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은 인간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 중 하나이다.
인간은 얼굴 근육의 변화로 다양한 표정을 만들 수 있으며,
이로써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수도 있다.
인간의 감정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 이 네가지가 있지만,
얼굴 표정에 대해서 연구를 했던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박사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기쁨과 슬픔은 물론,
분노, 혐오, 두려움, 놀람이라는 6가지의 기본 표정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때로는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얼굴 표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흔히들 '시치미를 뗀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데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얼굴 표정에 관여하는 근육은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도 많다고 한다.
인간의 몸 근육은 650여개이며, 그 중에서 얼굴 근육은 80여개나 된다.
이들 근육 중에서 웃을 때에는 몸의 근육이 231개,
얼굴근육은 15개 이상이 움직인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대게 여섯 살 무렵에는 하루에 300번 정도 웃는데,
어른이 되어 갈수록 하루 평균 17번 정도로 줄어 든다고 한다.
물론, 하나하나 알아 갈수록 모든 일들이 복잡해지고,
온갖 좋지 않은 일들도 접하게 되면서 자연히
그렇게 되어 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웃는 것만으로도 여러모로 유익하다.
10초의 웃음은 3분간 노젓기, 4분간 조깅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으며, 하루 45분을 웃게 되면 심장병에 좋고
고혈압, 스트레스 치료가 가능하며, 특히 암을 이길 수 있는
세포가 활성화 되기도 한다.
▲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당나라의 승려로 이름은 계차(契此)라 하며 항상
바랑을 메고 다니며 구걸하였으므로 포대화상이라고 불렀다.
배불뚝이에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하였는데 길흉을 말하면 틀림이 없었다 하며
자루에는 음식이나 과자가 들어 있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미륵의 화현(化現)으로 믿었다고 한다.
웃음에 대한 여러 효능은 차치하고서라도,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자연히 기뻐지고 행복해진다"는
미국의 어느 심리학자의 말처럼 그저 아무 생각없이
억지로라도 많이 웃고 볼 일이다.
■ 웃음의 종류
* 미소(微笑) : 소리를 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웃음.
* 대소(大笑) : 호쾌한 웃음, 손뼉까지 치면 박장대소(拍掌大笑).
* 함소(含笑) : 머금은 웃음, 여성적인 웃음.
* 고소(苦笑) : 쓴 웃음. 허탈할 때나 가벼운 손해를 입었을 때의 웃음.
* 냉소(冷笑) :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 경멸 · 체념 등의 뜻으로 차갑게 웃는 웃음.
* 교소(嬌笑) : 아리따운 여성의 웃음, 여성의 애교 있는 웃음.
* 염소(艶笑) : 요염한 웃음.
* 매소(賣笑) : 술자리에서 몸과 웃음을 팖.
* 자조(自嘲) : 자기 스스로를 비웃음.
* 비소(非笑) : 남을 비방하거나 비난조로 내뱉는 웃음.
* 홍소(哄笑) :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내어 웃는 웃음.
* 조소(嘲笑) : 조롱하며 웃는 것, 비웃음.
* 담소(談笑) : 이야기하면서 웃는 웃음, 웃고 즐기면서 이야기 함.
* 실소(失笑) :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웃음.
* 폭소(爆笑) : 크게 터져 나오는 웃음, 갑자기 크게 터져나오는 웃음.
* 미소(媚笑) : 아양을 부리며 아첨하는 듯한 웃음.
* 지소(指笑) :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웃음.
* 기소(欺笑) : 남을 업신여겨 비웃음, 남을 놀리거나 속여서 우습게 봄.
* 언소(言笑) : 이야기하면서 웃는 웃음.
* 잠소(潛笑) : 가만히 웃는 웃음.
* 일소(一笑) : 한번만 웃는 웃음, 업신여기거나 깔보아 웃음.
* 인소(忍笑) : 웃음을 참음.
* 절소(絶笑) : 몹시 자지러지게 웃는 웃음.
* 습소(濕笑) : 억지로 웃음, 마지못해 웃는 웃음.
* 양소(良笑) : 한참동안 웃음.
* 학소(謔笑) : 익살맞은 웃음, 희롱하여 웃음.
* 파안대소(破顔大笑) : 얼굴 표정을 한껏 지으며 크게 웃는 웃음.
* 가가대소(呵呵大笑) : 껄껄하고 크게 웃는 웃음.
* 포복절도(抱腹絶倒) : 배를 안고 넘어질 정도로 크게 웃음.
* 홍연대소(哄然大笑) : 크게 껄껄 웃음.
* 앙천대소(仰天大笑) : 어이가 없어서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웃음.
* 협견첨소(脅肩諂笑) : 어깨를 간들거리고 아첨하며 웃음.
* 언소자약(言笑自若) : 놀라지 않고 평상적인 마음으로 웃으며 이야기 함.
* 박장대소(拍掌大笑) : 손뼉을 치며 크게 웃음.
* 일소천금(一笑千金) : 한 번 웃는 것이 천금 같다는 뜻.
* 일빈일소(一嚬一笑) : 근심스러워 찡그리기도 하고 즐거워 웃기도 함.
* 일소일소(一笑一少) :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짐.
*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 웃으면 집안으로 복이 들어온다.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 중 하나인 웃음은
아름다운 화장술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옛말처럼,
살아가면서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표정은 피하고
마냥 서로 보듬고 웃으면서 살아갈 일이다.
어쩌면 그것은 삶의 또 다른 처세술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고맙게도 모두가 하나같이 따뜻한 가슴과 열정을 가지신 분들이라
알게 모르게 저에게는 큰 자극제가 되어 주셨지요.
사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느끼셨을 테지만,
포스팅 하나를 위해 투자하는 많은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체감할 수 있는 만족감은 너무나 미미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웃과의 소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는 자기만족이 블로그를 하는 이유의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열정적으로 컨텐츠를 토해 내고 계시는
이웃님들을 보면 정말 경이적이라 아니할 수 없겠더군요.
▲ 더 나은 블로그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제 마음의 때부터 벗겨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저는 많은 이웃을 두기를 원하지 않은 탓일까요.
어쩌면 오는 이웃 막지 않고 가는 이웃 막지 않는다는
방관자적 입장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저변에는 포스팅을 쉬어도 이웃님들에게 전혀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유롭게 블로그를 운영하고 싶다는 마음도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말씀드린다면 일종의 게으름병이라 할까요.
거기에 더해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글과 사진으로 도배하는 것도
어찌보면 이웃을 기만하는 일이 될테고 말이죠.
그런 면에서도 저는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기에는 부끄럽지만, 어쩌면 이런 점이 스스로가
적극적이 되지 못한 이유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이런 소통의 공간에 발을 들인 이상,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하고 있고, 또 어떤면에서는 이제까지
그렇게 해 왔다고 스스로를 애써 믿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새해가 되어서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네요.
아니, 어쩌면 이 게으름병이 더 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혹시나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보다 포스팅 횟수가 더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매번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만은 그대로 가져가려 합니다.
그러니 그때그때 많은 지적과 함께 애정어린 충고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여러 불편함이 많은 블로그임에도 매번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이웃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굳이 포복절도, 파안대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러나 낙엽들만이 수면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 위로 떠받들고 있는 여타 풍경들도 그러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물은 상대를 비추어주는
조그마한 거울이 되어주기도 한다.
수면 위로 앙상하게 변해버린 가지가 조심스럽게 몸을 내밀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해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초라해진 모습에, 차라리 지나가는 바람의 힘을 빌어
자신의 흔적을 지워버렸으면 하는 심정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람은 무심하게도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고요히 숨만 죽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이 가을은 오롯이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은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듯
끊임없이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굳이 눈을 뜨고 바라보지 않아도
가슴만 활짝 열려 있다면...
그들의 대화, 아니 이 가을의 소리 조차도
그대로 마음에 와 닿을런지도 모른다.
가을의 마법이라고나 할까.
일렁이는 바람을 따라 마음도 함께 흔들리고...
박제된 영혼들은
가을의 끝에서 겨울을 예감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새삼스럽게도
삶에 대한 의미를 반추해 보게 되는 이 계절,
비록 짊어지기 버거운 삶의 무게가 있다 하더라도
기꺼이 끌어안고 가야만 하는..
그것 또한 삶의 일부이자 현실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을은 인간들의 무거운
한숨소리를 뒤로 한 채 그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필리핀의 식민역사가 시작된 뼈 아픈 곳에 세워진 혈맹기념비(Blood Compact marker).
국왕 대신의 자격으로 온 스페인 초대 총독인 미구엘 로페즈 드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ipi) 장군과 시카투나(Datu Sikatuna)
보홀 족장이 1565년 평화우호협정을 맺게 된다.
이 협정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 이루어진 최초의 국제조약으로,
필리핀의 전통에 따라 와인에 자신의 피를 섞어 마셨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이 혈맹기념비이다.
레가스피 장군은 지금의 멕시코인 누에바에스파냐에서 지방 정부의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필리핀에 대한 스페인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5척의 선박을 이끌고 멕시코의 아카풀코를 출발해 필리핀 남부의
세부에 도착한 후, 1566년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를 건설한 인물이다.
798예술구는 베이징시 조양구 따샨즈(大山子)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예술인들의 작업실이 모여있는 예술거리로, 공장지역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탓에 무척이나 독특한 분위기이다.
798예술구는 따샨즈 예술구라고도 불리우는데,
798이라는 이름은 이곳 예술특구 내부에 있는
길 이름인 798에서 따왔다고 한다.
베이징 정부가 지정한 최초의 예술특구인 798예술구는
원래 구소련과 독일의 기술로 세운 공장지대로,
무기와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곳이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무기생산이 활력을 잃게 되면서
이전하는 공장들이 많게되자, 2001년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들면서 798은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2006년 정부에 의해 최초 10개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베이징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일부 남아있는 공장들은
지금까지도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골목마다 숨어있는 조각과
그림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는 400여개가 넘는 전문 화랑과 갤러리,
그리고 독특한 인테리어의 수 많은 카페와 아트샵들이 들어서 있다.
전시장의 입장료는 극히 일부분을 빼고는 거의 무료이며,
음식점, 커피점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이곳 798예술구는 말 그대로 예술품을 생산해 내는 공장인 셈이다.
시간상의 제약에다가, 때마침 스쳐지나간 엄청난 양의 폭우로 인해 한동안
발이 묶여버리는 바람에 더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더구나 예술품을 꼼꼼히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양문의 전루를 거쳐 성루(城樓)로 향하는 길이다.
이 성루와 성루 남쪽에 있는 전루(箭樓)를 통칭하여 전문(前門)이라고 한다.
전문은 베이징 내성의 정문으로 황제가 내성과 자금성을 출입할 때 쓰던
황제 전용 어문이며, 황제가 천단으로 제사드리러 가기 위해 통과하던 문이기도 하다.
전문은 본래 여정문(麗正門)으로 불리다가 1437년에 정양문(正陽門)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건물을 통과하면 바로 모주석기념관과 더불어 톈안먼 광장과 만나게 된다.
톈안먼 광장 동쪽에 위치한 1959년에 완공된
중국국가박물관(역사박물관, 혁명박물관)의 모습이다.
그 맞은편 광장 서쪽에 위치한 같은 해에 건립된 인민대회당
(국회의사당) 등과 더불어 중국이 자랑하는 10대 건축에 포함된다.
오른쪽 인민영웅기념비와 그 왼쪽 인민대회당.
인민대회당은 중국 인민대표대회 회의장으로 1959년에 완성되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리며,
5년에 한번 중국 공산당 총회가 열린다.
1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고,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연회장도 갖추고 있다.
톈안먼 광장의 중심부에는 37.94m 높이의 인민영웅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20세기 중국의 혁명과정에서 희생된 인민들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서
1958년에 완성되었으며, 비석의 대리석 받침대 네 면에는 근대 약 100년간의
혁명역사를 조각한 8개의 부조가 있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가인 마오쩌둥(毛澤東)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모주석(毛主席)기념당.
1976년에 착공해 마오쩌둥 사망 1주년인 1977년에 완공되었다.
입구의 모주석기념당이라는 글자는 화궈펑(華國鋒)의 휘호이다.
참배시간이 아니어서인지 이곳에서 두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기원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모주석기념당 양쪽 측면에는 2개의 대형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중 왼편을 장식하고 있는 군상(群像)조각이다.
40만 명의 인원을 수용한다는 톈안먼 광장이다.
북쪽으로는 청(淸)나라 황성의 정문인 톈안먼이 위치해 있다.
1989년 6월 4일, 후야오방(胡耀邦)의 사망을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이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계엄군을 동원하여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만오천명 이상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톈안먼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현장이다.
톈안먼은 명나라 때인 1417년(영락15)에 착공되어 1420년(영락18)에 완공되었으며,
당시에는 승천문(承天門)이었다.
1457년에 화재로 훼손된 것을 1465년에 재건하면서 정면폭이 9칸인 문루식 패루로 만들었다.
이후 1644년 소실되었다가 1651년에 다시 복구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목조 패루에서 성루로 증축하고 톈안먼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문 중앙에 마오쩌뚱(毛澤東)의 대형 초상화와 양 옆으로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고 새겨진 현판이 내걸렸다.
이 문 앞에는 한백옥으로 다듬어진 돌다리인 와이진수이차오(外金水橋)가 놓여져 있고
그 밑으로는 진수이허(金水河)가 흐르고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메이데이와 국경절이 되면 퍼레이드가 벌어지는데,
톈안먼 문루(門樓)는 그 사열대가 된다.
마오쩌뚱(毛澤東)은 이 문루에서 1949년 10월 1일 중공정권의 수립을 선언하였고,
1966년에는 홍위병(紅衛兵)을 열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