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가장 동쪽 끝에 있는 섬,
독도평화호를 타고 사동항을 떠나 그토록 밟아보고 싶었던 땅,
독도로 향한다.
사동항에서 출발한지 2시간 20분여...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자 자주 주권을 상징하는 독도가 창가에 모습을 드러내자
갑자기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사진에서 왼쪽 섬은 서도, 오른쪽 섬은 동도...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牛山島)', '삼봉도(三峰島)', '가지도(可支島)'라
불렀으며, 울릉도 주민들은 돌을 '독'이라고 하고 돌섬을 '독섬'이라고 했다.
그리고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도(獨島)가 되었다고 한다.
독도가 행정지명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06년(광무10년)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로 알려져 있다.
드디어 우리의 땅 독도, 그 중에서 동도에 발을 내딪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외에 89개의 작은 돌섬과 암초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관광객들은 오를 수 없는 정상을 향해 데크길을 오른다.
독도는 해저 약 2,000m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생성시기는 대략 460만 년 전부터 약 250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울릉도(약250만 년 전)보다 약 200만 년 앞서고 제주도(약120만 년 전)보다도
약 340만 년 앞서 생성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형이 되는 섬이라 할 수 있다.
동도는 높이 98.6m, 둘레 2.8Km, 면적 73,297㎡이며
서도는 높이 168.5m, 둘레 2.6Km, 면적 88,740㎡의 크기이다.
동도와 서도의 전체 면적은 187,554㎡.
괭이갈매기가 알을 낳아놓고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모습.
독도에는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등 희귀한 해조류들이 살고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도 일원의 섬 178,781㎡를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하였다.
동도 경비대 막사 옆에 설치된 우체통.
2003년 4월에 설치되었으며, 우리의 땅으로서 대한민국의
보편적 우편서비스를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투함된 우편물은 2개월에 한번씩 수거 발송된다고 한다.
독도경비대 막사앞 암벽의 한국령 표석.
1954년 울릉경찰서에서 동도 정상에 독도경비초소를 짓고
해안가에 독도 영토 표석을 건립한 이후,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평면으로 정지작업을 해놓은 곳에 새긴 것이다.
글씨를 쓰고 새긴 이는 한진호 씨이다.
'태평양을 바라본다'라는 뜻을 가진
망양대(望洋臺)로 가는 길.
얼굴바위.
상투를 틀어올린 사람의 옆 얼굴모양으로, 삽입해 놓은 이니셜 우측을 보면
찾을 수 있다.
독도의 지층구조는 대부분 화산활동으로 인해 분출된 알칼리성 화산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부분의 암석은 현무암과 조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엄지바위라고도 불리는 서도의 탕건봉을 내려다보며...
탕건봉 오른쪽에는 삼형제굴바위가 위치해 있다.
삼형제굴바위는 모습이 비슷한 세 개의 굴이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독도를 멀리서 바라보면 동도와 서도 사이의 이 바위가 마치 하나의
산봉우리처럼 보이기도 해서 독도를 다른 이름으로 '삼봉도'라고도 부른다.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칼을 갈았다는 숫돌바위.
바위의 암질이 숫돌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도와 151m의 최단거리로 서로 의지하며 마주보고 있는 서도.
현재 어민숙소 1동이 들어서 있어 비상시에 대피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 지구상에 다케시마라는 이름은 없다, 다만 독도만 있을 뿐이다.'
독도는 문헌상으로 삼국사기 신라본기 편에서 밝혀진 것처럼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복속시킨 이래 단 한번도
한국 영토에서 분리되거나 타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905년 남의 영토를 일개 지방 관청의 고시로
시마네 현으로 편입시킨 것은 상식밖의 일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따라서 독도는 아름다운 우리의 땅으로,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의 끊임없는 관심과 국토수호의
의지가 뒷받침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