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인구 중 인도계의 비율은 9% 정도로, 중국계(75%)와

말레이계(14%)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인구수를 자랑한다.

리틀 인디아는 싱가포르에 사는 인도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다. 







리틀 인디아 (Little India), 싱가포르 속의 또 다른 나라...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중의 하나,

스리 비라마칼리아만 사원 ((Sri Veeramakaliamman Temple).







싱가포르 초기에 이민 온 인도인들에 의해 1855년에 지어진 사원으로,

용맹한 어머니이자 여신인 '칼리(Kali)'를 모시고 있다.







알록달록.. 화려한 색상으로 눈길을 끄는 곳.







인도, 그리고 교회.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과 왁자지껄한 생활 소음 등으로 활기가 넘치는...







특히 이곳에는 리틀 인디아에서 가장 크고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다는
무스타파 센터 (Mustafa Centre)가 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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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싱가폴 |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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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개장되었다는 놀이시설인 판타지파크에서 시간을 보낸 후,







분수대 광장으로 나가 보았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도착할 때에 비해 다소나마 안개가 걷혀 있다.







프랑스 마을의 개념도.

27번이 분수대 광장, 그 옆 25번이 놀이시설인 판타지파크이다.







세인트데니스 교회 (Saint Denis Church).







세인트데니스 교회의 내부.







19세기 프랑스 교회와 우체국, 가옥 등을 재현해 놓은 

프랑스 마을의 거리로 이국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놓았다.







곳곳에 세워둔 조각상.







프랑스 마을이 끝나는 곳, 이른바 종교적이고 영적인 구역 안에는

영주영사(嶺主靈祠, 린쭈어린뚜)가 위치해 있다.

그 앞쪽 누각 안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 모셔져 있다.







영주영사 종루(라우쯔엉)의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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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인간은 살아가면서 삶의 흔적을 남긴다.







                               휴식을 위한 공간이라든가,


                               - 아사달과 아사녀의 안타까운 부부애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경주의 영지(影池).





 

 

                               특정한 목적을 위한 공간,







그리고 삶을 위한 공간과 일시적으로 거쳐가는 공간 등이 그것이다.







                               건물의 얼굴이라 할 외관도 다른 건물들과 차별화를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다. 


                               - 경주 보문단지에 건립중인 동국S&C의 중도연수원.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뜬 12층 철골구조로 지어지고 있다. 

                               건너편에는 같은 모양으로 도려낸 세계문화엑스포 전망대 건물이 있어

                               서로 조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2014년 1월의 모습이다.







건축물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고

거기에 걸맞게 외관은 다듬어지고 내부도 형식을 갖춰간다.







어쨌거나 이러한 행위는 인간들의 영역 표시에 다름 아니다.







                               삭막하고 도식화 되어가는 건물들...

                               새삼 인간들의 체취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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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건강을 포함, 재물과 복락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가진 공통적인 소망이다.

그리고 그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다른 무언가에 의지,

힘을 보태주기를 원한다.







그러한 원초적인 갈망은 정신적인 의지처를 만들어 내어 삼라만상, 자신을 포함한  

모든 우주의 변화는 신이 지배를 한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민간신앙이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인간들의

큰 의지처가 되어주기도 했다.







                               체계화 되지는 않았지만, 주로 무속 · 주술 · 정령신앙 · 영혼숭배와 토테미즘 · 

                               제사의식 등으로 표현되는 많은 것들이 그것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 소망의 성취 여부는 본인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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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대상인 절대자에 대한 믿음... 

그 커다란 한 축을 따라 가다보면 예수라는 인물과 만나게 된다.







예수(기원전 약 7~2년 ~ 기원후 약 26~36년 또는 기원후 4년) 또는 나사렛 예수는 

대부분의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몸인 하느님이라는 

신앙 고백에 따라 예수를 동정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강생한 하느님, 완전한 사람, 

완전한 하느님이라 여긴다. 

흔히 메시아라는 뜻의 존칭인 그리스도를 붙여 예수 그리스도라 부른다. 

기독교 중 일부 교단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삼위일체의 하느님이 아닌,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하느님의 아들로서 신격을 가졌지만 하느님과는 

서로 다른 존재로 여기기도 하는 등 논란은 있다. 

유대교에서는 라삐 중 한 사람으로 여기며,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무함마드에 앞선 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처형당한 예수의 십자기 위에는 INRI라고 쓰여진 명패가 붙여져 있는데

                               이는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가 써 붙인 예수의 죄목으로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뜻의

                               두문자어이며, 라틴어 표기는 IESVS · NAZARENVS · REX · IVDÆORVM이다.

                               당시 십자가 위의 명패를 본 유대인들은 “이 자는 자기가 유대인들의 왕이라고 하였다”라고 

                               써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빌라도는 이를 묵살하고 그대로 붙여놓았다고 한다.







                               혹자는 예수는 섬기기 위해 이 세상에 왔는데 요즘의 목회자들은 오히려 섬김을 

                               받으려 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아닌게 아니라 교회를 둘러싼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기도 하다.

                               모르기는 해도 여타 다른 종교들도 여기에서 만큼은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

                               진정한 믿음과 깨우침을 구하는 시대와는 이미 거리가 멀어져버린 듯한 느낌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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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26 00:55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spk 2013.12.27 11:19 신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알려진 성경을 서너번씩이나 읽으실 정도라면
      지금쯤 교회문을 들락거리고 계셨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ㅋㅋ
      정작 종교를 갖고 계신 분들도 그렇게 다독을 하시는 분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한 열정인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종교란 먼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렸으니 성경이나 불교경전을
      손에 잡아볼리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알고 안나가는 것하고 모르고 안나가는 것하고는 큰 차이가 있을텐데 말이죠.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이제는 아예 책을 손에 드는 것 자체가 어색할 정도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신의 이야기를 설파하며 다닐 당시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묘하게도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네요.
      그 역시 나이 서른에 선친의 후광을 업고 그의 대리인을 자처하면서 신격인 지도자로서
      저 북쪽에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죠.
      물론 다른 점이라면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크리스마스와 모텔이라...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참 거시기하게도 크게 어색하게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되어버렸네요.;;
      저는 이브날, 크리스마스날은 가까운 친척분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느라...

      긴 댓글... 감사합니다.^^
      며칠 남지않은 한 해 마무리를 잘 하시고, 따뜻한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드래곤포토 2013.12.26 06:50 신고    

    누구나 소망하고 의지하는 정신적인 대상이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금년 마지막 포스팅인가요 ?
    아무튼 연말 하시는 일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알찬 하루되세요 ^^

    • BlogIcon spk 2013.12.27 11:48 신고  

      어려울 때에는 언제나 마음을 기댈데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물론 물질적으로 기댈데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죠.ㅋㅋ
      물질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해본 소리니 오해는 마시구요.^^;;

      한 해동안 변치않고 꾸준히 보여주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드래곤님 역시 하루하루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나가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라오니스 2014.01.06 09:24 신고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대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
    성당에 다니는 척은 했었지요 .. 중고등학교가 천주교 재단이었던지라 ..
    왠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 성당에 얼쩡거리기도 했고요 .. ㅎㅎ
    종교라는 것이 마음의 위안을 삼고자 하는 것인데 ..
    가끔은 순수함보다는 종교 자체가 이익집단처럼 보일 때는 안타깝기도 하네요 ..
    하느님의 축복이 세상 어려운 곳에 널리널리 퍼지는 한 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모습이 살며시 숨겨져 있네요 .. 역시 센스가 굿 .. ㅎㅎ

    • BlogIcon spk 2014.01.06 20:17 신고  

      종교시설이 규모도 커지고 기업화되어가다보면 점차 권력집단이 되어가고,
      마치 정치마당마냥 파벌도 생겨나게 되고, 또 그러다보면 다툼 등
      크고 작은 잡음도 생겨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종교시설만큼은 그런 유혹에서 자유로워야 하는데 말이죠.;;
      저 역시 어릴적 잠시나간 교회가 전부이지만 그런 소식이 들려올 때면
      교인 이상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그저 세태에 휘둘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의 안식처로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드러내 보이는 것 보다는 숨겨진 마음이 더 애틋하다는 사실, 알고 계시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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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저항시인 이상화의 고택.
일제 강점기에 시로써 저항정신의 횃불을 밝혔다. 
그 외 '시인에게', '통곡', '역천', '나는 해를 먹다' 등의 저항시가 있다.
 
이곳은 친구들과 제자들을 맞이하던 사랑방, 울적한 마음을 달래던 감나무 마당,
그가 숨진 안방 등 이상화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상화 시인은 1939년부터 1943년 작고할 때까지 이곳에서 거주했다. 






한때, 지역개발로 흔적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화고택을 보존하기 위해 
2002년부터 대구지역의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들은 '상화고택보존운동'을 전개했었다.
40만명의 시민이 상화고택보존을 위해 서명운동에 참여했고,
많은 시민들이 보존에 필요한 자금을 모아 주었다.

또한 군인공제회에서는 상화고택을 매입하여 대구시에 기부체납하였고,
이상화기념사업회 등 많은 문학계 단체들이 뜻을 모았다.
특히 유족과 뜻있는 문인들이 이상화와 관련된 많은 유물과 자료를 기증해 주었다.
이러한 많은 이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과
예술혼을 간직하게 되었다.


 




                               감나무와 석류나무, 그리고 장독대로 마당을 아담하게 장식하고 있다.
                               왼쪽은 안채, 바로 보이는 건물은 사랑채이다.
 
                               최근, 이상화 고택 뒷편에 영상실과 한옥 전시실, 휴식공간 등을 갖춘
                               '근대문화체험관 계산 예가(藝家)'가 개관되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건물 외관이 컨테이너를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라 이상화 고택과
                               부조화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거기에다가 계산예가와 연결하기 위해 이상화 고택 서편 담장을
                               허물어버리기도 해 아늑했던 분위기는 이제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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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화 고택 바로 앞에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서상돈의 고택이 있다.
                               이 건물 역시 도심속 빌딩이 가로막고 서 있어 답답한 느낌이다.
                               바로 왼쪽 담장 건물이 이상화 고택이다.






왼쪽은 별채, 오른쪽은 안채(본채).
뒷편으로 새로 지어진 대구제일교회가 보인다. 

서상돈은 대구출신의 민족자산가로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주의로부터 
1,300만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게되자, 그 빚을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민족운동가이기도 하다.






서상돈 고택의 대문채, 오른쪽 건물은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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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최초의 기독교회이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인 대구제일교회.
                               고종 32(1895) 부산에 있었던 북장로교 선교본부가 대구로 옮겨지고,
                               광무 2년(1898)에 기와집 4동을 교회당으로 사용하다가 1908년과 1933년에
                               각각 새로운 교회당을 짓고 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높이 33m의 종탑은 1937년에 세워졌다. 
                               기독교가 근대화에 기여한 상징물로 근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계산성당이 천주교 역사의 시발점이었다면 제일교회는
                               대구 최초의 
기독교와 학교와 병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90계단이라 불리는 3.1만세운동길.
                               새로 신축된 대구제일교회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3.1운동 당시 서문시장에 모인 계성고, 신명고, 대구고보, 성서고 학생들과 
                               일반 주민 등 800여명은 이 계단 위의 솔밭길을 거쳐 도심으로 진출했다.
                               대구의 3.1운동은 일본경찰의 감시가 워낙 심한 관계로, 3월 1일보다
                               다소 늦은 1919년 3월 8일 오후 2시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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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성내2동 | 시인이상화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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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mark 2012.03.22 22:19    

    고택 주위를 감싼 건물들을 헐어냈으면 시원하겠습니다. ㅎㅎ

    • BlogIcon spk 2012.03.23 19:27 신고  

      도심에 위치해 있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겠지만,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 2012.03.23 07:48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spk 2012.03.23 19:32 신고  

      ㅎㅎ 제법 시간이 지난 사진이지요?^^;;;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내기가 어려웠던 곳이라
      생각난 김에 산책삼아 한번 나서봤습니다.
      비록 빌딩이 가로막고 있기는 했지만, 만약 도심속에 이런 공간이라도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도시가 되었겠나 싶더군요.
      이외에도 진골목 등 소소한 볼거리가 많기는 하지만 훗날 다시 찾아가봐야겠습니다.^^

  • BlogIcon 복돌이^^ 2012.03.23 17:50    

    고층 빌딩 숲에 왠지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아쉽네요...
    그래도 깔끔하게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듯 느껴지기도 하구요~~

    죠위 계단은 사진 찍으시는 분들이 참 많이들 다녀오신곳인듯도 하구요..교회(성당?)과 함께..늘 사진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다녀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BlogIcon spk 2012.03.23 19:54 신고  

      어쩔 수 없이.. 대구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는지라 빌딩은 피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덕분(?)에 상대적으로 고택은 더 왜소해 보이기도 했지요.;;;
      한편으로는 잘 관리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런데 이곳 사진을 보신적이 있으시군요.
      이 계단은 대구 중구 골목투어의 코스에 포함되어 있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을 겁니다.^^

  • BlogIcon 드래곤포토 2012.03.24 10:32 신고    

    저도 지난달에 여길 다녀왔는데 이상화고택 수리중이더군요
    이곳 사진은찍어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도 포스팅 못하고 있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

    • BlogIcon spk 2012.03.29 20:38 신고  

      아! 그러셨군요.^^ 그러고 보니 제가 한발 앞선 셈이네요.^^
      그렇지만 저보다는 최근의 모습이기 때문에 느낌은 또 다를 것 같습니다.
      멋진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 BlogIcon 라오니스 2012.03.29 18:34 신고    

    대구시민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사라져가는 고택을 살렸군요..
    이런 고택은 나라에서 더욱 관심갖고 지켜나가야 하는대..
    개발의 파고는 소리없이 쓸어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고택이 살아나긴 했어도.. 관리가 잘 이루어진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군요..
    대구의 근대문화유산을 스토리텔링으로 잘 엮으면..
    지금보다 더욱 많은 사람이 관심갖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ㅋㅋ

    • BlogIcon spk 2012.03.29 21:06 신고  

      맞는 말씀입니다.^^ 단순히 그저 있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보다는, 재미있고
      알기쉬운 이야기로 엮어준다면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더 오랜 문화재에 비하면 근대의 문화유산은
      다소 경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의심이 가기도 하는데요,
      이 역시 당시의 역사 무게로 보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산들의 보존과 관리 또한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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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홀의 중심지인 타그빌라란에서 6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클레온.
그곳에는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교회건물인 
바클레온 성당(Baclayon Church)이 있다.
마치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들게하는 외양이다.









                               현재의 건물은 1727년에 완성되었으며, 종탑에 있는 종은
                               1835년에 매달았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에는 로만가톨릭의 규칙을 위반한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지하감옥도 있다고 한다.








                               이 성당은 200여명의 원주민을 강제로 동원해 지었으며, 
                               대나무를 이용, 바닷속 산호를 운반해 벽돌모양으로 자르고 
                               수 많은 계란을 시멘트처럼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성당 내부. 천정의 벽화와 함께 전면 제단의 조각상 불빛이
                               아주 화려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건하고 장엄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이곳은 성모마리아를 모시는 교구이기도 하다.
                               오래된 만큼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나온다.








                                어둠 속... 창문의 색유리를 뚫고 들어온 빛이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가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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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식민역사가 시작된 뼈 아픈 곳에 세워진 
혈맹기념비(Blood Compact marker).








국왕 대신의 자격으로 온 스페인 초대 총독인 미구엘 로페즈 드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ipi) 장군과 시카투나(Datu Sikatuna) 
보홀 족장이 1565년 평화우호협정을 맺게 된다.
이 협정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 이루어진 최초의 국제조약으로, 
필리핀의 전통에 따라 와인에 자신의 피를 섞어 마셨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이 혈맹기념비이다.

레가스피 장군은 지금의 멕시코인 누에바에스파냐에서 지방 정부의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필리핀에 대한 스페인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5척의 선박을 이끌고 멕시코의 아카풀코를 출발해 필리핀 남부의
세부에 도착한 후, 1566년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를 건설한 인물이다.
죽을 때까지 필리핀의 초대 총독직에 있었으며, 지금의 마닐라를
건설한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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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속의 사진 나부랭이 /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저 '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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