... 굽이굽이 저 길을 따라 한참이나 올라왔다.
간월재에 도착하니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짙게 낀 운무 때문에 주위사정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간월재 표지석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간월산(肝月山 1,069m)을 오르기로 했다.
좁은 산길 곳곳에는 물이 고여있어 질퍼덕하더니 급기야 바지를 흙탕물로 도배하고 만다.
예상보다는 한참을 걸어 정상석에 눈도장을 찍고 주위를 돌아 보지만
보이는 것은 여전히 짙게 낀 운무 뿐...
곧바로 간월재로 내려와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혹시라도 운무가 조금이라도
걷히지 않을까 하고 기다려 봤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신불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순간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하늘로 향하는 계단 같은, 예상치 않던 장면에 신비한 느낌마져 들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운무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나무데크를 밟으며 능선을 오른다.
길을 따라 빗물은 그대로 흐르고, 그 때문인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져 내린듯한
데크의 나무계단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산길이 으레 그렇듯이 편안한 길은 아니지만, 분명 정비는 필요할 듯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 그 길에 의지하여 꾸역꾸역 오르고 또 오른다.
신불산(神佛山 1,159m) 정상을 찍고 신불재를 향해 내려간다.
운무가 조금씩 걷혀가는 듯 하지만, 저 앞쪽이 억새군락지인
신불평원일텐데도 조망은 신통치 않다.
그곳에서 잠시 또 숨을 고르고...
주변을 막 둘러보려 하는데 일행이 빨리 오란다. 원점회귀 산행이다 보니
내려갈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이쪽 길은 간월산장과는 무관하단다.
그래서 부랴부랴 왔던 길을 되돌아서 다시 신불산 정상에 섰다.
신불산과 두번째 만나는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정상 바로 옆으로 난 길이 그곳과 연결이 된다고 누군가가 조언해 준다.
공룡능선이라 길이 험해 계속적으로 우회로를 찾아가야 한다는 주의를 덧붙이면서...
신불산을 다시 오르면서 만난, 같은 처지의 다른 두 팀과 함께 일단 내려가 보기로 한다.
그런데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능선이 칼날 모양이다.
공룡능선을 타기 전에 좌측길로 빠져야 한다는데, 그 길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 공룡능선까지 더 내려와 버린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안내표식도 거의 없고 우회로 또한 크게 선명하지 않으니...
결국 그대로 강행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다시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런데 왔던 길을 되돌아 가봐도 옆길은 예측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험한 길이라는데, 하산할 시간은 빠듯하고...
결국 이쪽 길을 포기하기로 하고 또 다시 신불산으로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신불산 정상과 만나는 세번째 길이었다.
다시 시작하는 하산길... 평탄한 길 때문에 마음은 다소 가벼워졌다.
그래도 지체는 할 수 없는 노릇, 서둘러 걷는다.
그런데 간월재가 눈에 들어올 즈음 갑자기 시야가 맑아진 느낌이다.
하늘 한켠으로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운무에 갇혀있던 간월재가 드디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간월재 옆 도로에는 자동차가 길게 이어져 있고...
아까 지나올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풍경을 즐길만한 여유조차 없다.
서둘러 산을 내려가야만 될 형편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오를땐 조망하지 못한 간월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석양의 빛을 받아 발그스름하게 붉어진 모습이다.
아니, 드러내지 않았던 얼굴을 이제서야 보이게 되었으니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모양이다.
아쉬운 마음에 간월재 표지석을 다시한번 쳐다보고는 발길을 재촉한다.
보아하니 우리 일행 뒤에는 아무도 없는 듯 하다.
그저 쫓기듯 앞만 보고 열심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을 시점이 되어서야 간신히 주차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영축산까지 가서 억새도 마음껏 감상해 보고 싶었지만, 사전준비없는
무대뽀 산행이다 보니, 엉뚱한 곳에서 체력을 너무나 많이 소비해 버렸다.
하룻만에 신불산을 세번이나 보다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만약의 경우 어두운 산길을 대비해서 가벼운 랜턴 하나 정도는
꼭 가지고 다녀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 영남알프스란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천황산(재약산, 1,189m), 신불산(1,159m),
영축산(취서산, 1,081m), 고헌산(1,034m), 간월산(1,069m) 등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과
청도군 운문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에 위치한 높이 1,000m이상 되는 7개의 산군(山群)을 말한다.
(네이버백과사전)
한라산 중산간지대에 위치한 이시돌목장.
목장보다는 천주교 성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그곳을 스치듯 지나간다.
초원 위로는 병풍같이 둘러쳐진 나무들이
뒤쪽의 한라산을 호위하듯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시원한 초록의 융단이 펼쳐졌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몇 가닥의 전깃줄은 큰 전신주를 꿰 찬채
어디론가를 향해 끊임없이 달아나기만 하고...
시원하게 쭉 뻗은 길보다는
구불구불 휘어져 감도는 길이 더 정감이 간다.
직설적이지 않은 은근함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허리를 쭈욱 펴고 길을 따라 도열하듯 늘어선 나무들...
그 사이를 지나자니 괜히 마음이 우쭐해진다.
이곳에 나무가 없다면 그저 시원하게만 보여질까.
새삼 나무가 고맙게 생각된다.
길을 가다가 만난 특이한 형태의 집,
이른바 테쉬폰(Cteshphon)이라고 부르는 집이다.
그 옆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다.
이라크 바그다드 가까운 곳에 테쉬폰이라 불리우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이 건축물의 기원을 찾을 수 있기에 이러한 양식의 건물을 테쉬폰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지금도 약 2천년전 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사한 형태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곡선형으로 연결된 쇠사슬 형태의 구조 때문에 그 오랜 세월, 거센 태풍과
지진으로 부터 온전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곳 이시돌에는 1961년도에 처음 목장에서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건축되었고,
이후 조금 작은 크기로 제작해 돈사로도 사용을 했으며, 1963년에는 사료공장,
1965년에는 협재성당을 건축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협재성당은 아직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테쉬폰 주택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이곳 이시돌에만 있다.
길을 가다가, 저쪽 멀치감치에서 풀을 뜯고 있던 말 한 마리가
적적하고 외로워 보이길레 멈추어 섰다.
그러자 그 녀석도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운듯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런데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그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할 뿐, 더 이상 접근을 않는다.
한참을 쭈뼛거리며 그렇게 서 있더니 결국 제 자리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만다.
보아하니 내 얼굴을 보고서는 자못 실망했다는 표정이다.
정말 괘씸한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