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최초의 기독교회이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인 대구제일교회.
고종 32(1895) 부산에 있었던 북장로교 선교본부가 대구로 옮겨지고,
광무 2년(1898)에 기와집 4동을 교회당으로 사용하다가 1908년과 1933년에
각각 새로운 교회당을 짓고 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높이 33m의 종탑은 1937년에 세워졌다.
기독교가 근대화에 기여한 상징물로 근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계산성당이 천주교 역사의 시발점이었다면 제일교회는
대구 최초의 기독교와 학교와 병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90계단이라 불리는 3.1만세운동길.
새로 신축된 대구제일교회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3.1운동 당시 서문시장에 모인 계성고, 신명고, 대구고보, 성서고 학생들과
일반 주민 등 800여명은 이 계단 위의 솔밭길을 거쳐 도심으로 진출했다.
대구의 3.1운동은 일본경찰의 감시가 워낙 심한 관계로, 3월 1일보다
다소 늦은 1919년 3월 8일 오후 2시에 일어났다.
대구광역시 중구의 뒷골목에서 만나게 되는...
C1/ 3.1운동길, C2/ 선교사 스위츠주택. C3/ 선교사 챔니스 주택, C4/ 선교사 블레어 주택,
한국의 건축 양식과 서양의 건축 양식이 잘 조화된 선교사 스위츠(Switzer)주택.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위치해 있다.
이 주택은 1893년부터 대구를 찾아와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1910년 경에 지은 서양식 건물이다.
대구의 몽마르트라 불리는 푸른 담쟁이덩굴 청라(靑蘿)언덕,
이곳 동산병원 내에는 고풍스러운 세 동의 근대건축물이 서 있다.
스위츠, 챔니스, 블레어라는 이름을 가진 선교사 주택이 바로 그것이다.
이 스위츠주택은 1907년 대구읍성 철거때 가져온 안산암의 성(城)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 건축되었다.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와 내부 구조는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대구의 초기 서양식 건물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건물은 1910년 경 미국인 선교사들이 거주하기 위해 지은 주택이다.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집은 남북쪽으로 약간 긴 네모 형태를 이루고 있다.
1층 서쪽 중앙에 있는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홀이 있고,
이 홀을 중심으로 거실 · 서재 · 부엌 · 식당 등을 배치하였다.
2층에는 계단실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각각 침실을 두고 욕실 · 벽장 등의
부속공간을 마련했다.
1층 동남쪽에는 거실 등에서 이용할 수 있는 비교적 넓은 베란다를 시설하였다.
건물은 기초를 튼튼한 콘크리트로 하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미국식으로 쌓았다.
이러한 건물의 양식은 당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한
방갈로(Bunglaw)풍으로 지금까지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 또한 1910년에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졌으며,
남북쪽이 조금 더 긴 네모 형태를 이루고 있는 2층집이다.
1층의 서쪽에 현관으로 이어지는 베란다를 두고 현관 홀을 들어서면
바로 맞은 편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실이 있고, 그 오른쪽인
집의 중앙에 거실과 응접실이 앞뒤로 자리잡고 있다.
거실과 응접실을 중심으로 좌우에 침실 · 부엌 · 식당 등을 배치하였다.
2층에는 계단홀을 중심으로 3개의 침실과 욕실을 두고 현관홀 위에는
늘 빛을 받아 들이는 선룸(Sun Room)을 설치했다.
건물은 기초와 지하실 부분을 튼튼한 콘크리트로 하고, 그 위에
미국식으로 붉은 벽돌을 쌓았다.
이 집의 전체적인 모습 역시 같은 시기 미국에서 유행한 방갈로풍에
가까운 서양식 주택으로, 지금까지 당시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블레어주택에는 대구 3.1운동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교육, 역사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 이곳 챔니스주택과 블레어주택 사이에는 시비가 하나 서 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로 시작되는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 노래시비가 그것이다.
1922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박태준 선생이 계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신명학교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되어 이은상 선생에게 그 사연을
고백하니 즉석에서 가사를 써 주었다고 한다.
청라언덕은 이곳 동산언덕이고, 백합은 신명학교의 그 여학생을 지칭한다.
계산성당. 사적 제290호로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위치한다.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설계는 프랑스의 로베르 신부가 하였고 서울 명동성당의 건립에
참여하였던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하여 1902년에 완공하였다.
이후, 1911년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종탑을 2배로 높이는 등의
증축을 하여 1918년 12월 24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평면은 라틴십자형이고, 서쪽 정면에 세운 2개의 종탑부에는 8각의
높은 첨탑을 세웠으며, 앞면과 양측에는 장미창으로 장식하였다.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은 대구제일교회의 새 성전.
당시 대구에 처음으로 세워진 서양식의 건물이며, 현존하는 1900년대의
성당 건축물로 유일한 것이어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곳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당시 주례를 맡은 허억 초대 대구시장이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은...'
이라고 소개를 해서 성당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이곳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84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8월 27일, 참가국 202개국의 국기를 든 기수단이 입장한 가운데
세계인의 축제,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막이 올랐다.
특히 전광판 속,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마라톤의 영웅 고 손기정 선수의 역주하는 장면은
예전에 TV에서 보던 느낌과는 달리 마치 그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듯
뭉클한 감동이 전해져 왔다.
경기장 동편에는 기업 홍보관이 들어섰다.
도요타관에는 하이브리드 차량이, 삼성은 자사 IT제품들을
전시하는 등 대부분 경기와 연계하여 자사의 상품을 홍보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공식 후원사는 TOYOTA(자동차) · 삼성전자(IT) ·
POSCO(철강) · SEICO(시계) · TDK(전자부품) · adidas(스포츠용품) ·
SINOPEC(에너지) · VTB(은행) 등 총 8곳이며, 대구에서 열리는 올해
대회만을 후원한 국내 후원사는 대한항공 · KT · STX · 금복주 등 4곳이다.
공식후원사는 국제육상연맹이, 국내 후원사는 각 대회 준비위측이 선정하며,
공식후원사의 경우 업체를 한번 선정하고 나면 선정업체가 자리를
내어놓기 전까지는 동종업체가 추가로 선정될 수 없다고 한다.
홍보관 벽면은 응원문구가 들어간 스티커로 가득 채워졌고...
이미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의 기록 갱신을 위해 트랙을
몬도트랙으로 교체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저조했다.
물론 단거리의 경우 강화된 부정출발의 규정과 경쟁자들의 불참으로
경쟁구도가 형성되지 않았고, 장거리 선수들에게는 늦더위가 변수로
작용했다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아쉬움이 너무나 컸다.
결국 세계신기록이 없는 역대 4번째 대회로 기록될 것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마지막날, 그것도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세계신기록이 작성되어
겨우 그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역대 3번째 노메달 개최국이라는 사실만은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 대구스타디움을 찾았다.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서
가히 세계인의 축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만큼은 냉정할 정도로 치열했다.
국기로 온몸을 감싼 이들의 모습에서 자국의 선전을 염원하는
마음이 온몸에서 우러난다.
스타디움 한켠에서는 또 다른 외국인이 뭔가에 몰두해 있다.
영국에서 오셨다는 이 분은 조그마한 스케치북에다 워터칼라펜으로
대구스타디움의 모습을 열심히 옮기고 있는 중이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친절하게도 스케치북을 한장한장 들춰보여 주었다.
그 속에는 서울의 고궁을 비롯하여 수원의 화성 등 그가 방문했던
지역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겨져 있었다.
물론, 아름다운 꽃들과 영국의 고건축물 등도 찾아 볼 수 있었다.
경기장에 들어가봐야 한다며 서둘러 마무리한 작품이다.
세밀하지는 않지만, 들어가야 할 특징은 그대로 다 들어가 있다.
그러면서도 이 그림속에는 사진과는 또 다른
따뜻한 시선과 체취가 함께 묻어난다.
분명, 이 스케치북은 훗날 이 자리를 새롭게
추억하게 될 소중한 마음의 재산으로 남을 것이다.
스타들의 잇단 부진으로 이변이 많았고, 세계기록 또한
흉작을 면치 못했던 이번 대회...
그러나 비인기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역대 최다를
기록할 정도로 많이 찾아와 관심을 보여주었다.
초 · 중학생을 동원했다는 일부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202개국 1,945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규모와 관중 수에
있어서는 역대 최대, 최다를 기록한 것이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모양새다.
여자 높이뛰기 경기의 시상식 장면.
이번 대회는 미국이 금메달 12개, 은메달 8개, 동메달 5개로
5회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전체 47개의 금메달 중 전체의 반이 넘는 28개를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케냐가 나누어 가진 것이다.
이는 경기력이 특정국가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당초 우리나라는 '10-10(10명의 선수가 10위권 내 입상) 프로젝트를
내세웠으나, 유일하게 멀리뛰기 종목의 김덕현만이 결선에 진출,
오히려 세계의 높은 벽을 확인하기만 헀다.
한국기록을 세워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라니
우리나라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안방에서 남의 잔치를
해 준 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죽했으면 메스컴에서 '참담', '처참'이라는 표현을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위안을 삼자면 그나마 한국 신기록 4개를
기록한 것이라 해야할까.
우리 육상인들에 대한 관심과 제도의 밑받침이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반면 같은 아시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메달로써 체면치례는 했다.
어찌되었건 이제 9일간의 열전은 막을 내렸다.
다음 제14회 대회는 2년 뒤인 2013년 모스크바에서 열리게 된다.
대회를 마친 후 대체적인 평가는 조직위원회의 경기운영의 경우 미숙했다는
측과 그런 미숙함은 다른 어느 대회에도 있었다는 측으로 의견이 갈라진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의 열정과 시민의식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일치한다.
물론, 불편한 교통과 지름길을 두고 우회하는 택시의 바가지 요금, 그리고
선수촌의 음식 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없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성공적인 대회로 요약되는 분위기다.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8년 동계올림픽 등 큰 대회를 앞두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들 대회 관계자들은 대구선수권대회를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최첨단 영상 · 계측장비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특히 멀리뛰기 경기에는 대회사상 처음으로 '비디오 거리 측정
시스템(VDM)'이 도입되었다.
이는 멀리뛰기 거리 측정에 사용되는 장비로, 높은 곳에 설치된
거리 계측용 비디오카메라가 모래판 착지 순간을 포착,
이미지화하여 심판들의 정확한 판정을 돕는다.
해머던지기, 포환던지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등이 열리는 투척 경기 구역.
투척종목은 착지 지점에 '프리즘'이라 불리우는 측정막대를 꽂고
광파측정기로 거리를 잰다.
윗 부분은 원반던지기에 사용되는 원반으로, 여성용(왼쪽)은 지름 18cm에
무게가 1kg, 남성용(오른쪽)은 지름 22cm에 무게가 2kg이다.
아랫쪽은 투포환에 쓰이는 포환으로 여성용(왼쪽)은 4kg, 남성용(오른쪽)은 7.257kg이다.
또한 창은 손잡이 끈을 포함한 무게로 남성은 최소 800g, 여성은 최소 600g이다.
그 외에 해머는 포환과 무게가 같지만, 몸의 회전력을 이용하여 던지기 때문에
포환보다 3~4배나 더 멀리 나간다.
높이뛰기와 장대높이뛰기 경기 구역.
장대높이뛰기에는 전동식 지주세트가 도입되었다.
순간의 승부... 남자 100m 경기의 출발선에 선 선수들에게서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선수들의 발과 닿아있는 스타팅 블록에는 부정출발 판정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 장치는 스타팅 블록에 내장된 센서가 선수의 풋 플레이트에
발생시키는 압력을 모니터링하고, 압력의 변화에서부터 스타트 순간을 감지하여
1/1000초 단위로 반응시간(reaction time)을 계측한다.
사람은 소리를 듣고 반응하기 까지 최소한 0.1초는 소요되기 때문에
반응시간이 0.1초 미만이었을 경우에는 부정출발로 판정하게 된다.
물론, 1번만 부정출발해도 실격이다.
출발신호를 알리는 전자식 총.
출발 총소리는 청각적인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 선수의 스타팅 블록
(Starting Block)에 내장된 스피커와 트랙 주변에 설치된 다수의
스피커에서 동시에 흘러나온다.
이 출발 총소리와 함께 유선으로 연결된 결승선의 계측 시스템이 가동된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전동시계의 기록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77년 부터다.
물론 그 이전까지는 수동으로 측정했다.
결승선(finish line)을 비롯한 여러 계측 지점의 양쪽에
발광기와 수광기를 설치하고 그 사이의 빔을 가로질러 지나면
그 신호가 타이머에 전달되어 시간과 스피드를 계측하게 된다.
보통 판독 카메라는 결승선 양쪽에 설치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경기장 안쪽에 1대와 사진판독실에 2대를 설치하여
2,000분의 1초까지 순위를 가려낸다.
▲ 사진추가 (9월 5일) /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 경기에서 케냐의 아벨 키루이가 2시간7분38초로 대회2연패를 달성했다.
단거리와 경보, 마라톤 등 트랙경기에는 '트랜스폰더 시스템
(Transponder System)이 설치되었다.
선수들의 선수표에 부착된 트랜스폰더 칩을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센서가 감지하여 구간기록, 속도 등 다양한 자료를 제공한다.
출발과 마찬가지로 결승선에서의 순위 및 시간 계측도 매우 중요하다.
미세분할 비디오시스템은 피니시 라인(finish line)의 영상을 20/1000mm의
미세한 간격으로 영상을 레코딩하고 1초에 최대 2000장, 즉 0.0005초라는
매우 짧은 시간에 1장의 화상이 데이터로 기록되어 피니시 타임을 계측한다.
고개숙인 우사인 볼트.
그는 이번 대회 남자 100m 결선 경기에서 부정출발로 실격하여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후 200m 예선에서는 전체 1위를 차지하기는 하였으나, 부정출발에 대한
악몽때문인지 출발 반응속도는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다소 늦은
0.314초였다고 한다.
이로써 부정출발에 대한 규정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나,
국제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은 규정변경 불가의 입장이라고 한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대구스타디움은 마무리에 분주하다.
매표소 기둥에는 각 종목의 캐릭터가 나붙었고, 그 전면에는 한때
우승 세레모니를 펼치는 모습의 우사인 볼트의 대형
사진판이 세워지기도 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이번 대구선수권대회는
202개국에서 1945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역대 최대 규모로 치뤄진다고 한다.
2011년 8월, 덕원고 뒷산에서의 조망이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대구스타디움의 하얀 지붕만은
유난히도 눈부시게 다가온다.
2011년 4월, 대구스타디움의 북동쪽에서 내려다 봤다.
아래는 시지지역.
2011년 2월, 안심 초례봉에서 내려다 본 비슷한 각도의 대구스타디움.
거리가 먼데다가 시계도 좋지않아 뿌옇게 보인다.
산 아래 신서혁신도시지구와 대구스타디움 사이에는
금호강이 흐르고 있다.
2011년 5월, 스타디움 뒷편에서의 모습으로 이탈리아 몬도사에서
만든 푸른색 트랙이 시원해 보인다.
이 트랙은 아스팔트 위에 천연탄성고무를 이중으로 얹어
마치 용수철이 튕겨 나가듯 반발력이 좋아 특히 단거리 종목
선수들에게 유리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976년 이후 지금까지 230개가 넘는 세계기록이
이 몬도트랙에서 작성되어 신기록 제조기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 대구스타디움의 몬도트랙은 그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제품이라고 한다.
2011년 5월, 대구스타디움의 남서쪽 방향이다.
저 멀리 안심지역과 시지 지역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주경기장과 보조 경기장, 그리고 헬기장,
자동차 전용극장 등이 나란히 내려다 보인다.
2009년 11월, 이번에는 대구시내 쪽에서의 조망이다.
쾌적한 자연의 품속으로 안겨든 모습이다.
2011년 8월, 대구스타디움 서편에서의 모습.
바로 왼편으로는 대구스타디움몰이 들어서 있다.
그곳에는 MPC(메인프레스센터)와 IBC(국제방송센터)가 입주해 있어
지난 8월 19일 공식개관식을 가진 바 있다.
그러나 대형마트와 전문매장은 공사도중 잦은 설계변경과 시행사의
자금문제, 노동자들의 파업 등으로 대회 개막전 개장이 무산되면서
입점상인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구스타디움의 개괄적인 안내도이다.
현재 1주차장 (13번)에는 대구스타디움몰이 들어 서 있다.
이제 정확하게 일주일이 지나면 전 세계 70억명 이상의 시선이
이곳에 집중된 가운데 세계 최고의 육상 스타들이 모여 더 빨리,
더 높게, 더 멀리 날으는 지상 최대의 육상 쇼를 펼치게 된다.
2011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가 있던 지난 5월의 늦은 오후,
대구스타디움에는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밝은 조명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경기가 시작되었다.
현재 대구스타디움의 전광판과 조명, 트랙, 음향시설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전광판의 경우 최신형인데다가 초대형이라 6개까지 분할 연출이 가능하며,
조명도 조명등의 수를 늘려 조도가 2,250럭스까지 크게 높아졌으며.
음향 역시 향상되어 관중석에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2011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 당시의 스타디움 내부를 들여다 보면
관중석이 너무나 썰렁하여 보기에 민망할 지경이다.
물론 그럴 일이 없겠지만, 만약 그 때와 같은 분위기라면,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대회조직위원회는 관중동원 문제로 고민중이라 한다.
대회개막 11일을 앞둔 16일 현재로 입장권 판매가 90%를 넘어서긴 했으나,
대부분이 기업이나 관공서, 학교 등에서 단체로 구매한 것이고, 개인이
구매한 것은 극히 적어 사표가 많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육상계에는 이렇다 할 스타선수가 없어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얼마남지 않은 기간, 좋은 시설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으로 이어져 이런 생각이 기우였음을 꼭 증명해 보이기를 기대한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대흥동에 위치한 대구스타디움.
자연속으로 들어온 쾌적한 모습이다.
왼편으로 늘어선 7개의 기둥은 매표소.
대구스타디움 서쪽 주차장 부지에는 대구, 경북 최초의 몰링형 상가인
대구스타디움 몰(Mall)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몰링이란 쇼핑, 문화, 의료 업무 등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을 의미한다.
이곳에는 이번 선수권대회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해줄 국제방송센터(IBC)를
비롯하여 외국방송사의 부스, 그리고 메인프레스센터(MPC) 등이 입주하게
되며, 대형마트와, 멀티플렉스 영화관, 푸드코트, 전문의류상가 등도
함께 들어서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대회가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사중이라, 혹시나 방송에
차질을 가져오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2005년부터 매년 대구국제육상경기를 벌여왔던 바로 그 자리이다.
관중석 66,422석 규모의 다목적경기장으로, 2001년 6월 개장시
대구월드컵경기장으로 불렸으나 2008년 3월 5일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의 개최를 목적으로
건립되었으며, 2003년부터는 K-리그 대구FC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2011년 5월에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국제공인 Class-1 인증을
받은 바 있다.
경기장 서편으로는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윗부분 도로 저편에는 대구미술관이 위치해 있으며
그 인근에는 육상진흥센터 공사가 한창이다.
대구스타디움의 개 · 보수공사는 일찌감치 마무리되어
대회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전체적인 대회준비 작업도 마무리에 들어가 대회 인프라
구축작업이 99% 정도로 완료된 상태다.
이미 지난 5일에는 대회사상 처음으로 건립된 선수촌이 완공되어
공개된 바 있으며, 10일부터는 선수들의 입촌이 시작된다.
대구스타디움의 외관은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인 초가지붕을
형상화했으며 자연채광 또한 가능하다.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폐막 전날인 9월 3일에는 휠체어 육상 남자부 T53 400m
경기와 여자부 T54 800m 경기가 열린다.
이 경기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에 요청해 마련한
이벤트 경기로, 2005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부터 진행되어 왔다.
참고로 남자 400m육상의 세계기록은 비장애인인 마이클 존슨(미국)의 43초18을 비롯,
장애인(휠체어)부문에서는 장리신(중국)이 양쪽 다리 무릎 아래가 없는
의족 스프린터인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공)와 같은 45초07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블레이드 러너'라는 애칭을 가진 피스토리우스는 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400m 경기와 1,600m 계주에 출전하여 비장애인 선수와 경쟁하는 최초의 장애인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마라톤 코스는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을
출발하여 수성못까지 돌아오는 15.0km 구간을 두 바퀴 돌고난 후, 다시 황금네거리까지
가서 되돌아 오는 12.195km구간으로, 일부 구간을 반복해 달리는 일종의 변형된 루프(Loop)코스이다. (코스 자세히 보기)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마스코트인 살비(SARBI).
친화력이 좋고 운동신경이 발달된 삽살개를 모티브로 하였다.
이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개최로 우리나라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3대 스포츠대회를 모두 치뤄내는 7번째 국가가 되었다.
세계 3대 스포츠대회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월드컵축구, 그리고 하계올림픽을 말한다.
▲ 2011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남자 110m 허들경기.
결승선을 향해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는 선수들의 일그러진 표정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읽게 된다.
앞으로도 이런 선의의 파이팅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 2011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 당시의 모습.
단일종목의 국제대회로는 가장 권위있는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주무대가 될 대구스타디움 주경기장.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최종 점검하는 차원에서 열렸던
지난 2011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장은 너무나도 썰렁했다.
경기장의 열기는 선수들의 기록향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 만큼,
선수들 못지않게 국민들의 관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때이다.
지난 6일 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1차 투표에서 우리나라의 평창이 총 95표 중
63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뮌헨(독일)과 안시(프랑스)를 여유있게 따돌린 바 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이번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또한 4개의
세계신기록이 수립되었던 199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회에 못지않게
여러 풍성한 기록들이 쏟아지는 대구세계육상경기대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역대 최다인 82명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10개 종목에서 10명의 결선진출자를 낸다는 것이 목표이다.
금호강변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아양교에서 시작하여 지하철 신매역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대구 올레의
1코스로 불리워지는 길이다.
아양교를 내려서니 새로운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동촌 구름다리 바로 아래 120m 지점에 건설중인 보도교(길이 222m, 폭 6m)로,
오는 8월 완공될 예정이라 한다.
(아래 2장의 사진을 포함, 이전인 지난 5월 초에 촬영됨)
동촌에 보도교가 들어섬에 따라 대구의 명물이었던 구름다리가
빛을 잃게 되었다.
때마침 내년 6월 말로 하천부지 점용 및 공작물 설치허가가
완료된다고 하니, 앞으로 철거와 보존을 두고 신중한 판단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 다리는 길이 230m, 폭 1.8m로 1968년에 건립되었다.
이 구름다리는 민간업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성인 1인당
왕복 1,700원의 통행료를 받고 있다.
그런데 보도교가 완공되면 과연 몇 사람이나 이곳을 이용하게 될지...
아마도 현실적으로 보면, 이 점이 구름다리의 존폐를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가 되지 않을까 한다.
유원지에 설치된 다리답게 이 위에 올라서면 다리가 좌우로 흔들려
재미를 선사한다.
꼭 이 강을 건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변변한 놀이시설이 없었을 당시,
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놀이시설이었을 터...
지난 43년, 그 세월의 흔적처럼 지금은 많이 낡아버리기는 하였으나,
그런 이유로 만약 이 다리가 사라져 버린다면, 많은 이들이 간직했던
추억도 함께 영원히 오랜 기억속에서만 잠자게 될 것이다.
동촌에는 구름다리만 있는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삭도까지 눈에 들어온다. 다소 의외였다.
자료를 찾으니 1980년 7월에 사업이 개시되었다는 내용만 보인다.
대구시민의 추억과 낭만의 장소로 상징되는 이곳,
한 때는 부지런히 강 사이를 오고 갔을테지만, 지금은 흉물처럼 방치되어 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이런 정겨운 모습들이 세월에 밀려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강변 둔치에는 여러 들꽃들 사이로 유채꽃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 위쪽 화랑교 너머 망우공원에는 영남제일관이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중이다.
하천을 정비하는 굴삭기의 삽질도 분주하고...
곁에서 이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던 왜가리 한 마리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황급히 자리를 뜨고만다.
아마도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 자신의 삶터에 대한 위기때문인지 자못 심각하고 불안한 눈치다.
저 멀리 버드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멈추게 한다.
보아하니 지금도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이렇듯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해가며,
푹신한 오솔길과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따라 쉬엄쉬엄 걸어본다.
하늘에는 뭉개구름이 수시로 모양을 바꾸며 지나간다.
목 뒤로 따가운 햇볕이 느껴질 때 쯤이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잠시나마 열기를 식혀 주기도 한다.
그 또한 고마운 일이다.
여유로운 강변의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한동안 걷다보니 동구 율하 2지구 아파트 단지쪽이다.
건너편에서 보니, 마치 강변의 숲 속에 둘러쌓여
포근히 안겨있는 듯한 모습이다.
원래 대구 올레1코스는 강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지하철 신매역에서
끝을 맺지만, 정겹게 보이는 이 작은 다리, 가천잠수교를 건너면서
줄곧 같이 해왔던 금호강과는 헤어지기로 한다.
소위 말하는 저질체력인 탓도 있겠지만, 더위 때문에
더 쉽게 지쳐오는 것 같다.
비록 몸은 피곤함으로 쌓여 갔어도 마음만은 상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던 지난 하루였다.
Before / 이번에는 서쪽 방향으로...
제일모직의 굴뚝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칠성초교가 위치해 있고,
그 뒤로 공사중인 롯데캐슬오페라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After / 제일모직의 공장과 굴뚝이 사라지고 그 뒷편으로 아파트촌이 형성되었다.
좌측 노란지붕을 한 건물은 대구 오페라하우스이다.
특히 이 제일모직 자리는 대구 도심의 대표적인 노른자위 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도심의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미 시에서는 1997년 이곳에 업무 · 숙박 · 판매 · 관람 · 전시시설 등을 건립할 수 있도록 했고,
부지 소유 기업인 제일모직 · 삼성전자 · 삼성물산 등을 사업시행자로 선정,
2005년까지 준공하도록 결정했지만, 어려운 경영여건 등을 이유로 두 차례나 연기한 바 있다.
현재는 2015년 7월까지 준공한다는 계획이지만 그마저도 불투명하다고 한다.
산 너머로 노변동, 사월동지역, 그리고 흐리게 보이지만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 하양까지도...
아래쪽은 대구부산간고속도로 수성IC,
그리고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다리는 안심교로
이를 지나면 바로 반야월, 안심지역과 연결된다.
또 다른 위치에서 조망해 본 대구 시가지의 모습.
아래 가로로 뻗은 도로는 범안로이다.
대우트럼프월드 아파트를 중심으로...
흐린 공기로 가시거리가 그다지 길지 않다.
왼쪽 아래는 범물지구.
대구 동구 효목동 방향,
오른쪽 도로는 무열로가 되겠다.
대구도심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봤다.
대구의 양대 백화점이었던 대구백화점 프라자점과 동아백화점 쇼핑점이
각각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 동아백화점은 2010년 이랜드 계열사로 매각, 인수되었으며
쇼핑점 바로 옆에는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오는 8월 오픈을 앞두고 공사중이다.
거기에다가 신세계백화점도 동대구역 환승센터를 기반으로 대구에 진출할
예정이라 하니, 이곳 유통업체들간의 경쟁이 앞으로는 보다 더 치열해질 것 같다.
지산 범물지구...
우측으로 보이는 저수지는 수성못이며,
아래쪽 도로는 진밭골로 통하는 진밭길이다.
왼쪽 용지봉 능선 아래로 범물 두성아파트가 내려다 보인다.
그냥 느낌으로는 답답해 보이기는 하지만, 산이 가까이 있어
행복해 보이기도 하는 시가지의 모습이다.
팔공산은 군사시설이 설치된 최고봉인 비로봉(1,192m)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동봉(해발 1,167m)과 서봉(1,150m)이 자리잡고 있다.
서봉에서 바라다 본 모습으로 왼쪽이 비로봉이고 오른쪽이 동봉이다.
서봉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놓여 있다.
삼성봉은 서봉의 옛 이름으로 신라시대 삼성암에서 3성인이
득도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 문헌에는 비로봉(정상, 일명 제왕봉)과 염불봉(동봉, 미타봉), 삼성봉(서봉)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팔공산, 동봉, 서봉으로 통용되고 있다.
동봉에서 팔공스카이라인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시원하다.
그러나 저 멀리 팔공CC가 아무리 봐도 눈에 거슬리는 형국이다.
그 우측으로는 약사여래불이 있는 관봉이 자리해 있다.
비로봉의 청운대와 그 절벽 아래에 위치한 팔공산 제일의
명당이라는 오도암(悟道庵).
신라 654년(태종무열왕 원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1963년 폐사이래 지금은 유허(遺墟)만 남아 있다.
팔공산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동쪽으로 동봉을 거쳐
염불봉-인봉-노적봉-관봉(갓바위)의 연봉으로 뻗고,
서쪽으로는 서봉에서 파계봉을 지나 한티재와 가산을 거쳐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까지 30km가 넘는 거리로
변화무쌍한 산세를 보여준다.
또한 한티재를 경계로 동쪽을 팔공산,
서쪽을 가산이라 나누어 부르고 있기도 하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 대덕산 자락에 위치한 대구시립미술관.
대구시립미술관은 1997년 지역의 미술, 학계 등의 건립 요구에 따라
1998년 건립자문위원회를 구성, 기본계획을 세우고 부지선정 ·
설계공모 등의 절차를 거쳐 2002년 실시설계가 완료됐다.
이후 2007년 5월 착공에 들어가 이미 지난 3월에 준공이 되었지만
내부 준비 등을 이유로 내년 5월이 되어서야 개관될 예정이다.
지금 대구시립미술관 진입로는 공사가 한창이다.
대구시립미술관은 일반적인 학교 기숙사 BTL사업지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된 순수 건축 BTL사업지가 된다고 한다.
BTL사업이란 민간이 자금을 투자하여 사회기반시설을 건설(Build)한 후,
국가나 지자체로 소유권을 이전(Transfer)하고,
국가나 지자체에서 시설을 임대(Less)하여 투자비를 회수하는 사업을 말한다.
미술관 전면 계단.
야외공간에는 조그마한 연지도 조성되어 있다.
수변 휴게공간은 물론, 주변에 산책로도 마련하고... 특히 박물관 내부에는
유물 및 작품 보호를 위해 최신 항온,항습시스템을 적용했다고 한다.
▶ 공사규모/ 미술관 전시동(본관 1개동) 지하 1층~지상 3층
부속동(별관) 지하 1층~ 지상 2층
▶ 대지면적/ 71,065㎡ (2만1천497평)
▶ 건축면적/ 8,807㎡
▶ 연면적/ 21,701㎡ (6천576평)
▶ 공사기간/ 2007년 5월 ~ 2010년 3월
▶ 주차장/ 231면
서편에서 바라본 본관.
서편 본관에는 다양한 기획 전시공간인 다목적 홀과 7개의 전시실,
그리고 미술정보센터, 수장고, 사무공간 등이 위치해 있다.
미술관 전면부.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어
다소 위압감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미술관 로비는 아트리움 형식의 온실공간으로 조성해
쾌적함과 개방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했다.
동쪽에서 바라 본 모습으로, 동편 부속동에는 미술체험 공간인
교육실, 레스토랑, 그리고 국제교류를 위한 컨벤션홀과
강당을 갖추고 있다.
단촐하게 꾸며진 휴식공간.
민간투자(BTL)방식으로 지어진 대구시립미술관은 민간에 의해
운영되어지다 20년 후에는 대구시에 기부체납될 예정이다.
그러나 당초에는 올 연말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확보된 소장품이 턱없이
부족해 개관이 6개월 이상 미루어졌으며, 교통 접근성 또한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
거기에다 부속동이 완공된 이후부터, 결혼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를 유치하는 등
운영사의 수익확보를 위한 컨벤션 사업이 먼저 진행되다보니, 혹여
미술관으로서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
결국, 상업성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BTL 방식을 더구나 공공기관
건립에 도입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검토되어져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갓바위 관음휴게소쪽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로 옆 감나무집 식당을 통해
산길로 접어 들었다. 그냥 산 능선을 따라 가볍게 갓바위까지 가볼 참이다.
주위가 잘 조망되지 않는 산길이지만 저 멀리 갓바위가 나뭇가지사이로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계속해서 그곳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가늠해 가며 열심히 발을 옮긴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주위를 가리던 나무들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고
이내 사방이 확 트여져 왔다.
오른쪽으로 휘돌아 좌측 위 암자가 보이는 산봉우리 까지 가야 할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도중에 널찍한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굽이치는 저 산 너머로는 대구시가지가 기다랗게 누워있는 형상이다.
아마 왼쪽으로 보이는 터널은 익산포항고속도로 백안터널,
우측 아래로는 백안삼거리쯤 될 것 같다.
트랙 11개, 필드 5개 등 총 16종목으로 진행된 2010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가
지난 19일 오후 6시 20분 부터 2시간여에 걸쳐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세계 33개국, 국내외 150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번 대회는
올해부터 'IAAF World Challenge Meeting'으로 대회 등급이
격상되어 명실공히 국제육상대회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여자 100m 허들의 출발선에 선 선수들의 긴장된 모습.
남자 창던지기에서 이고르 야닉(Igor JANIK, 폴란드)이 역투를 하고 있다.
그는 80.46m로 이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 했다.
힘차게 날아 올랐다. 그러나...
오히려 수 많은 실패 뒤에 오는 승리가 더 짜릿한 법,
그 기쁨의 주인공은 반드시 그대가 될지니...
이번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는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가 보이지 않았다.
여자 멀리뛰기에서는 푼미 지모(Funmi JIMOH, 미국)가 6.68m로 1위를 차지했다.
세기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여자 100m에서는 현역 여자 선수 중
가장 빠른 기록(10초64)을 가지고 있는 카멜리타 지터(Carmelita JETER, 31, 미국)가
11초 00으로 베이징올림픽 200m 금메달리스트인
베로니카 캠밸 브라운(Veronica CAMPBELL-BROWN, 자메이카, 11초 05)을 따돌리고
이 대회에서 2년 연속으로 정상을 차지했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셰론 심슨(Sherone SIMPSON, 26, 자메이카)은 11초 26으로 그 뒤를 이었다.
대회의 하이라이트라 할 100m 경기에서 인간탄환이라 불리는
우사인 볼트(Usain BOLT, 24, 자메이카)가 9초86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볼트가 등장하자 관중들은 열광적인 함성으로 그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고,
그 열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볼트는 폭발적인 질주를 선보이면서 여유있게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자신이 보유한 세계기록(9초58)과는 격차가 있었지만 지난 1988년 칼 루이스(미국)가
서울올림픽에서 세운 9초92 및 지난해 이 대회에서 타이슨 게이(미국)가 기록한 9초94에 이어
국내에서 9초대의 가장 빠른 경기를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그의 유일한 단점은 느린 스타트, 장점으로는 큰 보폭과 빠른 피치(발을 내딛는 속도)를 꼽기도
하는데, 다른 선수들이 100m를 44~45걸음에 뛸 때에 볼트는 41~42걸음을 내디딛는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 볼트는 42걸음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세계 최고가 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는 우사인 볼트 특유의 세레머니.
그러나 그는 이미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는 것을...
볼트는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100m(9초69), 200m(19초30), 400m계주(37초10)에서
모두 세계 신기록을 작성한데 이어, 지난해 독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0m(9초58),
200m(19초19)로 세계기록을 1년만에 갈아치운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다.
-- 총상금 20만 달러가 걸린 이번 대회는 같은 1위라도 상금이 같지않다.
100m와 110m 허들 우승자는 5천 500달러를, 나머지 종목 1위는 4천 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 지난해에는 9개 종목에서 대회 신기록이 쏟아졌지만,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더 많이 출전한 올해에는 오히려 4개에 그칠 정도로 저조했다.
KBS는 3D 시범방송 채널인 지상파 66번을 통해
2010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를 생중계했다.
이는 지상파 스포츠 중계 사상 세계 최초의 3D 방송이었다.
와룡산에서 내려다 본 용산동과 장기동 일대의 모습이다.
중간을 가로지르고 있는 도로는 구마고속도로이며,
좌측으로 보이는 야산은 두류공원이다.
두류공원 너머로 대명동을 지나 지산, 범물지구가 한 눈에 펼쳐진다.
맨 뒤쪽, 산의 능선 오른쪽 가장 높은 부분이 용지봉(628.5m)이 되겠다.
내당동 및 대명동 일대.
저 멀리로 두산위브더제니스와 수성SK리더스뷰 아파트 현장이 나란히 보인다.
아랫쪽은 서대구산업단지.
말발굽 모양의 능선 안쪽으로 들어 선 대구광역시 위생매립장.
이 산은 산세가 마치 누워있는 용의 형상과 같다고 해서 와룡산으로 불려지고 있는데,
중간에 보이는 봉우리가 용의 머리부위에, 오른쪽 끝 부분이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른쪽 위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금호강 위로는 매천대교와 팔달교가 나란히 가로지르고 있고,
그 다리와 연결되어 세로로 이어진 도로는 신천대로와 연결된다.
또한 서대구 산업단지와 그 위쪽의 제3공업공단 사이에는 경부선 철로가,
와룡산 바로 아랫쪽으로는 구마고속도로 서대구IC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인다.
약간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숲으로 둘러싸인 달성공원도 보이고,
바로 그 너머로 대구역도 보인다.
서대구산업단지의 동쪽으로 펼쳐져 있는 건물군,
위쪽으로 치우친 부분이 대구의 중심부에 해당된다.
대구 동부의 축이라 할 만한 범어네거리 쪽으로...
마치 대구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불쑥 내밀고 있는
저 멀리의 두산위브더제니스 아파트 외엔
외견상 특별히 기준을 삼을만한 건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 여름의 끝자락, 그 당시에 바라 본
앞쪽의 지산동을 지나 대구의 중심부로 이어지는 시가지의 모습.
범물동 일대,
이 곳 관계삼거리에서 안심간을 연결하는 유료도로가 우측으로 보인다.
왼쪽 아랫쪽으로 나란히 보이는 곳은 범일초등학교와 범물중학교.
왼쪽 아래로 보이는 앞산의 자락,
그 너머로는 대구타워가 우뚝 서 있다.
아랫 부분에 보이는 저수지는 수성못으로, 일제시대 때
미즈사키 린타로라는 일본인에 의해 현재와 같은 치수용도로 증축되었다고 한다.
그의 묘는 수성못 옆 체육공원 쪽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경쟁을 하듯 아파트가 고층으로 올라가고 있는 수성구지역.
좌측으로 보이는 높은 건물은 완공된 대우트럼프월드수성이고,
그 바로 옆으로는 수성SK리더스뷰가 시공되고 있다.
우측으로 높이솟은 건물은 두산위브더제니스.
여전히 별 다른 특색이 없는, 무미건조한 대구의 스카이라인이다.
시가지를 관통하며 유유히 흐르는 신천이
건물들 사이로 빼꼼히 내려다 보이고...
대구의 중심부 쪽으로...
사진 오른쪽 끝부분에 대구역이 간신히 보인다.
아랫쪽의 법니산과 그 위로 보이는 앞산,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진 대구의 서부지역.
파동의 모습이다.
교각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 용두골로,
앞산4차순환도로(상인~범물 민간투자사업)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이 골짜기내 공사구간 인근에서는 선사시대 유적과 더불어 마애불이 발견되기도 했고,
앞산의 생태계 파괴와 맞물려 시민단체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그대로 진행될 뿐이고...
달성군 가창면 일대.
팔조령을 지나 청도로 연결되는 도로가 저 멀리로 길게 누워 있다.
우측, 차도 위쪽은 최정산으로 이어지는 주암산이다.
대구시 동구 불로동, 주택이 들어서 있는 야산 그 한쪽에
고분의 갯수가 총 211기에 이르는 대규모의 고분군이 자리잡고 있다.
1938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쳐 몇기만 표본 발굴 조사한 결과,
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사방벽을 쌓고 큼직한 판석으로 뚜껑을 덮은
장방형의 수혈식 석곽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금동제의 장신구와 철제무기,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으나
상당수의 고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라 한다.
삼국시대의 고분군으로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곳에 세워진 표지석의 글을 옮겨본다.
이 곳은 현재 200여기(基)의 삼국시대 고총고분(高塚古墳)이 밀집 분포되어 있는 대규모 고분군이다.
1938년 최초로 조사된 이후, 1968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2기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분구(墳丘)의 규모는 지름 15~20m, 높이 4m 전후이며,
매장주체부인 수혈식석곽(竪穴式石槨)의 규모는 길이 4.5~8m, 너비 0.8~1.2m, 깊이 1.0~2.2m 정도이다.
석곽의 네 벽은 냇돌 또는 깬돌을 이용하여 쌓았고,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았다.
일부 석곽에는 간벽(間壁)을 쌓아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과 시신을 매장하는 공간을 구분한 것도 있다.
출토 유물은 말그림이 새겨진 뚜껑 등의 토기류, 재갈, 행엽(杏葉) 등의 마구류(馬具類), 철촉 등의 무기류, 생선뼈가 있었다.
고분군의 조성연대는 5~6세기경이며, 이 지역 지배세력의 분묘들로 추정된다.
전면 우측으로는 조성중인 봉무산업단지가 보이고,
이 곳과의 사이에는 경부고속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또한 인근에는 공항이 위치해 있어, 뜨고 내리는 여객기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투기의 소음은 정말 만만찮다.
때문에 이 곳은 한시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
대구 일대에 현존하는 고분들 중 외형적인 형태를 가장 잘 갖추고 있고
좁은 지역에 많은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바로 이 불로동 고분군이다.
저 아래 보이는 작은집은 화장실이란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문을 열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생각보다 봉분이 많다.
크고 작은 봉분이 둔덕을 따라 쭉 이어져 있다.
한때 이 곳에는 불장난으로 추정되는 산불이 발생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일부엔 그을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봄이 되니 그 자리엔 어김없이 또 다른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우리네 정서에 비춰보면 아직까지는 무덤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지만,
그래도 한 없이 푸근하게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이 곳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