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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에 위치한 활엽수림인 계정(桂亭)숲.
수령 10~250여년 된 이팝나무 외 538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고 있으며
1997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능묘 입구에는 자인에서 관직을 지낸 사람들의 공덕비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한(韓)장군 묘.
이곳은 신라 혹은 고려 때 도천산에 왜구가 출몰하여 주민을 괴롭히자
한장군이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여원무(女圓舞)를 추어 도천산 아래
버들못(柳堤池)으로 왜구를 유인, 칡그물로 가두어 검흔석(劍痕石)에 올려놓고
참수시켰다는 한장군의 묘이다.
1968년 8월 자인중고등학교 본관 건물 신축을 위해 공사중 석실묘가 발견되어
발굴조사를 한 결과, 두개골이 포함된 유골과 은으로 장식한 갑옷 투구,
녹슨 철제창, 그리고 많은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묘를 한장군의 실묘(失墓)라고 확정하고 출토된 부장품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옮겼으며, 유해는 1969년 5월 10일 이곳에 옮겨 한장군 묘를 만들어 매년 단오절에
한장군 제를 올리고 있다.
지금은 그 부장품이 2011년 12월 29일 대구박물관으로 이거(移去)되어 보관, 소장하고 있다.
진충묘(盡忠廟).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경산자인단오제 여원무의 주인공인 한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며, 일제 때 일본인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으나 해방 후
북사리의 한당(韓堂)을 계정숲에 이건(移建)하여 현재의 진충묘가 되었다.
정면3칸 측면1칸 맞배지붕의 사당이다.
자인현청의 본관이었던 시중당(使衆堂).
1637년(인조15)에 자인현감 임선백(任善伯)이 건립한 자인현(慈仁縣)의 정청(政廳)으로
일명 무금헌(撫琴軒)이라고도 하는데, 여러차례 이건하였다가 1980년에
현재의 위치인 계정숲으로 이건하였다.
이 숲은 한장군을 모시는 성지로서 그리고 자인 단오굿의 굿판으로서 향토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그 외에도 생물학적, 역사적, 민속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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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정기룡 장군의 사당인 경충사(景忠祠) 및 유허지.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소재해 있으며
정기룡 장군의 유품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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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에 위치한 성황사(城隍祠).
이 고장의 수호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으며 고려후기 명신인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垈) 선생을
수호신, 일명 성황신으로 모시고 공의 위업과 영력으로 고을민의 안녕과
부귀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왔다.
김지대 선생은 젊은 시절 거란과의 전쟁시 國患臣之患, 親憂子所愚,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라는 시를 지어 주목을 받고 조정에 발탁되었다.
이는 '나라의 근심은 신하의 근심, 어버이 근심은 자식의 근심이라,
어버이 대신 나라의 은혜를 갚는다면 충성과 효도를 함께 닦는 것이리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후 전라도, 경상도 안찰사를 역임하면서 청렴과 공정성으로 이름이 높았고
청도를 관적(貫籍)으로 하사받아 청도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후대에 이르러 목조신상은 망실되었고, 사당은 1960년경 풍우에 완전 소실된
것을 1997년에 복원하고, 수호신상은 2009년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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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전하는 6기(청도, 경주, 영산, 창녕, 현풍, 안동)의 석빙고 중 청도 석빙고는
경주 석빙고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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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있는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보물 제66호이다.
조선 영조 14년(1738)에 축조하였고, 4년후 반월성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석빙고는 이곳 뿐만 아니라 현풍, 청도, 창녕, 안동 등지에서도 볼 수가 있다.
국보 제31호인 첨성대.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으나,
선덕여왕을 기리는 상징탑, 혹은 제단이라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그러나 최근 첨성대가 천문대로 활용되었음을 증명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첨성대 축조 이후 관측기록이 8배 이상이나 증가했으며,
당시 유성 관측 기록이 첨성대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위치한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능(무열왕릉).
사적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능의 외형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밑지름 36.3m, 높이 8.7m이다.
밑둘레를 따라 비교적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무덤의 보호석으로 드문드문
놓았으며, 능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이 있다.
국보 제25호인 신라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
무열왕릉 경내의 비각으로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 남아있다.
이수에는 '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이 전서로 양각되어 있는데,
이는 김인문(金仁問)의 글씨라 전한다.
서악리 고분군(西岳里 古墳群). 사적 제142호로 무열왕릉 바로 뒷편에
위치한 4개의 대형 무덤을 가리킨다.
무덤의 주인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무열왕릉 뒷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열왕과 가까운 왕이나 왕족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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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 기슭의 삼성암지 마애약사여래입상.
유형문화재 제21호로 현재 바위가 세로로 갈라져서 여래상이 새겨진
바위가 많이 기울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바위가 기울어졌다고는 하지만 부처님을 바로 세워서 봐도
서 있는 모습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조성연대는 통일신라의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초기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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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사무소 내에 위치한 근민당(近民堂).
관아(官衙), 즉 옛 장기현의 현감이 공사(公事)를 처리하던
동헌(東軒)건물로서, 영일 장기읍성 내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내부구조는 약간 변형되었다.
역시 같은 장소에 위치한 장기척화비(長鬐斥和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4호로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겪은 후
서양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경고하기 위해 고종 8년(1871) 4월에
대원군의 명에 의해 전국에 세운 것 중의 하나이다.
원래의 위치는 장기읍성 내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분실되었다가 1951년 4월초,
장기면 지서 입구에서 찾아 장기면사무소 정문 좌측 도로변에 세워 두었다가
1990년 정원으로 옮겨 보호책을 설치하였다.
이 척화비는 사암으로 되어 있으며, 폭은 45cm, 높이 120cm, 두께 21cm이다.
참고/ 현장 안내판,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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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일본 목조주택의 구조적, 의장적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다이토 여관(大藤旅館).
각 층에 많은 방을 가진 2층 목조건물로 1938년에 신축되었으며,
담벼락에 붙여놓은 사진은 당시의 모습이다.
일제강점기때 어업 침탈의 현장이기도 한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장안동 골목 470m거리에는 적산가옥 50여 채가 남아있다.
절반 가까이는 빈집이라고 하는데, 일부는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요리집 안성정(安城亭), 주인 니바야시마스에이(二井林增英).
적산(敵産)은 본래 '자기 나라의 영토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
또는 적국인의 재산'을 뜻하나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 남겨놓고 간 집이나 건물을 지칭한다.
국내의 적산가옥은 해방 후 일반인들에게 대부분 불하(拂下)되었다.(네이버용어사전)
1922년에 신축된 하리야마식당 야마구치마사유키상점.
지금은 많이 낡은 모습이나 내부 목조계단과 난간 · 만월을 상징하는
원형 창호 등, 전체적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종로거리' 혹은 '선창가'로 불리웠던 이곳 구룡포에는
일제 강점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당시 구룡포 앞 바다는 황금어장으로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고용해
엄청난 어획고를 올렸는데, 그도 그럴것이 조선인 어선은 100여척에
불과한 반면 일본인 어선은 900여척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어부들만도 1만 2천여명, 그 중 구룡포에
주소지를 둔 일본인만도 1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일군사'에는 1933년 구룡포에는 270여가구 1100여명의
일본인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구룡포의 최전성기는 1930~1940년대로, 1970년대까지는
호황을 누렸지만 대형선박이 출현한 1980년대 말부터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한다.
적산가옥 한 쪽 언덕에 위치한 구룡포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이 계단을 오르면 충혼탑 · 충혼각과 만나게 된다.
일본인들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가 보이는 이곳 뒷산에 공원을 만들고
신사를 세우면서 당시 후원을 한 일본인들의 이름을 비석에 새겨
공원입구 계단 양쪽에 나란히 세웠다.
그러나 해방이후 충혼탑을 건립하면서 시멘트로 기록을 없애고
그 비석을 거꾸로 돌려 구룡포 유공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현재 구룡포공원에는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으며,
그 뒤편에는 충혼각이 있다.
구룡포를 일본의 전진기지로 발전시키는데 공을 세운
일본인 '도가와 야사브로(十河 彌三郞)'를 기리는 송덕비.
해방이 되자 대한청년단원들은 신사를 부수면서
이 비의 비문에 시멘트를 발라 놓았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홍보전시관.
1938년 구룡포어업조합장을 지낸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가 살았던
구룡포 243번지 건물로 당시 일본가옥의 형태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남아있는 일본인 가옥 중에서 가장 크고 격식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며,
'一'자형 평면 형태의 지상 2층 목조건물로 1923년에 신축되었다.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2층 전시장.
1층에서는 당시의 사진자료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위 왼쪽/ 주전자, 오른쪽/ 1930년판 중학교 수학교과서.
아래쪽/ 겨울 난방용으로 사용했던 화로.
그 외에도 다양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미닫이 문을 비롯하여
다리미, 이발기, 일본도(日本刀)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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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로 향하면서 마주친 가야산의 위용.
높이가 해발 1430m, 넓이는 4328 정보에 이른다.
경치가 썩 빼어나서 예로부터 해동의 십승지로 일컬어졌던 곳이다.
비록 직접 산을 오르진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히 가야산의 가치를 짐작케 한다.
그 암봉사이로 번져가는 가을의 흔적.
가야산 국립공원내로 진입했다.
계곡을 끼고 난 도로를 달리며 앞으로 나아갈수록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서서히 줄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해인사 입구까지 이르는 4km의 계곡으로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흐르는 물에 붉게 투영되어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이 곳을 홍류동계곡이라 한다.
그러나 그 진가를 경험하기엔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승 가운데 으뜸이라는 그 명성이 무색하지 않게
여느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멋들어진 계곡 풍경을
계절따라 운치있게 펼쳐낸다.
송림사이로 흐르는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소리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 하며,
선생이 갓과 신발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을 말해주듯
농산정과 시구를 새겨놓은 큰 바위가 있다.
홍류동에는 주요문화재 자료인 농산정과 낙화담, 분옥폭포등
19명소가 있으며, 특히 농산정 맞은편에는
암각된 최치원 선생의 친필을 볼 수 있어 더욱 유명하다.
합천 8경중 제 3경이다.
경내로 진입하자 역대 고승들의 비와 탑이
도열하여 맞아준다.
소중한 가르침, 무소유의 청빈한 삶,
장좌불와의 올곧은 수행정신으로 유명한
성철 큰스님의 부도탑이 널찍하게 조성되어 있다.
그 모양이 무척이나 현대적인 느낌으로
범인(凡人)은 알지못할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해인사 사적비를 비롯한 20여기의 공덕비들이
일주문에 다다르기 전 길 옆에 안치되어 있다.
유장한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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