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기는 해도 특히 호국불교를 표방한 그 시대에 있어서의 무예는
어쩌면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마음을 다스리는데에도 무예는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듣자하니 골굴사는 템플스테이에다 외국인까지 수련에 참가하고 있다고 하네요.
언젠가 TV에서도 봐 왔고 했기 때문에 지나는 길에 한바퀴 둘러봤지요.
만약 수련에 정진하는 모습이 사진에 담겨진다면 정말 근사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유레카님의 시각에서 만들어진다면 더 더욱 말이죠.ㅎㅎ
뼈골(骨)자가 들어가서 더 특이한 것 같다는...ㅎㅎ
선무도의 기본동작으로 보이는 청동상들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지요.
그래서인지 절이라는 느낌보다도 어느 무술도장으로 들어서는 듯한 인상이
더 컸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사찰내 암벽 곳곳에 만들어진 굴들이 또 얼마나 강한 인상을 심어 주던지요.
이래저래 독특한 절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였습니다.ㅎㅎ
골굴사 .. 절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지만 .. 왠지모르게 이름이 낯익군요 ..
겸재선생도 그림으로 남길 정도이니 .. 그 유명세가 상당했던 듯 합니다.
사진으로 만나는 골굴사의 포스가 상당합니다...
거친듯하면서도 다정함이 느껴지는 골굴사 .. 가보고 싶은 곳으로 찜해둡니다..
선무도 시연시간은 꼭 챙기고요 .. 골굴사로 향하는 시간이 어여 오면 좋겠습니다.. ㅎㅎ
이미 알게 모르게 TV 등 매체를 통해 접해보셨을지도 모르겠는데요.
템플스테이와 선무도로 인해 저도 몇 번이나 본 기억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니
나름 유명세가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아무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절의 모양새와는 뭔가 다른,
이색적인 절인 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건물들의 수명은 재질에 달려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아무리 건축공학적으로 문제점이 없는 건물이라고 해도 재질의 선택에 따라
그 수명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오래전 시멘트라는 혁명적인 재질의 출현은
지금의 문화유산을 있게한 데에 대해 큰 기여를 해 온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양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어찌나 그렇게도 많은지...
말씀대로 일찌감치 서양의 문물들을 들여왔었더라면 지금 우리나라의 고건물들도
아주 다른 양식으로 발전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네요.^^
거기다가 지금보다도 더 많은 문화유산리스트를 가질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런 것 같습니다. 지리적으로 동양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관광요소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는 분명 큰 선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식민지라고는 해도 우리에게는 청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아주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거기다가 현재진행형이기까지 하다는...;;;
어느 도시라기 보다는 미니어처 같습니다..
그렇게 크지 않은 건물들이 깔끔하게 잘 만들어져 있군요 ..
주변 경관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겠습니다..
성당과 사원을 함께 만난다는 것도 .. 사실 쉽지 않은 일이고요 ..
도서관 앞에 벤치에 앉아 .. 바다향기와 함께 .. 책을 읽고 싶어집니다.. ㅋㅋ
그렇게 느끼시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문화유산이라는 것이 아주 크지도 않으면서 대부분 근거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니 말입니다.ㅎㅎ
덕분에 둘러보기에는 그만큼 편할 수가 없더군요.^^
문화유산도 문화유산이지만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뒷골목의 풍경들도 즐길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날씨가 좀 더 맑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더군요.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찌프린 날씨라 시계는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오금이 저리는 것이 케이블카를 타는 맛은 나더군요.ㅎㅎ
글쎄말입니다. 케이블카에서 맞이하는 노을.. 생각만 해도 황홀한데요.^^
남은 하루도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바닥이 유리로 된 케이블카는 아예 타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아찔하던데요.ㅎㅎ
홍콩에는 도교사원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사원이 없는 것은 아니더군요.
불교 사원답게 산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불상, 그것도 이런 대형불상이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해봤습니다.
그런만큼 아주 인상적이었지요.
황금빛 지붕... 깨물어볼걸 그랬나요?ㅎㅎ
그래서인지 홍콩 곳곳이 영화촬영지로 남아있더군요.
중경삼림을 찍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청킹맨션 등이 그렇고,
특히 이소룡의 용쟁호투는 촬영이 모두 홍콩에서 이루어졌다지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주 반가워할만 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도 이젠 또 언제 여행을 떠나볼지...;;
자연의 풍광만을 찾아가는 여행도 재밌지만 ..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찾는 것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 그래도 홍콩하면 영화인데..
스타의거리 정도는 꼭 있어야 하고 .. 찾아볼만 할 것 같습니다..
이소룡의 포스는 죽지 않았네요 ... ㅎㅎ
하긴 그 포스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지만요 .. ^^
허긴..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테니 사람 그 자체가
자연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터...^^
제가 어렸을 당시만 해도 홍콩영화는 알아도 헐리우드 영화는 뭔지도 몰랐습니다.ㅎㅎ
물론 그 뒤에는 이소룡이라는 불세출의 인물이 있었지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영화의 배경지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시다면 저보다 더 실속있게 여행을 하신 셈이겠네요.ㅎㅎ
보기에 따라 다소 썰렁해 보일수도 있으나 아직도 진행중이라니
완공되면 또 어떤 모습일지 저도 궁금합니다.
사실 한편으로는 신상이라면 어디로 가든지 쉽게 볼 수 있으니
큰 의미가 없을 것도 같구요.
연초.. 지적탐구로 바쁘셨더군요.ㅎㅎ
올 한해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비누쉬와 가루다 .. 크기가 엄청납니다...
청동으로 만들었다니 .. 아직 다 완성이 안 되었다니 ..
다 만들어진다면 .. 인도네시아뿐만이 아니라 ..
세계적으로도 기념할만한 작품이 탄행하겠습니다....
용을 잡아먹는다는 가루다의 위용이 상당합니다..
석회암 채석장 사이에 있는 넓은 잔디밭도 맘에 듭니다.. ^^
각기 따로봐도 만만찮은 크기인데 차후에 둘이 서로 합체가 된다고 하니
정말 규모가 대단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발리 뿐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거듭 태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언제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다소 착오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은
우리나라보다 이틀이 늦은 1945년 8월 17일이라 합니다.
1596년에서 1942년까지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아왔고 제2차세계대전 당시인
1942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게 있어서는 일본군은 침략자가 아니라
네덜란드로부터의 자주권을 회복하게 해준 고마운 존재로 인식이 되었다고 하네요.
독립당시에는 각 지역이 연방으로 독립을 선언한 상태였으나 본문에 언급된
1950년은 단일국가가 된 해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혼선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오토바이가 많은 대신에 .. 교통 질서가 깔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ㅎㅎ
발리하면 .. 바닷가만 생각을 했지 .. 시내가 어떨지는 생각을 못해봤군요 ..
그러고보니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 한 가봅니다...
전 편에서도 봤지만 .. 동상이 정말 많군요 .. 독특한 모양새가 인상적입니다..
쇼핑천국이라하면 .. 가격도 저렴할까요? ^^
물론입니다. 상대적으로 도심에서는 큰 불편을 몰랐는데
조금 외곽으로 나가니 아주 위협적인 곳도 있더군요.
시내는 거의 외국인들로 북적거렸고 곳곳에 사원이 있어
아주 색다른 분위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대체로 쇼핑천국이라는 함은 홍콩을 비롯, 섬 전체가 면세구역인
괌과 같은 지역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만 모르기는 해도
굳이 따지자면 발리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ㅎㅎ
ㅎㅎ 다소 연결성이 부족함에도 긍정적으로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시간의 집적이기도 하겠네요.^^
하나가 아닌 여럿이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 담아보게 되었는데요,
한편으로는 특별한 구도나 기교가 필요없이 편하게 담을 수 있는 것이기에
자꾸 눈이 가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집적입니다... spk님의 집적 사진 좋아요... ㅎㅎ
오늘은 사진의 주제들이 다양합니다...
자연의 모습부터 사람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에서의 생각할 거리들이 담겨있군요..
서열, 과시, 연줄 .. 이런것들이 좋은 것만은 아닌데..
세상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거 아니냐고...
변명아닌 변명을 해보게 되네요.. ^^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워낙 복잡하다보니 사진 또한 다양해질 수 밖에
없었다고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말씀드려 봅니다.^^;;
인간들 사이의 네트워크에 있어서도 여섯다리만 건너면 모든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으니 저와 라오니스님 사이의 연줄도 그저 멀다고만 할일이...ㅎㅎ
영도대교는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연결하는 다리로 길이 214.6m, 너비 18m이다. 부산 최초의 연육교로서 1932년 3월에 착공되어 1934년 11월에 개통된 이 다리는 원래 중앙에서 양쪽으로 들어올려 배를 통과시키는 개폐교로 유명하였으나 1966년 중반 교통량이 늘고 도개교의 관리와 운영경비 등의 어려움으로 영원히 고정되는 불운을 맞았다.
이 곳에는 현인선생의 노래비가 있어 '굳세어라 금순아'노래를 들을 수 있으며, 우측으로는 1980년에 건설된 부산대교가 위치해 있다.
또한 좌측으로 보이는 부산타워의 등명기가 최근 국내에서 처음으로
관광용 등대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이다.
부산타워는 1973년 해발 69m의 용두산공원 정상에 세워졌으며,
등대의 등탑 높이는 120m로 국내 등대 가운데 가장 높다.
황령산쪽에서 바라 본 부산시청 주변.
■ 서울 코엑스(COEX) 인근........................................................................................................................................
2009년 4월, 서울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내려다 본 이제 막 봄이 시작된 삼릉공원. 도심에 이만한 자연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코엑스에서 코엑스사거리 방향으로...
인터컨티넨탈 호텔 남서방향.
뿌옇고 혼탁해 보이는 서울의 하늘과 땅...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2012년 4월, 삼릉공원 방향.
2011년 3월, 역시 코엑스에서 현대아이파크타워와 마주했다.
2011년 3월, 한국종합무역센터와 코엑스아티움.
■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진 연유는 이번에 알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 기운은 여전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네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도심속의 모습들 ..
복잡해서 살기 싫다 싫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도시로 모여드네요.. ㅎㅎ
경기도 여주에 가면 중심가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습니다..
여주에 세종대왕 릉이 있거든요.. 영릉 ..
그 동상과도 비교를 해보게 됩니다..
어느 드라마의 제목처럼 불멸의 이순신이라 할까요,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시는 것 같습니다.ㅎㅎ
과거 우리 민족사에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요.
나라를 지켜내신 이분 덕분에 지금의 우리도 있는 것이겠기에...
물론, 높은 기단 위에 서 계신 것도 있겠지만, 높이 우러러
추앙을 받아 마땅한 분이 바로 이분이 아닐까 합니다.^^
여주에 계시다는 또 한 분... 세종대왕님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실지 궁금한데요.
한번 검색해 봐야겠습니다.^^
필리핀의 식민역사가 시작된 뼈 아픈 곳에 세워진 혈맹기념비(Blood Compact marker).
국왕 대신의 자격으로 온 스페인 초대 총독인 미구엘 로페즈 드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ipi) 장군과 시카투나(Datu Sikatuna)
보홀 족장이 1565년 평화우호협정을 맺게 된다.
이 협정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 이루어진 최초의 국제조약으로,
필리핀의 전통에 따라 와인에 자신의 피를 섞어 마셨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이 혈맹기념비이다.
레가스피 장군은 지금의 멕시코인 누에바에스파냐에서 지방 정부의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필리핀에 대한 스페인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5척의 선박을 이끌고 멕시코의 아카풀코를 출발해 필리핀 남부의
세부에 도착한 후, 1566년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를 건설한 인물이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위치한 대구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조선시대(1590년)때 축조된 대구읍성의 남문으로, 일제 강점기인
1906년 읍성이 철거될 때 성문들도 함께 철거되었다.
이후 1980년 망우공원으로 옮겨 중건하였으나, 성루의 위치나 규모,
그리고 품격 면 등에서 원형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에 위치한 정이품송(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하던 중 임금이 타는
가마가 소나무 가지가 쳐져 있어 걸리게 되었으나, 이 나무 밑가지가
저절로 들려 올려져서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후에 세조가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 해서 그렇게 불린다.
발 넓다고 소문난 라오니스님이 아직까지 가보시지 않은 곳도 있었나요?ㅎㅎ
만약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가 넓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ㅋㅋ
그런데 문경세제 쯤은 가보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보네요.
이렇게 다시 되돌아 보니 괜히 다시 또 발걸음을 하고 싶어집니다.^^
포항함(PCC-756)은 2010년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북한의 잠수정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과 동일한 제원을 가진 함정으로,
우리 해군의 주력 1200톤급 초계함이다. (제원은 맨 아래사진 참조)
전투정보실.
전투에 필요한 레이더를 관측하며 포를 발사하는 전투지휘소이다.
포항함의 모든 무기의 발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포항함은 1984년에 취역하여 25년간 우리의 바다를 수호하면서
250여회의 출동임무를 수행, 대간첩작전 지원 및 후방 경계 책임의
핵심세력으로 활약하였으며, 1986년에는 동해 최전방에서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는 무장 선박을 침몰시키는
전과를 세우기도 하였다.
2009년 6월 30일 동해함(PCC-751)과 함께 퇴역하여 포항 동빈내항에서
체험관으로서 2010년 6월 12일 개관되어 활용되고 있다.
함정의 상갑판에 위치한 함교(艦橋, 조타실).
함정의 조종실이자 전투나 항해시 함장이 지휘하는
지휘소이기도 하다.
포항함은 함포와 어뢰, 미사일, 폭뢰 등으로 무장하고
해상초계와 대수상함전, 대잠수함전, 대공전 등을
전개하기 위하여 건조되었다.
함교에 위치한 전탐기(전파탐지기, 레이더).
중앙 복도 좌우측으로는 여러 용도의 격실이 배치되어 있으며,
가파른 계단과 좁은 통로 등의 구조로 인하여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천안함과 제원은 동일하지만 내부구조는 같지 않다고 한다.
함승조원 110여명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취사장.
장교들의 회의 장소이자 사관식당이기도 한 사관실에는
천안함의 희생자와 고 한주호 준위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함수 갑판 위에는 고 한주호 준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실물과 똑 같은 크기로 황동으로 제작되었다.
포항함 체험관은 체험관과 홍보관 · 안보관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홍보관은 포항함 건조에서 퇴역까지의 과정과 해군의 홍보 동영상,
해군에서 취역중인 최신 함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천안함 희생자의 추모코너가 마련되어 있는 곳은 안보관에 해당된다.
중국 황실의 여름 별궁이자 최대 규모의 황실 정원이라는
이허위안(頤和園, 이화원, Summer Palace)에 들어섰다.
넓다란 호수와 그 위를 떠 다니는 유람선이 먼저 반겨준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다리는 길이 150m의 스치쿵차오(十七孔橋)로,
쿤밍호 남동부에 위치한 난후다오(南湖島)를 연결하며,
중국정원 내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이허위안은 1750년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원래 이름은 칭이위안(淸漪園)이었다.
그 후 1860년에 영불연합군에 의해 소실되었던 것을
1886년에 재건하면서 이허위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자금성의 10배 정도의 크기로써, 특히 청나라의 마지막 황후인
서태후가 이곳에서 별궁으로 피서를 즐겼다고 한다.
총면적 2.9k㎡, 호수의 둘레 8km로,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호수는 쿤밍호(昆明湖)로, 전체면적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인공호수이다.
그리고 우측으로 보이는 산은 약 60m높의 완셔우산(萬壽山)으로
쿤밍호를 조성할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이다.
쿤밍호와 완셔우산을 중심으로 각종 전각과 사원, 회랑 등
3천여 칸의 전통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길이 728m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는 창랑(長廊)이 위치한
저곳으로는 아쉽게도 발걸음을 하지 못했다.
퉁뉴(銅牛).
스치쿵차오 초입에 세워진 정자.
대지면적 약 1ha정도의 난후다오(南湖島)로 건너왔다.
섬 위에는 룽왕먀오, 한쉬탕, 젠위앤탕, 웨보러우 등의 건축물이 있다.
자산(假山)에 있는 한쉬탕(涵虚堂), 3층으로 된 섬의 중심 건물이다.
쿤밍호에서 실시하던 해군훈련을 지켜보던 장소로 사용되었고,
청(淸)의 광서(光緖)시기에 단층 건물로 개축되었다.
완셔우산 앞 거대 석고대 위에 만들어진 불향각(佛香閣).
높이가 41m로, 전 지붕이 3층 4겹의 처마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 위로는 놀잇배가 지나 다니고, 그 주위 나무 사이로는 언뜻언뜻
전각이 들어 서 있는, 마치 여름 피서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는 듯
아주 평화로운 풍경이다.
청사 앞마당에 세워진 초대 주지사의 동상.
주지사는 괌 주민들 가운데서 선출되며, 괌 주민들은 미국의 준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권은 없다.
이곳은 괌 주지사의 관저 및 괌 정부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곳으로
아델럽 콤플렉스(Adelupe Complex) 또는 아델럽 포인트(Adelupe Point)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전통 차모로족의 건축 양식과 스페인 양식이 혼합된 괌 정부종합청사 건물은
1952년에 건축을 시작해 2년 후에야 완공되었으며
태풍 '파멜라'로 일부가 파손된 이후 개축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통풍이 잘 되도록 지어져서
복도에 서 있기만 해도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청사 뒤편 언덕위에는 스페인 통치 이전과 이후 시대, 그리고
19세기 괌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된 괌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아가나 만을 비롯해 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이곳 아가나의 서쪽 끝에 위치한 아델럽 포인트는
현재 괌의 정부 기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일본이 통치했던 시기에 바위 절벽 속에 요새를 만들어
각종 무기로 중무장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차모로족 전통 가옥의 하부에 사용되었다는 산호석인
라테스톤(Latte Stone)의 형상을 박물관 외관에 접목시켜 놓았다.
이 돌은 기둥 모양으로 지주 역할을 하는 '할라기'와 그 위에
받쳐져 있는 '타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원전 약500년경
고대 차모로족은 라테석으로 알려져 있는 이러한 모양의
돌 기둥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전한다.
망망대해...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라테스톤 한 기가 우뚝 서 있다.
마치 망부석 마냥 쓸쓸해 보인다.
박물관 우측편에서 조망해 본 바다.
괌의 해변은 산호로 둘러쌓여 있어서 파도도 일치감치 저 멀리로 물러나 있다.
패러세일링을 즐기는 모습이 여유롭다.
어떠한 연유로 세워진지는 모르겠지만, 군부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휘장이 들어간 기념비 하나가 한켠에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또 그 아랫쪽으로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대포 2문이 바닷쪽을 향해 놓여있다.
괌 정부종합청사는 관공서이긴 하지만 청사 주변에 푸른바다, 코코넛 나무,
해변 등이 어우러져 있어 마치 공원과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청사 뒷편 괌박물관 건물에는 하얀색의 벽과 계단이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CF(오란씨)를 찍었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제가 다녔던 자천 유치원도 그랬는데 ..
중학생이 되어서.. 대학생,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하고나서 시골에 있던 그 학교로 찾아가보았는데 ..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인지~ 아닌지...
연못에느 물도 없고, 어릴 때 그토록 넓어보였던 모형도시도 너무 작아보이고...
누구였는지 기억은 안니지만 동상만 서 있던 .. 그 학교가 생각나요.
덕분에 .. ^^; 옛추억이 막... 떠오르네요~
그 땐 아주 잘~ 달리던 나엿는데~(육상선수였삼~ ^^v) ㅋㅋ 지금은 굼벵이 다 됐다눈~ >0<