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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전동차로 이동하여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하니 입구의 시계탑이 반겨준다.

산 정상부는 구름의 조각들로 요동을 치고 있다.







케이블카는 계단식 논 위를 미끄러져 올라간다.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다만 거의 수직에 가까운 태양광인 탓에 다소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쉽다.







다행히도 정상부의 여건은 큰 이상이 없어 보인다.

 

해발 3,143m의 높이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높아 '인도차이나의 지붕'으로 불리는

판시판 산 (Phan Xi Păng, Fansipan)은 호앙리엔 산맥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2016년 케이블카가 완공되어 쉽게 오를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케이블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도차 1,410m를 자랑한다.







계단을 따라 오르기는 하지만

일부구간은 푸니쿨라 트램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사진 중심부분).







저만치 구름을 발 아래에 두고,







몇 개의 사원을 거쳐 오르면서,







지나온 길을 내려다 본다.

베트남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인 사파는 안개가 짙은 날이 많다는데,

다행스럽게도 오늘 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오가는 구름들로 인하여 저 아래 사파시내와 숨바꼭질을 한다.

몰려왔다, 사라졌다...

오히려 구름들로 인하여 풍경은 더 생동감으로 넘쳐난다.







판시판 산의 700m까지는 울창한 원시림의 열대지역이며,

700m 지역의 어떤 나무는 50~60m 높이로 두꺼우며 여러 종류의 꽃을 4계절 내내 피운다,

그리고 2,400m 지점에는 바람과 구름, 안개로 뒤덮여 있으며,

2,800m 지점에서는 구름없이 바람만 불고 풀들은 바닥에 붙어 자라고 있다.







데크 전망대에서 확 트인 경관을 감상한다.







곳곳에서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분주하고,







하산하는 길에는 사파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거대 불상과 마주한다.







독송을 하는 가운데 중간 중간에 타종을 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산 아래와 달리 이곳 정상부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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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이 내려다보이는 선짜반도의 해발 693m 선짜산 중턱에 위치한 영응사(靈應寺).

영흥사, 린응사, 링엄사 등으로 불리는 이곳 본당 광장에는 

분재와 18나한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낭에는 세 곳의 영응사가 있는데,

이곳 외에도 오행산과 바나산에 영응사가 있다.







바다로부터 사람을 지켜준다는 해수관음상.

거대 미륵보살상으로 높이는 67m이며

베트남 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일명 '보트피플'의 넋을 달래기 위해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금으로 2003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해수관음상 연꽃 좌대 아래의 법당.







대웅전에 해당하는 본전의 내부.














최근에 조성 되었다는 와불.







한 켠 조용한 곳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 넉넉한 웃음을 흘리고 있고...

베트남에서는 포대화상을 재물과 복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생각한다.







입구쪽 숲에 서식하고 있는 원숭이들.







미케비치에서 바라본 영응사.

이곳 다낭 앞바다에서는 약 1만 4천여 명에 달하는 보트피플이 빠져 죽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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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 석탑인 영응보탑.


다낭 시내와 호이안 사이에 위치한 오행산(응우한선, 五行山)은

5개의 높지 않은 봉우리로 각각 목ㆍ화ㆍ토ㆍ금ㆍ수 오행을 관장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마블 마운틴'으로도 불리운다.

이곳은 오행산 중 물을 관장한다는 투이썬(Thuy Son, 水山).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는 영응사(靈應寺).







현공(玄空)동굴의 입구.







2개의 현공동굴 중 하나인 호아응히엠 동굴.

이곳 투이썬에는 많은 동굴이 있으며 동굴마다 불상이 모셔져 있다.







현공동굴은 오행산의 동굴 중 가장 넓고 크다.







현공동굴의 천장은 밖으로 환하게 뚫려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해 생긴 구멍이라고 한다.







전망대인 망강대(望江臺)에서 조망해 보는 또 다른 오행산의 파노라마.







17세기에 지어졌다는 삼태사(三台寺).

2층 누각의 법당으로 장식과 조각들이 화려하다.







삼태사의 법당.

이곳 투이썬이 세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어서 삼태사...







삼태사는 프랑스의 침략과 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수차례 파괴되고 복구되는 과정을 겪었다고 한다.







산 아래에는 약 600여 가구의 대리석으로 만든 기념품점이 늘어서 있다.

과거에는 이곳 산에서 직접 채굴하였으나 지금은 쾅남(Quang Nam)지역이나 

타인호아(Thanh Hoa)지역에서 가져온다고 한다.







오행산(투이썬)의 개념도.


① 영응보탑   ② 영응사   ③ 장주동굴   ④ 전망대(망해대)   ⑤ 운통동굴   ⑥ 영암동굴

⑦ 공원   ⑧ 정상   ⑩ 현공동굴   ⑪ 삼태사   ⑫ 존담사

⑬ 도담사   ⑭ 전망대(망강대)   ⑮ 암부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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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아시아 최고의 호텔 중 하나로 꼽혔다는 원산대반점(圓山大飯店).

1952년 준공된 이후 20년간 줄곧 세계 최고의 반열에 들었다는 바로 그 건물이다.







먼 발치로 바라보이는 타이페이101, 혹은 타이페이세계금융센터.

타이완 섬의 대표적인 마천루로, 2010년 1월 3일까지는 세계 

고층빌딩 중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지하 5층, 지상 101층의 규모에 높이는 508m...







1960년대 말까지 최고의 번화가였던 곳이자 타이페이에서 

형성된 최초의 보행자거리인 서문정(西門町)거리.

서을의 명동에 해당되는 곳으로, 상점과 영화관 등 유흥가가 밀집해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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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때인 1738년 푸젠성 이주민들이 세운 사찰이었으나

소실되어 없어지고, 1957년에 다시 건축된 용산사(龍山寺).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고 한다.







불교와 도교가 공존하는 사원.

정교하고 섬세한 장식들로 조각된 전각들로

매우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입구쪽 인공폭포의 높은 곳에 올라 

어슬렁 거리던 고양이 한 마리.







마주 보이는 건물은 본전.







본전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고,







본전 뒤에 위치한 도교사원에는 도교의 여러 신들을 모시고 있다.







장사의 신 관우와 바다의 여신 마조신,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 등

각자 의지하는 신에게 발복을 기원한다.







밤 늦은 시간에도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 도교사원,

이곳 용산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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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로각국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장춘사(長春祠)를 찾았다.

좌측으로 보이는 장춘교를 지나 우측의 장춘사까지 산책하듯 걸어본다.







장춘사는 동서횡단공로를 건설하다가 희생한 226인의 영령을 달래기 

위한 사당으로, 1958년에 처음 지어졌고 1979년에 태풍으로 피해를 입어 

1980년에 다시 건립, 1987년 자연재해로 무너지고 1989년에 다시 

지어지면서 현재의 장소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암벽위에 '장춘청도(長春聽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장춘에서 부서져 내리는 폭포수 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들린다'는 뜻이라고...







다리를 지나 동굴이 시작되는 지점에 마련된 불상.

동서횡관공로 공사때 희생된 분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있다.







장춘사와 그 가운데를 흐르는 폭포가 한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온다.







아찔한 절벽 위에 세워진 또 다른 사찰, 선광사(禪光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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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롄의 750m 고산지대에 살던 아미(阿美, 우라이)족의 민속공연.

대리석과 옥으로 유명한 화롄에서 볼 수 있다.

아미, 즉 우라이는 원주민인 타이야르족의 말로 '온천'이라는 뜻이라고...







아미족은 남방계답게 춤동작이 경쾌하다.

특히 박자에 맞춰 대나무 사이를 넘나드는 춤은 이곳 민속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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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롄(花蓮)역 앞의 조그마한 공원에 세워진 중국 혁명의 선도자이자

국부(國父)로 받들어지는 쑨원(孫文)의 동상.







화롄으로 갈 때는 우리나라의 기업인 현대가 만든 오래되고 낡은 기차를 이용했지만,  

타이페이로 되돌아 오는 길에는 깨끗하고 쾌적한 최신식의 일본제 기차를 탔다.

역시 낡기는 했지만 대우의 마크를 단 기차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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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갓바위로 오르는 길이다.

초입부터 오르막이 시작되고 관암사를 지나고부터는 본격적인 계단길이 이어진다.


관암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이지만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폐사되어 누가 언제 창건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갓바위 정상에서 내려다본 선본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

이 길을 통하면 좀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이곳 갓바위에서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이른 새벽부터 치성객으로 줄을 잇기도 하는데, 특히 초하루나 

요즘같은 입시철은 물론, 새해에는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많이 붐빈다. 




정성을 표현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는 두 손을 모아 참배를 하거나...







향을 피워 올리거나...


'향은 자신의 몸을 태움으로써 그 연기는 하나로 융합되는데,

그것은 희생과 화합을 의미하며 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향기와 즐거움을 주게 된다.

이것은 영혼의 심지에 진리의 불을 붙이는 구도자들이 취해야 하는 삶이며, 

자기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대승불교의 정신으로 궁극적으로는

해탈을 성취한다는 의미로 해탈향이라고도 한다.'







양초를 태우거나...


'사물의 수명이 다해 사라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촛불이 타면 양초는 사라지지만 양초를 이루고 있는 물질들은 

빛과 열, 그을음, 연기 등으로 모습을 바꿀 뿐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 못하여 사라져 가지만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다만 변화할 뿐이라는 것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 새로이 생기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다.







인등(引燈)을 밝히거나...


인등 또한 개인의 건강과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의미로 밝혀진다.







                               또는 직접 공물(供物)로 바치거나...







                               혹은 연등불사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어떤 형식 되었든 그들의 소망이 모두 다 이뤄지기를 기원해 본다.







병풍처럼 늘어선 암벽을 배경으로 남동쪽 방향으로 굽어보고 있는 관봉(冠峰)석조여래좌상.

표정이 아주 근엄해 보인다.


갓바위(관봉석조여래좌상)는 팔공산 남쪽 해발 850m의 관봉 정상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으로 전체 높이는 4m에 이른다.

머리 위에 두께 15cm정도의 판석을 갓처럼 쓰고 있기에 그렇게 부른다.

왼손에 작은 약호(藥葫)를 든 것으로 미루어 약사여래상으로 추정한다. 보물 제431호.







이곳에서 연무가 내려앉아 희미하게 드러난 대구 시가지를

한참이나 내려보다가 다시 발길을 되돌린다.







내려오는 길에는 부처님이 아주 인자한 표정으로 배웅을 해 주신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갓바위는 갓의 모양이 학사모와 비슷하여 특히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코 앞에 앞둔 지금은 수능 고득점을 기원하는 학부모들의 기도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수험생 모두의 행운을 빌어본다.









Landscape




                               경북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비봉산 자락에 위치한 수정사.

                               대광전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이 모셔졌고, 좌우 협시불로는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모셔져 있다.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께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유서깊은 천년고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금성산에 진을 치고 왜적을 격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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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에 위치한 제2석굴암.


제2석굴암은 신라 제19대 눌지왕 때 아도화상께서 수도전법 하시던 곳으로

화상께서 처음으로 절을 지었다. 

그후 원효대사께서 절벽 동굴에 미타삼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조성 봉안하였다.

현존하는 사찰 건물은 1985년 12월 조계종 법등스님이 제3대 주지로 부임하여

10년간 중창 대작불사를 발원하여 도량을 일신한 것이다.







                               옛날에는 석굴암을 비롯한 이 고을에 8만9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임진왜란 당시 거의 소실되고 망각의 세월속에 묻혀왔다. 

                               그러던 중 1927년경 한밤마을 주민에 의해 삼존석굴이 발견되면서   

                               1962년 정부로부터 국보 제109호로 지정받았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 제2석굴암으로도 불리운다.

이곳 석굴암은 7세기경 조성되었으며 경주 석굴암보다 약 1세기 정도 앞선

선행양식으로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되었다.

경주의 석굴암이 인공으로 석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부처를 모셨다면

이곳은 자연석굴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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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앞산에 위치한 안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참고 / 현장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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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좌전도(海左全圖).

                               19세기 중엽, 55.8×98.3, 목판본.

                               산계(山系)와 수계(水系), 자세한 교통로 등이 그려져 있다.







안경 / 조선시대, 18세기

조선 중기에 등장한 안경은 상류층이 쓰는 것으로 대부분의 

안경렌즈는 경주에서 나오는 '남석'이라는 수정을 사용하였다.







호패(號牌).

조선시대때 신분증 역할을 하는 작은 패(牌)로 월성손씨의 

손종하, 손시구, 손응구, 손성덕, 손종원, 손수학의 호패이다.







                               보물 제1216호, 양민공 손소(襄敏公 孫昭, 1433~1484) 선생을 그린 초상화.










편철간(編綴簡).

중국에서 출토된 시대미상의 편철 죽간(竹簡).

죽간이란 대나무를 일정한 크기로 잘라 그 위에 글을 쓴 것이다.

여러 매를 끈 등으로 묶어 만든 죽간은 종이를 대신해 각종 문서와

서적 역할을 했고 두루마기처럼 말아 보관을 했다.







갑오경장(1894) 이후 바뀐 호적(戶籍)양식.







                               함월산 기림사 소장품인 납석제여래좌상 (蠟石製如來坐像, 조선시대).

                               곱돌이라고 하는 납석으로 만든 것으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백제시대의 군수리 출토 납석제여래좌상이 있다.







                               ▶ 댓글은 잠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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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에 위치한 기림사(祇林寺)를 찾았다.

기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의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일주문을 지나니 짧지만 운치있는 길이 나타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승원 중에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기원정사(祇園精舍)와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특히 기원정사는 부처님이 23번의 하안거를 보내신 곳으로 그 기원정사의 

숲이라는 의미로 기림(祇林)이라 이름 붙였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유물전시관과 사천왕문으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먼저 사천왕문으로 향한다.


기림사는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의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고

하였다가 원효가 확장, 중수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1863년(철종 14) 본사(本寺)와 요사(寮舍) 113칸이 불타 없어지고 당시 지방관이던

송정화의 혜시(惠施)로 중건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外護), 신장(神將)을 모신 사천왕문.

비파를 연주하는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과 오른손에 검은 든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의 모습이다.

반대편에는 오른손에 삼지창, 왼손에 보탑을 든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과 

왼손에 여의주를 든 남방 증장천왕(曾長天王)이 마주하고 있다.







진남루(鎭南樓).

진남루는 남방을 진압한다는 뜻으로 남방은 일본을 가리킨다.

임진왜란 당시 기림사는 전략 요충지로, 경주지역 의병과 승병 활동의

중심 사원이었으며 당시 승군의 지휘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른쪽의 약사전과 그 왼쪽의 대적광전.

왼쪽, 기둥만 보이는 건물은 응진전이다.







오백나한상을 모신 응진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4호).

그 앞쪽에는 높이 3m쯤 되는 아담한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이 자리해 있다.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약사여래불을 모신 약사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2호이다.







기림사의 본전이자 보물 제833호인 대적광전.

선덕여왕 때 처음 지어졌으며 그 뒤 8차례나 다시 지어졌다.

최근인 1997년에는 제8차로 완전해체 수리가 이루어졌다.







                               관음전에 모셔진 천 개의 손과 눈, 그리고 열한 개의 얼굴을 하고 있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천(千)은 광대무변(廣大無邊)을 의미한다.

                               수 많은 중생들의 고통을 보아야 하므로, 그리고 손을 내밀어 구제를 해야 하므로

                               그렇게 많은 눈과 손이 필요한 것이다. 







삼천불이 모셔진 삼천불전.

현재의 건물은 최근(199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

108평의 거대한 크기이다.







삼천불전의 내부.

삼천불은 항상 어디에서나 부처님이 계신다는 사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과거 천불, 현재 천불, 미래 천불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모신 명부전과 나반존자(獨聖)와 칠성(七星), 

그리고 산신(山神) 등 세 분을 함께 모신 삼성각.







템플스테이 용도로 쓰이는 화정당(華井堂).

왼편에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건칠보살좌상을 제외하고 모두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

복장에서 나온 고려 및 조선시대 전기의 전적들로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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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에 위치한 골굴사(骨窟寺).

경주에서 감포가는 길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이 절은 여느 다른 절과는 달리 입구부터가 남다른 느낌이다.







마하지관원(선무도대학 생활관).


골굴사는 선무도(禪武道)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얼핏 중국의 소림사를 떠올리게 한다.

선무도란 예로부터 밀교(密敎)로 전해져 오던 스님들의 무술로

옛 신라의 화랑들이 수련하던 무술이라고 하는데, 선종(禪宗)을 일으킨 

달마대사가 전수한 수행법으로 일반적인 무술 이외에 요가와 명상을 포함한다. 







                               선무도대학의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는 세심당.


                               입구에서부터 길이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불국사보다 약 200여년 먼저 조성된 골굴사는 신라시대 불교문화가 번창하던 6세기경 

                               서역(인도)에서 온 광유 성인(光有 聖人)일행이 암반전산(岩般全山)에 마애여래불과 

                               12처(處)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 온 국내유일의 석굴사원이다.

                               또한 원효대사가 열반한 혈사(穴寺)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비탈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쪽은 대적광전, 또 다른 한쪽은 마애여래좌상으로 가는 길이다.

                               마애여래좌상 방향을 선택하여 돌계단을 오르니 곧장 작은 동굴이 군데군데

                               뚫려있는 석회암 절벽이 나타나고, 움푹하게 패인 그 동굴에는 어김없이

                               갖가지 형태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었다.







                               산신굴.


                               암반 사이의 공간에는 관음굴, 약사굴, 나한굴, 지장굴 신중단,

                               칠성단 등 여러 굴법당(窟法堂)이 조성되어 있다.   







또 다른 참배처 신중단(神衆壇).


신중은 여러 신을 말하는데 불법을 수호하는 위타천(韋陀天)이 중앙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며 제석천이 그 위에 배치된다.

그러나 골굴사의 신중단은 제석천으로 보이는 신중이 중앙에 위치하며,

사천왕은 양쪽 끝 아래 위에 서 있다.

신중도는 일반적으로 39위가 그려지며, 보다 많은 신을 포함할 경우104위까지 표시된다.







                               조금 더 올라가면 관음굴이 나온다. 







                               마치 암벽등반을 하듯 아슬아슬한 난간을 타고 나아간다.

                               응회암으로 형성된 암반 정상부위에서는 보물 제581호인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을 만나볼 수 있다.









마애여래좌상 바로 아래에서 내려다본 대적광전(대웅전).

골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로 현재 불국사의 말사(末寺)로 소속되어 있다.







                               큰 법당인 대적광전내의 삼존불(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오륜탑.


                               청정법신 대일여래불(淸淨法身 大日如來佛)을 상징하는 만다라(曼茶羅)로서

                               모든 덕과 지혜를 갖추었음을 뜻하여 오지륜(五智輪)이라고도 한다.

                               이 탑에는 태국에서 모셔온 불사리(佛舍利) 3과(果)가 봉안되어 있다.







                               오륜탑에서 내려다본 대적광전과 마애여래좌상.


                               오륜탑까지 둘러보고 하산을 시작한다.

                               골굴사는 선무도라는 무술로 유명해서인지 그저 조용한 산사라기보다는

                               다소 역동적이고 강한 힘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있다는 선무도 시연은 아쉽게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접해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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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종이라고도 부르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국보 제29호 / 통일신라(771년) / 높이 365.8cm


                               이 종은 신라 제35대 왕인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대왕을 위하여

                               만들기 시작하여 그 아들인 혜공왕에 의해 771년에 완성되었다.

                               종의 꼭대기에는 용뉴(龍鈕)와 음통(音筒)이, 몸에는 위로부터 보상당초무늬(寶相唐草文)를

                               새긴 문양띠, 그 아래에는 4개의 유곽(乳廓), 4구의 비천상, 2곳의 당좌(撞座),

                               맨 아래에는 보상당초와 연꽃 문양띠가 양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형태와 화려한 장식, 아름답고 여운이 긴 종소리 등 

                               우리나라의 종 가운데서 가장 크며 뛰어난 걸작이다.







연꽃무늬수막새.


8개의 연화꽃잎으로 이루어진 연화무늬(蓮花文) 수막새는 

삼국시대에 유행하던 형식이다.







녹유와(綠釉瓦), 용얼굴무늬기와.


녹유는 토기 혹은 기와 표면에 시유(枾釉)하는 인공유를 지칭하며,

청색, 녹색, 황갈색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녹유는 용해도가 700~800℃인 저온에서 소성(燒成)하고

그 이상의 고온일 경우에는 유약 성분이 휘발해 버린다.

녹유와는 최상의 건축물, 공예품에 한정하여 사용하는 희귀한 제품이다.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 / 경주 영묘사지(靈廟寺址) 출토


얼굴무늬 수막새는 도톰한 입술과 위로 들린 입꼬리, 얕은 볼, 살짝내민 눈동자가

서로 어우러져 천진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막새에 얼굴형상을 하여 지붕 위에 올렸던 이유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려는 의도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와는 일제강점기에 영묘사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며, 당시 일본인

다나까 토시노부가 구하여 보관해오다 1972년 10월,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한 문화재이다.

기와의 제작연대는 외측에 넓은 테두리를 마련하고 높은 온도에서 구운 점, 

얼굴 양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점으로 미루어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

                               경주 월지(月址) 출토 / 통일신라 8세기 후반.







금동불 손(金銅佛手).


수인(手印)은 부처님의 덕을 나타내기 위하여 열 손가락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표현하는 것으로 불상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하시는 수인은 천지인(天地印), 선정인(禪定印), 전법륜인(轉法輪印),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 있고,

비로자나부처님은 지권인(智拳印)을, 아미타부처님은 구품인(九品印)을 한다.







                               금동문고리, 금동제귀면문고리장식

                               통일신라 / 높이 7.1cm, 총길이 10.4cm / 경주 인왕동 안압지 출토


                               같은 틀에서 만든 여러 개가 출토되었다.

                               부릅뜬 눈과 큰 코, 양 볼의 갈기와 송곳니를 드러낸 큰 아가리 등을  균형있게

                               표현한 매우 세련된 문양이다.

                               입에는 염주모양으로 생긴 둥근 고리를 물려 손으로 잡을 수 있게 하였다.

                               문고리를 건 장식판은 연주(連珠)무늬로 가장자리를 돌린 뒤 보상화무늬(寶相華文)를 맞새김하였다.

                               그러나 굵고 큰 고리는 민무늬이다.







곱은옥(曲玉)


실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어 실에 매달아 몸에 걸쳤던 것으로 보인다. 

목과 가슴을 장식하는 용도와 금관이나 복식, 허리띠를 장식하는데 사용되었다.







                               금관. 국보 제188호.

                               1973년 경주 천마총 출토 / 신라 / 높이 32.5cm, 


                               신라 금관의 화려함을 잘 표현한 걸작 중 하나이다.

                               신라 금관은 보통 둥근 테(臺輪)에 3개의 나뭇가지모양 장식(出字形立飾)과 2개의

                               사슴뿔모양 장식(鹿角形立飾)을 세운 뒤, 곱은옥(曲玉)과 달개(영락,瓔珞)로 가득 장식한다.







                               또 다른 금관.






                               참고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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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란타우 섬의 명소 '옹핑(Ngong Ping)360'

옹핑360 스카이레일은 2006년 9월 18일부터 본격 운행되었으며

퉁청역에서 옹핑빌리지 터미널까지 운행된다.

360이란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보이는 파노라마식의 경관을 의미한다.







                               아시아 최장의 2선 케이블카로 엄청난 길이와 높이를 자랑한다. 

                               저 멀리 오른편 빌딩군 사이에는 옹핑360 스카이레일의 출발점이자 

                               란타우의 중심도시인 퉁청(Tung Chung)의 터미널이 위치해 있다.  







한참을 가더니 또 다시 방향을 틀어 운행을 계속한다.

스카이레일 아래로는 등산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왼편으로는 첵랍콕 홍콩 국제공항이 뿌옇게 내려다 보인다. 


스카이레일은 총연장 5.7km이 이르며 25분여의 케이블카 여행중에

란타우 공원과 남중국해, 첵랍콕 홍콩 국제공항, 퉁청협곡, 옹핑고원 등의 

장엄한 360도 파노라마 경관을 만나게 된다.

케이블카는 일반적인 스탠다드 캐빈과 바닥이 유리로 된 크리스탈 캐빈 두 종류로 나뉜다.







어느 순간 저 멀리 산능선 위로 포린수도원의 청동좌불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세계 최대의 옥외 청동불상답게 제법 위압적이다.







케이블카의 정착역, 옹핑빌리지.







옹핑지역의 문화와 정신적 본 모습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는 

1.5ha 넓이의 옹핑빌리지.

'부처와 산책하기', '원숭이 우화극장', '옹핑찻집', 옹핑 자연센터' 등 부처의

일대기를 체험하는 중국풍 테마마을로 패스트푸드와 카페까지 다양한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마을이라기 보다는 작은 거리같은 느낌이다.







옹핑빌리지를 지나 란타우 섬의 대표적인 불교사원인 

포린수도원(Po Lin Monastery, 寶蓮禪寺) 경내로 들어섰다.

바로 오른쪽으로는 청동좌불로 올라가는 계단이 시작된다.







사천왕상.







황금빛 지붕의 대웅전.

이 사원은 1906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뒤쪽으로는 공사가 한창인듯...







                               포린수도원 본전을 나오면서 게이트 사이로... 







포린수도원의 티엔탄 청동좌불상(Tian Tan Buddha Statue)이다.

1993년에 완공된 이 불상은 34m의 높이에 220톤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좌불 안에는 기념품 가게와 매점, 전시관 등이 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포린수도원.

방문객들은 268개의 계단을 열심히 오르내리고 있다.







지역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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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통. (문경옛길박물관)






조선시대 마패(馬牌). 

벼슬아치가 공무로 지방에 나갈 때 역마를 징발하는 증표로 상서원에서 발행했다. 

(문경 옛길박물관) 






                              정병(淨甁). 본래 깨끗한 물을 담는 수병으로서 승려의 필수품의 하나이던 것이 
                              차츰 부처님 앞에 정수를 바치는 공양구로서 그 용도의 폭이 넓어졌다. (문경 옛길박물관) 






                              나침반해시계/ 나침반과 시반(時盤)이 갖추어진 

                              휴대용 해시계, 조선시대. (문경 옛길박물관)






앙부일구(仰釜日晷). 창경궁 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복제품이다.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天文儀器)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의 일종이다.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청동의 오목판 안바닥에는 일곱 개의 세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시각선(時刻線)이라고 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이 시각선에 비쳐지면서
시간을 알 수 있다.
바닥에는 시각선 이외에 열세 개의 가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24절기를 나타낸다.
제일 바깥 줄은 동지의 해 그림자가 따라가는 줄이며, 제일 안쪽 줄은 하지선이다.






기획 전시 작품 중 하나였던 것 같은...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 무덤에서 나온 상여장식 인형.

인형들이 타고 있는 호랑이가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해 준다고 믿었다.
(국립민속박물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내에 전시된 석굴암 형태의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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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행, 두려움
그리고 고통은 모두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도 나에게 달려 있다.

번뇌와 죄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는 길
하나 뿐이다.






이생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는
세상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큰 사랑과, 
하늘이 무너져도 꺾이지 않을 용기와,
땅이 꺼져도 흔들리지 않을 양심이 있어야 한다. 






'소원(所願)'과 '서원(誓願)'은 다르다.
소원은 원하는 바요, 되었으면 하는 기대심이다.
서원은 맹세하는 다짐이요, 자기 스스로 구체적으로 이루겠다는 
적극적 발심(發心)이다.






삶의 재충전이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비우지 않고서는 채울 수도 없다.
이는 남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호랑이에 쫒기듯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꿈은 
몸부림을 통해서만 깨어날 수 있다.
이 절박한 몸부림이 바로 수행이요, 정진이요, 공부이다. 






                               머리로 책을 많이 읽고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수행으로 관념을 닦아서 몸이 즉, 마음이 알게 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머리의 생각으로만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몸과 마음에서 실천되고 실현된다.
                               즉, 수행은 온 몸과 마음으로 체험해서 얻어지는 지혜와 실천력이다. 






모든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온다.

모든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에서 온다.






                               분리된다는 것은 서로가 헤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자가 며칠째 잠을 못 자 눈이 퀭하게 들어갔다. 
                               걱정된 스승이 제자에게 왜 그리 얼굴이 상했느냐고 물었다.
 
                               “요사이 며칠째 통 잠을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잠을 못 이루는 것이더냐?”
                               “실은 친구가 제가 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험담을 하며 
                               나쁜 아이라고 저를 욕하고 다닌다 합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화를 낼 일이 전혀 아니로다. 
                               먼저 너 자신을 잘 살펴보거라. 
                               친구의 소문이 사실이면 사실을 말한 것이니 화낼 일이 아니고, 
                               사실이 아니라면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니, 그 또한 속상해 할 일이 아니지 않느냐.”





                               글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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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건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5호인 봉정사의 만세루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위치해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특히 맞배 지붕 옆면의 바람판은 아랫단을 둥글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곳 봉정사 만세루의 바람판은 아랫단이 일직선이다.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이 사찰은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사(義湘大師)의 제자인 능인대사가  창건하였다.

 





                               1680년(숙종6)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만세루는 원래 덕휘루(德輝樓)로
                               불리웠으나 언제부터 만세루로 바뀌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웅전으로 이르는 문의 구실도 하고 경치를 조망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우물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으며 법고와 목어, 운판(雲版)이 놓여져 있어
                               예불을 알리는 고루(鼓樓)의 기능도 겸하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大雄殿).
기단 위에 툇마루를 설치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체인
무량해회(無量海會) 건물.
해회(海會)라 함은 대반야경, 화엄경에서 '수 없이 많은
법문'의 자리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오른쪽 건물은 만세루.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자 국보 제15호인 극락전(極樂殿).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건물로 극락보전, 아미타전, 무량수전, 무량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불전은 정면 전체가 문으로 되어 있지만, 봉정사 극락전은
가운데에 작은 문이 있고 옆은 벽으로 되어 있다.
정면 세칸, 측면 네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이다.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측면에 세 개의 기둥을 세워 튼튼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조물에서 볼 수 있는 부재가 있는 등, 이 건물의 몇몇 특징들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로 계승된 옛 건축 양식으로 여겨지고 있어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양식적으로 앞서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극락전 앞 뜰에 위치한 봉정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인 석조여래좌상.
                               극락전과 대웅전 사이에 있다.







                               봉정사 동쪽 약 100m 떨어진 곳에는 부속암자인
                               영산암(靈山庵)이 위치해 있다.
                               그곳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영산암의 우화루(雨花樓) .
영산암의 입구에 해당되는 우화루의 현판은 원래 극락전 앞에 있던 
누각의 현판이었다고 한다.
우화(雨花)는 석가모니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처음 설하셨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 하며  
영산암의 영산(靈山)은 원래 영축산을 말한다. 







우화루를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전각, 주 불전인 응진전(應眞殿)이다. 
내부의 후불탱화 제작기록(1888년)으로 보아 19세기말 건물로 추정된다.

이곳 영산암은 좁은 공간에 6개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송암당(松岩堂).
                               건물의 이름을 뒷받침 해 주기라도 하듯 바로 집 앞마당
                               작은 동산의 바위 위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건물에는 툇마루와 누마루 등이 설치되어 서로 끊어질 듯 이어져 있고,
                               좌우 승방들은 전면의 누각과 함께 'ㄷ'자 마당을 이룬다.
                               안쪽으로 응진전과 삼성각이 있으며 삼성각 옆에는 모두 6동의 건물이 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무대였다는 이 영산암은 
                               여느 절집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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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에 위치한 인각사의 전경.
신라시대 지방 사찰로는 유래없이 큰 규모였다고 하나, 지금은 퇴락해
두어 채 절집만 남아있는 초라한 모습이다.
극락전은 지금 복원중이다.

인각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서
신라 선덕여왕 11년(서기642)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지금은 도로변에 인접한 평지 사찰이지만 주변 지세는 심산오지로 남쪽에
화산(華山), 북서쪽으로는 옥녀봉의 가파른 지맥이 드리워져 있다.
절 앞으로 위천이 흐르고 그 북쪽에는 학소대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화산의 화려하면서도 기품있는 모습이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닮은데다, 
절이 앉은 자리가 기린의 뿔에 해당하는 지점이라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麟角寺)라 하였다.






복원중인 극락전과 그 오른편의 명부전.
명부전은 인각사에 남아 있는 유일한 조선시대 건물로,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지옥시왕(地獄十王)이 모셔져 있
다.
조선 숙종 연간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정확한 건축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장방형 건물이다.

인각사가 유명해진 것은 삼국유사를 쓰신 일연스님의 하산소로서 만년에 
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일연스님의 비와 부도가 남아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이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이곳에 거처하면서
전국 최대 규모이자 불교 9계 산문의 모임인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두 번이나 개최하였고, 생애 마지막 5년(79~84세) 동안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활자본으로 5권 2책으로 구성되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신 국사전(國師殿).
극락전 발굴로 인해 해체된 후 2001년 건립되었으며, 
현재 중심 법당이 되고 있다.






                               절의 북동쪽에 자리한 소박한 모습의 산령각(山靈閣).
                               1963년에 건립되었으며 안에는 호랑이를 옆에 둔 산신탱이 있다.

                               인각사 경내는 현재 복원중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강설루, 
                               요사채 2동, 산령각, 비각, 신축 국사전 등이 전부이다.
                               그 외에 고려시대의 삼층석탑과 석불 등이 있으며, 절 동쪽 미륵당에는 
                               훼손은 심하지만 솜씨가 뛰어난 불상이 모셔져 있다.
                               1991년부터 행해지고 있는 발굴을 통해 고려시대 뿐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금동병향로를 비롯한 중요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인각사지는 사적 제374호로 지정되었다. 






                               인각사 보각국사비각(普覺國師碑閣).
                               보각국사비는 보각국사탑과 함께 보물428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충렬왕 21년(1295년), 국사의 불제자인 법진스님에 의해 세워졌다.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의 앞면.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으며, 글씨는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 까닭에 무절제한 탁본이 계속되었고, 비석을 갈아 마시면 일연스님의
                               신통력으로 과거에 급제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크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현재 앞면에는 약 150여 자 , 뒷면에는 약 100여 자 만이 남아 있으며
                               비각을 세워서 보호하고 있다.






                               보각국사정조지탑(普覺國師靜照之塔).
                               일연스님의 부도로 보물 제428호이다.



                               일연스님의 부도 옆에 있는 인각사 석불좌상(石佛坐像).
                               원래 인각사 인근 괴산1리에서 옮겨온 것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9호이다.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 문정희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일연선사 생애관'에 모셔진 일연스님의 모습.







절 입구에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옛날 학이 살았다고 하여 학소대(鶴巢臺)라 부른다.






                               인각사는 임진왜란 때 화약제조창이었다는 이유로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 뒤 중창되었지만, 단 한 번도 옛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이후 1990년대 말에는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주민과 학자들이 나서서 겨우 지켜내기도 했다.


                               .......................................................................


                               일연찬가 (一然讚歌)              / 글 : 고은(高銀)


                               오라 
                               華山기슭 麟角寺로 오라
                               하늘아래 두 갈래 세 갈래 찢어진 겨레 아니라
                               오직 한 겨레임을 옛 朝鮮 檀君으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한 나라였음을 우리 子孫 萬代에 消息 傳한 그이
                               普覺國尊 一然禪師를 만나뵈러 여기 인각사로 오라
                               아 여든 살 그이 촛불 밝혀 한 字 한 字 새겨간
                               그 燦爛한 魂 만나뵈러 여기 麟角寺로 오라

                               오라
                               渭川 냇물 인각사로 오라
                               痛哭의 때 이 나라 온통 짓밟혀 어디나 죽음이었을 때 
                               다시 삶의 길 열어 푸르른 來日로 가는 길 열어
                               情든 땅 坊坊曲曲에 한 송이 蓮꽃 들어 올린 그이
                               보각국존 일연선사를 가슴에 품고 여기 麟角寺로 오라
                               아 여든 살 그이 촛불밝혀 한 자 한 자 새겨간
                               그 찬란한 혼 만나뵈러 여기 인각사로 오라



                               참고/ 현장 안내판 및 여기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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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바람을 쐴겸 팔공산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전망대.
그러나 이 길을 따라 더 올라볼 요량으로 주위를 
살펴볼 여유도 없이 그대로 통과하여 낙타봉으로 향한다. 
저 멀리 비로봉과 동봉이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되돌아 본 케이블카 전망대.
곳곳에 눈의 흔적이 남아있다.






또 다시 오르다가 휴식을 취하는 사이 헬기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눈 앞을 스쳐 지나가고...






저 아래로는 염불암이 내려다 보인다.
동봉으로 계속 오르려다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  
이곳으로 내려서기로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물론 손에 들려져 있는 케이블카 왕복 탑승권은
기꺼이 포기를 하고... 






산 위에서 봤던 아담한 규모의 염불암(念佛庵)이다.
왼쪽 극락전 앞에는 청석탑이, 그리고 뒷쪽 커다란 바위 두 면에는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염불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로서
동화사에서 서북쪽으로 약 2.8km 떨어진 팔공산 남쪽 기슭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동화사 사적기에 의하면 928년(경순왕2) 영조선사(靈照禪師)가
창건하고 1612년(광해군4)에 중건하였다고 전하나 '조선사찰사료'에는
1612년이 창건 시기로 기록되어 있다.
928년 창건설을 뒷받침할 자료는 없으나, 1220년(고려 고종8)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이곳에서 주석하면서 고덕 대승을 향응하고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때는
존속되었던 암자로 추정된다.






                               유리상자 속에는 청석탑(靑石塔)이 들어가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이다.

                               청석탑이란 벼루를 만들던 흑색 점판암으로 만든 탑으로,
                               이 탑은 화강암인 바닥돌 외에는 모두 점판암을 사용했다.
                               탑의 몸돌은 없어졌고 10층의 지붕돌만 포개진 채로
                               남아 있으며, 상륜부는 재질이 다른 석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원래의 것이 아닌 듯 하다.
                               하부 3층과 상부 1층을 제외한 나머지는 파손이 심해 각 층마다 
                               빗물받이면에 돌을 괴어 지붕돌받침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지붕의 두께가 얇고 물이 떨어지는 면은 평평하며 네 귀퉁이가
                               위로 솟아 있어 대단히 경쾌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의 체감율은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넓은 바닥돌 위에
                               놓인 작은 탑이기 때문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현재 높이는 1.4m이며, 이곳이 원래의 그 자리라고 한다.






                               동화사 염불암 안에 있는 큰 바위의 서면과 남면에는 마애불로써
                               여래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 남면의 보살좌상이다.

                               이는 관음보살로 추정되는데 머리에 부채꼴의 화려한 관을 쓰고 있다.
                               옷은 상의와 하의를 걸치는 일반적인 보살과는 달리
                               왼쪽 어깨를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방식으로 입고 있다.
                               두 손목에는 꽃잎이 새겨진 팔찌를 끼고 있으며, 무릎 위에 얹은
                               왼손은 관음보살의 특징인 긴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인 서면의 여래좌상
                               아미타불로 네모난 얼굴에다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다.
                               연꽃이 새겨진 화려한 대좌에 앉아 있는데 대좌의 높이에 비해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이 불상들은 간결한 선으로 표현하였으면서도 힘있는
                               윤곽을 나타내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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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로 포근하게 둘러 쌓인 배리 삼릉(拜里 三陵),
사적 제219호이다.




반드시 가보리라 했지만 꽤 오랜 기간동안 미루기만 했던 곳,
곳곳에 불상이 산재해 있어 노천박물관으로도 불린다는 그곳, 
경주 남산에 다녀왔다.
경주 남산은 1968년 지리산에 이어 두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다른 곳과는 달리 유일한 사적형 국립공원이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만큼 남산을 오르는 여러 코스 중 가장 볼 것이 많다는
서남산 제1코스를 찾았다.

삼릉에서 출발, 상선암, 바둑바위를 거쳐 금오봉 정상에 
올랐다가 용장사지를 지나 용장골로 하산하는 코스다.







                               산행의 출발점에 위치한 삼릉 주변으로는 소나무가 빼꼭하게
                               들어차 있어 많은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이곳 남산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절터는 112곳, 탑은 61기이고,
                               불상은 80체를 헤아린다.
                               불상 중에는 입체로 된 것이 29체이고 바위면에 새긴 마애불상은 51체이다.
                               그러니 노천박물관이라 불리워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삼릉 바로 우측편에 위치한 사적 제222호인 경애왕릉(景哀王陵).
 






삼릉을 지나면서 바로 산행이 시작된다.
산책을 하듯 쉬엄쉬엄 오르니 이내 여래상 하나가 나타난다.
바로 삼릉계 석조여래좌상(三陵溪 石造如來坐像)이다.







                               석조여래좌상 바로 왼쪽길로 접어드니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磨崖觀音菩薩像)이 반겨주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이다.
 






갔던 길을 되돌아와 원래 오르던 길로 계속 진행한다.
얼마못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인 
삼릉계곡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과 만나게 된다.
 
이 불상은 남산에서는 보기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法堂)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바위 위쪽으로는 또 다른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밟고 지나간다.
보고 있으려니 웬지 마음이 불편해진다.






                               앞쪽 바위면 가운데에는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 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릎을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꽃 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슬 2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미타삼존이라고 한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에는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 대좌(臺座)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頭光)만 새기고 몸 둘레의 신광(身光)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은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 분이 서 있다.
보통 이 세 분을 석가삼존이라 부른다.






                               누군가의 소망은 향불이 되어 피어 오르고...






                                산길을 밟아 오르면서 신라시대의 불교유적지를 찾아 
                                하나하나 대면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에는 보물 제666호인 삼릉계석불좌상(石佛坐像)이다.
  



                                참고/ 현장 안내판, Daum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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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있는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보물 제66호이다.
조선 영조 14년(1738)에 축조하였고, 4년후 반월성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석빙고는 이곳 뿐만 아니라 현풍, 청도, 창녕, 안동 등지에서도 볼 수가 있다.









                               국보 제31호인 첨성대.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으나,
                               선덕여왕을 기리는 상징탑, 혹은 제단이라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그러나 최근 첨성대가 천문대로 활용되었음을 증명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첨성대 축조 이후 관측기록이 8배 이상이나 증가했으며,
                               당시 유성 관측 기록이 첨성대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위치한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능(무열왕릉).
사적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능의 외형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밑지름 36.3m, 높이 8.7m이다.
밑둘레를 따라 비교적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무덤의 보호석으로 드문드문
놓았으며, 능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이 있다.









국보 제25호인 신라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
무열왕릉 경내의 비각으로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 남아있다.
이수에는 '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이 전서로 양각되어 있는데,
이는 김인문(金仁問)의 글씨라 전한다.








서악리 고분군(西岳里 古墳群). 사적 제142호로 무열왕릉 바로 뒷편에
위치한 4개의 대형 무덤을 가리킨다.
무덤의 주인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무열왕릉 뒷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열왕과 가까운 왕이나 왕족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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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 기슭의 삼성암지 마애약사여래입상.
                               유형문화재 제21호로 현재 바위가 세로로 갈라져서 여래상이 새겨진
                               바위가 많이 기울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바위가 기울어졌다고는 하지만 부처님을 바로 세워서 봐도
                               서 있는 모습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조성연대는 통일신라의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초기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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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사무소 내에 위치한 근민당(近民堂).
관아(官衙), 즉 옛 장기현의 현감이 공사(公事)를 처리하던
동헌(東軒)건물로서, 영일 장기읍성 내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내부구조는 약간 변형되었다.









                               역시 같은 장소에 위치한 장기척화비(長鬐斥和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4호로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겪은 후
                               서양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경고하기 위해 고종 8년(1871) 4월에
                               대원군의 명에 의해 전국에 세운 것 중의 하나이다.

                               원래의 위치는 장기읍성 내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분실되었다가 1951년 4월초,
                               장기면 지서 입구에서 찾아 장기면사무소 정문 좌측 도로변에 세워 두었다가
                               1990년 정원으로 옮겨 보호책을 설치하였다.
                               이 척화비는 사암으로 되어 있으며, 폭은 45cm, 높이 120cm, 두께 21cm이다.





                               참고/ 현장 안내판,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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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원과 중국역사박물관에 이어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수도박물관(首都博物館)내의 전시물이다.
수도박물관은 1981년에 공식적으로 개관하였으나 전통적인 미와
현대적인 건축의 요소를 융합하여 2006년에 재개관 하였다.

다른건 제쳐두고, 그 곳의 전시물을 몇 가지 감상해 보기로 한다.
유물에 대한 설명은 능력 밖이라 그저 눈으로만...








수도박물관은 총면적 6,000㎡, 지상 6층, 지하 1층의 규모로
총 5,622점의 전시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전통 유물보다는 생활사 유적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지는데,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유물과 과거의 베이징 건축물 모형 및 
자료들, 그리고 옛 베이징의 문화 등이 전시된 공간이 그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미술 · 회화 · 서예 등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된 공간이다.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된...








                               옛 베이징의 민속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이 모형은 결혼식 풍경을 재현해 놓은 것으로,
                               신부를 태운 가마의 행진이 되겠다.
                               그냥 보기만 해도 꽤나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각 시대마다 대표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진품보다는 복사품이 많다는 것이 다소 흠일 듯 하다.
                               사실 그렇다하더라도 그 흠결을 찾기가 쉽지않아 문외한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이곳에는 전시실 외에도 다목적 홀 · 멀티미디어실 
                               그리고 경극을 공연하는 극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유물 복원과 보존과정 · 도자기 제작 · 먹물갈기 ·  
                               경극분장 등의 체험활동 또한 가능하다고 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으로 동방여행을 떠나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원나라에서 관직에 올라 17년을 살았다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에 관한 이야기는 이곳으로...








                               중국 공산당의 혁명에 대한 역사 등도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인민일보 북평판(北平版)으로, 창간호로 보인다.
                               북평이란 지금의 베이징을 1928년 시(市)로 정할 때 개칭한 이름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일간신문으로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인민일보는 
                               중국 13억 정부의 대변지이며 중앙당 기관지로, 중국 공산정권이 
                               대륙을 통일하기 전인 1948년 6월 15일 허베이(河北)성 핑산(平山)현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화북국의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1949년 중국공산정권이 베이징으로 진주하자 3월 베이징으로 이전하면서 
                               그해 8월 중국공산당 중앙의 기관지로 변경되었다.

                               1985년에는 인민일보의 자매지로 해외판을 창간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한글, 주간)으로 2010년 9월에 창간되어 
                               서울에서 발행되고 있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

                               많이 부족함에도... 관심을 가지고 중국 베이징에 대한 
                               포스팅을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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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관음휴게소쪽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로 옆 감나무집 식당을 통해
산길로 접어 들었다. 그냥 산 능선을 따라 가볍게 갓바위까지 가볼 참이다.
주위가 잘 조망되지 않는 산길이지만 저 멀리 갓바위가 나뭇가지사이로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계속해서 그곳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가늠해 가며 열심히 발을 옮긴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주위를 가리던 나무들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고 
이내 사방이 확 트여져 왔다.
오른쪽으로 휘돌아 좌측 위 암자가 보이는 산봉우리 까지 가야 할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도중에 널찍한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굽이치는 저 산 너머로는 대구시가지가 기다랗게 누워있는 형상이다.
아마 왼쪽으로 보이는 터널은 익산포항고속도로 백안터널,
우측 아래로는 백안삼거리쯤 될 것 같다.








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진다.








저 멀리로 팔공산 비로봉과 동봉...

관련/ 2010/02/02 - [Landscape] - 팔공산 비로봉에서








팔공컨트리클럽도 한 눈에 조망된다.
멀쩡한 산을 깎아 만든 터라 그리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바로 그 위쪽으로는 동화사가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고...








                               바로 눈 앞에는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것만 같은 
                               바위덩어리가 커다랗게 떡 버티고 서 있다.








그리고 어느새 갓바위도 눈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몸을 일으켜 다시 길을 재촉, 목적지에 이르렀다.
관봉석조여래좌상은 여전히 그 자리다.

관련/ 2009/01/23 - [Travel] - 팔공산 갓바위








그 앞으로는 갖가지 소망을 담은 등산객들의 몸짓 또한 
이전과 다름없이 계속되고 있고...








산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때문일까.
산 아래 계곡으로는 주차장을 지나 선본사까지 널따란 도로가 파고 들었다.
저 주차장이 이번 산행의 출발지로, 좌측 능선을 따라 쭉 걸어 왔더랬다.








                               해동제일 기도성지... 
                               한동안 와 보지 않은 사이, 이전에 보이지 않던 일주문이 조성되어 있고,
                               진입도로도 말끔히 단장되어 있는 모습이다.
                               저 아래 주차장까지... 모두가 낯설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 길로 와본지가 너무나 오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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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잔뜩 찌프린 날씨속에 한라산 자락에 위치한 관음사를 찾았다.
그 초입으로, 중간에 보이는 건물은 일주문이다.

관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산으로서 제주도의 30여 개 말사를 관장한다.
창건자 및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제주에 잡신이 많다 하여 조선 숙종 때 제주 목사였던
이형상(李衡祥)이 많은 사당과 함께 사찰 500동을 폐사하면서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관음사는 비구니 안봉려관(安逢麗觀)이 승려 영봉(靈峰)과
도월거사(道月居士)의 도움으로 1912년에 창건한 것이다.
처음에는 법정암(法井庵: 관음사의 전신)이라 하였으며, 창건당시 불상과 탱화는
용화사(龍華寺)와 광산사(匡山寺)에서 옮겨 왔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며, '동국여지승람'의 12개 사찰 중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이르는 길에는 수 많은 부처님들이 
                               도열하여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좌,우측 각각 54불로 모두 108불이 모셔져 있는데, 그 풍경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저 끝으로 사천왕문이 보인다.

                               제주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이곳은 제주도 4.3사건(1948년) 말기 
                               유격대와 군 토벌대의 치열한 격전지이기도 하며, 군주둔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후, 토벌대에 의해 모두 소실된 것을 1968년에 복원하였다.








보아하니, 하나하나... 모두가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사천왕문.
큰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게 되면, 동서남북 하늘을 주재하는 천신들도
부처님을 받들어 공양하면서 부처님의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을 사천왕이 옹호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부처님께 경배하려면
천왕이 지키는 관문을 통과하여야 한다는 뜻에서 이 사천왕문을 세웠다.
현재의 사천왕문은 1948년 4·3사태 때 불타버린 관계로 1973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천왕문을 지나 본전에 이르는 길 옆, 그 돌탑 위에도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좌대는 제주도의 화산석인 현무암으로 되어있다.








경내에는 중앙에 보이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종루, 산신각,
불이문(不二門), 일주문 등이 각각 들어서 있는데,
특이하게도 좌측 건물에는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을 한 전각에 다 모셔 두었다.








대웅전 앞마당 좌측 위로 올라가면, 중앙에 미륵불을 두고
수 많은 부처님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지은 지 얼마되어 보이지 않는...
아마도 요사채로 짐작된다.








                               관음사 입구, 일주문의 좌측편에는 2008년 10월에 점안식을 가진 
                               제주대불(초전법륜상)이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한라산을 오르는 등산로인 '관음사 등산코스'에 속한다.


                               참고/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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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기 전인 작년 9월 어느날의 팔공산.
첨탑이 서 있는 높은 봉우리가 비로봉이고 바로 그 우측은 동봉으로 
서로 지척에 위치한다.








                              지난 1월 중순, 비로봉에 올랐었다.
                              산 정상부에 이르러 대구시내 쪽을 내려다 보니 
                              안개, 운무, 연무, 박무, 스모그... 
                              뭐라고 불러야 옳을지도 모르겠지만, 
                              뭐라고 해도 이로울 것이 없는 하얀 공기가 그 곳을 채우고 있었다.
                              보다 더 먼, 저 곳으로는 아스라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 듯 하다.








흰 덩어리층이 조금은 옅어진 듯 시가지의 윤곽이 살짝 드러난다.
팔공산의 최정상인 비로봉(해발1192.8m)의 바로 아래에서 내려다 본
대구시가지의 모습으로, 'U'자 형으로 굽이도는 금호강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반야월 쯤 되는 위치로 추정되는,
그 곳으로 넓게 걸쳐진 희뿌연 띠...
우뚝 솟은 산봉우리는 그 틈을 비집고 올라
숨가쁜 듯 탁한 호흡을 뱉어내고...








아래에서 생각했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그런대로 시야가 뚫려있을 것 같았는데,
올라와 보니 산등성이만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첩첩이 겹쳐진 모습으로 말이다. 








보기에는... 저 아래에서 그나마 높다고 하는 대구타워마저도
힘을 쓰지 못하고
그대로 숨이 막혀 쓰러져 버릴 것만 같다.
정상에 서니 그야말로 칼바람이다.

이곳 팔공산 비로봉은 1960년대 말 공산성터 일대에 군부대가 들어서고 
방송국 시설이 자리를 잡으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왔다.
그러나 40여년만인 작년 11월 1일, 군사지역에서 해제되어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가산산성에서 파계봉, 서봉, 비로봉, 동봉, 관봉 등으로 이어지는

21.4km의 팔공산 능선 중 최고봉인 비로봉이지만, 

철조망 등의 시설물 때문인지 그다지 큰 감흥은 일어나지 않는다.








                              팔공산 동봉석조약사여래입상(石造藥師如來立像).
                              바로 뒤쪽이 동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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