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떠 돌다가 발견한 옛지도이다.
스크랩을 한지가 오래되어
출처를 기억할 수가 없지만...
외국의 어느 대학박물관쯤으로 기억한다.
서울의 도시계획도쯤으로 알면 되겠는데
여의도는 거의 황량한 벌판쯤으로 느껴지고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두 개쯤만 보인다.
오늘날 서울시에 있는 것만해도 25개이고,
그외 한강에 있는 교량은 30개라고 하니,
이에 비하면 얼마나 오래전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산.
비록 상세지도는 아니지만
개괄적인 도심의 형성을 알 수가 있겠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소금공장도 보이고...
(클릭해서 크게 보시길...)
대구.
1935년 6월 15일, 대구남산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지금의 남산초등학교도 보이고
이를 끼고 있는 구불구불한 길(현재는 좁은 일방통행)이
그 인근에서도 제법 넓었던 길로 여겨진다.
또한 신천을 가로지르는 차도교량은 두 개 정도이며,
한 켠에 얼음공장도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폭발 사건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묘소 참배에 배석하기 위해 도열중이던 공식·비공식 수행원 가운데 서석준 부총리 등 16명이 순직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대통령의외국 방문을 수행하다가 이와 같은 대형 참사를 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나머지 일정을 중단하고 이튿날인 10일 새벽 급거 귀국하였다. 이 사고 후 우리 정부는 곧 이원경 당시 체육부장관을 단장으로 한 한국정부조사단을 현지에 파견, 버마측과 합동 조사를 벌였다. 사건 직후 미얀마 정부는 국가정보국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한 데 이어 정부 차원에서도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사고 이틀 뒤인 11일 현지에서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순직자 16위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버마 정부는 칫 라잉 외상을 진사·조문 사절로 파한하였다. 13일에는 필리핀 주둔 클라크 미공군 기지에 공수되어 치료를 받던 이기욱 재무차관이 추가로 순국함에 따라 순직자는 17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의 유해는 13일 전국민의 애도 속에 국민장으로 치뤄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이 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는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이계철 주버마대사,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기획단장, 이기욱 재무차관, 강인희 농수산차관, 김용한 과기처차관, 심상우 의원, 민병석 주치의, 이재관 비서관,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한경희 경호원 정태진경호원 등 모두 17명이었다.
사건 직후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 버마 당국은 11일 랭군시 파준다웅 천(川)에서 아웅산 암살사건의 범인으로 보이는 코리언 1명을 검거하고 1명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다시 12일에는 도주 테러범 1명을 추가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현지 우리측 조사단의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버마 정부에 대해 북한과의 단교 조치를 강력히 요청하였다. 국회에서는 북한의 [살인만행 규탄결의안]을 채택하였고, 민간에서도 각종 규탄 대회가 곳곳에서 열렸다.
14일 버마 정부는 랭군 근처에서 북한 선박 1척을 나포하였는데, 16일 이후부터 버마 현지의 언론들은 이 사건에 북한이 관련돼 있음이 확실하다는 보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17일 버마 당국은 다시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이 사건은 북한이 저지른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당시 버마는 우리 정부는 물론 북한과도 수교국이어서 수사에 상당한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중간 수사 발표 이후 버마 정부는 우리측 보도진의 입국을 막는 등 최종 수사 결과를 계속 미루었다.
사건 발생 거의 한달 만인 11월 4일에야 버마 정부는 아웅산 테러 사건은 북한 특공대의 소행이라는 완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버마 정부는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한편, 버마 주재 북한 대사관 요원들에 대해서는 48시간 내에 출국하도록 명령하였다.
버마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 사건의 범인은 개성에 있는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의 진 아무개 소좌와 강민철 상위, 신기철 상위 등 3명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9월 9일 북한 서해안 옹진항에서 북한 선박에 탑승, 22∼23일 경 랭군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 담당 참사관 전창휘의 집에 은거하여 암약하다가,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버마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10월 7일 새벽 2시 아웅산 묘소로 잡입하여 지붕에 2개의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직후 미국 정부는 와인버거 국방장관을 단장으로 한 이례적인 조문사절을 파견하였다. 우리 정부는 국민장 직후인 14일 내각 개편을 통해 민심 수습을 도모하였다. (이상 펌글)
말레이시아 연방(The Federation of Malaysia)은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사바, 사바왁 주를 그 영토로 삼고 있다.
▶ 지리적 위치
북위 2~7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지다해가 말레이 반도와 사바, 사라왁 주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북으로는 태국, 남으로는 싱가포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사바(Sabah)와 사라왁(Sarawak)주는 인도네시아와 접하고 있다. 특히 사라왁은 브르나이와의 접경지역이기도 하다.
인구는 2천 5백만 명, 수도는 콸라룸푸르(KL)
▶ 인종
말레이계가 인구 전체의 57%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밖에 중국계, 인도계 및 기타 인종들이 나머지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
▶ 언어
말레이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영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역사 및 문화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국가로써 말레이계 원주민 외에도 중국, 인디아, 인도네시아 및 다른 국가들로부터 이주해온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레이시아의 문화적 다양성은 오랜 세월 진행되어온 외국과의 교류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에 의한 식민지 통치에 의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와 같이 독특한 환경에서 형성되어온 문화유산은 종교, 사회, 문화활동, 관습, 언어, 음식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발견된다.
1957년 8월 31일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독립을 성취한 후 1963년 사바와 사라왁 주 지역을 편입시킴으로써 오늘날의 말레이시아로 자리잡게 되었다.
※ 시차 : 한국보다 1시간 느림 ※ 통화 : RM 말레이시아 링기트 (1링기트는 한화 약 300원 정도) ※ 인구 : 총인구 30만 (2005년 말레이시아 총 인구는 약 2,600만 명)
- 하얀 구름으로 둘러 쌓인 사바 주의 땅덩이들이 차츰 시야뒤로 밀려나가고 있다.
도중, 광활한 대양위를 점점이 떠 다니는 에메랄드 빛 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비록 내 두 발로 직접 내딛지는 못할지라도 두 눈으로 차곡차곡 풍경들을 밟아 나간다.
당연하게도...
밟아 본 땅보다 밟아보지 못한 땅들이 무한히 많기 때문에,
그 땅덩이, 미지의 세계가 지금도 눈 앞에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여행은 항상 그리움으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잠시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뭔가 스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갑자기 나타난 흰 줄 하나, 다른 비행체의 흔적인 것 같은데 넓디 넓은 하늘에서 이 정도의 거리라면 -_-;;;
눈이 시릴 정도의 청명함이 점차 사라지면서 시야가 흐려오기 시작하더니 이제 인천공항에 근접했단다.
이렇듯 우리네 땅은 항상 청명함과는 거리가 멀다. 시계(視界)가 충분히 확보되는 것만으로도 뉴스꺼리가 되는 우리네 현실... 갑자기 회색빛 안경을 쓴듯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 안경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나는 ---
생애 첫 여행지로 괌에 갔을때, 저녁에 안경을 벗어보고 내심 놀란점이 있었다. 그것은 안경렌즈가 아침에 손질한 상태 그대로 였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이물질이 보이지 않을 정도인걸로 보아 대기가 그만큼 청정하다는 것의 반증인 셈인데...
이에반해 우리네 동네에서의 렌즈는 먼지를 강제로 끌어들여 흡착을 시키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렌즈클리닝이 필요하다는...
수트라하버 마리나 & 골프클럽은
거대한 두 호텔인 마젤란 수트라와
퍼시픽 수트라의 주변을 감싸 안고
아름다운 해변가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세계적인 골프 디자이너 Graham Marsh에 의해 디자인 되었다는
27홀의 챔피언쉽 골프코스는 버뮤다 잔디가 깔려 있으며,
4개 홀을 제외한 23개 홀이 모두 아름다운 지형, 하얀 모래,
연중 쾌적한 날씨와 함께 바다와 호수로 둘러싸여 있어
아마추어뿐 만이 아니라 프로골퍼들 모두 격찬하는
아시아 최고의 골프장으로 1999 Sabah Masters, Asian PGA
Davidoff Golf Series 등을 주최한 바 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유일하게 나이트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야간 티업이 가능하며
오후 11시까지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